『기호와 기계』 | 마우리치오 랏자라또 지음 | 신병현·심성보 옮김 | 2017.7.14

아우또노미아
작성자
갈무리
작성일
2018-03-11 22:20
조회
1277


보도자료

『기호와 기계』
Signes, Machines, Subjectivité

기계적 예속 시대의 자본주의와 비기표적 기호계 주체성의 생산

인공지능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 『부채인간』의 저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비판

부채인간 이후에 자본주의는 새로운 주체성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전 세계적 금융붕괴 이후에 비판이론은 새로운 주체성을 고민하고 있는가?
『기호와 기계』는 주체성의 구축에서 자본주의와 비판이론 모두가 드러낸 실패에서 시작한다.

지은이 마우리치오 랏자라또 | 옮긴이 신병현·심성보 | 정가 21,000원 | 쪽수 400쪽
출판일 2017년 7월 14일 | 판형 신국판 변형 (139*208) 무선
도서 상태 초판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도서분류 아우또노미아총서 55
ISBN 978-89-6195-167-8 93300
보도자료 기호와기계-보도자료.hwp 기호와기계-보도자료.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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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의 개념은 엄격한 의미에서 인간을 기계와 연결할 뿐만 아니라
물질적, 기호적, 비실체적 요소 등의 다양체를 기계와 연결하는 하나의 기능적 전체로 확장되어야 한다.”
“예술가는 어떤 종류의 영감이든 그것이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정치적 행동은 경제적, 사회적, 언어적인 것 대신에 주체성의 생산을 일차적 목표로 설정하고,
그것에 필요한 실험도구, 절차, 조사, 개입을 구상하고 발명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기호와 기계』 간략한 소개

랏자라또는 들뢰즈와 가따리의 기호론으로 자크 랑시에르,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빠올로 비르노, 주디스 버틀러,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안또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등에까지 걸쳐 있는 언어중심적 정치이론을 비판하면서 물질적 흐름과 기계들의 흐름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기호들을 분석한다. “자본은 기호로 움직인다.”는 가따리의 주장에 근거하여 “오늘날 비판이론은 언어와 재현 중심의 사고를 넘어서고 있는가?”, “오늘날 기호들이 정치, 경제, 주체성의 생산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묻고 이로부터 자본주의 비판을 위한 새로운 이론과 비재현적 주체 이론을 전개한다. 이 책은 가짜뉴스, 혐오표현, 등록금과 담보대출, 인터넷과 인공지능 등이 움직이는 통제사회에서, 우리가 어떤 식으로 예속되고 또 스스로 자신을 예속하는지를 고찰한 후 신자유주의 아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런 예속과 결별하고 ‘평등’과 ‘자유’를 실현할 방법을 설득력 있게 규명한다. 자본과 국가가 생산하는 주체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도구가 무엇이고, 사회적 복종과 기계적 예속을 넘어설 주체성을 생산하기 위해 어떤 조직화가 필요한지를 밝히는 것이 이 책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이다.

『기호와 기계』 출간의 의미

이 책은 이탈리아 출신의 철학자이자 행동하는 지식인, 마우리치오 랏자라또가 지난 10년 동안 각종 사회적·정치적 현안과 이론적 문제에 개입한 흔적을 모은 글이다. 저자는 탈산업화 이후의 자본주의의 궤적을 구체적으로 추적하고, 신자유주의에서 배제된 사람들(비정규직 노동자, 청년 실업자, 빈민층 등)의 처지와 그들이 촉발한 투쟁과 운동을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이를 위해서 랏자라또는 들뢰즈·가따리에서 바흐친 등을 거쳐 푸코에 이르는 이론적 자원에 의지하며, 이들 사상가를 계승하고 극복했다고 알려진 비판이론가들(지젝, 버틀러, 비르노, 바디우, 랑시에르 등)의 주장을 하나씩 비판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바야흐로 기계의 시대다. 작년에는 알파고의 충격으로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었다면, 올해부터는 테슬라의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에 열광하고 곳곳에서 ‘4차 산업혁명’을 노래한다. 인공지능이 인간과 노동을 대체한다고 호들갑을 떨다가, 어느새 그런 두려움은 거대한 산업전환과 새로운 사업기회,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속에 사라진 것 같다.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나는 새로운 기술을 찬양하는 유토피아적 비전이다. 더 정확히는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이 전지구적 금융위기 이후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 자본의 수익(그리고 금융의 이윤)을 만회하기 위한 새로운 혁명이라는 것이다(그러나 일부 지역의 경기 회복은 다른 국가나 지역으로 위기를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다).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인식된다. 새로운 기술로 어느 누구는 손해를 보지만 경제 전체로 봐서는 새로운 직업과 고용이 창출되기 때문에 고용 절벽도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반응 이면에는 그런 혁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디스토피아적 비관론이 존재한다. 이것은 ‘4차 산업혁명’이란 자본주의가 탄생한 이래 늘 있어 왔던 기계에 의한 인간의 대체에 불과하며, 따라서 자본과 기득권층에 ‘독점적’ 이윤을 보장할 뿐이지, 평범한 노동자, 소비자, 시민들에게 착취와 실업, 저임금, 불평등, 파편화되고 지루한 노동을 가져올 뿐이라는 비판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금융자본의 성장이 보여주듯이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은 실물 경제의 생산성 증가와 고용의 증대에는 거의 영향력이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다.

