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럭서스 예술혁명 | 조정환, 전선자, 김진호 지음 | 2011.3.3

다중지성
작성자
갈무리
작성일
2018-03-11 14:40
조회
1012


보도자료

『플럭서스 예술혁명』
Revolution of Art by Fluxus

예술체험과 예술창조의 새로운 가능조건에 대한 미학적 탐구

플럭서스 예술운동에 대한 한국 최초의 본격연구서!

백남준, 요제프 보이스, 존 케이지 등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예술적인 것에 대한 제도적, 전통적 통념을 거부하며 삶, 생명, 존재와 예술의 통일을 선언했다.

분할과 구획에 기초한 목적론적 추구를 거부했던 플럭서스 예술실천은
삶을 예술로, 예술을 삶으로 살아가는 오늘날의 다중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은이 조정환, 전선자, 김진호 | 정가 17,000원 | 쪽수 252쪽
출판일 2011년 3월 3일 | 판형 사륙판 양장 (127×188) | 도서 상태 초판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도서분류 Cupiditas, 다중지성 총서 1 | ISBN 9788961950343
보도자료 플럭서스 예술혁명_보도자료.hwp 플럭서스 예술혁명_보도자료.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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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럭서스는 전통적이고 경직된 재현적 예술체제를 타파하고 예술을 삶과 통합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모색하고 실험하고 실천하였다. 플럭서스 총체예술은 존재들의 총체, 생명의 총체, 삶의 총체이며, 삶이 부단히 미지의 것을 향해 열려 나가면서 기존의 것들을 끌어안고 그것들에 새로운 자리를 배정하는 과정을 지시한다. 그리고 또한 플럭서스는 자본과 권력에 의해 나눠진 다중의 몸찾기와 진실탐구를 위한 절실한 노력이다.


『플럭서스 예술혁명』 출간의 의의

플럭서스 예술운동에 대한 한국 최초의 본격연구서이다.

2011년은 플럭서스 예술가 백남준(1932~2006) 사후 5주기, 플럭서스 예술운동 50년, <플럭서스 선언문> 작성자 조지 마키우나스 탄생 70년!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해체하고, 예술적인 것에 대한 제도적․전통적 통념을 넘어, 예술과 삶 그리고 존재와 생명의 통일을 실천했던 플럭서스 총체예술을 분석한다.

근대 구성주의 음악과 작품을 넘어 잡음, 소음, 침묵, 자연의 소리 등 배제되어온 삶․생명의 소리를 예술화한 비구성주의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 도발적 오브제를 사용하고 음악, 시각예술, 무대예술, 시 등 상이한 예술매체를 통합한 행위예술가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 1921~1986), 텔레비젼, 위성 등의 소통도구를 통한 매체예술을 시작으로 하여 미지의 것을 추구하고 미지의 만남을 실험한 탈목적론적 예술가 백남준 등을 치밀하게 분석한다.

『플럭서스 예술혁명』은 <도서출판 갈무리>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다중지성 총서>의 첫 번째 책이다. <다중지성 총서>는 2007년에 개원하여 정치철학, 문학, 미학, 영화, 언어, 과학, 신학 등의 강좌들을 진행해 온 <다중지성의 정원>(http://daziwon.com)의 강좌들을 책으로 소개할 것이다. 갈무리 출판사는 이 총서를 통해 우리 시대의 새로운 지성들을 꾸준히 소개할 계획이다.


『플럭서스 예술혁명』 상세한 소개

플럭서스(Fluxus)란?

백남준, <다다익선>2011년은, 2006년 1월 29일에 타계한 세계적인 ‘비디오 아트 창시자’이자 플럭서스 예술운동의 핵심 멤버인 백남준(1932~2006) 사후 5주기가 되는 해이다. 백남준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1003개의 텔레비전을 18m로 층층이 쌓은 <다다익선>(1988)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지기도 했다. 백남준의 예술 활동은 다른 무엇보다도 1960년대 전세계로 널리 퍼진 <플럭서스>(Fluxus) 예술운동과 연관이 깊다. 그러나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라는 그의 명성에 비해 국내에서 <플럭서스>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지 못했다.

