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호] “삐라”를 통해서 본 근현대 혁명적 계급투쟁사ㅣ안태정

김명환의 삐라의 추억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9-12-04 20:53
조회
1858
 

“삐라”를 통해서 본 근현대 혁명적 계급투쟁사
―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공산주의’적 노동계급의 투쟁


『삐라의 추억』(갈무리, 2019) 서평


안태정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저자)


1980년대까지 노동해방을 부르짖던 상당수의 사람들이, 오늘날에는 반대로, 노동계급을 착취하고 억압하기 위한 계급투쟁을 하는 자본계급의 중심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그 유명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의 조카로 소개되는 것을 몹시 “자존심” 상해했고, “KTX 여승무원이 되고 나서”를 쓴 노동자 시인으로 소개되기를 진정 바라는 김명환은 월간 『노동해방문학』(1989.3~1991.1)운동을 했던 전후부터 노동계급해방투쟁의 현장 속에서 30년 넘게 삐라 활동을 한 베테랑 “선전활동가”다. 그런 점에서 『삐라의 추억』은 『노동해방문학』의 계보에 속한다.


김명환의 『삐라의 추억』은 “후배들의 추억 속에 멋진 동지로 남는 것”을 기대하면서, 『노동해방문학』운동을 할 때 종이를 댔던 빨치산 선배처럼, 후배 삐라 활동가들에게 “선물”로 주는 “삐라이야기로 만든” 삐라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꿨던 선배들과 같이, 그의 『삐라의 추억』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삐라 한 마리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삐라 한 마리를 전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그 어떤 혁명시보다 빛나는 혁명가들의 이야기다.” 김명환이 빨치산 선배를 추억할 수 있는 것은 빨치산 선배가 갔던 노동해방투쟁의 길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그가 후배들의 추억 속에 멋진 동지로 남으려면, 즉 후배들이 그를 추억하려면 후배들도 선배들이 나아갔던 길을 “짜릿”하게 걸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후배 삐라 활동가들에게 그가 『삐라의 추억』을 선물로 주는 이유 중의 이유일 것이다.


『삐라의 추억』은 김명환이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이 땅의 압축적인 혁명적 계급투쟁사다. 1910년대 자본계급의 계급투쟁인 토지조사사업에 의한 원시적 자본축적에 맞선 3.1운동이라는 계급투쟁에 노동계급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20년 회사령 폐지 이후 자본계급과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은 본격화됐다. 1920년대부터 현재까지 다차원적인 구체적인 역사 현실 속에서 자본주의를 확대 발전시키려는 자본계급의 계급투쟁과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를 이루려는,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간에, 공산주의적 노동계급의 혁명적 계급투쟁이 주류적인 차원의 현실을 이루어 왔다.


『삐라의 추억』에서 김명환은 대표적인 혁명적 계급투쟁 사례로 일곱 가지를 제시했다. 첫 번째로 “여덟 개의 격문”에서는 1926년 6·10만세운동을 다뤘다. 이 운동은 1924년 4월 16일에 결성된 노농계급의 대중조직인 조선노농총동맹을 기반으로 하여 1925년 4월 17일과 18일에 각각 결성된 공산주의 조직인 조선공산당과 그 자매조직인 고려공산청년회에 의해 전개됐다. 이 과정에서 권오설 등이 쓴 여덟 개의 삐라 중에서 자본계급의 압수를 피한 두 개의 삐라만이 배포됐다. 조선공산당은 1928년 12월, 공산주의적 소부르주아 지식인 당 등의 이유로 코민테른의 조선지부 승인이 취소될 때까지 자본계급의 계급투쟁에 맞선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을 주도했다.


두 번째로 “낡은 여행가방”에서는 1930년에서 1933년까지 코민테른의 직접 지도에 따라 김단야 등에 의한 <콤뮤니스트>란 전국적 정치신문 발간과 배포를 통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등을 썼다. 세 번째로 “적기”에서는 1933년에서 1936년까지, 코민테른 직접 지도와는 달리, 토착적으로 공산주의적 노동계급운동을 했던 이재유그룹의 전국적 정치신문을 전망하는 <적기> 발간과 배포 등을 통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등을 다뤘다. 네 번째로 “사라진 삐라”에서는 1936년에서 1938년까지 역시 토착적으로 공산주의적 노동운동을 했던 원산그룹의 <노동자신문>의 발간과 배포를 통한 혁명적 노동조합의 전국적 결성을 전망하는 운동 등을 썼다. 다섯 번째로 “고물장수, 석양에 지다”에서는 1939년에서 1941년까지의 코민테른 계통과 토착적인 공산주의자들의 결합체인 경성콤그룹의 기관지 <공산주의자>, <콤뮤니스트>의 발간과 배포 등을 다뤘다.


