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 2장

작성자
bomi
작성일
2023-05-31 18:41
조회
131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 (지은이),태혜숙,박미선 (옮긴이)갈무리2005-06-18



2장 문학

1

<개요>
2장은 문학적 재현 상의 형상으로서 토착정보원의 변천을 다룬다. (177) 19세기 북서 유럽 부르주아 페미니즘에는 맹렬한 에너지가 있었다. 이때 페미니즘의 주체는 여성들의 정체성과/혹은 연대에 대한 사실확인적 진술 속에서 스스로를 이미 주어진 것으로 진술해야 하는 독립 선언의 수행성에 의해 생산된다. 이러한 연대가 승리를 추구하는 양식으로 이루어진다면, “남성적인 것을 해체하기보다는 여성적인 것을 찬양하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만일 이 주체가 ‘그 남성들’과 암묵적으로 공모하는 결과를 수반한다면, 끈질긴 비판이 요구될 것이다. (178)
책을 출간하는 여자들은 상당히-비슷하지만-토착민은-아닌 정보원들이다. 이들이 지배 “문화” 출신일 때는 때로 남성 저자들과 함께 덜떨어진 “타자”(종종 여성)를 창조하는 경향을 공유하는데 이 “타자”는 토착정보원이 아니라, 북서 유럽의 주체를 다시 한번 “동일자”로 확립해주는 물질적 증거의 한 편린이다. (179)
소련 해체 이후 생산된 “문화주의적” 지배소에서 제3세계는 착취당했지만 재발견되고, 손이 닿지 않은 풍부한 문화적 유산들을 지닌 머나먼 문화들로 여겨진다. 페미니즘 비평이 이러한 제국주의 공리를 재생산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2장에서는 19세기 문학에 나타난 이러한 현상의 전조를 다음의 방법으로 검토한다. 1) 페미니즘이 가장 찬양하는 텍스트인 『제인 에어』의 범위를 짚어보고 그 구조적 동력을 파악하고 위치시키기. 2) 『드넓은 사가소 바다』를 『제인 에어』의 재각인으로, 『프랑켄슈타인』을 『제인 에어』와 같은 “세계구획”에 대한 하나의 분석, 나아가 해체로 읽어보기. (180) 3) 제국주의 공리를 비판하는 리스와 셸리에 이어 제국주의 공리를 포스트식민 담론 속으로 치환시키는 마하스웨타 데비의 「푸테로닥틸, 퓨란 사하이, 피르타」 읽기. (181)

<제인 에어>
제인 에어의 주체성의 문제, 즉 제국주의 시대의 페미니즘적 개인주의에 관건이 되는 것은 바로 인간 존재의 형성인데, 이때 주체는 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개인주의자”로서 구성되고 “호명”된다. (182) 우리는 그 개인주의를 내부로부터 끈질기게 침해하고자 시도해야 한다. (185) 소설(제인 에어)의 첫 대목에서는 주인공이 주변화되고 사적 개인으로 되는 장면이 나온다. 제인은 삼중으로 중심에서 떨어져 있는 장소에서 “찍혀진 글자” 대신 그림들을 읽는다. (186) 이 그림(“황량하기만 한 11월의 낮”)은 주변적인 개인주의자의 독특하고 창조적인 상상력에 의해 해독되고 “탐사되어야” 하는 하나의 일차원적 “양상”이다. 이 독특한 궤적에 앞서 제인의 여정은 가족/대항 가족 쌍의 연속적인 배치에 의해 도표화될 수 있다. 제인, 로체스터, 그들의 아이들이 있는 가족 공동체가 중심을 이루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제인이 대항가족의 자리에서 법률상의 가족으로 옮아가게 되는 담론의 장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는 바로 제국주의의 적극적인 권력-지식 혹은 이치에-닿게-하는-능력이다. (187)
버사 메이슨[로페스터의 미친 아내]은 제국주의 공리에 의해 생산된 인물이다. 브론테는 백인 자메이카 크레올인 버사 메이슨을 통해 인간/동물 접경지대를 불확정적인 것으로 수긍할 수 있게 만들어 문자보다 훨씬 더 위대한 법이 부상하도록 한다. (188) 그렇다면, 제인이 대항가족 집합으로부터 법률상의 가족으로 옮아가게끔 조건을 마련해주는 것은 바로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제국주의 공리의 권력-지식이다. (190)
19세기 페미니즘적 개인주의는 핵가족이라는 폐쇄된 집단에 다가가는 접근권 대신 “좀더 큰” 기획을 개념화할 수 있었다. 이는 “단순한” 성적 재생산을 넘어서는 영혼 형성의 기획이다. 이 기획에서 토착민 “주체”는 거의 동물이 아니라, 범주적 필수사항이라는 이름하에 위반이라는 용어로 씌어지는 대상이다. (190)
어제의 제국주의는 오늘날의 “발전”이다.(191) 발전기획은 『제인 에어』에서 서사적 결론의 폐쇄 회로를 벗어나는 접선으로 제시된다. 소설을 결론짓는 중요한 과제를 부여받는 세인트 존 리버스[제인의 어머니쪽 사촌]의 이야기가 이 접선이다. 소설이 끝날 즈음 기독교 심리전기의 알레고리가 나오는데 이 언어는 제국주의 기획이 발생중인 “페미니즘” 시나리오에 갈 수 없는 불가능성을 표시한다. (192)

