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5] 네그리, 하트, <어셈블리> 1부 4장 (2)

작성자
outis
작성일
2018-08-25 17:26
조회
1345
□ 다지원 <어셈블리> 세미나 ∥2018년 8월 25일 토요일∥발제자: 케이(outis)

<종교적 정체성의 폭력>
1. 오늘날 가장 과격한 우익운동 일부는 종교적 열정으로 추동된다. 하지만 신앙이 직접적 방식으로 그들의 정치적 행동에 관여하는 건 아니다. 오늘날 많은 종교운동을 이해할 열쇠 하나는, 종교적 정체성의 방어와 외부세력에 대한 분노를 결합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 물론 모든 종교적 운동이 반동적인 것은 아니고, 역사 속에서도 종교적 운동의 정치적 방향은 아주 다양하다. (ex. 로마 가톨릭, 이슬람, 유대교 상반되는 방향의 생성)

2. 혹자는 주장한다. 세계화의 몰개성화와 소외의 효과가 공적공간에서 종교를 부활시키는데 기여했다고, 그리고 신앙의 정치화의 오랜 전통을 통한 종교적 정체성의 힘을 증가시켰다고. 불안정함과 위기의 시간에 그런 정체성들이 되돌아오는 것은 놀랍지 않다. 그런 운동들은 도덕성에서 정치로 빠르게 이동한다. 그리고 곧 그들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신앙은 지배의 도구로 변형된다.

3. 많은 오늘날 종교운동은 신자유주의 정치가 만든 비참함에 신도들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그리고 또 다른 이들은, 유럽, 미국, 초국적 권력구조에 의한 식민지배의 계속되는 형식과 유산을 강조한다. 실제로 유럽에서의 배제, 종속의 인종적 형식과 관련된 분노는 반향을 일으켰다. (...) 정체성, 종교적 광신주의, 사회적 보수주의의 숭배는, 폭력과 전체주의적 경향에 양분을 제공하는 슬픈 정념의 치명적이고 폭발적인 혼합 속에서 만들어진다.

4. ISIS와 알 카에다가 조직한 2014~2015년 시리아와 이라크의 군사적 발전은, 종교의 이름으로 저항과 지배가 폭발적으로 결합한 극단적 사례다. 종교 분파주의는, 바로 여기에서 대중의 원한(식민세력에 의해 설립된 20세기 중동의 영토 조직과 그에 이은 21세기의 외세 개입, 특히 테러와의 전쟁을 표방하고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는 미국 등에 대한)과 교차한다.

5. 우리가 그들의 원한 일부가 진짜 근원을 갖고 있다고 인식한다고 해서 “테러리스트에게 공감” 또는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들에게 반대하는 유일한 효과적인 방법은, 거짓으로부터 진실의 가닥을 풀어내고, 최소한 경제적 비참으로부터 평등주의를, 해방의 유인원프로젝트들을, 그리고 운동 전반의 야만적, 전체주의적인 체제로부터 식민적 복종 같은 요소들을 분리하는 것이다. 자유, 자율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이, 광신적 종교체제, 고통스러운 굴욕이나 빈곤에 대한 분노로부터 해방프로젝트를 향할 수 있을지 혹은 그런 기획이 종교지역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말할 수 없다. 만일 그런 기획이 가능했다 해도, 그들이 계속 정체성 구축과 방어에 중점을 둔다면 결국 야만적이고 파시즘적 국가 재건으로 이끌려버릴 가능성이 높다.

6. 우리는 모든 주요 종교에 있는 순교의 두 가지 전통을 구별해야 한다. 하나는 순교자들이 그들의 신앙을 기꺼이 지키고 심지어 죽음까지 의롭게 증거하는 것(ex. 로메로 대주교) 또 다른 것은, 테러의 극단적 형식을 기리고, 증거의 형식이 아니라 정치적 정체성을 종교적으로 표현하는 순교를 하면서 적과 함께 자폭하는 것. (...)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의 익명의 ISIS 모집은 그런 순교의 매력에 호소했다. 그리고 ISIS가 소셜미디어를 매개로 순교의 문을 연 것은 엄청나게 효과적이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그런 종교적 신념과 실천은 미신을 혹독히 비난하도록 우리 모두를 이끌어야 한다.

