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호] 수용과 착취로 꼬아온 자본주의 마디로서 ‘메이데이’ㅣ김상철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0-10-09 11:53
조회
760
 

수용과 착취로 꼬아온 자본주의 마디로서 ‘메이데이’

-‘당신의 5월은, 메이데이는 어떻습니까?’라는 질문-


김상철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


1.


커먼즈commons에 대해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피하기 힘든 책, <마그나카르타 선언>(갈무리, 2012)의 저자인 피터 라인보우의 새 책이 나왔다. <메이데이>(갈무리, 2020)라는 이름으로 묶인 11개의 글은 모두 특수한 개입을 위해 쓰인 글이다. 우리는 이 글들을 통해서 5월 1일, 메이데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하루의 긴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메이데이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이라면 동일한 날에 대한 11편의 이야기가 아니라 단 하나의 글이었으면 충분했을 것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메이데이의 역사적 서술이 아니라 메이데이라는 이름으로 수렴되곤 했던 역동적인 투쟁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다 보니 이 책에서 ‘메이데이의 기원을 뭐라고 보는 거야?’라는 질문은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우리에게 필요한 메이데이는 무엇이고 또한 과거의 메이데이가 우리에게 무엇이었는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서 1627년 식민지 미국에서 원주민들과 5월의 기둥을 세운 토머스 머튼과 1886년 자본주의 미국에서 동료 노동자들과 헤이마켓에서 ‘8시간 노동제’를 주장했던 앨버트 파슨스 사이로 우리를 이끈다. ‘무엇이 기원인가?’와 같은 실증적인 주장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메이데이라는 이름으로 당대의 사람들이 무엇을 이야기했고 그것이 현재에 이르러 어떤 방식으로 의미화되었는지가 중요하다.


즉 이 책은 역사적 방법을 채택한 메이데이 선언문이다. 그렇게 접근하면 1886년 메이데이에 대한 녹색과 적색의 기원을 탐색한 글에서부터(2장) 오랫동안 감춰진 역사의 지층을 드러내고 다양한 연구 작업을 해왔던 저자가 대학에서 ‘시장으로’ 밀려나는 과정을 담담하게 드러낸 글(11장)까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와 새롭게 추가되는 이야기의 변주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당신들의 메이데이는 어떠한지?”를 묻는 질문의 자리로 소환된다. 이를 2020년 5월을 경유한 개인적인 질문으로 구체화하면 ‘2017년 촛불에서 2020년 메이데이 사이에서 끝끝내 유보되어 버려진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맞다, 이 책은 자신의 메이데이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우리의 메이데이를 묻는 책이다.


2.


피터 라인보우가 메이데이의 역사를 관통하면서 강조한 관점은 ‘엑스의 제곱’으로 표현되는 자본주의의 이중 구조다. 커먼즈의 박탈, 즉 인클로저를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동력으로 보는 저자에게 이와 같은 수용은 생산과정에서의 착취와 함께 현재의 자본주의를 만든 두 가지 ‘비밀’이다(62). 그리고 메이데이의 역사는 바로 수용과 착취라는 이중의 비밀에 저항하는 녹색과 적색의 운동으로 볼 수 있다. 1626년 미국이라는 신대륙에 도착한 토마스 머튼이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과 세워 올린 5월의 기둥은 마녀사냥이라는 방식으로 대륙에서 밀려난 이들의 흔적이지만, 이들은 다시 신대륙을 정복한 청교도들에 의해 추방되었다. 이런 수용이 역사적으로 존재해왔던 오월제의 전통을 붕괴시킨 것이다(70). 이 때문에 신대륙에서도 무일푼이 된 이주민들의 자손들이 결국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이들이 빼앗길 것이라곤 노동력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886년 이민자의 도시 시카고에서 앨버트 파슨스가 ‘8시간 노동할 권리’를 주장한 것은 단순히 은유의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혈통이라는 측면에서도 1626년의 사건과 이어진다.