세계는 기계로 구성되어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두 입장은 일견 어느 정도 현실 타당성이 있으며 그 나름대로의 과거 경험에 기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질문을 던질 수 있지 않을까? 과연 기계와 인간은 대립하거나 구분되는 존재인가? 기계는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존재일 뿐인가?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인간과 기계는 반드시 대립하지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오히려 인간과 기계는 상호접속하며, 심지어는 서로 구분되지도 않는다. 문제는 우리의 인간중심적 사고와 실천에 있다. 저자에 따르면 적어도 근대 자본주의 이래 인간보다는 기계가 인간을 이용했으며, 더 정확히는 인간 자체가 기계이고 기계 자체가 인간이었다.

이런 시각에는 기계와 인간에 대한 관점 전환이 내포되어 있다. 저자가 말하는 기계는 기술적 기계만이 아니라, 자신의 ‘환경’과 상호 접속하는 모든 존재, 예를 들어 화학적 결정체를 이루는 분자들에서부터 언표들을 거쳐 가족, 교육 등의 사회적 시스템까지 포함한다. 이런 측면에서 기계와 ‘환경’(또는 인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복수의 기계들이 존재하고, 이들 사이의 다양한 접속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저자는 들뢰즈·가따리의 표현을 빌려 이런 접속들의 연결, 분리, 통합을 기계, 또는 기계적 배치라고 부른다.

랏자라또에 따르면 아직 기계에 대한 이론화는 너무나 부족하다. 무엇보다 우리는 주체/대상, 자연/문화의 대립을 의심하고 무효로 만들어야 한다. 그럴 때 “기계는 기술의 부분집합이 아니라 인간 본질에 참여한다. 실제로 기계는 기술의 전제 조건”(116쪽)이라는 통찰이 가능해진다. 이런 관점에 서면 “공공 기관, 미디어, 복지국가 등의 장치도 … 인간, 절차, 기호계, 기술, 규칙 등”(117쪽)을 배치하는 기계이다.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자본주의의 주체성 생산 : 사회적 복종과 기계적 예속

랏자라또에 따르면 “자본주의 아래에서 주체성의 생산은 … 사회적 복종(social subjection)과 기계적 예속(machinic enslavement)”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작동한다.

사회적 복종은 “개체화된 주체”를 생산한다. 사회적 복종은 우리에게 성, 신체, 직업, 민족성 등을 할당한다. 사회적 복종은 노동의 사회적 분업 내에서, 그런 분업에 어울리는 개개인의 위치와 역할을 생산하고 분배한다.(32쪽) 신자유주의 시대에 우리에게 “인적 자본”과 “기업가형 자아”가 강요되었던 것, 그리고 그 명령이 차츰 ‘부채인간’으로 변형되었던 것이 사회적 복종의 예이다.

