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7일 세미나 기록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권 사치품과 일상용품 : 음식과 음료 - 음료수와 “흥분제” p. 317 - 1권 끝까지

작성자
Bosub Kim
작성일
2021-04-01 23:45
조회
435
3월 27일 세미나 기록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권
사치품과 일상용품 : 음식과 음료 - 음료수와 “흥분제” p. 317 - 1권 끝까지

기록: 김보섭

사회(장은미, 이하 이름만 기록): 김정연 선생님께서 토론거리로 올려주신, ‘우리 시대를 떠올리게 한 대목’

- 카공족 : 자본주의의 활동적인 분야가 커피의 생산, 보급, 그리고 그 성공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파리에서는 사회적 문화적 생활에 심각한 충격이 일어났다. 커피를 파는 가게라는 의미에서의 카페가 우아하면서도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 되었으며 동시에 가난한 사람들의 보호처가 되었다. 세바스티앙 메르시에에 의하면 “가난한 사람은 아침 10시에 카페에 들어와 밤 11시에야 나간다..”
- 고시원과 반지하 : 어디를 가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네덜란드의 도시들이나 심지어는 암스테르담에서도 가난한 자들은 낮은 집, 지하방에 살았다.
에 대한 부연설명을 부탁드린다.

정연 : 브로델은 파리가 커피의 중심처가 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무위도식의 도피처가 되었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카공족’이 그러한 것 아닌가? 이 대목이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 형태를 떠올리게 한다.

은미 : 공간은 일상생활에서 가난한 사람과 부자들의 삶의 양태로 나누고 우리 삶을 드러내는 것 같다.

정환 : 카페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 카페에서 커피와 식사를 떼우는 사람들이 많이 있나?

정연 : 커피로 식사를 떼웠던 적이 있었다.

상혁 : ‘카페 오 레’를 마시는 것, 커피에 우유를 섞는 것. 그래서 식사 대용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정환 : 설탕, 술, 커피 등이 가난한 사람들이 부족한 영양분을 쉽게 섭취하기 위한 도구가 되었다는 의미로 읽힌다. 하지만 우리의 카페는 여유, 사치의 공간으로 느껴지는데, 그러한 곳에서 끼니를 떼운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것 같다. 15~16세기 커피 향유가 지금도 지속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미 : 공간적인 문제로 보인다. 지금 시대의 카페는 1인 주거를 벗어나 공간이 주는 해방감을 주는 역할을 한다.

상혁 : 브로델의 가난한 사람과 부자들을 나누는 태도는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보고자 하는 태도가 보이는, 한 폭의 풍경화적인 태도가 있는 것 같다. 이 서술 방식이 어떤 태도이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은미 : 브로델이 어떤 관점, 무엇을 드러내고자 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해볼만하다. 저는 개인적으로 위로부터의 역사, 아래로부터의 역사로 배워왔는데, 아래로부터의 역사 서술 방식을 배우는 것 같다. 아래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언뜻언뜻 느껴지는 것 같다.

정연 : 18세기 사치 중에서 부자들의 경우, 집과 일터가 분리된 것이 가장 사치스러운 것이 재밌다. 노동자들은 어디에서나 일해야 하는 처지였다. 지금은 당연한 현실인데, 이 당시 만들어진 사치라면 자본주의가 아닌 세상에서는 어떨까 하는 상상이 든다.

정환 : 농경사회는 집하고 일터가 공간적으로 분리되지 않았다. 집과 논이 분리되었다고는 할 수 있지만 농민은 집을 둘러싸고 있고 인접한 방식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밭이 집과 가까이 있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집과 일터가 결합된 세상으로 돌아간 상황이 있다. 여론조사의 결과, 최근 집에서 일하고 싶다는 사람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므로 일과 집이 분리된 것이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공장, 이윤, 분배, 효율성을 위해 집과 일터를 분리시켰고, 이로 인해 교통 정체, 생태 파괴 등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집과 일이 접속되어 있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보미 : 일로서의 작업, 노동과 예술이 분리된 것도 근대로부터인데, 예술가들은 언제부터 별도의 아뜰리에로 분리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그런 계기가 있었을까 궁금하다.

