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5/17 『몸의 인지과학』 4장

작성자
bomi
작성일
2022-05-17 19:23
조회
411
생명 세미나 ∥ 2022년 5월 17일 화요일 ∥ 손보미
텍스트: 『몸의 인지과학』 프란시스코 바렐라 외 지음, 석봉래 옮김, 김영사 pp. 111~146



4장 폭풍의 눈, 자아
The I of the Storm

<자아란 무엇인가?>
What Do We Mean by "Self"?

나는 내 감정에 압도당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나타나며 사라지는 것, 튼튼한 듯하면서도 부서지기 쉬운 것, 낯익은 듯하면서도 종잡을 수 없는 이 자신의 중심 즉 자아는 무엇인가? (111)

세계에 놓여 있는 인간은 독립적인 것, 순수하게 영속적인 것을 경험한 적이 없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분별성(정체성)을 확신하고 있다. 우리는 인격과 기억과 회상 그리고 계획과 기대를 경험하는데(가지는데) 단일하고 독립적이고 전적으로 존재하는 자아 또는 자신이 없다면 어떻게 그런 통일적인 관점이 가능한가?
이 질문은 인지과학, 철학, 명상의 전통과 관련한 중심적인 물음이다. 반성적 고찰의 결과는 자아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통찰은 우리의 지속적인 자아감과 (our ongoing sense of self) 정면으로 대치(contradicts 모순)된다. 바로 이런 모순이 이 책의 지적 여정에 나서도록 우리를 자극한 것이기도 하다. (112)

많은 명상, 철학의 전통이 대립(모순)의 문제(반성적 고찰의 결과와 일상적 경험 사이의 모순 문제)를 부정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이 문제를 직접 대면하여 오랫동안 논의해온 유일한 전통은 지관의 명상수행의 전통이다. (113)

명상가들은 경험이라는 것이 영속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흄이 알아차린 것처럼, 경험을 받기 위해 일정하게 유지되는 경험자는 없으며, 경험을 위한 착륙 플랫폼도 없음을 깨닫는다. 이처럼 경험의 영속적 근거(자아)를 부정하는 우리의 실질적인 느낌을 무자아selflessness 또는 비아egolessness라고 한다. 또한 명상가는 매순간 이러한 결여에서 도망치려는 마음을 본다. 마음은 경험을 마치 영속적인 양 파악하고, 경험을 바라보는 지속적인 지각자가 존재하는 것처럼 해석한다. 이처럼 쉴 새 없이 경험을 지배하고, 집착하고 불안해하고 불만족하는 내면적 흐름을 둑카(고苦)라고 한다. (114)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변형에 의해 일상에서 계속되는 자아감(sense of self)과 반성에서 나타나는 자아발견의 실패가 드러내는 긴장이다. 명상가들은 다음을 탐구하도록 재촉당한다. 어디서 ‘나I’라는 경험이 나타나는가? 자아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115)

자아의 존재를 문제삼기 시작한 명상가들의 첫 번째 깨달음은 보통 무자아가 아니라, 자신이 지닌 완전한 자아중독증의 발견이다. 우리는 마치 보호해야 할 자아가 있는 듯이 생각하고 느끼고 활동하며 조금이라도 자아의 영역이 침해 받으면 두려움과 분노가 치민다. (116) 이런 충동은 본능적이고 자동적이며 지배적이고 강력하다. 명상가들은 이 충동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17)
“ (이러한 현상-충동-은) 사고 이전의 습관이다. 명상가는 어떻게 그의 마음이 자아와 ‘나의 것’이라는 관념에 매달리게 되는지 관찰하는 법을 배운다. 동시에 그는 자아를 주의깊게 바라본다. 그는 이 자아라는 것을 찾아내고 정체를 밝히고자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자아에 상응하는 것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_ 출트림 갸초

자아를 만들어내는 이 습관의 기원은 무엇인가? 우리가 자아라고 간주하는 경험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는가? (118)


<오온에서 자아찾기>
Looking for a Self in the Aggregates

아비달마는 불교경전을 크게 삼분할 때 그중 한 부분을 구성하는 경전들의 모음이다.
1) 윤리적 계율을 모은 율, 2) 부처님의 말씀을 모은 경, 3) 아비달마: 경험의 본성에 관한 분석적 탐구법이 나타나며 명상에 이용된다.
아비달마는 자아의 감각(sense of self)을 검토하는 데 이용되는 다양한 범주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존재론적 구분을 목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온五蘊으로 대표되는 이 범주들은 한편으로는 경험의 단순한 기술을, 다른 한편으로는 탐구를 인도하는 인도자의 역할을 한다. (119)
1. 色 - 형체 - Forms
2. 受 - 느낌/감각 - Feelings/sensations
3. 想 - 지각/분별 - Perceptions (discernments)/impulses
4. 行 - 성향 - Dispositional formations
5. 識 - 의식 - Consciousnesses
色은 물리적(physical) 혹은 물질적(material)인 것에 바탕을 둔 것이라 간주되고 나머지 네 가지는 정신적(mental)인 것이다. 이 모두는 각각의 인격과 각 순간의 경험을 만들어내는 심물복합체를 구성한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기 위해 이 오온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검토할 것이다. 그리고 오온들을 통해 자아의 실재에 대한 확신을 우리가 찾을 수 있는지 검토하려고 한다. (120)

