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발제문입니다

작성자
Yeongdae Park
작성일
2019-01-15 18:23
조회
512
□ 다지원 <니체> 세미나 ∥ 2019년 1월 15일 ∥ 발제자: 박영대
텍스트: 니체, 『차라루스트라』, 1부

1. <세 변화에 대하여>
나 너희에게 정신의 세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련다. 정신이 어떻게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며, 사자가 마침내 아이가 되는가를.
→ 세 상태가 아닌 세 ‘변화’다. 즉 낙타, 사자, 아이가 있는 게 아니며, 우리는 처음부터 낙타로 출발하는 게 아니다. ‘낙타가 되기’, ‘사자가 되기’, ‘아이가 되기’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타조차 되지 못한 출발점에 서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정신에 큰 변화를 겪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떠올려보면, 실은 낙타가 되는 것조차 어렵고도 드문 일이다.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닌 억센 정신, 짐을 무던히도 지는 정신에게는 무거운 짐이 허다하다. 정신의 강인함은 무거운 짐을, 더 없이 무거운 짐을 요구한다.
무엇이 무겁단 말인가? 짐을 무던히도 지는 정신은 그렇게 묻고는 낙타처럼 무릎을 꿇고 짐이 가득 실리기를 바란다.
너희 영웅들이여, 내가 그것을 등에 짐으로써 나의 강인함에 기쁨을 느끼게 될 저 더없이 무거운 것, 그것은 무엇이지? 짐을 무던히도 지는 정신은 묻는다.
→ 풀을 먹으며 눈을 껌뻑이는 낙타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짐을 무던히 지는 것은 미련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이 낙타적 정신은 세계에 대해 충분한 경외심을 가질 정도로 억세고 강한 정신이다. 그러므로 미련이나 우중함과는 거리가 멀다. 등에 짐을 지는 것은 세계로부터 받는 고통을 가리킨다. 대부분의 나약한 동물(=정신)이 고통을 회피하고, 고통을 두려워하는 반면, 낙타는 오히려 이 고통을 원하며, 고통을 견디고 극복하는 강인함 속에서 기쁨과 자존감, 뿌듯함을 얻는다. (강렬한 자극과 자신을 상해하면서 기쁨을 느끼는 메조히스트와 다르다!) 그러니 가장 무거운 짐, 가장 큰 고통, 영웅적인 존재 자체에서 비롯되는 시련이야말로 자기 자신에 대한 가장 큰 자부심이자 행복이 된다. 큰 고통은 오직 고귀한 자에게만 주어진다. 이는 당연히 니체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이며, 니체가 초기 저작(『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 특히 쇼펜하우어)에서 드러나는 사상이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 변화는 모두 니체 자신의 변화기록이다.

짐을 무던히도 지는 정신은 이처럼 더없이 무거운 짐 모두를 짊어진다. 그리고는 마치 짐을 가득 지고 사막을 향해 서둘러 달리는 낙타처럼 그 자신의 사막으로 서둘러 달려간다.
→ “‘이처럼’ 더없이 무거운 짐 모두”다. 그러므로 앞에 나오는 모든 질문들이야말로 낙타에게 부과되는 짐인 셈이다. 모두 다 낙타에 대한 모욕, 오해, 질투, 원망, 비하, 조롱들이다. 낙타의 미덕은 이 비난들을 내팽개치지 않는다. 사람들의 비난과 고통이 두려워서 비난 받을 일을 아예 시도하지 않을 수도 있고, 비난들을 그저 무시하며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낙타와 같은 정신은 비난들을 오히려 감당하고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짐들이 낙타를 고독으로 이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조롱한다면, 사막과 같은 고독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사막, 황량해보여도 실은 자유로운 공간이다. 낙타 외에는 아무도 없는 고독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고 자신이 주인이 될 수도 있다.

정신이 더 이상 주인, 그리고 신이라고 부르기를 마다하는 그 거대한 용의 정체는 무엇인가?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가 그 거대한 용의 이름이다. 그러나 사자의 정신은 “나는 하고자 한다(I will)”고 말한다.
→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는 ‘끝판왕’은 명령과 의무, 당위들이다. 그저 명령과 의무라고 한다면, 쉽게 내버리자고 말할 수도 있으나, 이 용은 천 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그리고 모든 가치를 결정하는 의무와 당의성이다. 곧 우리가 옳다고 생각해왔고, ‘당연히’ 그러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가치들에 저항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맞서서, 더 이상 ‘훌륭한’ 가치와 도덕적 당위에 의해 행동하지 않겠다는 것, 나의 의지와 욕구에 따라 행동하겠다는 결심이다.