보섭 : 근대 이후의 일일 것 같다. 그 이전에는 화가는 궁중화가로 일했고 우리의 역사에서 화원도 마찬가지다. 예술가 개인으로서의 근대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 예술은 삶과 예술 노동을 분리하지 않는 경향도 존재한다(추후 보완 ^^))

정환 : 예술가의 형태로 전문화된 것은 독립된 것, 미술 평론, 아뜰리에, 비평가, 신문의 비평 등의 분업화된 네트워크를 갖추면서 분리되어 나온 것 같다.

은미 : 일과 집의 분리가 사치였다고 본 것이 재밌고 의미있다. 재택 근무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하지만 사람마다 다르고 입장마다 다를 것 같다.

서연 : 노동 조건을 구비하는 것, 노동자에게 재택을 하는 것이 어쩌면 더 부정적인 측면이 있지 않은가 한다.

상혁 : 396 페이지 ‘18세기에 시작된 사치 중 결정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부자들의 경우 집과 일터가 분리된 것이다’ 고용주가 노동자를 불러와서 숙식하도록 했다. 일상인들의 삶을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은미 : 의복이 끈질기게 사회적 대립을 보여주고 있다. 유행이 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불변성이 있다. 유행은 삶에 대한 즐거움이 아니겠는가?에 대한 문장에 대해서 유행은 비참함과 불평등을 영속시키는 측면, 반복은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반복인가?

정연 : 아마존의 베조스는 시간당 83억을 벌었다고 하는데, 습관에 대한 사유, 멘드비랑 라비송 같은 사람들의 습관에 대한 사유들, 반복될 때 제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유행은 새로운 것이 없는 단순 반복으로 포착하는데 유행의 반복하는 패턴을 어떻게 봐야할까? 유행은 역사 진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보미 : 유행과 반복의 대비에서 브로델이 가난한 사람과 부자들, 동양과 서양을 나눠서 동양을 변하지 않는, 서양을 변하는 것으로 나누기도 하는 것 같다. 반복과 변화를 대비시키는 선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연결이 궁금하다.

상혁 : 브로델이 장기 지속을 이야기하며, 유행은 지역적으로 서구에서 가난한 자의 것이거나, 브로델의 동양은 중앙아시아, 극동도 포함하는 것이며 서구가 대서양을 발견하면서 유행을 등장한 것 같다. 근대 자본주의의 발생하면서 보는 특징에 대한 전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치나 유행이 역동적인 것을 만들어낸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정환 : 브로델이 불변하는 것의 공간적 - 동양에 가깝고 서양은 가변성으로 배치했고, 부자들보다는 가난한 사람이 불변한다. 맑스도 아시아 지역이 생산양식을 통해 아시아적 정체성이 있다고 본다. 아시아적 생산 양식은 서구의 노예제가 농노제로 변화되어가는 혁명적 이행 과정을 밟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의문의 여지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불변성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브로델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점은 유의미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동물적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놓여있음으로써 변화라는 것이 있기 힘들다고 본다. 하지만 여기서 왜 그러한 조건이 나타나는가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는다. 반대로 맑스는 수탈, 착취에 대해서 말하면서 계급적 관계에 대해 주목함으로써 가변성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세계의 진보를 이루는 것이 아닌가?
유행이라는 것, 문명의 도약, 가능성의 창출, 삶의 즐거움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사치, 유행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므로. 유행이 그러한 점을 묘사하는 점에서 정확한 관점이기는 하지만 루카치의 경우에는 유행을 상품 사회의 유통, 판매를 위한, 자본가들이 유행을 창출하려는 입장에 있고 자본가들이 유행의 확산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유행이 상인의 필요에 의해서 창출되는 언급하는 대목에서 브로델은 유행의 핵심은 아니지만, 하나의 부분 정도로 보고 있는 듯하다. 마찬가지로 유행을 누가 만들어내는가? 동기는 자본가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유행하는 것, 소비자의 욕구, 생활방식 등의 내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생산자에게 있지 자본가에 있는 것은 아니어 보인다. 박노해 시 중에 ‘노동자의 집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러한 점이 브로델의 시각에 깔려있어 보인다.