김명환의 『삐라의 추억』에서 보듯이, 1920년대 이후, 자본계급이 자본주의를 지키고 서로 헤게모니를 장악하려고 벌인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이라는 계급투쟁에 맞서 공산주의적 노동계급은 죽음조차 불사하면서 치열한 계급투쟁을 벌였다. 특히 공산주의적 노동계급의 삐라 활동가들이 발간하고 배포하는 기관지 등의 “글자 하나하나가, 문장 하나하나가” 자본계급에 “맞서는 총칼”이었다. 이러한 무수한 총칼 등으로 공산주의적 노동계급이 자본계급을 물리치고 1945년 8월에 ‘해방’을 쟁취했다. 그것은 수십 년 동안의 공산주의적 노동계급의 혁명적 계급투쟁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역사였다. 그러나 공산주의적 노동계급은 그 승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다시 들어선 자본계급의 계급투쟁에 맞서 또 다른 승리를 위한 계급투쟁을 벌였다.


1950년대 초반의 ‘6·25전쟁’은 남북 자본계급의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계급투쟁이자 노동계급에 대한 계급투쟁인 또 하나의 원시적 자본축적이었다. 여섯 번째로 “붉은 별”에서는 이러한 전쟁에서 ‘결국에는’ 남북 자본계급에 맞섰던 공산주의적 노동계급을 대변했던 남도부 유격대의 기관지 <붉은 별> 등을 48년 전에 묻었던 땅 속에서 발굴한 에피소드를 다뤘다.


끝으로 “투사회보”에서는 1980년 5월 광주노동계급해방투쟁 과정에서 자본계급의 계급투쟁에 맞서 승리하도록 노동계급의 단결 투쟁을 고무했던 <투사회보>의 발간과 배포 등을 썼다. 특히 “저놈들은 지금, 총을 든 한 사람보다, 천 사람이 총을 들게 만드는, 한 장의 유인물을, 더 무서워한단 말이다.” 이러한 “가슴 깊숙한 곳에서 심장처럼 박동”하는 윤상원의 “운명과도 같은 그 한 마디”는 김명환의 『삐라의 추억』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자본계급과 공산주의적 노동계급이 계급투쟁 과정에서, 왜 자본계급이 그토록 삐라의 발간과 배포를 추적, 저지하고, 이에 맞서 왜 그토록 공산주의적 노동계급이 죽음을 무릅쓰고 삐라를 발간하고 배포하고 지키는지 그 이유를 말해 준다. 그래서 레닌도 공산주의적 노동계급에 의해 삐라가 한 장 나도는 것은 자본계급에 대한 사실상 “전쟁 선포”라고 말했던 것이다.


김명환이 『삐라의 추억』에서 말한, 선배들처럼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그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해마다” “공산당선언”을 읽으며 새해를 맞이했으며, “자본론 세미나”도 했다. 이런 그의 아름다운 세상을 축약해서 말한다면, “계급과 계급 대립이 있던 낡은 부르주아 사회 대신에,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이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 연합체” 또는 “공동의 생산수단으로 일하며 다양한 개인들의 노동력을 하나의 사회적 노동력으로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사회, 즉 ‘공산주의’ 사회일 것이다.


결코 아름다운 세상일 수 없는 오늘날, 노동계급이 처한 상태를 어떻게 규정하던 간에 그것은 자본계급과 공산주의적 노동계급 사이의 계급투쟁의 역사적 현실적 산물이다. 그리고 자본계급과 공산주의적 노동계급 간의 계급투쟁에서 후자가 승리하여 착취와 억압의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때에 우리의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는 고난과 희망으로 뒤엉킨 구체적인 역사 현실 속에서 끊임없는 혁명적 계급투쟁을 통해서만 미래의 그 곳으로 갈 수 있다. 김명환이 후배 삐라 활동가들에게 주는 선물, 『삐라의 추억』은 바로 그런 불가피한 목적을 지닌 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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