라틴어로 변화, 변동을 의미하는 ‘플럭서스’는 ‘인간의 내부에 잠재해 있는 힘과 강도’, ‘항상 유동적으로 움직이며 그리고 끊임없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힘’을 가리킨다. 플럭서스라는 명칭은 플럭서스 예술운동의 핵심 주창자이며 1963년 <플럭서스 선언문>을 작성한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조지 마키우나스(George Maciunas, 1931~1978)에 의해 적극 채택되어, 이후 백남준을 비롯하여 존 케이지, 요제프 보이스, 오노 요코 등 이 경향에 함께 했던 여러 예술가들에 의해 발전되었다. 또한 플럭서스 예술운동은 20세기 초반 급진적 예술운동인 미래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상황주의의 역사적 예술체제에 대한 항의, 거부, 비판, 파괴의 정신을 계승하고, 감성적 예술체제인 실험, 구축, 유희에 주력하여 예술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플럭서스 예술가들: 존 케이지, 요제프 보이스, 백남준

『플럭서스 예술혁명』에서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존 케이지, 요제프 보이스, 백남준은 플럭서스 예술운동에서 가장 중요하면서 가장 널리 알려진 예술가들이다.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는 주류 근대 음악미학에서 음악적인 소리로 여겨지지 않고 배제되어온 잡음, 소음, 침묵 등을 자유롭게 사용하여 예술화한 소리의 혁명가이다. 또한 그는 근대 유럽 음악미학의 기본적인 토대인 구성주의와 결정론과 절연한 첫 번째 작곡가이다. 정상적인 피아노 현에 나사와 같은 오브제를 끼워 넣어 피아노에서 타악기의 음색이 나게 변형한 그의 ‘조작된 피아노’ 작업은 정해진 악보에 따라 이미 결정된 음악이 아닌 우연에 의한 소리를 음악화하려는 그의 시도였다. 그리고 그는 <4분 33초>라는 작품에서 연주자들이 4분 33초 동안 공연장에 서 있을 뿐 연주를 하지 않음으로서 관중들이 내는 소음, 잡음, 침묵을 음악화한다. 이것은 연주자―청중이라는 경계를 허무는 시도였고, 한국에서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극적인 장면에 이 음악이 사용되어 대중화되기도 하였다.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 1921~1986)는 도발적 오브제를 사용하고 음악, 시각예술, 무대예술, 시 등 상이한 예술매체를 결합한 통합 행위예술가이다. 그는 오브제와 행위예술을 접목하여 공연했다. 그가 주로 사용한 오브제들은 기름덩어리, 토끼, 꿀 같은 유기적인 재료와 펠트 천과 십자가 같은 낯설고도 일상적인 재료들이었다. 그가 이런 새로운 오브제들을 사용한 것은 인간의 인지경험과 상상력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그가 선택한 물질 속에는 우리의 정신을 고취시키려는 (예술가의 세례를 받은) 물질의 정신화 작업이 있고, 동시에 오브제의 전개 방식과 퍼포먼스 구성에는 스토리텔링이 있다. 이것은 관람자와 함께 체험하려는 작업이었다.

백남준(1932~2006)은 텔레비젼, 위성 등의 소통도구를 통한 매체예술을 시작으로 하여 미지의 것을 추구하고 미지의 만남을 실험한 탈목적론적 예술가이다. ‘비디오 아트 창시자’로 알려진 백남준은 매체예술의 창조적 선구자였다. 그는 단지 텔레비젼이라는 전자기계 뿐만 아니라 텔레비젼을 구성하는 영상신호, 전자 등 기술을 연구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예술을 실천했다. 하지만 그는 매체예술가로만 머무르지 않고, 현대사회의 지배적 구조가 체계적으로 시각 밖으로 배제하는 존재들인 소음, 동양, 고대 등에 주의를 기울여 그것들을 예술화했다. 과 같은 작품들에서 우리는 이러한 그의 작업을 확인할 수 있다. 백남준은 이처럼 예술 개념을 개방하고 더욱 확장하여, 우리 삶 속에서 실천하려고 하였다.
(좀 더 자세한 작품과 활동 소개는 이 책에 수록된 ‘플럭서스 연보’ 참조.)

그렇다면 이 세 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한 플럭서스 예술운동은 오늘날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오늘날 예술의 대중화, 상품화, 금융화는 무엇인가?

오늘날 예술은 자본관계에 깊숙이 포섭되었고 시장이 예술을 이끄는 지배적 힘으로 되었다. 더 나아가 시장의 시공간 전체가 예술화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상품들의 판매와 구매는 그것들의 유용성보다 심미성에 더 많이 의존한다. 예술작품에 대한 평가는 평론가들의 몫이 아니다. 평론가들이 작품들에 모호하고 몽롱한 용어들로 아우라를 만들어내는 동안에 실제적 평가는 옥션에서 내려지며 그래서 미술품은 이제 주식, 달러, 석유, 금, 주택 등과 동일하게 금융투자의 대상으로 된다.

예술의 상품화와 금융화는 백화점을 넘어 건물, 공원, 광고판, 전광판, 극장, 도로 등 도시 전체를 미술품화하고 또 도시 전체를 미술관화하는 경향을 촉진한다. 공공미술 프로젝트와 도시혁신 정책은 도시의 예술적 재개발을 통해 도시를 관광 산업공간으로 재편하고 시민들에게 예술소비자이자 향유자라는 가상을 부여하면서 사람들의 문화적 공통체를 착취하려는 시도이다.

