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 올립니다

작성자
Yeongdae Park
작성일
2019-03-19 19:10
조회
491
□ 다지원 <니체> 세미나 ∥ 2019년 3월 19일 ∥ 발제자: 박영대
텍스트: 니체, 『차라투스트라』, 4부

지난 번 발제에서는 차라투스트라가 ‘길동무’를 만들지 못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내용을 보니, 이 ‘보다 높은 자’들이 차라투스트라의 길동무였다. 시장터의 사람들과는 다른,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듣는 동반자였던 것이다. 내가 처음 ‘길동무’에게 기대했던 것은 차라투스트라와 같은 경지와 마음가짐이었다. 아니, 경지는 좀 부족해도 마음가짐이 올바르면 같이 갈 수 있으리라 했다. 어쨌든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길을 함께 가지 않겠는가. (어쩌면 차라투스트라도, 니체도 처음에 길동무를 찾을 때는 이런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치만 실제론 전혀 달랐다. 차라투스트라의 진심을 이해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만에 하나 있다고 해도, 그는 이미 자신의 길을 올곧게 가고 있을 터, 함께 길을 나서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요구조건은 이미 완성된 길동무를 바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네가 내 마음과 같다면, 너와 함께 길을 가겠다.” 이 말에 놓인 계약조건들, 보증/보장들.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정말 싸워서 떨쳐내야 하는 것이다. (단언컨대, 조건과 보장을 따지는 사람치고 행동에 나서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마치 길을 나서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까탈스런 조건을 내거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길동무의 조건은 무엇인가? 오직 ‘함께 길을 간다’는 것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 거의 반드시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왜곡해서 이해하고, 엉뚱한 행동을 하면서 차라투스트라를 인용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함께 길을 가는 한, 언제나 길동무이리라. (예전에 들은 ‘동무론’. 동무는 同無란다. 공통의 지반이 전혀 없이 함께 있는 게 친구라는 것.)
<차라투스트라>는 니체가 사자에서 어린아이가 되는 과정을 쓴 책이다. 정신이 새롭게 변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필요한가. 수많은 사람들(제자/적), 동굴과 마음을 오가는 여러 번의 왕복, 수십 번의 웃음과 울음을 겪어왔다. 사자가 천진난만하게 웃는다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그런 점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일종의 구도의 과정을 보여준다. 불교에서 이를 보여준 책이 바로 <서유기>. 우연의 일치일까, 서유기도 ‘삼장법사’와 길동무들의 이야기다. 게다가 그 길동무들은 모두 사고뭉치라는 점에서, 완벽한 길동무가 아니다. 불심 자체가 아예 없다. 그런데도 함께 길을 걷는다. 그 점이 그들을 길동무로 만들어주는 것이며, 구도의 길이 된다. 결론인즉, <서유기>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

<그림자>

애써 그대와 함께 온갖 금지된 것, 더없이 고약한 것, 더없이 먼 것 속으로 파고들어가도 보았고, 내게 어떤 미덕이 있다면, 그것은 나 금지된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리라.
나 내가 예로부터 마음속으로 숭배해왔던 것을 그대와 함께 부셔버렸고 모든 경계석과 우상들을 무너뜨렸으며,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소망을 뒤쫓기도 했지. 진정, 어떤 범죄든 나 한번은 넘어보았지.
→ 차라투스트라의 그림자인 만큼, 차라투스트라가 돌파한 성과를 함께 나누었다. 다른 이들처럼 차라투스트라를 오해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함께 해온 것이다. 그러니 특정 어구를 오해한 사람들과는 다르다. 물론 차라투스트라가 모든 경계와 우상들을 넘나들면서 자유를 추구한 것의 음화(陰畫)이기도 할 것이다.

‘그 어느 것도 참되지 않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 그렇게 말했지. …… 아, 온갖 선과 수치심은, 그리고 선하다는 자들에 대한 나의 믿음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버렸는가! 아, 내가 한때 지니고 있던 저 거짓 순진무구, 선하다는 자들과 저들의 고상한 거짓말의 순진무구는 다 어디로 사라져버렸는가!
→ 진리와 신, 기존의 가치를 모두 부정하는 것이 도달하게 되는 하나의 극점. 차라투스트라(=니체)는 창조를 위한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기존의 가치를 부정했다. 하지만 그 목표가 없는 경우, 혹은 상실해버리는 경우 이런 부정은 극단의 허무주의로 종결된다. (혹은 차라투스트라도 마찬가지지만 이 극단의 허무주의를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무엇이든 다 허용된다”는 것은 자유이지만 허무이기도 하다. 아무런 윤리가 없는 것이야말로 무력감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필요한 선, 수치심, 믿음까지 모두 잃어버린 상태이며, (그림자이기에) 결국 자신마저 잃어버린 모습이다. “뒤를 쫓고 있던 자가 너무나도 얇고, 검고 속이 텅 빈데다 기진맥진해 보였던 것이다.”

그대처럼 정처 없이 떠도는 자들은 끝내 감옥조차도 복받은 곳으로 여기게 되지. 그대는 일찍이 잠자고 있는 죄수들의 모습을 본 일이 있는가? 그들은 조용히 잠을 잔다. 전에 없는 안전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 모든 가치를 파괴한 자가 허무를 극복하지 못하면 도달하는 곳, 감옥. 그토록 싸워내서 자유를 얻어냈건만, 정작 자유가 없이 주어진 가치에만 따르는 곳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지나치게 돌아다녔’기 때문에, 어디든 머물고 싶어하는 것이다. 우리에겐 적절한 움직임이 필요하다. (들뢰즈, <너무 움직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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