7. 여러 종교가 공통의 기반을 찾거나, 단순히 서로를 평화롭게 용인하거나, 또는 세상과 삶의 사랑이 절대적 가치이기를 희망하는 것은 순진한 것이다. (...) 간디는, 종교인이었지만, 다른 종교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고, 평화를 위해서는 종교적 관용조차 충분치 않다고 봤다. 대신 간디는 “intercommunalism”을 독려했고, 무슬림과 크리스천 텍스트와 관습을 택했으며, 복잡한 그들 안쪽으로부터 종교적 정체성을 파괴함으로써 그 행동을 모델로 만들었다. 말하자면 그는 덜 힌두인이 된 것이 아니라, 더 무슬림이 되고 더 크리스찬이 된 것이다.

8. 우익운동의 거울을 통해 (...) 해방운동은 1) 적대적이어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운동은 단순히 지배력을 강화하거나 사회질서의 위계 유지, 복원을 지지하는 역할을 할 수 없다. 대신 우리는 자율적이고 파괴적이고 논쟁적인 행동가가 되어야 한다. 2) 운동은 민주적이어야 하고 조직과 기관의 요구를 거부하지 않으며 중앙집중적 리더십에 비판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 3) 운동은 비정체성주의적이어야 한다. 인종, 에스니시티, 종교, 섹슈얼리티 또는 다른 사회적 요인에 근거하는 정체성은, 내부적으로 다양하고 무수히 많아야 할 운동의 다원성을 폐쇄시킨다. 이런 교훈을 생각치 않는 해방운동은 오른쪽으로 표류할 위험이 있다.

<부로서의 가난>
9. 원래부터 종교에서는 가난한 다중을 지배권력으로 다스리려 했다. 정치권력과 세속적 부의 소유 모두를 합법화하는 지배적 종교 논리는, 일반적으로 가난을 자연스러운 결과로, 심지어는 연민의 가치로 제시한다. 신은 가난한 자를 용서하고 그들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보상할 것이라는 식으로. 하지만 각 종교 전통에는 주권권력에 대항하여 비소유(nonproperty)의 실천을 주장하는 소수적 흐름 역시 있다.

10. 근대 여명기에 봉건질서에 관련된 가톨릭교회(와 달리...) 프란체스코회는 가난이 영적 삶의 가장 높은 형식이고, 모두가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이 사건은, 당시 출현하고 있는 근대세계의(근대세계에 대항하기도 하는) 사례, 그리고 재산을 종교적, 정치적 문제로 만드는 가난 실천의 혁명적 발견의 한 사례다. (...) 재산 수호가 사라지면, 종교적 삶과 주권 사이의 동맹은 해체된다. 근대의 황혼기인 오늘날 새로운 사회적 지층은 (...) 이런 초기 전통들을 새롭게 하며 다시 혁명적 잠재력으로 비소유의 실천을 채우기 위해 투쟁한다.

11. 중요한 것은, 빈곤의 확인과 재산에 대한 비판이, 박탈이나 금욕이라기보다 풍요로움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프란체스코회는 소유하지 않는 청빈한 사용(usus pauper), 적당함, 재화의 제한된 사용을 제안하고, 성서를 근본적으로 해석한다. (...) 물질적 측면의 풍부함과 사유재산의 전복에 대한 위임으로서 빈곤의 확인은, 우리의 협력적 생산 역량의 가치와 정치적 힘을 강조한다. usus pauper에는 우리의 공유된 부의 풍요, 그리고 공통적인 것의 잠재적 구성을 기대하는 관념이 있다. (...) 가난은 부의 부재가 아니라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그것의 근본적 전제조건이다.

12. 교회가 이 혁명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작업을 박살낸 이후로, 근대성의 탄생은 주로 자본주의적 관계에 성공적으로 길들여지며 정의되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빈곤은 착취와 불가분으로 연결되게 되었다. (맑스...) 자본주의적 금욕주의는 가난한 자들의 지옥이고 학대가 된다.