주체성 생산의 다른 축인 “기계적 예속”에서 개체는 “경제적 주체”(예를 들어서 인적 자본, 기업가형 자아, 시민)가 아니라 “기업” “금융시스템” “복지국가” “미디어” 등의 배치 속에 있는 하나의 부품으로 간주된다.(34쪽) 랏자라또에 따르면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가 이런 이중적 권력 장치를 정확히 묘사하였다. “복종은 개체들을 생산하고 지배하지만, 예속을 통해서는 ‘개체들이 … ‘분할 가능한 것’이 되고 대중들(masses)이 표본·데이터·시장·[자료] ‘은행’이 된다.”(35쪽)

“사회적 복종”과 “기계적 예속”은 랏자라또가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기 위해 사용하는 핵심 개념들이다. 그는 이 두 가지 권력 장치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주체성 생산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 『기호와 기계』가 두 장치의 차이와 상보성을 검토하고 “복종의 양식들과 예속의 양식들에 관한 지도제작을 추적”함으로써 “자본주의가 장악한 주체성, 그것의 생산 양식, 삶의 양식들에서 벗어나 그것들과 무관한 자율적인 과정을 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쓴다.

기표적 기호계와 비기표적 기호계

사회적 복종과 기계적 예속은 서로 다른 기호계와 관련된다. 사회적 복종은 기표적 기호계, 특히 언어적 기호계를 동원하며, 의식을 겨냥한다. 그와 달리 기계적 예속은 비기표적 기호계를 동원한다. 비기표적 기호계는 예컨대 “주가지수, 통화, 방정식, 다이어그램, 컴퓨터 언어, 국민 계정, 기업 회계” 같은 것들이다. “비기표적 기호계는 의식과 재현에 관여하지 않으며 주체를 준거대상[지시대상]으로 삼지 않는다.”(55쪽)

우리가 사는 세계 자체가 기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간(의 부분들)도 일종의 기계들이 접속된 산물이다. 이런 기계들이 서로를 끌어들이고 밀어내고 결합하는 힘들의 작동방식, 그러니까 일종의 코드가 기호(기호계의 기능)이다. 여기서 기호는 언어적 표현뿐만 아니라 비언어적 표현들, 예를 들어 소리, 냄새, 느낌, 전자, 분자 등의 신호들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그것들은 비기표적으로, 우리의 의식이 의미로 인식하기도 전에 작동한다.

예를 들어 보자. 운전할 때 우리는 의식적으로 차를 몬다기보다는 발과 팔이 자동차의 일부처럼 ‘무의식적으로’, 즉 의식을 우회해서 작동한다. 우리의 의식적 주체는 수많은 부품들로 분해되어 자동차의 부품들과 어느 정도 자동적으로 작동한다. 개체화된 주체의 의식은 운전 중 어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할 때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런 사례에서 우리는 “주체성의 이중화 과정을 최초로 경험”한다. 이것은 가따리가 『분열분석적 지도제작』(Schizoanalytic Cartographies)이라는 책에서 제시한 사례인데, 가따리는 이런 이중화 과정이 오늘날 “모든 기구와 제도가 작동하는 방식”(130쪽)이라고 본다. 오늘날의 자본주의에서는 비기표적 기호계와 기호적 기호계를 다양하게 흡수한 ‘혼합적 기호계’가 작동한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특히 언제나 기표적 기호계에 정복당해 잘 보이지 않는 비기표적 기호계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기계, 기구, 다이어그램, 방정식, 비기표적 기호계가 없다면 아마도 인간은 탈영토화 과정들을 이해하고 그것에 개입할 수 없는 “실어증자”가 될 것이다. 즉 그들은 이런 [기계 중심적] 세계들에 대해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기계 중심적 세계에서 말하고, 보고, 냄새 맡고, 행동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계들과 같은 편이 되어야 하며 비기표적 기호계와 같은 종류가 되어야 한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비기표적 기호계가 언표행위의 초점을 구성하고 주체화의 벡터를 구성하는 것이다.(130쪽)

공장이나 사무실이나, 주식 시장에서 움직일 때 우리는 의식을 가진 개인으로서 일한다기보다 손과 팔, 우리의 눈, 우리의 두뇌가 각종 장비, 모니터, 스크린과 접속해서 움직인다. 예를 들어 전형적인 기술적 기계와 노동자의 상호작용을 살펴보자. 노동자는 자신의 의식 속에서는 기계를 하나의 대상으로 대할 수 있지만, 실제의 노동과정에서는 기계의 보철로 기능하고 기계를 움직이는 에너지로 변환된다. 공장에서 인간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행위자가 아니라 에너지와 생리적 피로도, 동작과 시간의 독특한 리듬으로 분절되고 변형되어 기술적 기계(그리고 노동조직의 사회적 기계)의 부품이 된다.