이런 관점을 전제로 하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시기에 작성된 글을 통해서(5장), 당대의 이라크 침공을 1916년 대영제국의 쿠트 침공과 연결하면서 당시 쿠트에 있던 파탄인(당시 파키스탄 지역에 있던 쿠르드인 부족)을 용병으로 사용하고자 했던 시도와 이어진다. 즉 2000년대의 이라크 파병이 1916년의 수용을 위한 대리전을 반복하는 것일 뿐이라는 명확한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사유재산의 보장을 미끼로 활용했던 대영제국의 시도가 “사유재산이 존재하지 않았던”(91) 파탄인들에게 거절된 사례를 통해서 당시 중동에서 진행된 침략이 커먼즈에 대한 제국의 두려움을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된다. 공산당 선언의 유명한 문구인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가, 사실은 “무서운 홉고블린이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다”로 번역되기도 했었다는 사실에 이르러서는(7장) 창자와 머리의 중간쯤에 위치한 심장이 메이데이의 중요한 맥락이라는 것을 우화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홉고블린은 <해리포터> 시리즈의 유명한 집요정인 도비, ‘이제 도비는 자유에요’라고 말하는 그 캐릭터의 원형이다. 트라팔카 광장에서 헤이마켓 광장까지 온통 두들겨 맞아 깨지는 과정에서도 메이데이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결단의 영역임을 알 수 있다.


2010년에 쓰인 8장은 “우리가 어떻게 이 세 가지 사회적 변화의 역량 -학생과 이민자 그리고 대통령의 정치권력- 을 한데 모을 수 있을까?”(153)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개인적으로 11개의 글 중 가장 유머가 가득한 글이라 생각하는데, 이 글은 당시 메이데이 행사를 준비하는 주최 측으로부터 소책자를 의뢰받은 결과로 작성된 것이다. 요건이 이랬다. 첫째, 메이데이의 역사를 담을 것, 둘째,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연합’SDS의 50주년에 대한 축하를 담을 것, 셋째, 미시간 풋볼 경기장에 방문하는 오바마 대통령을 그 날 오후에 진행되는 이민자 권리 행진에 참여하도록 요청하는 내용을 포함할 것. 이런 엉뚱한 주문을 이민자 국가인 미국의 역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개인적 경험을 끄집어서 공유지의 기억을 소환하고 이를 다시 20세기 초반 노동자 계급의 파업을 군사적으로 탄압했던 기억과 이로 인해 비롯된 SDS 조직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들이 메이데이로 귀결되는 듯한 저자의 글쓰기와 방대한 인류학적 지식은 거침없는 만담가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그래서 오바마는 자신이 한 때 그 일원이었던 이민자들의 옆에서 행진을 했을까. 그러진 않았을 것 같다. 왜냐하면 피터 라인보우의 “동료 노동자 오바마는 환영하지만, 그의 대통령 권력은 환영할 수 없다. 우리의 권력은 우리 계급으로부터 나오며 우리가 형성하는 것이 바로 그 권력이다. 그런 이유로 당신과 내가 절실하게 필요하다.”(181)고 말하는 초대장에 오바마가 응했을리 없을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3.


기억해보면 우리의 메이데이는 언제나 4월 30일부터 시작되었고 18일이 되어서야 끝나는 대장정의 시간이다. 1988년 5월 15일에 창간한 <한겨레>는 17면에 ‘5월에 다시 서서 … ‘라는 기사를 통해서 광주항쟁의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죽음과 싸워 이긴 부활의 계절’이라는 소설가 황석영을 기고글을 실었다. 이 글에서 황석영은 서구의 메이데이가 중세시대의 오월제에서 비롯되었음을, 그리고 오월제가 자신들의 왕과 여왕을 뽑았던 백성들의 날이었음을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5월은 “아주 가난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벌써 구정 지나고부터 쑥개떡이네 칡이네 하며 부황에 뜰 철”이고 “오월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군이 보국안민을 내걸고 백산에서 봉기”한 계절이라고 이야기했다. 아마 레인보우가 말하는 메이데이의 서사가 한국적 맥락에서 소개된 가장 명징한 글이지 않을까 싶다.