<드넓은 사가소 바다>
진 리스는 버사 메이슨에게 매로되어 그의 “삶”인 『드넓은 사가소 바다』를 쓴다. 『제인 에어』에서 버사의 기능은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불확정적으로 만들고 그럼으로써 법의 정신 아래 그녀의 권리자격을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193) 리스는 앙트와넷(버사 메이슨)이라는 인물을 통해 인격적, 인간적 정체성과 같이 아주 친밀한 것도 제국주의 정치(학)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리고 리스는 앙트와넷의 발전을 다시 설명하며 나르시스 주제를 재각인한다. (194) 오비디우스의 『변신』에서 나르시스는 자신의 타자를 자신의 자아로 인식할 때 광기가 드러난다. 리스는 앙트와넷이 자신을 자기의 타자로, 즉 브론테의 버사로 보게 만든다. (195)
『제인 에어』에서 그녀(버사 메이슨)는 허구의 영국에서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고 자신의 “자아”를 허구적 타자로 변형되도록 연출하더니 그 집에 불을 지르고 자살했다. 그리하여 제인 에어는 영국 소설의 개인주의적 페미니즘의 영웅이 될 수 있었다. 이것은 제국주의의 일반적인 인식소적 폭력을 드러내는 알레고리다. 이 알레고리는 식민압제자의 사회적 사명을 미화하기 위해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는 식민 주체의 구성을 드러낸다. 리스는 식민지로부터 온 여성이 자기 자매를 공고하게 해주느라고 미친 동물로서 희생되지 않도록 유의한다. (196)
제국주의 역사 내부는 법 자체로 작동하는 이질적인 법체계, 유일한 진리로 확립된 낯선 이데올로기, “토착민”을 제국주의 “자아를 공고하게 하는” 타자로 확립하느라 바쁜 일련의 인문과학으로 뒤덮여 있다. 따라서 “제3세계 여성”을 하나의 기표로 구성하려는 시도들이 우리에게 다시 상기시켜 주는 바는, 헤게모니적 문학 정의 자체가 제국주의의 역사 내부에 붙들려 있다는 점이다. (201)

