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 존 홀러웨이 지음 | 조정환 옮김 | 번역집단 @Theoria 협동번역 | 2002.6.25

갈무리신서
작성자
갈무리
작성일
2018-03-10 16:41
조회
588


Change the World Without Taking Power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너희들 모두 꺼져 버려!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본가 친구들도 꺼져 버려.
꺼져 버려, 자본! 우린 충분해!

자본주의적 권력의 잔인한 논리 속으로 빠져들지 않고서
인간적인 세계를 창출하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가능하다.
권력을 장악하지 않고 세상을 바꾸는 것,
자본주의의 논리에 빠져들지 않고 자본주의를 파괴하는 것.
이것은 지금 세계 전체에서 긴급한 투쟁이다.

지은이 존 홀러웨이 | 옮긴이 조정환, 번역집단 @Theoria 협동번역 | 정가 14,000원
쪽수 360쪽 | 출판일 2002년 6월 25일 | 판형 신국판 | 도서 상태 초판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도서분류 갈무리신서 32
ISBN 9788986114508 | 보도자료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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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내용 소개

그가 가장 먼저 주목하는 것은 극단화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공포와 이로부터 비롯하는 절규의 심화이다. 1장에서 그는 “태초에 절규가 있었다”고 말하면서 이론적 반성의 출발점이 반대, 부정성, 투쟁임을 강조한다. 절규는 현존하는 것을 부정하는 순간에 있어야 할 세계를 투영한다는 의미에서 무아적(ec-static; 나의 바깥에 서다)인데 부정적 사유의 두 가지 차원은 바로 절규의 이 무아성의 표현이다.

2장은 국가를 통한 변혁을 사유했던 지금까지의 좌파 정치학에 대한 강한 비판을 드러낸다. 1991년의 사회주의 붕괴가 보여준 것처럼 우선 국가를 통해서 발본적 변화를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국가는 자본주의적 사회 관계의 총체성 속에 통합되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국가를 통해 저항 정치학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그것이 아무리 혁명적이고자 노력한다고 할지라도 결국 저항 내부에 국가를 재생산하는 것으로 귀착되었다.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

3장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공한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power는 모순적인 회로를 따라 흐른다. 행위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인 지향력(power-to)이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를 하도록 명령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지배력(power-over)으로 끊임없이 변형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행위의 사회적 흐름은 파열되며 행위결과는 행위에 대립하는 것으로 뒤바뀐다. 이렇게 행위가 자기자신에게 대립하는 것으로 바뀜으로써 사회는 다원적으로 파열되고 푸코가 ‘권력의 다원성’이라고 부른 바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게 지향력이 지배력으로 역전되는 조건은, 맑스가 충분히 논증한 바 있듯이, 행위수단이 행위자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본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적대적 현실이다.

4장에서 홀러웨이는 (이 역사적 조건에 대한 탐구로 들어가기보다) 지향력의 지배력으로의 이 역전을 맑스주의 전통이 무시해온 물신주의 비판이라는 이론적 문맥 속에서 탐구한다. 이것은 초기 맑스의 소외론, 『자본론』 1장 4절의 물신주의론, 게오르그 루카치의 사물화론, 아도르노의 동일화론으로 이어진 전통을 부각시키면서 동일성에 대한 비판을 혁명 이론의 초점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 물신주의 이론 전통이 직면했던 딜레마를 회피하지 않고 대면한다. ‘물신주의가 함의하는 인간의 비인간화는 발본적인 사회 변화를 그 어느 때보다도 절박한 것으로 만드는 한편, 바로 그 비인간화가 사회의 자기해방의 가능성을 박탈한다’는 것, 이것이 홀러웨이가 ‘혁명의 절박한 불가능성’이라고 부르는 딜레마이다. 20세기 비판이론 전통에 비관주의의 깊은 각인을 남긴 이 딜레마를 그는 어떻게 넘어서는가?

