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청년신문 2020.11.06] 여성의 해방은 가사노동 투쟁으로 부터 / 배은정 칼럼니스트

보도
작성자
갈무리
작성일
2020-11-09 22:50
조회
204


[한국청년신문 2020.11.06] 여성의 해방은 가사노동 투쟁으로 부터 / 배은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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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부쩍 추워진 10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 대구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대구역으로 향했다. 대구에서 서울로 가는 길은 무궁화호를 타고 가는 긴 여정이라 가방에 책 ‘페미니즘의 투쟁’을 챙겨 길을 나섰다. 기차 밖으로 보이는 샛노란 벼가 심긴 시골길을 구경하다가 책을 펴들었다. 책이 두꺼워 처음에는 ‘이걸 언제 다 읽지?’라는 마음부터 들었다. 근데 책의 도입부를 읽자마자 그런 생각이 바로 사라졌다.

1부에 서문을 읽고 여성과 공동체 전복을 읽기 시작하는데 공감 가는 문장들이 많아서 모두 다 메모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빠졌다. 만약 기술 혁신이 일어나서 반드시 해야 하는 노동량을 줄인다 하더라도, 노동 계급이 산업 안에서 투쟁하여 그러한 기술 혁신을 활용하고 자유 시간을 얻는다 하더라도, 가사노동에는 그 내용이 적용되지 않는다.(p34) 여성 신체의 온전함을 즉각 축소시킴으로써 여성의 인격을 파괴하는 일이 시작된 것은 자본주의가 출현하고부터였다. 자본주의가 출현하기 전에도, 여성 섹슈얼리티와 남성 섹슈얼리티는 이미 일련의 체제 및 길들이기 유형을 거쳤다. 과거에도 효과적인 산아 제한 방법들이 있었지만, 이 방법들은 뚜렷한 이유 없이 사라졌다. 자본은 핵가족을 확립했고, 그 안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다.(p35)

책의 시작 도입부분 부터, 지금 현 세태에서 결혼을 왜 가부장제를 공고하게 하는 제도라고 생각하는지를 잘 드러내주는 문장이 많아서 책을 빠른 호흡으로 읽고 싶어졌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문장은 즉각 메모로 남기는 편인데, 책에 밑줄을 긋거나, 이거지! 하는 명쾌한 문장들이 많아서, 어디에 어떤 문장이 마음에 드는지 페이지만 적어놓고 책을 계속 읽어나갔다.

1970년대부터 이탈리아에서 전적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찾아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투쟁을 해갔던 여성들과 현 2020년을 사는 여성의 현실이 변화되지 않고 이렇게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내게 이질적인 마음을 안겨주었다. 타국에서 오래전부터 투쟁해오던 물결들이 한국에까지 흘러와 이제는 이 책을 읽고 공감하는 내가 있다. 마음 한편에는 다른 세계에서 여성의 권리 신장, 한 여성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살자는 운동이 70년대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데도 지금까지도 변한 게 없나 하는 허망한 마음을 들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낙담하고 부정적으로 미래를 그릴 때가 아니다.

달라 코스따는 계속해서 가사노동이 왜 부당한지를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임금 없는 가사노동은 폭력을 동반한 강도 행위다. 가사노동에 임금을 주지 않는 것은 범죄 행위이며, 여기서 다른 모든 범죄가 비롯된다. 부불 가사노동은 우리를 남성보다 더 나약한 성으로 낙인찍고, 우리를 무력한 상태로 고용주, 정부 정책 기획자, 국회의원, 의사, 경찰, 감옥 및 정신병원에 넘긴다.

그뿐만 아니라 남성들에게 평생봉사하고 감금당하도록 한다.(p174-175) 부불 가사노동이라는 단어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는데, 가사노동은 언제나 여성이 당연히 보수 없이 해야 하는 일로 여겨진다. 여성이 집안에서 가사노동을 통해 남성의 편의를 봐주는 동안 밖에서 사회활동을 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간과되고 있다. 불합리한 행태가 계속 되는 현실에서 우리는 계속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긍정적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

이 책의 3부 내 몸은 내 것 몸을 탈환하다를 읽으면서 낙태죄 폐지 이슈가 떠올랐다. 여성이 낙태를 했을 때 국가에서 처벌 받는다. 이 문장은 아무리 곱씹어 봐도 너무나 이상하게 들린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이 나라는 개인의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이다. 헌데, 여성의 임신이 국가에서 관여되어 자행 되어야 하는 것인가? 책을 읽으면서 이탈리아 여성들의 상황이 한국과 다르지 않구나.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성의 이슈들이 곧 나와 무관하지 않음을 기억해야겠다.

페미니즘에 대해 알아갈 수록 세상과 연대해야하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게 된다. 달라 고스따가 인간이 자연에게 가하는 착취 행위에 대해 돌아보고자 하는 것은 요즘 한국에서 화두 되고 있는 채식주의자 키워드를 떠올리게 한다. 여성의 인권신장과 지구를 더 이상 오염 시키지 말자는 환경운동까지는 언뜻 아무 연관이 없어 보인다. 페미니즘은 ‘여성’이라는 개인이 사회에서 느끼는 약자성의 공감대를 확대하여, 결국에는 세상의 다른 문제들과 맞닿게 만든다. 페미니즘을 향한 관심, 여성주의 책들의 계속된 출간 그리고 이 책을 읽음으로 변화되는 나의 사고들, 이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더 나은 사회로 가는 발걸음이 되어줄 것이다.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공평하고 공정하다고 느끼는 세상이 오게 되기까지, 달라 코스따가 세상을 향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것처럼 이 시대의 많은 여성들과 연대하여 투쟁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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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투쟁』 |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지음 | 이영주·김현지 옮김 | 갈무리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