또 우리는 빅데이터에서 다양한 정보 더미로 분해되고, 자신의 소비패턴, 신용정보, 재무상태, 정치성향 등으로 재조합된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금융시장에서 파생상품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과 다르지 않다. 우리의 정보는 데이터 공학의 재료가 되어, 어느 순간 우량고객이 되거나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그 무엇도 아닌 어떤 주체의 형태로 표면에서 제시될 뿐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사회적·직업적 분업과 역할에 적응한 존재이기보다는 기계적으로 조합되는 존재(데이터로 변환된 존재)일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도, 저항운동도, 주체성 발명에 실패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는 장기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새로운 체제는 1970년대 이후 수익률 하락에 직면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위로부터의 구조조정에 나섰다. 하지만 2차 대전 이후처럼 급격한 생산성 증가는 없었고, 금융자본으로 자본 내에서 분배를 옮겨간 것에 불과하였다. 저자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신기술의 개발은 일시적 경기회복을 가져오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이어졌다. 이런 시각은 전통적인 정치경제학적 비판이나 최근에 대두하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론, 피케티 식의 자본주의 비판과 결론에서는 그리 다르지 않다.

저자 고유의 새로운 시각은 자본주의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생산력 자체를 증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주체성의 생산, 또는 사회적 관계의 변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발전주의 시기에는 국민으로 대중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고, 신경제와 정보화 시대에는 기업가형 주체가 필요했으며 금융화 시대에는 금융 투자자(즉 빚을 얻어서 투자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는 주체)인 ‘부채인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은 부채를 통한 금융화된 경제를 전제할 뿐만 아니라, 부채를 통해서 자산을 증식하는 주체성이 없이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중적 동의를 획득한 새로운 주체성은 등장하지 않았다. 전지구적으로 위기가 확산되자 부채인간이라는 주체성 형태는 투자자로서 수익을 남기기보다는 1% 소유자 집단의 수익을 늘려주는 빚쟁이로 판명되었고, 심지어는 긴축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적 리스크(risk)를 전담하는 노예로 드러났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부채인간’ 자체도 인간중심적인 주체성이 아니란 점이다. 부채인간은 빚쟁이로서 사회적 규범을 따르기도 하지만, 금융상품의 리스크 계산, 간단히 말해 신용등급에 따라 자신의 행위방식이 조정되는 일종의 자동화된 기계인 셈이다. 저자가 볼 때 부채인간 이후 자본주의는 새로운 주체성을 발명하지 못했다. 문제는 비판이론과 저항운동도 새로운 주체성을 발명하지 못하고, 대중의 동의를 얻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의 공산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 급진민주주의의 안에서 인민, 시민적 주체, 혁명적 주체 등이 수행했던 역할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주체성의 발명이 필요하다

오늘날처럼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가 사회체의 지배적 모델로 작동할 때, 호모 폴리티쿠스(정치적 인간)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경제가 하나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사회 등 모든 영역으로 확장되고, 심지어는 다른 영역의 운영 모델이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여러 논자에 따르면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최후 판본인 ‘부채인간’이 지배적인 주체성이 될 때, 우리는 더는 인민도, 계급도, 시민도 아닐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인민이나 계급이나 시민으로 정치의 장에 등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은 자기 삶의 리스크를 투자 포트폴리오로 분산시키는 계산적 주체이다. 이런 주체들에게 권력기구가 자기 자신을 대표한다는, 그것도 집합적으로 대표한다는 근대 정치의 상상력은 정치권력의 단순한 허구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비판이론과 실천의 고민은 아마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계론의 혁신을 통해 비기표적 기호계 주체성이라는 새로운 주체성 대안을 내놓는 이 책은, 이런 고민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줄 것이다.