1923년 4월 29일자 <매일신보>는 ‘주목되는 5월 1일, 경찰당국의 엄중한 경계’라는 제하의 단신을 통해서 그해 5월 1일 메이데이를 맞이하여 김상진이 이끄는 노동연맹회와 흑로회, 무산자동맹회 등이 오천여명이 참여하는 집회를 장충당에서 개최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이들은 실업방지, 임금문제, 8시간노동제 즉시 실시, 대우개선 등 4가지 요구사항을 내걸기로 했는데, 경찰은 주모자인 김상진을 체포하기 위해 경계 태세에 들어간다는 소식이다. 조선노동연맹회는 기존에 있던 조선노동공제회가 지나치게 노사 협조적이고 개량주의적이라는 이유로 윤덕별, 백광흠 등 사회혁명주의를 표방한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1922년에 구성된 단체로 경성전차종업원조합, 경성인쇄직공친목회, 진주노동공제회, 대구노동공제회, 안동노동공제회 등 지역조직 13개가 가입했고 회원은 3만 명에 달하는 조직이었다.


뒤이어 5월 3일 ‘평정히 보낸 5월 1일’이라는 기사를 통해서 별다른 충돌이 없이 메이데이 행사가 마무리되었다는 기사를 내보냈는데, 당국이 행사를 불허하는 바람에 애초에 개최하고자 했던 대중집회는 열리지 못했고 다만 노동강연회 방식의 행사가 있었다고 전한다. 당시 종로서장의 말을 인용하여 “다행이었다”는 소회를 전했다. 해당 기사에서는 그 전 해 미국에서 8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 교육을 내걸고 진행된 것을 인용하면서 조선에서도 그에 영향을 받은 메이데이 행사가 열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개최된 첫번째 메이데이의 풍경이다. 이후 1924년에도 경시청은 메이데이 행사를 불허하고 막아섰다. 하지만 <시대일보> 1924년 4월 12일자는 단신으로 평양에 있는 노동단체들이 메이데이 행사 준비를 위해 공동으로 시위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뒤이어 4월 15일자에는 논설방식으로 ‘자본주의로 인해 적은 사람이 많은 사람을 착취하는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단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 당시 조선청년총동맹과 노동총연맹에서 준비하고 있는 메이데이 대회를 응원하고 나섰다. 하지만 당시 경무청은 메이데이 행사 자체를 강력하게 막아섰고 평양에서는 선언문 발표 자체를 불허 하는 일도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 본국에서도 5월 1일 당일에 메이데이를 준비하고 있던 핵심관계자 십여명을 갑작스럽게 검거하였는데, 해당 소식이 1924년 5월 2일자 <시대일보>에 단신으로 실려 있다. 당시 조선의 경우 인쇄공장 등을 중심으로 파업이 진행되었으나 크게 확산되지는 못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함흥군에서의 노동연설회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는 단신이나 마산에서는 당국의 불허 방침에도 불구하고 1천명의 노동자들이 경계를 뚫고 집회를 진행하여 당국을 농락했다는 기사가 확인된다.