이처럼 예술은 확실히 화랑, 뮤직홀의 울타리를 넘어서 대중화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도발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색과 캔버스, 화음과 악기에 갇혀 있었던 예술을 해방시켜 대중의 생활 속으로 가져오고자 했던 이런 상황은 미래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상황주의 등의 아방가르드 운동이 추구한 꿈이 아니었던가? 즉 탈근대의 부르주아 상품세계가 혁명적 아방가르드의 예술적 요구들을 실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플럭서스 예술혁명』은 이와 같은 질문에 응답하며, 1960년대에 시작하여 혁명적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인 플럭서스에 대한 상세한 분석서이다. 이 분석을 통해 오늘날 예술과 예술가가 무엇이며, 예술과 삶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탐색하고 있다.

플럭서스, 20세기 혁명적 아방가르드 예술운동

플럭서스 예술운동은 예술이 이상적 이데아에 도달하기 위한 목적론적 방법이 아님을 강조한다. 오히려 플럭서스 예술은 미지의 것을 추구하고 미지의 만남을 실험하는 탈목적론적 엑스터시의 방법이다. 또한 플럭서스 총체예술은 매체들의 총체를 지칭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들의 총체, 생명의 총체, 삶의 총체이며, 삶이 부단히 미지의 것을 향해 열려 나가면서 기존의 것들을 끌어안고 그것들에 새로운 자리를 배정하는 과정을 지시한다.

또 플럭서스는 예술이 오브제화, 대상화하는 것에 대한 투쟁이며 이로 인한 예술적 소외에 대항하는 투쟁이다. 전통적 예술행위에서 예술가는 예술적 가치를 지닌 물적 대상을 만들어내며 그 대상은 예술가에게서 소외되어 영구불변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감상되고 거래되고 소유되었다. 예술은 근대성 속에서 예술가라는 신분을, 그리고 예술대상의 창조라는 몫을 분배받아 왔다. 플럭서스는 이 전통적이고 경직된 재현적 예술체제를 타파하고 예술을 삶과 통합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모색하고 실험하고 실천하였다.

이렇듯 존 케이지, 요제프 보이스, 백남준 등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예술적인 것에 대한 제도적, 전통적 통념을 거부하며 삶, 생명, 존재와 예술의 통일을 선언했다. 플럭서스 예술운동은 이러한 선언과 활동을 통해 20세기 예술운동의 역사 속에 ‘혁명적 아방가르드’라는 이름을 새기게 된다.


차례

서장 플럭서스와 우리 조정환 9

1. 우리 시대의 예술상황과 플럭서스
2. 플럭서스 예술경향의 역사적 위치
3. 플럭서스의 예술전략
4. 플럭서스의 한계와 우리의 과제
5. 삶예술-예술삶의 이중교직을 위하여
6. 덧붙여

1장 비구성주의 작곡가 존 케이지 김진호 39

1. 들어가며
2. 근대 서유럽 음악의 구성주의
3. 새로운 소리를 추구하는 존 케이지
4. 존 케이지와 우연성 음악
5. 근대적 “작품”을 벗어버리자!: 비구성주의 작곡가 케이지
6. 케이지와 친구들
7. 케이지 따라 하기?
8. 결론에 대신하는 문제제기

2장 플럭서스와 요제프 보이스 전선자 109

1. 머리말
2. 플럭서스 이전(以前)
3. 플럭서스와 요제프 보이스
4. 맺음말

3장 백남준의 예술실천과 미학혁신 조정환 167

1. 머리말
2. 백남준 미학의 배경과 구성요소
3. 백남준의 미학원리
4. 기술에 대항하는 기술로서의 예술
5. 예술적 시공간의 확장: 미술관으로서의 삶과 우주
6. 예술정치의 혁신
7. 예술가 개념의 혁신
8. 맺음말: 총체예술이라는 문제

참고문헌 242
플럭서스 연보 245
인명 찾아보기 248
용어·작품 찾아보기 250


지은이 소개

지은이
조정환 (Joe Jeong Hwan, 1956~ )
정치사상사와 정치철학, 그리고 정치미학을 연구하면서 주권형태의 변형과 21세기 정치의 새로운 주체성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다중지성의 정원[http://waam.net(연구정원), http://daziwon.com(강좌정원), http://daziwon.org(블로그정원)] 대표 겸 상임강사, 도서출판 갈무리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 『민주주의 민족문학론과 자기비판』(연구사, 1989), 『노동해방문학의 논리』(노동문학사, 1990), 『지구 제국』(갈무리, 2002), 『21세기 스파르타쿠스』(갈무리, 2002), 『제국의 석양, 촛불의 시간』(갈무리, 2003), 『아우또노미아』(갈무리, 2003), 『제국기계 비판』(갈무리, 2005), 『비물질노동과 다중』(공저, 갈무리, 2005), 『카이로스의 문학』(갈무리, 2006), 『민중이 사라진 시대의 문학』(공저, 갈무리, 2007), 『레닌과 미래의 혁명』(공저, 그린비, 2008), 『미네르바의 촛불』(갈무리, 2009), 『공통도시』(갈무리, 2010) 등이 있고 이외에 여러 권의 편역서와 번역서가 있다.