물신주의로부터 물신화를 구분 짓는 5장은 바로 이 문제의 해결에 할애된다. 물신주의를 완성된 사실이 아니라 물신화로 재정의하는 것, 다시 말해 물신주의를 저항의 운동, 반물신화의 운동을 필연적으로 포함하는 하나의 운동으로 이해하는 것. 이것은 가치, 자본, 권력, 국가 등 사유의 모든 범주들을 과정으로, 투쟁으로 이해하는 것을 함의한다.

6장에서는 물신화의 과정 속에 필연적으로 포함되는 반물신화의 운동을 다루면서 비판을 그것의 일부로 제시한다. 여기서 비판은 존엄하게 살기 위한 일상적 투쟁의 일부로, 부정되고 있는 형태 속에 실존하는 행위를 해방하기 위한 투쟁으로, 동일성에 대한 공격으로 정의된다. 그것은 현상의 배면으로 나아가려는 분석적 운동, 그리고 비판된 현상의 기원 또는 발생을 추적하는 발생론적 운동 양자를 통해 주체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객체를 전유하고 재통합하는 반권력의 운동이다.

7장은 바로 이 부정적 비판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과학이라는 입장에서 엥겔스 이후 20세기 초의 고전적 논쟁들과 맑스주의 경제학, 맑스주의 정치학, 맑스주의 사회학 등 다양한 분과학문들로 전화한 최근의 맑스주의 이론의 발전들 모두를 비판한다. 여기서 비판의 핵심은 과학적 맑스주의의 이 전통이 물신주의 문제에 맹목적이며 과학에 대한 긍정적 개념화 혹은 동일성에 대한 사유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주체로부터 분리된 객체, 인간의 의지로부터 독립된 객관적 과정으로서의 역사, 자본주의의 객관적 운동법칙을 규명하는 데에 스스로를 한정한다. 로자나 레닌에게서처럼 능동적 요인을 강조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객관적 운동을 보완하는 차원에 머무른다. 주체성이 배제된 상태에서, 그것의 절규와 무관하게 과학이 구축될 수 있다는 생각의 조직적 표현은 프롤레타리아로부터 독립된 과학적 사회주의의 담지자로서의 전위정당이라는 구상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사회 외부에서 ‘사회에 대한 이론’으로 정립된 다양한 맑스주의적 분과학문들로 재생산되고 있으며 이들에 의해 자본주의 사회는 부드럽게 재생산될 수 있는 사회로 잘못 묘사된다는 것이 홀러웨이의 생각이다.

맑스주의의 기능주의/구조주의로의 이러한 전화에 직면하여 간절히 요구되는 것은 발본적 변혁의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문제이다.

8장에서 홀러웨이는, 물신주의를 완성된 사실로서보다 물신화라는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를 강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자 계급이라는 범주를 계급화의 과정으로서 이해할 필요를 강조한다. 노동자 계급은 계급화되는 사람들이면서 계급화에 대항하는 계급이기 때문에 계급을 정의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계급에 대한 반정의적 개념(노동자 계급은 반계급이다)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9장에서 홀러웨이는 혁명의 실재성을, 즉 반권력, 반계급의 물질적 실재성을 논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통적 맑스주의와는 달리 프롤레타리아의 실재성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블로흐를 따라 권력에 대항하는 투쟁의 편재성을, 아직아님의 현재적 실존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자율주의 이론에 따라 반권력이 권력의 추동력임을 주장한다. ‘계급 구성의 개념은 우리를,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 도처에 존재한다는 단순한 관찰을 확연히 넘어서도록 인도한다. 그것은 발전하고 있는 이 저항의 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초를, 투쟁의 현재적 형식들의 특유성과 힘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를 제시한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절규를 단지 억압의 항존하는 특징으로 뿐만 아니라 특수한 역사적 공명을 갖는 절규로 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이 책, 252쪽).
그러나 홀러웨이는 자율주의 속에서 계급 구성 개념이 투쟁의 운동을 분석하기 위한 범주로부터 시대구분의 방법으로 쉽게 전화한다고 비판한다. 그것은 투쟁에 대한 긍정적 개념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정통 맑스주의에서 자본이 자본주의 발전의 긍정적 주체였음에 반해 자율주의 이론에서는 노동계급이 긍정적 주체로 된다. 이렇게 동일성이 자본의 편에서 노동의 편으로 움직이지만 그것은 폭발되지도 도전 받지도 않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자율주의 이론과 운동이 역동일시의 동일화, 즉 거울 이미지들(자본 구성에 대항하여 계급 구성, 가치화에 대항하여 자기가치화, 권력에 대항하여 대항 권력)에 사로잡혀 오지 않았는가 묻고 있는 자율주의 내부의 자기비판과 공명하는 것이다. 홀러웨이는 이 비판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율주의의 계급 구성 개념이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외적 관계로 파악한다는 생각을 피력하면서 자본과 노동의 관계는 외적 관계가 아니라 내적 관계라는 생각을 제시한다. 그것은 자율주의 내부에 공존하는 ‘자본의 역사는 노동계급의 투쟁에 대한 반작용의 역사’라는 생각과 ‘자본은 노동계급의 생산물’이라는 생각 가운데에서 후자를 편드는 것으로 나타난다.