랏자라또에 따르면 기존의 비판이론은 (요즘 유행하는 지젝, 버틀러, 바디우, 랑시에르에서 인지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어떤 관점이든 너무나 인간중심적이고, 의식·인지·언어 중심적이다. 인간=인지=의식=언어 중심성은 결국 인간, 인지, 언어 등이 기존의 공고화된 권력 체제를 전제하는 한 권력의 관점을 재생산한다. 예컨대 아무리 우리가 권력의 언어를 (수행적으로) 전유하더라도 어쨌든 우리는 권력의 언어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현실의 운동과 저항은 이런 권력의 호명이 없어도, 혹은 공동체를 전제하지 않아도 이미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권력의 시각을 비판하기 위해서 우리는 권력이 공고화되기 이전의 상태, 그러니까 기계적인 소통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으며 이런 분석을 통해서 탈인간-기계들의 접속을 새롭게 전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이런 시도는 우리가 아직까지 상상하지 못한 가능성을 개방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디스토피아, 혹은 유토피아를 문제 삼기 위해서는 자본의 비기표적 작동방식을 우리가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리뷰어 추천사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촛불봉기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시의적절한 방향키를 제시하고 있는 책이라고 봅니다. 현재 한국에서 수용되고 있는 비판이론에 대한 비평도 흥미롭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인 후기 푸코와 랑시에르의 이론을 비교하고 있는 부분은 긴박감까지 느끼게 됩니다. 사회적 복종과 기계적 예속이라는 틀로 현 자본주의에서의 삶을 분석하고 있는 부분 역시 매우 중요한 분석적-실천적 논의를 담고 있습니다. 어서 한국어판이 출간되어서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논의되었으면 하는 책입니다.
― 이성혁 (문학평론가)

책 속에서 : 『기호와 기계』와 새로운 주체성의 발명

신자유주의적 탈영토화에서는 주체성의 새로운 생산이 전개되지 않는다. … 자본은 언제나 시장과 기업 그 이상의 영토를 요구하며 기업가적 주체를 벗어난 주체성 형태를 요구한다. 기업가, 회사, 시장이 한편으로는 경제를 구성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그들이 사회 자체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 서론, 10~11쪽

비인간들은 인간들만큼이나 행동의 틀과 조건을 규정하는 데 기여한다. 사람들은 기계들, 객체들, 기호들이 자기 자신과 동일한 “행위자”로 존재하는 배치 속에서, 또는 집합체(collective) 속에서 언제나 행동한다.
― 1장 생산과 주체성의 생산, 42쪽

사유의 주체는 개체가 아니며 창조의 주체도 개체가 아니다. 사유하고 창조하는 개체는 제도(학교, 극장, 박물관, 도서관 등), 기술(책, 전자회로, 컴퓨터 등), 공적·사적 투자의 네트워크 속에서 등장한다. 따라서 개체는 그/녀를 사유하고 창조하도록 강제하는 ― 그리고 기호, 개념, 작업의 순환에 접속된 ― 사유의 전통들과 미적 실천들에 둘러싸인다.
― 기호론적 작동자로서의 자본, 65쪽

우리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어떻게 타자의 주관적 경험과 연결될 수 있는가? 어떻게 타자의 정동을 공유할 수 있는가? 가따리와 시몽동(또는 스피노자)이 주장하듯이 우리는 “타자에 의해 작동하는” 주체성을 통해서, “주체들 사이를 횡단하는” 주체성을 통해서 그렇게 할 수 있다.
― 3장 혼합적 기호계, 152쪽

다른 모든 존재에게 없는 것, 즉 언표행위와 표현의 역량이 인간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제국주의적”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제국주의적” 역량이 사라진다고 해도 인간에게는 “또 다른 표현 수단이 존재한다. 비언어적 수단 말이다.” 언어적인 언어의 기호들은 비언어적 언어의 기호들, 특히 행동 언어를 번역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 3장 혼합적 기호계, 199쪽

만일 우리가 “합법적인” 대표와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빈틈을 열고자 한다면, 우리는 엄청난 소음을 일으키거나 “비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겨우 우리는 뉴스에 등장해서 자신을 알릴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충분한 대응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미디어는 자신이 미리 선점한 “쟁점들”의 한계 안에서 소통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 4장 갈등과 기호 체계, 245쪽

가따리가 묘사하듯이 우리는 목소리에서 자연과 우주의 활력(물활론)을 발견한다. 언어학 및 언어철학의 주장과 달리 여기서는 기표화 이전의 신체적 기호계(제스처, 자세, 동작, 안면표정 등)가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 왜냐하면 가치들이 신체를 통해서 가장 먼저 출현하기 때문이다.
― 5장 “쓰레기”와 수행성 비판, 271쪽