은미 : 아날학파가 지향하는 장기지속의 변화를 보여주는 작업 속에서 이분법적인 체계 속에서 서구:비서구, 노동자:부르주아의 느리지만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불변성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반복되는 것이 동일성의 반복이 아닐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과의 연결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보미 : 브로델이 현상 서술로 보이는 것이 있고,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는 부분들이 있는데, 어긋나는 지점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로델이 직접 드러내는 부분은 유행이 어떤 측면이 있는가, 도약과 진보의 관점에서 바라보긴 하지만, 현상 서술만 보면 유행과 사치품의 부분이 무역과 연관되어 있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에서도 자본주의의 시초를 빠르게 된다고 봤을 때, 19세기부터라고 하면 착취의 문제에 집중하게 되는데, 더 빨리 봤을 때 수탈의 문제로 보이게 된다. 현상들의 힘이 있어서 자본주의의 시작을 당기면서 보이지 않는 작동하는 힘을 느꼈다.

케이 : 제이슨 무어의 책에서 인용된 것은 브로델의 책이 사료들을 직접 인용하면서 2차 사료이지만 낭만주의적이지 않은 서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인용한 것이 아닌가 한다. 재현에 대해서 목가적, 낭만적 시선을 벗어나는 강박과 어떻게 구별해서 브로델을 볼 수 있을까 궁금했다.

상혁 : 브로델을 이해하기 위해 공감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고 그가 하려는 의도에 대해서 이해해보려고 하게 된다. 유물론적 입장으로 보이고, 이분법적인 도식을 따르는 것 같지 않다. 서구에만 국한시키는 것도 아니고, 중국에 대한 한계도 이야기하므로 다양한 지역에 조망하고 섣불리 자신의 시각을 개입하는 것 같지도 않다. 444페이지에서 장 바티스트 세의 기록을 인용하면서 ‘나는 터키나 그밖의 다른 동양 민족의 거의 변화 없는 의상을 좋아하지 않는다 ~ 그들의 바보스러운 전제주의와 서로 어울리는 것 같아 보인다 ~’ 이를 직접 인용하면서도 공감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은근하게 늬앙스가 비판적인 부분도 엿보인다. 브로델은 이 이후의 책에서도 유행과 사치가 자본주의와 연결지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471페이지 마지막 결론부에서 ‘사치가 한 경제를 지탱해가고 진보시키는 좋은 수단은 아니라고 해도, 그것은 한 사회를 부양하고 매혹시키는 수단이다. ~ 복잡한 질서가 형성되며 여기에 경제, 사회, 문명이 가지는 함의, 경향, 무의식적 압력이 함께 작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장은 아날학파의 입장을 말하는 것 같다. 이렇게 말하고 했다고 해서 사치나 유행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저는 브로델을 옹호하는 방식으로 읽어보고 싶다.

조재형 : 저는 387페이지를 보면 ‘중국 문화권에 속한 지역에서는 집을 대지 위에 “단단히” 지었다. ~ 건축의 분류는 건축 재료의 위계가 존재한다’고 한 부분에서, 견고함이 떨어지는 동양으로 보이는 것, 서구의 우월적 관점에서 보는 것 같다. 의자와 가구를 삶의 방식과 연결하는 것으로, 의자, 책상, 낮은 책상 등에서 앉은 자세와 웅크린 자세에서 웅크린 자세에서 미개한 듯한 것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기준으로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보섭 : 유행의 반복, 반복되는 것이 진보, 새로운 것으로 나아가는 것에서 누가 만들어 가는 것일까? 사치가 위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음식과 음료의 좋은 것이 더 좋은 것으로 향하는 것이다 보니까, 사치품이 세밀한 구분을 만들어내는 것인가? 유행의 반복이 어떤 새로움을 만들어내는가에 대해서 아래로부터, 위에서부터 일방적으로 만든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브로델은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그 과정을 설명하는 것 같다.

은미 : 조정환 선생님이 올려주신 토론 거리로서, 빠름과 느림, 단단한 것 유동적인 것을 어떻게 파악하는가? 유행과 사치는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토론할 수 있을 것 같다.

정환 : 이 책은 엄청나게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다. 유럽, 아시아, 북미 등의 역사지리를 검색해가면서 따라가고 있다. 해당 메시지를 간추리고 질문을 추리는 방법을 쓰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될 문제이다. 보존과 혁신의 문제는 인간은 역사를 창조하지만 유에서 과거에서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간다. 스피노자의 경우에도 보존의 노력에서 진화해 나간다. 혁신의 동력으로 보존의 노력을 서술한다. 두 다이나믹을 살펴보려는 노력이 있다. 유행과 사치의 부분은 상당히 큰 몫을 차지하고 일관되게 좀바르트처럼 유행과 사치가 역사의 원동력으로 보는가. 혹은 객관적으로 유보하고 있는가. 개인적으로는 서술의 일부분일지라도 브로델은 역사의 원동력으로 보는 측면이 있다. 낙수처럼 끌어올려서 역사가 진보해가는 경향을 보인다고 판단한다.