[色] 형체 - Forms
신체와 물리적 환경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범주는 신체와 물리적 환경을 감각들을 통해서만 드러낸다. (120) 여기서도 물리적인 것과의 만남은 이미 상황에 놓인 것, 체험된 것으로 규정된다. 물질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 기술된다.
신체는 자아인가? 정서적인 면에서 우리는 우리의 신체를 자신인 양 다룬다. 하지만 신체의 전체적인 구성은 매우 빠르게 변한다. (121) 지금 내 신체의 세포와 7년전 나의 몸을 구성했던 세포의 공통점은 일정한 시간 동안 지속된 모종의 패턴 즉 자아라고 할 만한 그 무엇을 구성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전히 자아로서의 그 패턴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122)
우리는 신체의 총체적인 이식을 생각할 수 있고 마음을 다른 사람의 몸에 옮기고 나서도 여전히 자신으로 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자신의 신체를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가장 분명한 주장이다. (123)

[受] 느낌/감각 - Feelings/sensations
모든 경험은 모종의 느낌의 색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느낌에 매우 신경을 많이 쓴다. (123) 느낌이 자아에 영향을 미치지만 누구도 순간순간 바뀌는 느낌이 자아와 같은 것이라 말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그 느낌이 영향을 미치는 그것은/그는 누구인가?

[想] 지각/분별 - Perceptions (discernments)/impulses
이 온은 파악, 동일화, 분별의 첫 순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관수행에서 경험의 순간에 나타나는 충동과 지각(상)의 연결은 매우 중요하다. 충동들은 자아에 대한 집착을 더욱 심하게 일으키는 행위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착을 하고 있는 자아는 누구인가?

[行] 성향 - Dispositional formations
사고, 느낌, 지각, 행위의 습관적인 믿음 그리고 습관적 행위 패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지 혹은 성격이라고 할 만한 현상의 영역이다. 우리는 우리의 정서적 반응을 통해 이 온을 자아와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우리는 습관을 자신과 동일시하지는 않는다. 습관, 성향 등과는 구분되는 자아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우리는 계속적으로 갖는다. 이 계속적인 자기 존재의 느낌을 도대체 어디서 유래하는 것인가?

[識] 의식 - Consciousnesses
각 온은 목록의 순서상 앞선 온들을 포함한다. 정신적mental 경험이란 각 감각기관이 그 대상들과 접촉함(그리고 함께 따라오는 느낌, 충동, 습관)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125) 바냐나(식)는 경험자와 경험된 대상 그리고 그들을 함께 묶는 관계(들)가 존재한다는 경험의 이중적 감각을 (the dualistic sense) 항상 드러낸다. (126)
아비달마 학파의 의식분석에서는 식의 대상도 심적 요소도 표상이 아니다. 의식(비나냐)은 무엇보다 앎의 한 양태일 뿐이다. (126) 그러나 프라즈냐(지혜)는 경험자와 경험된 대상 그리고 그 둘을 엮는 심적 요소들 어느 것에도 실질적인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127) 습관적이고 비반성적인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경험에 의식의 지속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지관의 명상이 경험의 불연속성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런 의식이란 자아일 수 없다. (128)

각각의 온을 검토했을 때, 우리는 어디에서도 자아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모든 온들이 일정한 방식으로 결합하여 자아를 구성할 것이다. 잠정적이고 비영속적인 각각의 온들이 어떻게 지속적이며 정합적인 것을 만들 수 있는가? (128)
경험에서 그런 자아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할 때 우리는 자아란 온들과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극단적 입장으로 달려가게 된다. (129) 칸트는 모든 경험에 앞서 경험들을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 의식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칸트에게서 선험적 의식은 시간의 흐름을 넘어서는 자아의 동일성과 통일성의 바탕이 된다. (130) 우리는 칸트를 통해 자아가 진짜 존재한다는 주장을 듣게 되지만 우리는 결코 그 사실을 알 수 없다. 게다가 이런 자아는 우리의 정서적인 확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런 자아는 나 혹은 나 자신이 아니라 경험의 배후에 있는 자아 일반에 대한 관념일 뿐이다. (131)

짜증나는 독자를 위해 이쯤에서 우리 문제의 핵심을 되짚어 보자.
우리의 문제는 우리를 지적으로 만족시키고 편안하게 할 모종의 방식으로 자아를 재정의할 수 있는가 하는 것도, 접근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자아가 진정으로 존재하는가 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당장 자아를 경험해가는 과정에서 자아 문제에 대한 통찰력과 집중력을 개발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132)