10장에서 그가 자본의 위기를 ‘노동의 자본에 대항하는 투쟁’을 통해서보다는 ‘자본의 노동에 대한 의존성’을 통해서 설명하려 하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 보면 일관된 것이다. 그리하여 신용팽창에 기초한 자본주의의 현재적 위기는 자본이 노동에 대한 의존성을 극복할 수 없는 무능력의 고백으로 정당하게 설명된다.

우리 시대의 혁명의 의미를 다룬 11장은 ‘혁명의 절박한 불가능성’이라는 비판이론의 딜레마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혁명적 변화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매우 절박하다. 그러나 우리는 혁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이 책, 327쪽). 그러나 이것은 결코 무지의 산물이 아니다. 홀러웨이에 따르면 알지못함은 우리 시대의 역사적 상황의 표현임과 동시에 혁명적 과정 그 자체의 필수적 구성부분이다. 그에게 혁명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일 뿐이다.


차례

감사의 말 3
한국어판 저자 서문 5
제1장 절규 9
제2장 국가를 넘어서? 25
제3장 권력을 넘어서? 37
제4장 물신주의:비극적 딜레마 77
제5장 물신주의와 물신화 129
제6장 반물신주의와 비판 169
제7장 과학적 맑스주의 전통 185
제8장 비판적­혁명적 주체 215
제9장 반권력의 물질적 실재성 239
제10장 반권력의 물질적 실재성과 자본의 위기 269
제11장 혁명? 309
역자후기 329
참고문헌 343
찾아보기 353


지은이, 옮긴이 소개

지은이
존 홀러웨이 (John Holloway 1947~ )
존 홀러웨이는 1947년에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태어나 가족과 함께 영국 중부로 이주했다. 그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대학에서 오랫동안 정치학을 가르쳤으며 1991년에 멕시코로 이주하여 1993년부터 민중자율대학 인문사회과학연구소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며 사빠띠스따 운동의 정치적 함의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사빠띠스따 봉기 이후의 다양한 사회적 투쟁들에서, 특히 씨애틀 이후의 지구화에 대항하는 투쟁들에서 등장하는 좌파 정치학의 새로운 경향을 정식화하고자 한다.