<프랑켄슈타인>
영문학 내부에서 우리는 개인주의적 페미니즘의 언어를 본격 페미니즘의 언어라고 환호하게 되었는데 『프랑켄슈타인』은 이 언어를 말하지 않는다. (203) 『프랑켄슈타인』은 성적 재생산(가족과 여성) 및 사회적 주체생산(인종과 남성)의 견지에서 절합되는 남성 개인주의와 여성 개인주의의 전투장은 아니다. 이 이항대립은 실상 두 기획이 동시에 착수되는 인공자궁인 프랑켄슈타인의 실험실에서 붕괴된다. (204) 셸리가 드러내놓고 말하고자 하는 교훈적인 요점은 사회 계획이 순수이성, 이론적 혹은 자연과학적 이성에만 기초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의 공리주의적 비전에 대한 은근한 비판이다. (207)
『프랑켄슈타인』은 다중적 틀을 갖는 기존 서한체 전통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틀의 심장부를 차지하는 괴물의 서사는 거의 이 괴물이 인간(적)이 되고자 비밀스레 하는 학습에 관한 것이다. (209) 하지만 셸리는 괴물을 (제국주의적) 교훈의 고유한 수혜자(예컨대 칼리번)와 같은 존재로 만들 수 없다. 이러한 양심적 거리 두기야말로 이 소설의 정치적 중요성을 지목하는 표시이다. 어떤 순간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길들이고, 괴물을 법의 회로 내부에 데려옴으로써 인간화하려고 시도한다. (210) 하지만 결국 인간의 개성에 있는 구분들은 이 소설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괴물, 프랑켄슈타인, 월튼은 서로 서로를 교체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이야기의 끝에서 죽고, 월튼은 서사의 결말에서 프랑켄슈타인의 사례로부터 배우는 자연철학자가 되고, 괴물은 텍스트의 마지막에서 잘못을 고백하며 자신을 파괴희생시키려고 얼음 뗏목을 타고 실려 간다. 그러나 이 텍스트에서 자기-파괴희생은 완성되지 않는다. 즉, 괴물 역시 텍스트에 의해 포섭될 수 없다. (211) 이 비포섭을 무대화하는 것이야말로 이 소설의 강점들 중 하나다. (212)
『프랑켄슈타인』에는 이 소설에 접선을 이루지도, 둘러싸이지도, 둘러싸지도 않는 한 여성, “샤빌 부인”이 존재한다. 소설의 계기인 그녀는 여성 개인주의자라기보다는 여성적 주체이다. 즉, 그녀는 이 소설을 만들어내는 편지들의 환원불가능한 수신자 기능을 담당하며, 하나의 틀로서 이 텍스트를 닫는 데 응하지 않는다. (212) 우리 독법의 알레고리 내부에서 영국 숙녀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괴물 둘 다의 자리는 위대하지만 결함 있는 텍스트에 의해 열린 채 남겨진다. (213) 미확정적인 주체의 미래는 주인을 향해 또 주인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사이 굴절된다. 이런 제한된 비전 내부에서 셸리는 주인이 되돌려준 응시에 붙들리기를 거부할 권리를 괴물에게 부여한다. 이는 말하자면, 비추어보기의 인종분리정책을 거부할 권리다. (213)

<프테로닥틸, 피르타, 퓨란 사하이>
「프테로닥틸」을 통해 다음 둘 사이의 차이를 가늠해 보려고 한다. 1) 주인-노예의 역학을 되풀이하는 상황을 괴물과 같은 식민 주체에 유리하도록 공감하며 지지하는 식민적 무대화. 2) 새로운 국가에서의 헌법적 주체구성을 서발터니티 속에서 포스트식민적으로 수행하는 것. (214)
데비의 작품은 인도에서 소위 원주민들 혹은 아디바시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데비는 서발턴을 헤게모니, 포스트식민 국가의 시민권, 헌법적 주체권으로 놓으려는 이해관계 속에서 이 광대한 집단(아디바시스)에 구조적 통일성을 부과하는데 이는 계몽주의의 (오)용이다. (215) 여기서 토착정보원은 문자 그대로 인류학을 먹여 살리는 사람이다. (216)
데비는 자세한 지식, 분노, 사랑으로 인한 절망을 안고 포스트식민 국가의 작동을 무대화한다. (216) 소설의 중심인물은 언론인 퓨란 사아이이다. (217) 퓨란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이 이야기의 서사로부터 떨어져 나와 새로운 포스트식민 국가 내부에서 일어나는 행동 속으로 들어간다. (218) 소설의 심장부는 장례식 이야기다. 여기서 개입하는 언론인 퓨란은 서발턴적 책임에 입문하게 되는데 이러한 책임은 권리투쟁과 불화를 야기한다. (218) 대항-사실적 장례식으로부터 수사적으로 분리된 텍스트의 공간에서, 선주민과 비선주민은 서로 협력해야 한다. (219)
『드넓은 사가소 바다』와 마찬가지로 「프테로닥틸」역시 유럽 소설의 범위에 필연적으로 구속된 작품이다. 둘 다 선주민의 서사성을 불러낸다. 상실된 기원에 대한 향수에 굴복하지 않고 제국주의의 인식소적 틈새를 다시 열어젖히고자 한다면, 제국주의적 통치의 문서보관소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 (이 작업은 3장에서 이어진다.) 페미니즘 비평이 문학비평을 변화시키는 하나의 세력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서이다. (221) 그러나 페미니즘 비평은 자기 공간을 마련하고자 애쓰는 사이 바로 그 제도와 공모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222)