<찰나성과 두뇌>
Momentariness and the Brain

‘그렇다면 도대체 두뇌는 무슨 일을 하는 것인가?’ 두뇌의 기능이 연속적이고 통일적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면 마음도 연속적이라고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133)

신경과학과 심리학에서는 감각-운동 리듬과 그 분석의 기반이 되는 ‘지각단위’에 관한 자료가 있다. 이 영역에서 ‘지각동시성’ 또는 ‘현상적 운동’이라 불리는 현상들이 잘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두 개의 불빛이 연이어 0.1~0.2초보다 짧은 간격으로 비치면 그 두 불빛은 현상적 동시성 속에 놓여 동시적으로 보이고, 그 간격이 조금 넓어지면 두 불빛은 빠르게 움직이는 듯이 보인다. 두뇌가 활동리듬의 주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는 뇌파측정 자료로 관찰될 수 있다. 지각피질의 주된 리듬은 대략 0.15초이므로 시간단위와 피질의 알파리듬 사이에 어떤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자연스런 가정이다. 이 관계는 실험으로도 검증될 수 있다. (134)
그런데 피험자의 피질리듬이 다르게 조절된 상태에서는 불빛들 사이의 시간 간격은 동일하더라도 피질리듬에 따라 피험자는 불빛을 다르게 지각한다. 두뇌리듬의 음의 피크에서는 피험자는 항상 불빛들을 동시적인 것으로 지각하고 두뇌리듬이 양의 피크에서 피험자는 불빛들을 움직이는 것으로 본다. 이 실험들은 시각단위에는 지각된 사건들을 분석하는 자연적인 방식이 존재하며 이 시각단위는 최소한 0.1~0.2초가량의 지속의 범위를 지니는 우리 두뇌의 리듬에 부분적으로 의존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137)

그림 4.6의 연구는 두뇌의 집단적 활동은 시간과 작업에 따른 전기적 활동의 움직이는 구름, 즉 경험적 찰나성의 전기적 그림자와 같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런 신경생리학적 시각에서 드러나는 경험의 분절은 지관의 수행자가 느끼는 온에 상응한다. (140)
온들은 현상적으로 너무도 빨리 일어나서 대부분 사람은 그것을 일일이 구분할 수 없다. 경험단위의 짧은 시간간격에 대한 신경생리학적 관찰과 합치되는 한 가지 사실은 온들은 묶음으로 일어나는 듯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림 4.6에 나타나듯 신경생리학적 관찰은 지각조직화의 최초 단계는 보다 인지적인 의미를 지니는 단계의 전기적 반응들 보다 100~200밀리세컨드 앞선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시간 차이는 너무도 순간적인 것이다. 이런 미세한 차이들이 수 세기전 수행자들에 의해 경험되고 보고되고, 반복적으로 확인될 수 있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고 놀랄만한 것이다. (141)

지관수행의 근본은 경험이 일어나는 각 순간들에 긴장 없는 집중을 함으로써 마음의 극치를 이루는 것이다. 체험된 상황에 계속적으로 집중함으로써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한 자각은 점점 더 자연스러운 것이 되고, 계속적인 발전을 통해 마음의 움직임을 향한 집중은 충분히 세밀하고 신속한 것이 되어서 이런 단계에서 진정한 집중은 자동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내적 상태의 자각과 움직임 사이의 불가분성이 더욱 확고해지면 찰나적 온들의 미세한 움직임에 대한 관찰이 가능하게 된다. (142)


<자아 없는 온>
The Aggregates without a Self

온들에서 자아를 찾아내려던 노력은 헛수고로 끝난 듯 보인다. (142) 이 시점에서 중요한 점은 도대체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결국 발견하지 못한 유일한 것은 진정으로 존재하는 자기 또는 자아였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을 발견했다. 실제로 경험이라는 폭풍 속으로 잠입했다. 하지만 폭풍의 눈, 즉 자아도 ‘나’도 찾아낼 수 없었다. (143)

우리의 성향에 의해 형성된 인격인 ‘우리’는 실제로 자아를 결여sunya(공 empty)하고 있는 데도 자아가 온들인 양 집착하고 매달린다. 그런데 이 자아의 결여에도 불구하고 온들은 경험으로 가득 차 있다. 경험이 온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 자체는 온들에는 자아가 없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일 진정으로 존재하는 굳건한 자아가 온들 배후에 존재한다면, 자아의 불변성은 경험을 차단하고 자아의 정적인 본성은 끊임없는 경험의 출몰에 급제동을 걸 것이다. 자아가 없기 때문에 경험적 출몰의 순환이 계속될 수 있다. (144)

과학은 고정된 자아가 마음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님을 밝혔지만, 더는 필요 없는 이 자아가 모두가 집착하고 가장 애타게 매달리는 바로 그 자아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드러낼 어떤 방도도 마련하지 못했다. 따라서 과학의 과제는 단순히 비인격적, 가정적, 이론적으로 구성된 자아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실제로 매달리는 자아라는 것이 없이도 마음에 대한 경험이 아주 큰 변형을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을 일깨우는 것이다.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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