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4] 네그리, 하트 <어셈블리> chapte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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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123
작성일
2018-07-14 19:29
조회
629
2018-07-14 『Assembly』 written by Michael Hardt & Antonio Negri 발제자: 문주현
Chapter1. 리더들은 어디로 갔는가? pp. 3 ~14

1. 매 해 우리는 “리더가 없는” 사회 운동의 분출을 목격한다. 활동가들은 수평적 운동의 효력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것에 분투한다.
2. 운동들이 민주적 이상을 제기하고 때때로 개혁을 주도하거나 정권을 압박하여 전복시킴으로써, 광범위한 사회과정들이 함께 시행되거나 결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운동들은 오래가지 못하는 경향 탓에 지속적인 사회적 변용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3. 많은 이들은 만약 사회 운동이 새 리더를 찾을 수 있으면 그들의 옛 영광을 되찾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변용과 해방이란 전망을 달성하고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리더들은 어디로 갔는가? 리더십은 오늘날의 운동에서 풀지 못할 수수께끼인 듯하지만, 개혁적, 진보적 운동에서 이 문제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코뮈나르(the Communards; 코뮌 공동체 가담자) 지지자의 “오류”
4. 1871년 3월, 브루조아 정부와 그들의 군대가 후퇴할 때, 코뮈나르들은 파리를 점령하고, 국민주권(of the people)과 국민자치(by the people)라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유형의 민주주의를 위한 제도적 구조를 만드는데 착수했다. 보통선거권과 무상교육이 만들어졌고 상비군이 폐지되었으며 대리인들은 노동자의 임금을 받고, 가장 중요하게도, 모든 정치인들의 위임통치권을 언제든 철회 할 수 있게 됐다. 코뮈나르들은 모든 사람들이 모든 정치적 의사결정에 자신들을 대표하여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5. 칼 마르크스는 2가지 중대한 오류를 지적했다. 첫째, 급작스럽게 코뮌의 중앙위원회를 해체한 즉시 사람들의 손에 의사결정을 맡기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과도하게 독단적인 애착이었다. 둘째, 후퇴하는 (2달 뒤 패배에 기여할) 부대를 뒤쫓지 않는, 비폭력과 평화를 향한 헌신이 그들을 엇나가게 만들었다.
6. 그러나 코뮈나르들이 그들의 “오류”를 지키지 않았다면, 생존했다 한들, 열망하던 민주주의의 핵심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많은 이들에게 이는 복잡미묘한 문제이다.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정치조직의 딜레마를 논할 때, 우리는 순진하게 리더십을 부인하는 사람들과 중앙집권적이고 위계적인 조직으로 돌아간 사람들 모두에 대한 반복되는 비난을 듣는다. 그러나 이 둘만이 우리의 유일한 선택지라는 생각이 너무나도 오래 지속되고 있다.
7. 교착상태를 벗어나려는 노력들은 전략적 모호함, 혹은 코뮌 이후의 혁명을 주도했던 전세계 전임자들이 만든 “전술 사실주의”의 표현에 의해 막히고 있다. 전통은 많은 변주를 거쳐 이중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는 혁명의 전략적 목표는 지배자나 중앙조직 없이 우리가 스스로를 통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나, 동시에 현실적으로, 시기가 맞지 않음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8. 현대 해방운동은 현재 상황이 아닌 미래 목표로의 민주주의에 전념하고 있다. 부르주아와 프로이센의 (반혁명적인) 여전한 영향력(continuing power)은 어떤 민주적 실험도 파괴할 것이다. 더욱이, 사람들은 스스로를 통치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혁명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9. 앞서 말한 이중적 입장은 폭넓게 공유되는 신념으로 굳혀졌으나, 이미 150년 전 많은 공산주의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었다. 그들은 현실 민주주의에서 이상적인 열망을 공유했지만 지체가 무한정 연장될까 두려워했다.
10. 혁명가들은 주권(Sovereign authority)에 대한 가정들이 그들의 정치적 상상력을 오염시킬 것이며, 토마스 홉스가 여전히 그들의 혁명조직 안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라 예견했다.