전선자 (Cheon Seon Ja, 1956~ )
1993년 독일 뮌헨대학에서 성상과 성유물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03~2007년 한신대학교 학술원 연구교수로서 독일 생태공동체와 요제프 보이스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다. 2008년부터 성균관대학교 인문과학 연구소 연구교수로 플럭서스와 백남준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그림에 있어서 신체적 생태적 관점」(미술사학보, 2004), 「생태학적 합리성과 자연미학에 의한 예술문화: 독일 생태공동체의 미술과 디자인문화에 관한 고찰」(한국비교정부학보, 2005), 「성 아폴리나레 교회의 모자이크그림과 생태학적 창조론」(서양미술사학회 논문집, 2006), 「독일 생태공동체와 한국 생태마을 만들기에 나타난 예술문화 활용과 인문학적 사유에 관한 연구」(인문과학, 2007), 「요셉 보이스의 “확장된 미술개념”과 대안문화: 그의 종교적 생태학적 작품을 중심으로」(서양미술사학회 논문집, 2008) 등이 있다.

김진호 (Kim JINHO, 1965~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였다. 잠시 사법고시와 행정고시를 공부하다가 도불하여 파리 에꼴 노르말 음악원에서 작곡디플롬을, 파리 8대학에서 음악석사학위를 받았다. 컴퓨터의 지원을 받는 음악분석에 관한 연구로 파리 4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귀국하여 현대음악과 컴퓨터음악에 관한 논문들과 저서들을 탈고하였으며 현재 국립안동대학교 예술체육대학 음악과에 재직하고 있다. 이론적 활동과 병행하여 작품활동도 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KBS교향악단이 연주한 피아노 협주곡 “유리 절벽 위에서의 축제”는 최근의 글로벌 경제위기 이전의 허망하면서도 화려한 상황과 그 파국을 예상하고 표현한 작품이다.


『플럭서스 예술혁명』 책 속에서

예술의 새로운 가능조건을 탐구해온 플럭서스는 말하고 부르고 쓰고 그리고 짓는 동사들을 서로 연결시킴으로써 삶과의 통일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삶 속에서 이것들은 전혀 분리되어 있지 않고 매순간, 그리고 어디에서나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입으로 말하고 부르고 먹고 만들며, 하나의 손으로 다듬고 쓰고 짓고 부수기 때문이다.
― 「서장 플럭서스와 우리」

케이지의 이 작품과 함께, 음악은 근대적인, 더 나아가 문명이 제공하던 틀을 벗어던지고 있다. …… 케이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귀를 기울이라. 그대 주변의 모든 것이 음악일지어니. 귀 기울이는 자가 곧 작곡가이다.” 이것은 음악은 항상 우리 주위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음악을 듣기 위해 우리 주변의 모든 소리를 멈추면 우리는 음악을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 「1장 비구성주의 작곡가 존 케이지」

보이스가 이렇게 ‘동종요법의 치유’를 선택한 것은 현재의 인간과 상황은 여전히 아우슈비츠와 같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속에서 가해졌던 법칙이 아직도 우리 가운데 즉 “학문과 정치적인 시스템에 관한 우리의 이해 속에서”, “전문가들에게 떠맡겨지는 책임 속에서”,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의 침묵 속에서” 그 연장을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상황과 그 근원과 빈번히 싸웠고, “지금도 우리 모두(토끼)는 아우슈비츠를 느낄 수 있는 상황 속(시베리아)에서 참고 견디어 내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 「2장 플럭서스와 요제프 보이스」

백남준의 총체예술은 영원성과 접속하는 방법, 혹은 샤머니즘적 접신(接神)의 방법이다. 영원성에 대한 체험은 정점에 이른 영점에서의 정지로도, 독립적인 움직임의 동일한 흐름을 동시에 인식하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이것이 감동의 공산주의, 즉 공감주의이다. 백남준의 영원성은 결코 정태적인 그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독립적인 흐름들의 만남, 관계, 소통, 공동체 구축을 통해 ‘내가 아닌 나, 즉 끊임없이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나’의 엑스터시 속에, 엑스터시를 통한 변전 속에 있다.
― 「3장 백남준의 예술실천과 미학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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