그 뒤 메이데이는 매년 당국의 불허와 강행이 반복된다. 특히 1930년대 이후 일본에서 우파 노동단체들이 메이데이 행사를 별도로 진행하기로 한 부분이 주요하게 다뤄지는데, 이는 해방 직후 1946년 메이데이에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의 집회가 열리는 바로 옆에 대한노총이 개최한 우파 메이데이가 열린 것으로 이어진다. 이후 이승만 정부가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를 불법화하면서 1948년부터 58년까지 대한노총이 당국의 비호를 통해서 메이데이 행사를 주관하는 단체가 되었다. 그러다 5월 1일은 공식적으로 사라지게 되는데 이승만 정권 말기에 대한노총의 창립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지정하다가 516 군사쿠테타 이후 노동절은 이름마저 ‘근로자의 날’로 불리게 되었다. 이승만 정권이 1958년에 메이데이를 없애려 했던 공식적인 이유는 ‘공산국가의 기념일을 자유국가가 다룰 수 없다’는 것이었으나 사실은 그해 5월 15일에 선거를 앞두고 자신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두려워 그랬다는 것이 정설이다. 1958년 4월 4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경찰이 당시 중앙대학교 경제학과의 김모 교수를 국가보안법 혐의로 체포했는데, 그 혐의가 ‘책의 인쇄일이 5월 1일로 되어 있고, 발행일이 맑스의 생일인 5월 5일이었기 때문’이어서라는 기사가 나온다. 어느 순간 메이데이는 단순한 날짜가 아니라 특정한 개인의 성분을 평가할 수 있는 상징이 된 것이다. 1962년 4월 21일자 <동아일보>는 당시 주한 유엔군사령관인 가이 멜로이가 5월 1일 법의 날을 맞아 주한미군에게 발표한 담화를 소개하고 있다. 미국은 1958년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부터 5월 1일이 법의 날로 지정되어 왔는데 이를 1면에 실어 소개하는 건 당시 군사 쿠데타로 인한 사회분위기를 보여준다.


군사쿠데타 이후 그나마 형식적으로 노동단체인 대한노총이 해왔던 근로자의 날 행사를 노동부 주관으로 실시하게 되었다. 이것이 1987년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1988년 행사 주최자가 노동부에서 한국노총으로 바뀌게 된다. 1988년 3월 11일자 <경향신문>을 보면 당시 행사 주최를 맡게된 한국노총은 3월 10일 행사를 ‘노동절’로 표기하여 노동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노동부는 1963년 법제화를 하면서 근로자의 날로 불러왔는데 이를 일방적으로 노동절로 바뀌었다고 말했지만 한국노총은 “노동절이란 명칭이 노동의 신성한 참 뜻을 보다 잘 전달하고 있어 예전처럼 바꾸었다”고 강조했다 한다. 뒤이어 1989년이 되어서야 다시 5월 1일을 메이데이로 되찾기 위한 시도가 나타났다. 5월 1일 메이데이 행사를 위해 전국의 노동자들이 4월 30일 연세대로 노동자들이 모여든 것이다. 하지만 당국은 이를 불허했고 서울시내 곳곳에서 투쟁이 이어진다. 1989년 5월 1일자 <경향신문>을 보면 당시 연세대에서 가두로 진출하기 위해 대치중이던 가운데 전경 한 명이 시위대로 나가 “대치는 하더라도 증오는 하지 말자”며 합창할 것을 제의하여 대학생들도 동조하면서 ‘디스코 파티’가 개최되었다는 소식이 실려 있다. 당시 인기가요였던 ‘토요일은 밤이 좋아’라는 노래가 불려졌고 10여분이 넘는 시간 동안 전경과 대학생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고 한다. 또한 4월 30일에 서강대 메리홀에서 결혼을 하기로 했던 이가 대치중인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뛰어들어 “시위 때문에 신부차가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위를 조금만 자제해 주십시오”라고 호소해 시위대가 신부를 태운 차를 호위해 교내로 인도했다는 소식도 실려 있다.


기존 3월 10일이었던 근로자의 날이 공식적으로 5월 1일로 바뀐 것은 1994년의 일이었다. 1923년 첫번째 메이데이 행사 이후 역설적이게도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출범인 1948년부터 잃어버린 메이데이가 다시 노동자들의 힘으로 되찾게 된 것이다. 70년 동안 메이데이는 한국 사회에 오래된 금기로 존재했고 이 날을 ‘노동절’로 부르는 사람과 ‘근로자의 날’로 부르는 사람 간의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 냈다.


4.