11. 근대에 이르어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혁명가들을 괴롭혀온 정치적 딜레마인 리더십과 민주주의의 관계는 대표성의 이론과 실천에서 명백하게 표현된다. 모든 합법적 권력은 대표함으로써 민의라는 견고한 토대를 갖는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들리는 선언너머에, 대표들(representatives)의 행동과 대표된 자들(the represented)의 의견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12. 질문에 대한 주된 반응은 두 가지 상반된 방향을 가리킨다. 권력은 오직 유권자들에 근거할 수 있거나 해야 하며, 민중의 의견은 권력으로 표현된다는 것과, 주권은 국민주권(popular sovereignty)일지라도 대의제(representation)라는 기전을 통해서 유권자들의 의지로부터 분리되고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3. 자크 랑시에르는 “대의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는 오늘날 췌언(pleonasm)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본래 모순어법(Oxymoron)이다.”라고 말했다. 근대 역사와 자본주의 사회의 역사에서, 권력과 합의, 중앙화와 자치권을 합할 가능성은 환상으로 드러났다.
14. 코뮈나르들은 근대 대의제를 요구하는 것의 허위성을 분명히 인식했었다. 그들은 4-6년에 한 번씩 그들을 대표하고 그들의 관심에 따라 행동하겠다 약속하는 지배세력을 선택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15. 리더들이 자신들의 열망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대개 체념(resignation)과 함께 한다. 권위주의 통치(authoritarian rule)보다는 물론 낫다. 그러나 대의제라는 근대 패러다임(paradigm)은 현실적인 민주주의 대안을 형성하지 못한 채로 끝을 맞이하려 한다.


잘못된 가정: 리더쉽에 대한 비판 = 조직과 제도에 대한 거부
16. 오늘날의 사회운동은 지속적이고 과감하게 정치조직의 전통적이고 중앙집권적 형태를 거부한다. 운동들의 면역력은 대단히 발달해서 모든 리더십(leadership virus)의 출현은 즉각 공격당한다. 중앙집권에 대한 반대를 모든 종류의 조직적 제도적 형태에 대한 거부와 동일시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17. 전통적 리더십을 피하기 위해서는, 사회운동도 그러한 형태를 발명하고 형성하는데 공들여야 한다. 그러나, 대안들을 인식하는 길은 때로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우회적이다.
18. 풍부한 활동가 경험을 겸비한 지적인 정치이론가들 중 다수는 조직의 문제를 과거의 패배로부터 지속된 곪아 터진 상처로 간주한다. 조직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한편, 실재하는 정치조직에는 본능적인 반응을 보여준다.
19. 우리는 이들에게 충분히 공감하지만, 누군가는 좌절하지 않는 패배(defeat without being defeated)를 생각해야 한다. 조직을 거부하는 사회운동은 무용할 뿐 아니라 그들 자신과 타인들에게도 위험하다.
20. 최근 이론적 발전은 조직에 대한 일반화된 거절을 지지하는데 인용되어왔다. 예를 들어, 노동력의 지적(intellectual), 정동적(affective), 소통적(communicative) 역량에 대한 이론적 탐구는 가끔 뉴미디어의 잠재력에 대한 논쟁과 짝지어지고, 활동가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할 수 있고 제도는 필요치 않다는 가정을 강화하는데 사용되었다. 이러한 경우처럼, 내재(immanence)에 대한 철학적 정치적 단언(affirmation)은 (흔히 급진적 개인주의의 가정과 함께) 모든 규범과 조직적 구조의 거절로 오역되었다.
21. 반면, 내재의 정동과 새롭게 일반화된 사회운동의 인식은 양립될 수 있고, 나아가 리더십의 구조를 파괴할 새로운 형태의 조직과 제도를 요구한다.
22. 리더십에 대한 비판 너머에는, 지속성과 효율성을 보증할 수 있는 운동에 있어서, 우리가 지지하지 않는, 조직적제도적 형태를 생성하는 모든 시도에 저항하는 입장이 숨어있다. 이 경우, 권한과 리더십에 대한 비판은 운동에 대한 부채가 되어버린다.
23. 국가(the state)를 자본주의 권력이 (때로 식민화되고) 차지하면서 정당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선출정당의 잠재력은 심히 제약되어 있다. 다양한 형태의 정당은 대표자가 되겠다는 주장을 수행할 수 없다. 진보적 선출정당들은 운동의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로서, 전략적 장점을 누릴 수 있다.
24. 우리는 부패한 리더십 구조를 지원하여, 송장이 된 근대 선봉정당과 과거 해방운동들의 카리스마적 면모를 소생시킬 필요가 있다.

역사적 변화의 증상으로써 리더없는 운동
25. 오늘날 운동의 리더 부족은 우연한 것도 아니고, 고립된 것도 아니다. 위계적 구조는 대의제의 위기와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열망으로 기능하는 운동 내에서 와해되고 전복되어 왔다. 리더십 문제는 심층적인 역사적 변혁의 증상이자, 근대 조직적 형태가 파괴되고 충분한 대체가 마련되지 않은 와중에 놓여있다.