새로운 가치를 위한 권리 쟁취, 그것은 짐을 무던히도 지는 그리고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닌 정신에게는 더없이 대단한 소득이 된다. 진정 그에게 있어 그것은 일종의 강탈이며 강탈하는 짐승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정신도 한때는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는 명령을 더없이 신성한 것으로 사랑했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사랑으로부터 자유를 되찾기 위해 더없이 신성한 것에서조차 미망(환영)과 자의(변덕)를 찾아내야 한다. 바로 이러한 강탈을 위해서 사자가 필요한 것이다.
→ 신성한 것 안에서 미망과 자의를 찾아내는 것. 이는 니체의 ‘계보학적 연구’다. 흔히 신성하고 가치있다고 알려진 것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것이 예상과 달리 어이없는 이유로, 혹은 우연적이며, 때론 폭력에 의해 수립되었음을 밝혀내는 일이다. 이런 작업, 권위의 신성함을 빼앗는 작업을 통해 정신은 더 이상 그러한 명령과 당위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 때문에 자유를 쟁취하는 작업니다.
하지만 니체가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듯이, 자유가 있다고 저절로 가치를 창조하는 것은 아니다. 사자는 적을 필요로 한다. 강탈하고 비판하려면, 강한 상대가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자유의 ‘강탈’은 언제나 상대적이고, 반동적인 면도 있다. 기존의 대상을 비판하고 전도시킬 수는 있어도, 창조로 나아가진 못한다. 이처럼 어떤 사람들은 사자이기만 하고, 기존의 가치를 전복시키는 데만 골몰할 수도 있다. 그 강탈이 주는 통쾌함과 자유로움만 즐기는 것이다. 니체 자신도 이 과정을 겪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사자’를 따로 설정해 둔 것이리라.

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제 힘으로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신성한 긍정이다.
그렇다. 형제들이여,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신성한 긍정이 필요하다. 정신은 이제 자기자신의 의지를 의욕하며, 세계를 상실한(세계에서 떼어내진) 자는 자신의 세계를 획득한다.
→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자는 아이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이는 순진무구(innocence)하기 때문에, 죄가 없다. 혹은 죄가 있더라도 쉽게 잊어버릴 수 있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이가 어떻게 새로운 가치를 떠올릴 수 있겠는가. 새롭게 무언가를 시도해도 그는 곧 기존 질서를 어겼다는 죄책감에 시달릴 터이다. 그런 점에서 아담은 너무 늙었다! 잊어버리지도 못하고, 너무 큰 죄책감을 갖고 있다. 인류의 시작이 되기엔 너무 고로한 것이다. 또한 가치창조는 놀이처럼, 그 자체가 즐거워야 한다. 그러니 성공하든 실패하든 다시 놀이를 진행할 수 있다. 놀이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기 힘으로 ‘스스로’ 돌아가는 바퀴일 수밖에 없고, 다른 무언가에 의해서 야기되거나 촉발되는 2차적인 움직임도 아니다. 이 모든 말이 곧 ‘긍정’의 의미다. 긍정은 반드시 ‘절대적’이다. 강탈이 아닌 창조, 이 지점이 사자와 아이의 차이다. 이를 통해 진정 ‘자기 자신’을 이뤄낼 수 있다.
정신이 일단 한 번 아이가 되면 영원히 아이적일까? 나는 이런 경우에 대개 그렇지 않다고 믿는 편이다. 물론 ‘아이’를 이룩한 사람이 ‘사자’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하나의 문턱을 넘었으므로.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24시간 아이스럽게 살지도 않을 것이다. 때론 낙타가 필요할 수도, 때론 사자다워져야 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낙타와 사자는 모두 가치를 창조하기 위한 방편으로 필요할 것이다. 실제 니체의 후기 책을 읽으면, ‘가치의 창조’를 전개하면서도 중간중간 초기 사상의 아이디어가 드러난다. 그 점에서 초기의 사상이 지속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초기와 후기 사상이 다른 점은, 각각의 위상이자 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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