13. 그러나 빈곤의 이 자본주의적 건설은 또 하나의 진실을 드러낸다. 부의 생산과 사회적 삶의 재생산은 실질적이고 심오한 의미에서 노동자의 손에 달려 있다. 이 사실은 잠재적으로 가난하고 착취당한 노동자들을 종속시키는 자본의 ‘자연사’와 모순된다. (...) 빈곤과 잠재력의 폭발적인 혼합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에 대한 치명적 위협을 드러낸다.

14. 오늘날 자본주의 발전의 포스트산업화 시대에, 빈곤과 잠재력의 혼합은 더욱 변덕스러워지고, 근대 여명기의 프란체스코회의 직관은 황혼기에 엄청난 힘으로 되돌아온다. 한편 현재의 신자유주의 형성과 금융지배 하에서, 생산적 노동의 소외는, 가난한 자와 전체 노동인구의 삶이 점점 불안정해짐에 따라 극단적 수준에 이른다. 이 점은 3부에서 더 자세히 살필 것이다. (...) 우리의 협력적 생산능력은 임금노동 세계의 안과 밖 모두에 연결되고, 점점 공통적인 것의 지형에 관련되고 개발된다. 그리고 공통적인 것은 불안정한 요구와 욕구인 안전의 형식을 제공하는 잠재력을 갖는다.(3부에서 더 얘기할 거다.) 불안정함과 공통적인 것이란, 신자유주의 시대 다중의 빈곤과 잠재력을 인식하는 핵심개념이다.

15. 가난한 자 스스로가 이 시대의 신자유주의적 조건에 응답할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사람들의 정체성 구축, 방어, 또는 복구에 대한 요구가 배가함에 따라 점점 불안정해지는 우리의 삶을 조망하는 것이다. 그것은 세계적 자본, 금융, 지배적 네이션 스테이트, 초민족적 권력, 이민자, 소외자, 그밖에 실재하거나 박탈의 상상된 원천에 대항하는 방어물이 될 것이다. (...) 두 번째는 정체성의 사이렌을 거절하는 대신, 공통적인 것에 기반한 안전한 삶의 형식을 불안정한 조건을 기초로 하여 건설하는 것이다. 버틀러는 여러 책에서, 희생과 고통의 관점에서가 아니라(에서뿐만 아니라), 주로 잠재력을 지닌 장소로서 불안정함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가난한 자, 장애를 가진 사람, 그리고 젠더, 섹슈얼리티, 인종 관점에 종속된 이들의 약함(vulnerability)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다른 이들에 대한 불가피한 의존을 깨닫게 한다. : 상호의존적 회로의 개발은 진짜 안전을 향한 중요한 (아마도 유일한)길이다. 우리는 삶의 자율적 형식들과 자유를 만들어내는 강력한 기초로서, 자본주의 경제 안팎에서 사회적 협력의 생산 네트워크를 열고 확장하는 공통적인 것의 이론을 따라 상호의존에 대한 버틀러의 확신을 읽는다. 이 경우 가난한 자는 정체성의 벽 뒤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된 삶의 새로운, 이동하는 별자리를 구축함으로써 불안정함의 고통에 반응한다.

16. 이러한 불안정함과 가능성의 결합은 특히 이민자의 삶에서 강력하게 표현된다. 국경을 넘고 떠돌고 통과하는 다중은 고정된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세계질서의 물질적 구성을 와해시키는 잠재력을 갖는다. (이민자...) 혼합되는 이런 주체성은 점점 융합적이고 정체성주의적인 제어(control)권력을 피할 수 있게 한다. 빈곤의 지옥과 이주의 오디세이에게는 새로운 힘이 있다.

17. 여기서 우리는 프란체스코 프로젝트의 본질을 다시 만난다. 빈곤은 박탈이 아니라 모든 주권과 초월적 권력을 위협하는 부와 풍요의 상태다. (...) 프란체스칸들의 비소유 실천은, 다시 오늘날 자본주의의 금융권력에 대항하는 공통적인 것의 투쟁 속에서 혁명적 잠재력을 갖는다. (...) 종교적 정체성을 포함하여 모든 종류의 정체성을 녹여버리는 빈곤에는 정말로 신성모독적이고 부식성 있는 요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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