삶, 실존, 생명과 같은 개념은 우리를 생기론으로 돌려보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복종과 단절하는 주체화, 즉 자기에 대한 관계를 통해서 이런 미시 권력 관계를 어떻게 정치화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질문하게 해준다.
― 7장 언표행위와 정치, 367쪽

지은이·옮긴이 소개

지은이
마우리치오 랏자라또 (Maurizio Lazzarato, 1955~ )
이탈리아 출신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 1980년대 초에 프랑스로 망명, 파리 제8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패러다임, 정보기술, 비물질노동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율주의 잡지 『물티튀드』(Multitudes)지의 창간 발기인이자 편집위원이다. 비물질노동, 임금노동의 종말, ‘포스트사회주의’ 운동, 인지자본주의와 그 한계, 생명정치·생명경제 개념 등이 연구 주제이다. 저서 『부채인간』(메디치미디어, 2012)은 한국어를 포함하여 11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2013년 서울 일민미술관의 <애니미즘> 전시회에 시각예술가 안젤라 멜리토풀로스와 함께 작업한 영상 작품 <배치>와 <입자들의 삶>이 전시되었고 작품 소개를 위해 방한하기도 하였다. 저서로 『비물질노동과 다중』(공저, 갈무리, 2005), 『부채통치』(Gouverner par la dette, 갈무리, 근간), 『사건의 정치』(La politica dell’evento, 갈무리, 근간), 『정치의 실험들』(Experimentations politiques, 갈무리, 근간), 『발명의 힘』(Puissances de l’invention, 2002), 『자본주의 혁명』(Les Revolutions du capitalisme, 2004), 『불평등의 정부』(Le Gouvernement des inegalites, 2008), 『전쟁과 자본』(공저, Guerres et Capital, 2016) 등이 있다.

옮긴이
신병현 (Shin Byung Hyeon, 1958~ )
홍익대학교 경영대학, 홍익대학교 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이다. 저서로 『문화, 조직, 그리고 관리』(한울), 『작업장 문화와 노동조합』(현장에서미래를), 『노동자문화론』(현장에서미래를), 『사라진 정치의 장소들』(공저, 천권의책), 『포스트모던 조직론』(공저, 다인아트), 『노동자 정체성은 있는가? 재현과 가부장체제』(액티비즘) 등이 있다. 논문으로 「푸코의 파르헤지아 개념과 교육론적 함의 : 교사의 형상과 대안적 교육 주체화 과정을 중심으로」, 「금융화 시기 지대의 독점적 조직화와 문화과정」, 「비고츠키와 랑시에르 : 교육문화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 등 다수가 있다.

심성보 (Sim Sung Bo, 1976~ )
킹콩랩 연구원. (전)문화연구시월 연구원. 비판이론, 문화연구, 담론분석, 연구방법론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로 『사라진 정치의 장소들』(공저, 천권의책), 번역으로 『금융자본주의의 폭력』(갈무리), 『시민을 발명해야 한다』(갈무리), 『푸코효과』(공역, 난장), 『일회용 청년』(공역, 킹콩북), 『생명정치란 무엇인가?』(그린비) 등이 있다.

목차

서론 8

1장 생산과 주체성의 생산 : 사회적 복종과 기계적 예속 사이에서 31
1 사회적 복종과 기계적 예속 32
2 인간/기계 대 인간들/기계들 40
3 이집트의 거대기계 : 예속의 최초 형태 43
4 복종의 기능 48

기호론적 작동자로서의 자본 : 기표적 기호계와 비기표적 기호계 55
“생산”의 개념 60
욕망과 생산 71
“인적 자본”의 실패 76

2장 생산과 주체성의 생산에서 기표적 기호학과 비기표적 기호계 80
1 구조주의의 잔재 : 구조 없는 언어 83
2 기표적 기호학 95
3 비기표적 기호계 114

3장 혼합적 기호계 137
1 주식딜러의 기계적 주체성 138
2 “인간”의 혼합적 기호계 147
3 영화의 혼합적 기호계 157
4 노동 분업에서 기표적 기호계와 비기표적 기호계 164
5 주체성의 이중적 기능과 가공 177
6 빠졸리니와 새로운 자본주의의 내재적 기호계 182