케이 : 사치란 단어는 superfluity 라고 번역한다.

정환 : 이것은 우리가 말하는 사치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사치란 불필요한 것을 의미하는 것과 다른 헤겔이 말하는 종적 구속을 벗어나는 단순반복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보인다. 맑스에게 사치란 잉여surplus 개념으로 보며, 브로델의 사치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잉여라는 것이 한 사회의 특수계급에게 속해 재투자되지 않고 독점될 때 사치라고 할 수 있다. 자본가들은 자본을 사치에 사용되지 않고 생산을 재생산하는 데 관심이 있다. 근대의 16~18세기 사회에서는 세계 전역의 국제 무역의 상업 자본을 연구 대상으로 놓고 세계 자본주의적, 유통의 세계자본주의적 시기에, 귀족의 사치의 생활이었지만, 사치를 진보의 동력으로 본다.
즉, 브로델은 정체된 봉건사회, 초기 자본주의의 사치가 진보의 역사의 동력을 수행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맑스의 18세기 이후 자본주의를 노동으로 원동력으로 보는 것과 차이가 있다. 이런 점에서 차이가 있다.
맑스는 잉여를 도덕적으로 보지 않고 잉여는 필수적이고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 잉여가 사회적 계급적 적대에 의해서 독점되고 균열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사용되어 잉여의 자유 창출의 능력을 방해하고 억제하는 현실에 대해서 고발하는 입장이 있었다. 사치라는 말을 경제 독접되지 않는다면 사회적 인류의 역사적 동력으로 말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치 능력, 자유, 창조력의 창출은 결코 귀족적 집단의 창출물이 아니고 인류, 다수대중의 창조력이 응축되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상혁 : 월러스티이 브로델을 받아들이는 학자로서, 사치품이 일상용품으로 대비될텐데, 월러스틴에게는 근대세계체제는 일상품의 범위이고, 사치는 근대체계의 벗어나는 것이었다. 브로델에게 사치품과 일상품을 대비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값비싼 포도주가 있는가 하면 일반품도 있지만, 사치품의 구분이 가능한가? 포도주의 일상품이기도 하고 사치품이 되기도 하는데, 사치품은 무엇일까? 유행과 사치가 자본주의 인과 관계라기 보다는 유행과 사치가 자본주의의 특징으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보미 : 그와 연결해서 사치품은 대중들의 조건에 따라 관점이 다르게 볼 수 있고, 사치가 역사의 동력으로 볼 수 있어 보인다. 담배가 사치품이었다가 대중에 퍼졌다가 또다른 사치품이 생기고 존재하게 된다. 보존과 혁신이라고 하면 브로델이라고 하면 문명이라는 것은 보존하려는 속성을 띈다. 서유럽과 동양을 대비해서 말하는데, 중국의 사치는 변하지 않고 유지하는 방식으로 사치가 활용되고 서유럽은 유지가 아닌 사치가 변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작동한다고 보는 것 같다. 빠름과 느림은 17, 18세기 이전에는 느렸고 18세기 이후부터 변화가 가속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속도에 대해서는 점점 가속되는 서술을 하고 있어 보인다.

상혁 : 어디서나 사치품은 있는데, 사치품을 유행으로 본다면, 유럽을 넓은 범위로 보고 있으며, 근대 초기까지는 유행, 사치품의 변화가 크지 않았는데, 자본주의적 특징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YH : 3장과 4장의 서술 방식이 다르게 느껴졌다. 음식과 음료 부분은 유행을 만들어내는 동인도 회사를 거점으로 해서, 상품이 되고 퍼져나간 것으로 보여준다. 차, 커피 등은 문명을 기반으로 사치품이 되었다. 흐름을 보여주는 것 같다. 뒷부분은 동서양을 대비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어서 동양은 아니었다고 하는 서술로 보인다. 그 차이가 생겨난 배경, 맥락에 대한 서술이 없어서 위계로만 보여서 이해하기가 납득이 안되는 부분이 있다.

은미 :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로 돌아오는 방식으로 서술된 반면에 주택, 의복에서는 그 사치가 어떻게 역사의 동력이 되었는지 모호하다. 브로델의 유행과 사치가 역사 진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해석해 본다.