우리의 메이데이는 매년 어떤 방식으로 기록되고 기억될까. 정부나 노동조합에 의해 공식적으로 기억되는 것 말고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 메이데이는 어떻게 자리잡고 있을까. 앞서 말한 황석영의 글에서처럼 동학의 계절 5월과 메이데이는 어떻게 공동의 경험으로 우리에게 남겨지고 계속될까. 피터 라인보우의 글을 보면서, 책을 보던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우리의 메이데이 역사를 쫓는 데 사용했다. 가진 자료라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신문 아카이브에 불과했고 많은 경우 단신으로만 전해지고 있지만 그 행간에서 정말 많은 그림이 펼쳐졌다. 역사의 시간 사이의 공백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일상의 기억들이 채워져야 할 테다. 라인보우의 글은 자연스럽게 ‘당신의 메이데이’를 묻는다. 어떤가? 당신의 5월은? 메이데이는?


*



※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진보평론 85호(2020년 가을호)에 게재되었습니다.


*


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마그나카르타 선언』(피터 라인보우 지음, 정남영 옮김, 갈무리, 2012)


저명한 역사가 E. P. 톰슨의 제자인 미국의 역사학자 피터 라인보우의 대표작. 인류의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전제(專制)를 제한해 온 방책들이 어떻게 축소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1215년 이후 이러한 방책들의 원천인 마그나카르타의 역사적 궤적을 제시하면서, 사유화의 탐욕, 권력욕, 제국의 야망이 국가를 사로잡을 때마다 예의 오래된 권리들이 어떻게 무시되는가를 보여준다. 이 마그나카르타 민중사는 광범한 오래된 투쟁들을 생생하게 들고, 정치적 권리들의 복원이 어떻게 경제적 권리들의 회복에 의해 성취될 수 있는지를 당당하게 보여준다.


히드라』(마커스 레디커, 피터 라인보우 지음, 정남영, 손지태 옮김, 갈무리, 2008)


제국주의 초기 식민지 건설과 노예제 상황을 역사적 사료를 통해 밝혀낸 역사서이다. 공식적인 역사서에서는 만날 수 없는 장작 패고 물 긷는 사람들, 흑인 하녀들, 혁명적인 해적 선장, 아프리카 노예들, 진정한 아메리카 혁명의 주역인 잡색 부대 등을 만날 수 있다. 히드라는 헤라클레스 신봉자들에게 맞서 싸운 선원들, 노예들, 평민들 즉 다중(multitude)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17세기 초 영국 식민지 확장의 시작부터 19세기 초 도시중심의 산업화에 이르기까지, 지배자들은 점점 세계화·지구화되는 노동체계에 질서를 부과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갈무리, 2018)


노예선은 아프리카 해안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을 싣고 대서양을 가로질러 그들을 신세계로 데려갔다. 노예무역과 미국 농장체제에 관해서는 많은 것이 알려졌지만, 이를 가능하게 한 노예선에 관해서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뛰어난 수상 경력의 역사학자인 마커스 레디커는 『노예선』에서 해양기록에 관한 30년간의 연구를 정리하여 이 전례 없는 함선에 관한 역사를 만들어 냈으며 함선의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격동하는 인간의 드라마를 그려냈다. 그는 상어를 꼬리처럼 끌고 다니는 떠다니는 지하 감옥에 타고 있는 선장, 선원, 노예의 삶과 죽음 그리고 공포를 냉혹하게 재구성했다.


캘리번과 마녀』(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김민철 옮김, 갈무리, 2011)


자본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남성이 임금 노동자로 탈바꿈된 것 만큼 여성이 가사노동자이자 노동력 재생산기계로 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페미니즘 역사서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닦았던 이 폭력적인 시초축적 과정에서 마녀사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었음을 밝힌다. 이 책에서는 공식적인 역사서나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쓰인 역사책에서도 다뤄지지 않는 산파 여성들·점쟁이 여성들·식민지의 원주민 여성 노예들·여성 마술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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