4장 갈등과 기호 체계 203
문제화 211
선전구호의 해석과 전파 216
갈등에 개입하는 학자 219
실업과 비가시적인 노동 224
기표적 기호계의 내러티브 기능 229
복종 기계 232

5장 “쓰레기”와 수행성 비판 247
1 “절대적” 수행문 249
2 수행성을 통한 해방 253
3 바흐친과 최초의 언표행위 이론 259
4 목소리와 제스처의 미시 정치 268
5 담론 전략들 271
6 재생할 수 있는 것과 재생할 수 없는 것 276
7 “주체에 선행하고 주체를 초과하는” 언어 281
8 언어에서의 초월과 죄의식 288
9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291
10 “쓰레기”에 더하여 294

6장 주체성 생산에서 담론적인 것과 실존적인 것 298
1 기계장치와 실존적인 것 299
2 담론적인 것과 실존적인 것의 이접과 통접 306
3 미적 패러다임 311
4 오늘날의 위기 322

7장 언표행위와 정치 ― 민주주의에 대한 평행적 독해 : 푸코와 랑시에르 334
1 두 개의 평등론 335
2 “진실-말하기” 337
3 파르헤지아, 폴리테이아, 이세고리아, 두나스테이아 340
4 언표행위와 화용론 344
5 파르헤지아의 위기 349
6 정치적 행동의 두 모델 353
7 로고스와 실존, 극장과 행위예술 358
8 감각적인 것의 분배, 또는 분할과 생산 363
9 평등과 차이 367

옮긴이 후기 : 기호와 기계, 주체성에 관한 새로운 사유의 모험 372
참고문헌 386
인명 찾아보기 393
용어 찾아보기 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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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민주주의』(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7)
전 세계적 정치상황과 사회운동에 대한 경험적 분석을 통해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 속에서 진동해온 민주주의 논쟁을 절대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지평의 발견과 발명을 통해 한 걸음 더 전진시키려는 것으로 이러한 주제의 단행본으로서는 국내외를 통틀어 최초의 책이다. ‘절대민주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대선 이후 초미의 관심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는 ‘사회대개혁’이라는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구체화해 나가야 할지를 사유할 개념적 틀과 근거를 제공한다.


『예술인간의 탄생』(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5)
예술성이 협의의 예술사회는 물론이고 생산사회와 소비사회 모두를 횡단하면서, 예술의 일반화, ‘누구나’의 예술가화, 모든 것의 예술 작품화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예술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센세이셔널한 예술종말론들이 유행하고 있다. 어째서인가? 종말로 파악할 만큼 급격한 예술의 위치와 양태변화는 항상 새로운 주체성의 대두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단토, 가라타니 고진, 벤야민 등의 예술종말론들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기에 나타난 예술적 변화를 예술종말로 파악한 과거의 관점들(헤겔, 맑스)을 산업자본주의에서 인지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는 다른 맥락에서 되풀이하는 것이다.


『인지자본주의』(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1)
'인지자본주의'는 인지노동의 착취를 주요한 특징으로 삼는 자본주의이다. 우리는 이 개념을 통해서 현대자본주의를 다시 사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의 문제설정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할 수 있다. 이 개념을 통해서 우리는, 금융자본이 아니라 인지노동이 현대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을 가져오는 힘이라는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그 노동의 역사적 진화와 혁신의 과정을 중심적 문제로 부각시킬 수 있다.


『비물질노동과 다중』(마우리치오 랏자라또 외 지음, 갈무리, 2005)
'신자유주의, 정보사회, 탈산업사회, 주목경제, 신경제, 포스트 포드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의 응답을 한 권에 엮은 책. '물질노동이 헤게모니에서 비물질노동의 헤게모니'로의 노동형태 변화를 주요 현상으로 지적하고, 비물질노동의 두 축인 정동노동과 지성노동을 분석한 후, '다중'이라는 새로운 주체성의 형성에 비물질노동이 미치는 영향을 살핀다. 1부에는 '정동'에 관한 질 들뢰즈의 연속 강의, 2부에는 마우리찌오 랏짜라또와 삐올로 비르노의 글을 실었다. 3부에서는 새로운 주체성, 미적 생산, 시간의 재구성의 문제를 실마리로 비물질노동 개념을 발전시켜 보려는 우리 나름의 이론적 개입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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