<갈무리>
제도들 내부에 있는 페미니즘은, 19세기 유럽의 계급 상승을 원하는 부르주아 문화정치학에 있는 개인주의지지 투쟁과 모종의 관련이 있다. 페미니즘 비평가들은 보편성 혹은 학문적 객관성 운운하는 남성주의적 진리-주장의 비유적 실수를 발견해 내면서도 전 지구적 자매애라는 하나의 진리를 만들어내는 거짓말을 수행한다. 이 거짓말로 우리를 현혹시키는 모델은 우리를 일반화 또는 보편화가 가능한 섹슈얼리티를 지닌 남자와 여자로 남게 한다. 이들이야말로 저 유럽적 경쟁을 주도하는 주인공들이다. 성차가 중요한 차이를 발생시키는 곳에서 성차를 주장하기 위해 전 지구적 자매애는 이러한 지적을 받아들어야 한다. 그런데 일부는 이미 그렇게 생각해 왔다. 발전 속의 여성들이라는 옛 구호는 경쾌하게도 젠더의 발전으로 바뀌었다. (223)

2

<개요>
일반적 요점을 강화하기 위해 세 편의 남성주의 텍스트 읽기. 1) 보들레르의 「백조」: 미묘한 서정시, 2) 키플링의 「정복자 윌리엄」: 제국주의 정서를 고전적, “대중적”으로 표현한 서사시, 3) <동인도 회사> 총독들 주재하에 열리는 비밀회의에 제출된 토론 문건. 1), 2)를 통해 우리는 여성을 찬양하는 남성주의의 비유론적 실수를 해체할 때조차 몇몇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 구조를 수행함을, 3)을 통해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 구조들과 인종차별주의의 몇몇 조잡한 전제들이 갖는 유사성을 볼 수 있다.

<백조>
이 시의 여성인 앤드로매쉬 여왕은 풍요롭게 해 주는 행위자다. 하지만 여왕의 그 현란한 조작적인 역학이 무엇이든 간에 시인-화자는 통사론적으로 끄떡없는 집과 수사학적으로 수수께끼 같은 “주체성”을 유지한다. (227) 남성의 권력뿐만 아니라 남성의 자기-침해조차도 여성을 비유화함으로써 작동된다. (228)
앤드로매쉬가 이 시의 표제 이미지(백조)를 부상시키기 위해 지나치게 구체화된 조건이라면, 시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검둥이 여성의 유일한 기능은 시의 끝에 이르러 구체성이 해소되는 미결정적 계기를 표시하는 것이다. 보들레르는 리스, 셸리와 달리 텍스트에 의한 검둥이 여성의 비포섭을 무대화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 억제한다. (229) 우리가 첫 번째 경우에 있는 지배의 윤곽을 인정하고 두 번째 경우에 일어나는 폐제를 무시한다면, 우리 역시 부분적으로 보들레르와 공모하는 한패가 된다. (233)
해체론적 경계심은 대립에서 행복만 느끼는 곳에서 공모성을 찾아내려 한다. 토착정보원과 관련된 성공한 식민주체는 그 스스로 “문명의 경쟁능력”을 증강한다.(234) 그에 따라 그/녀는 부과된 연구 대상의 시뮬라크럼(“흉내내는 남(여)성”)이 되는 데 성공한 “야생적 인류학자”가 된다. 그렇다면 포스트식민 주체는 이러한 야만인 훈련에 눈길을 돌려 유럽-미국의 유산을 좀더 치밀하게 설명하고 인류학적으로 설명해 내야 한다. (235)