26. 리더들은 어디로 갔는가? 에 관한 간단한 대답은, 그들은 숨어있다는 것이다. 지배권력과 (주로 좌파 정당에 대한) 반작용(forces of reaction)들은 체계적으로 혁명적 리더들을 투옥하고 암살했다.
27. 각 나라에는 추락한 영웅이나 순교자들이 존재하고, 당신도 스스로의 목록을 작성할 수 있겠다: Rosa Luxemburg, Antonio Gramsci, Che Guevara, Nelson Mandela, Fred Hampton, Ibrahim Kaypakkaya.
28. 암살이나 정치적 투옥이 가장 장관이지만, 덜 가시적이지만 더 효과적인 대의제의 다른 무기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특수한 법적 박해(시위의 범죄화부터 대범한 소환과 관타나모 스타일의 투옥), 은밀한 작전이나 대중언론 이용 거짓정보 확산과 왜곡 등(pp. 9)
29. 이러한 탄압의 이차적 피해는 “오류로 인한 피해자”뿐만 아니라 투옥자들의 아이들, 고통받은 공동체와 공포의 일반적 기류를 포함한다. 지배권력은 이러한 피해를 목적을 성취하는데 있어 허용할 만한 비용으로 취급한다.
30. 모든 대반란의 매뉴얼(counterinsurgency manual)에서는 혁명의 리더를 제거하라고 설파한다: 머리를 자르면 몸체는 죽는다.
리더들에 대한 탄압과 표적화는 새롭지 않으나 외부요인에 집중하면서, 우리는 운동의 발전에 있어 변화의 진짜원동력은 안에 있다는 것을 놓치고 만다.
31. 전세계에서 여전히 활발한 활동가들의 계보에 있어서 하나의 강력한 움직임은, 1960 - 1970년대의 많은 페미니즘 조직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자각향상(consciousness-raising)의 실천과 모든 이들이 회의에서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정치적 과정에서 모두의 참여를 늘렸고 모든 이들에 의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32. 페미니즘 조직은 또한 누구도 집단의 허가 없이는 언론에 말할 수 없다는 규칙을 만들어서 회원들이 대표자 혹은 리더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방지했다. 다소 과격해도 “trashing”이라는 비판과 고립의 과정에는, 반권위주의 정신과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열망이 있었다.
33. 1960년대부터 70녕대에는 이러한 민주주의적 실천과 대의제에 대한 비평이 급증했다. 이들 운동은 단순히 남성 입법자가 여성의 요구를 대변하는 것, 백인 권력구조가 흑인을 대표하는 것뿐만 아니라, 운동의 리더들이 그들의 조직을 대표하는 것을 거부했다.
34. 참여는 대의제의 해독제로 작용했고, 참여 민주주의는 중앙집권적 리더십의 대체재였다.


오늘날의 문제
35. “위계없이 어떻게 조직을 구성할 것인가”와 “중앙집권화 없이 어떻게 제도를 만들 것인가”라는 두 가지 주요 관점에서 리더십의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36. 두 가지 모두 지속적인 정치적 체계의 건설이 사회적 삶 위에서, 혹은 그 너머의 초월적인 권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즉, 정치적 구조와 정치적 제도는 주권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물질주의적 직관을 포함한다.
37. 이는 근대성의 정치적 논리로부터 엄청난 변화를 의미한다.
38. 동유럽의 몇몇 저자(Johannes Althusius, Baruch Spinoza)들은 통치권 이론자들에 대항했고, 절대주의 국가인 영국과 프랑스의 저자(Thomas Hobbes, Jean Bodin)들은 대안적인 정치적 관점을 제시했다. 수 세기동안, 지배자들과 피지배자, 통치자와 피통치자는 입법기관(assemblies)에서 각각의 권력을 시험하기 위해 충돌해왔다.
39. 첫번째 헌장과 헌법문서들은 피지배자들의 권력에 대한 인식으로 승인되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들은 지리적 형태를 형성했는데, 단일점의 원이 아닌, 두 구심을 갖는 타원 형태였다.
40. 우리는 전근대 유럽의 정치적 배치로 돌아갈 생각은 일체 없으나, 그러한 투쟁들의 진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41. 우리는 모든 형태의 근대 주권을 반복하는 리더십에 저항할 필요가 있으나 많은 이들이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42. 주권은 정치의 모든 영역을 결정하지 않는다. 조직과 제도의 비주권적 형태는 강력하고 지속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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