보미 : 문명이 지속될 때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할 때 지속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일정한 것을 고정하면서 지속하는 방법, 또 하나는 변용, 변신 능력을 하면서 존재를 지속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 브로델은 후자 쪽을 우월한 것으로 보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짐작한다.

정환 : 잉여가 모자라는 것이라면 과잉은 넘는 것이고 이 과잉의 용어가 더 브로델의 취지에 적합한 말로 보인다. 사치와 진보의 문제, 사치와 위계의 문제가 전혀 다르지 않고 통일되어 있다. 브로델은 계급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하지만 귀족, 부루주아지, 가난한 사람들의 표현을 써서 인류 속에 여러 집단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브로델은 계급을 차별distinction로 보는 것으로 보이고, 이는 브루디외의 계층과 맑스의 계급과는 다르다.
차별에도 일정한 동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차별이라는 것은 모방해서 쓰고 잘난 척하고 부루주아지가 쓰지 않는 것을 쓰는 것, 희귀한 것을 쓰려는 것, 차별화된 것을 수입하려는 욕망을 보인다. 이처럼 구별하는 욕망, 특권 계급이 가진 욕망 중에 하나였고 그것이 위계를 낳았고, 그 구분짓기의 갈망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테크닉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위계와 진보를 같은 것으로 보는 것 같다.

은미 : 구별짓기를 통해 위계를 짓는 것 같다. 토론거리로 올려주신 ‘사물과 말을 그 전체서 보자’는 브로델의 방법론적 제안에 대해 마지막으로 토의해 보자.

정환 : 470페이지 내용인데, 푸코의 말과 사물 1966년, 브로델이 1979년 출간되고, 브로델이 쓰기 시작한 것이 1966년 시작되었는데, 푸코의 말과 사물을 참조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브로델은 사물 세계를 이렇게 자세하게 볼 수 있구나는 생각이 든다. 유물론적 관점이 보이면서 세세한 물질 세계를 서술하는데, 보통 유물론에서 이러한 서술 방식을 택하지는 않는 것 같다.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사물들의 세계를 나열하는 것은 기계적인 것으로 보고, 리얼리즘의 경우에도 사진 찍듯이 보여주는 것은 리얼리즘이 아니라고 보는 것과 상통한다. 루카치는 사실들을 추상해서 전형을 드러내어야 한다고 본다. 특징들의 연관 관계, 전형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리얼리즘으로 본다.

브로델은 열거하는 유물론에 가까운데, 말의 영역으로 사물과 대비하고 그 둘을 포괄하는 전체를 드러냄으로써 사물의 영역이 전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부분까지는 전체가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후가 궁금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언어라는 것을 471페이지 끝에서 상징, 환각, 지적 사고들 - 라캉이 말하는 상징계의 세계와 문명의 발전에서 상당히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해 간다. 사치와 유행과 말의 관계는 무엇일까? 구분짓는 것과 말의 세계와 스며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상혁 : 개인적으로는 가라타니 고진으로부터 월러스틴, 브로델로 거슬러 올라갈 때, 아날학파의 성격에 대한 전체 역사, 장기 지속에 대한 관점에서 이해하게 된다. 1권에서는 아날학파의 입장에서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시야의 폭이 넓다. 구체적인 민중들의 삶에 대해서 아래로부터 서술하는 태도가 있는 것 같다. 귀족들의 구별하려는 욕구가 역사적 진보를 이끌었는지는 논의할 필요가 있다. 미시적인 논쟁보다는 유럽의 근대 자본주의의 특징으로 보고 있는 것 같고, 서구 진보로 보는것은 유보적인 생각이 든다.

은미 : 장기 지속의 전체사가 보는 그 이전의 역사 서술과는 다른, 유물론적, 물질 세계에 대한 천착이 말과 사물과의 연관성이 보이고 사물을 먼저 보고 담론의 세계로 연결될 것 같다. 공존하는 역사 서술에 대해서 상정해 볼 수 있다.

참고
다음 세미나는 하권 5, 6장(-624)까지 읽기 (4월 10일)
정연 : 사치품 불어 원어는 ‘LE SUPERFLU’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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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7일 (토) 7시30분 <여덟 번의 위기> 3장 세미나 공지
ludante | 2024.01.08 | 추천 0 | 조회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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