<정복자 윌리엄>
키플링은 이 단편 소설에서 신여성이라는 한 부류를 창조하려고 시도하면서 자비로운 남성주의의 단점들 대부분을 드러낸다. 여성 주인공 윌리엄이 남성 주인공의 마음을 정복하는 것은 노르만의 영국 정복에 비유된다고 키플링은 능글맞게 암시한다. 정복이 로맨스의 덮개 아래 말소되면서 사실상 “정복”이 역사적으로 적합한 사건으로 각인된다. (235)
키플링의 단편소설을 둘러싼 대부분의 강의실 토론은 두 백인 주인공 사이에서 벌어지는 왈가닥 길들이기라는 절차 분석에 사로잡힌다. 이런 강의 끝에 토론의 방향을 아놀드의 글(고귀한-백인들이-무능한-흑인들을-돕는다는 시나리오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 인용으로 돌리면, (242) 여성 정신의 “자연스런” 반응을 따르는 “보편” 모델로서의 제2세대 미국 강단 페미니즘 내부에서 구성된 ‘우리’를 만나게 된다. ‘우리’는 권력-지식 메커니즘이라는 역사적 틀 안에서 주체가 구성되고 호명되도록 하는 그 틀에 무지하다. “인가된 무지”. 지금 이러한 무지는 전 지구의 금융화를 가리는 데 봉사하는 단어인 “전 지구성”, 혹은 (243) 모든 언어의 환원불가능한 혼종성을 지워버리는 데 봉사하는 단어인 “혼종성”을 떠올림으로써 어느 때보다 더욱 많이 인가되고 있다. (244)

<‘동인도 회사’의 기록문서>
효율성에 관심을 두고 있는 이 기록문서는 피부색주의를, 즉 피부색으로 드러나는 가시적인 차이에 기초한 인종차별을 수정하려는 노력을 반영하는데 이는 부조리한 사태들을 야기한다. 예컨대, 일본 여성이 “제3세계 여성!”으로 코드화되어야 하고, 히스패닉도 “유색여성”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명명법은 “백인”을 “투명”하거나 “무색”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기초를 두고 있다. (244)
이 기록문서의 기준들은 토착 남성과 여성 모두 유럽인 여성보다 분명 열등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말로, 성차는 백인 영역에서만 작동하게 된다. (244)
미국에서의 에스닉 지배 문제는 국제적 노동분업을 가로지르는 착취 문제와 조금이라도 융합한다는 취지로 그 구조를 다루어야 한다. 또한 인종적 지배문제가 이민법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러한 기준들을 요청하는 이들은 주류 페미니즘 내에서 주변화되고 있다. (248) 페미니즘이 미국학으로서 에스닉 연구 혹은 이주민 혼종주의로서 포스트식민주의와 더불어 발생한다면, 남south은 다시 한번 응달 속에 처하게 되고 디아스포라적인 것이 토착정보원을 대신하게 된다. (249)