옮긴이
조정환 (Joe Jeong Hwan 1956~ )
정치사상사와 정치철학, 그리고 정치미학을 연구하면서 주권형태의 변형과 21세기 정치의 새로운 주체성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다중지성의 정원[http://waam.net(연구정원), http://daziwon.com(강좌정원)] 대표 겸 상임강사, 도서출판 갈무리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민주주의 민족문학론과 자기비판』(연구사, 1989), 『노동해방문학의 논리』(노동문학사, 1990), 『지구 제국』(갈무리, 2002), 『21세기 스파르타쿠스』(갈무리, 2002), 『제국의 석양, 촛불의 시간』(갈무리, 2003), 『아우또노미아』(갈무리, 2003), 『제국기계 비판』(갈무리, 2005), 『비물질노동과 다중』(공저, 갈무리, 2005), 『카이로스의 문학』(갈무리, 2006), 『민중이 사라진 시대의 문학』(공저, 갈무리, 2007), 『레닌과 미래의 혁명』(공저, 그린비, 2008), 『미네르바의 촛불』(갈무리, 2009), 『공통도시』(갈무리, 2010), 『플럭서스 예술혁명』(공저, 갈무리, 2011), 『인지자본주의』(갈무리, 2011) 등이 있고 이외에 여러 권의 편역서와 번역서가 있다.

번역집단 @Theoria
번역집단 @Theoria에는 박재봉, 신은주, 윤영광, 이승준, 이종호 등이 함께 하였으며 초기 번역작업에는 신승철, 정철수, 한병준 등도 참여했다.


저자의 말

사빠띠스따 봉기 이후의 다양한 사회적 투쟁들에서, 특히 씨애틀 이후의 지구화에 대항하는 투쟁들에서 등장하고 있는 좌파 정치학의 새로운 경향을 정식화하고자 하는 책. 저자는 이 책의 감사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 책을 다 쓴 후에, 이 책의 주제를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절박한 것으로 만드는 세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첫째로, 세계 무역센터와 펜타곤에 대한 공격. 이것은 미국의 군사적 잔인성의 끔찍하고 위협적인 과시를 수반했으며, 이 과시는 실질적으로 여타의 모든 국가들에 의해 지지되었다. 학살을 하는 사람들, 폭탄을 터뜨리는 사람들, 인류를 파멸시키려는 사람들의 가당찮은 어리석음을 우리가 목격함에 따라 이 책이 시작하고 있는 절규는 더욱더 크고 더욱더 고통스럽게 되었다. 권력에 대한 추구 속으로 들어서지 않고서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라는 호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절박하다. 둘째로, 혁명의 문법을 보여준 아르헨티나에서의 불복종의 파도, 즉 “아르헨티나소”. ‘아니다’는 혁명의 주체이고 사회변혁의 폭발하는 추동력이다. 억압에 대한 ‘아니다’, 자본에 의해 부과된 어리석고 위험한 파괴에 대한 ‘아니다’, 자본주의가 의미하는 바 삶의 가련한 불구화에 대한 ‘아니다’. 이 ‘아니다’는 축복이며 새로운 삶의 폭발이며 사회 조직의 새로운 형태에 대한 실험이다. 아르헨티나 봉기의 아름다움은 그 요구의 단순성이다. “너희들 모두 꺼져 버려!” 꺼져 버려, 너희들 모두!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본가 친구들도 꺼져 버려. 꺼져 버려, 자본! 우린 충분해! 이것은 아르헨티나에서뿐만 아니라 멕시코, 아일랜드, 그리고 한국에서도 나오고 있는 외침이다. 이것은 전 세계를 통합하는 외침이다. 꺼져 버려, 자본! 우린 충분해! 셋째로, 뽀르또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 사회 포럼,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고 선언하기 위한 8만여 명의 결집. 토론과 꿈과 계획들의 축제, 희망의 축하연. 자본이 당연히 이긴다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적 권력의 잔인한 논리 속으로 빠져들지 않고서 인간적인 세계를 창출하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가능하다. 권력을 장악하지 않고 세상을 바꾸는 것, 자본주의의 논리에 빠져들지 않고 자본주의를 파괴하는 것. 이것은 지금 세계 전체에서 긴급한 투쟁이다. 이 책은 그 투쟁의 작은 부분이다. 이 책이 한국에서 출판됨으로써 그것이 나로 하여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투쟁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은 나로서는 매우 영광스럽고 또 기쁜 일일 것이다.

2002년 2월 22일
존 홀러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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