3

<개요>
최근 <미국 비교문학회>의 자기비판적 문건은 다문화주의를 다루고 있다. 이런 노력들의 결과로 미국문화를 순수하게 “서구적”인 것으로 지켜 내고자 하는 강한 요구 역시 공고해져 왔다. (249) 인식될 수 없을 정도로 치환된 토착정보원의 주체입장을 채우지 않으려면 밑바탕 수준에서 수행되는 일상적 일을 위해 끈질긴 자기비판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250)
최근 영문학에서, 탈식민화된 지역들에서 영어나 유럽 언어들로 씌어진 작품들, 제1세계 공간에서 소위 에스닉한 사람들이 쓴 작품들이 “제3세계 문학”이라 불리는 것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영역 안에서 타당성을 온당하게 추구하는 상층 지향적인 예전의 주변부인들은 주변성을 상품화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 때로는 최상의 의도를 갖고 편의의 이름으로 제도화되는 이중기준이 확립되기도 한다. 기준1) 우리 자신을 시험하기 위한 기준. 기준2) 나머지 세계에 들이대는 기준. (251)
주변적인 것만이 주변부를 위해 말할 수 있다는 대립적 관점은 정치적으로 중요하지만, 이 관점이 제도에 이야기하는 결과를 보면 이 관점은 오만한 양심을 합법화할 수도 있다. 이런 이중구속에 직면해 몇 가지 방법론적 제안들을 고려해 보자.
1) “내부 식민화”는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메트로폴리탄 나라 내부에서 권리를 박탈당한 집단에 대한 착취와 지배 패턴을 일컫는다. 이를 다른 공간들의 식민화와 구분하는 법을 배우자.
2) 18세기 중반~20세기 중반에 이르는 유럽 구성체에서의 식민주의, 영토적 제국들이 불균등하게 와해 된 이후 20세기에 부상중인 경제적, 정치적, 문화주의적 지배 작전인 신식민주의, 식민주의가 신식민주의로 되어 왔거나 되고 있다고 여겨진 이후, 우리 시대 전 지구적 상황을 가리키는 포스트식민성을 구분하는 법을 배우자. (252)
3)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문화적 설명들을 확보할 때 재현체계를 수중에 넣을 가능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자. (253)
비판적 읽기 습관과 함께, 가장 실천적인 방식으로 이와 같은 실질적인 제안들에 유념한다면, 역사적 맥락화 작업을 더 열심히 익힘으로써 우리 자신을 도모하기를 바랄 법하다. 그렇지만 문제는 남는다. “유럽인”, 혹은 미국의 비평가들과 인문학 선생들은 어떻게 “중국인, 인도인, 아프리카인의 기획을 자신 속에서 다시 꾸며낼 수 있는가? 이 문제에 직면해 해체론은 이중적 제스처를 제안한다. 당신이 지금 처한 곳에서 시작하라. 그러나 절대적 정당화를 추구할 때라면 본연의 주변이란 전적으로 타자인 것the wholly other을 표시해 내는 불가능한 경계이며, 전적인 타자와의 조우임을 기억하라. (254) 전적인 타자를 주변으로 형상화하는 사태를 생각해 보기 위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 작가 J.M. 코에체가 영어로 쓴 소설 『포우』를 살펴보자.

<포우>
이 소설은 18세기 초반 주변성을 구성하려 시도했던 두 편의 텍스트, 다니엘 데포의 『로빈슨 크루소』와 『록사나』를 다시 열어젖힌다. 『크루소』에서 주인공 백인은 야만인 프라이데이를 주변화시키고, 『록사나』의 개인주의적 여성은 탄생중인 부르주아 사회에 스며든다. 코에체의 소설에서 록사나는 현재 자신이 처한 곳에서 스스로 주변부를 구성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의 기획이 성취될 무렵, 이 텍스트는 한 발 더 나아가 프라이데이가 본연의 주변에 있는, 전적인 타자의 장소 보유자이자 불가능성을 가시화하는 인물임을 일러준다. 이처럼 코에체의 소설은 이중적 제스처를 수행한다. (255) 코에체의 소설은 특이하고도 입증할 수 없는 주변적인 것을, 어둠 속에 있다고 가정되는 전적인 타자에 들이대는 굴절의 장벽을 형상화한다. 토착정보원은 이 피난처로 사라져버린다. (256)
이 소설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중층결정(어머지되기, 저자되기, 텍스트 ”안에서“ 토착민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기, 텍스트 ”외부에서“ 이런 각인들에 열중하고 있는 남아프리카 백인 남성 작가)의 불가능한 정치(학)은, 유쾌한 연속성 속으로 정규화되어서는 안 된다. 유럽인은 바로 이 유쾌한 연속성에서 원시인의 기획을 그녀 자신 속에 다시 꾸며낸다. 그러나 ”여러분이 있는 지점“에 따라, 양심적으로 차별화된 정치를 유발할 수 있다. (282)
역사 안에서 『포우』Foe는 친구와 적foe 사이의 구분을 해체하는 지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타자에게 친구가 되고 싶을 때, 도표학적 공간은 철회된다. Foe는 그러한 이야기를 허용한다.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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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식민이성비판> 서문, 1장 전반(-81p)_발제문
Jina Lee | 2023.05.17 | 추천 0 | 조회 155
Jina Lee 2023.05.17 0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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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식민이성비판 1장 81~1장 끝까지
voov11 | 2023.05.17 | 추천 0 | 조회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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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4, 5부
bomi | 2023.05.03 | 추천 0 | 조회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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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4부 발제문
chu | 2023.05.03 | 추천 0 | 조회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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