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호] 너무나 당연하게도, 선거는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ㅣ김상철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2-01-19 09:11
조회
290
 

너무나 당연하게도, 선거는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 『도둑이야!』와 공통장의 정치에 대해 -


김상철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 정책팀장)


정치혐오와 공통인-되기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있는 2022년이 시작되었다. 역대 최악의 선거라고 하지만, 역으로 놓고 보면 그나마 할 만한 선거가 있기는 했었나 싶을 정도로 정치에 대한 불신이 크다. 정치에 대한 불신은 정치가 특권층의 수단으로 전락할 때 커진다. 이를테면 코로나19의 위기는 평등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직접적이고 더 크게 영향을 받은 대상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정작 재정은 경제 살리기라는 명목으로 기업들에 집중된다. 안 그래도 상황이 괜찮은 이들의 신용카드 리펀드로 흘러가고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절반의 국민에게 기름 값과 세금을 깎아 준다.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누군가에겐 거실이 교실이 되고 있지만 새롭게 당선된 서울 시장은 강남 사교육을 재정으로 제공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의 쓸모보다는 정치의 괴롭힘을 걱정해야 하고 그나마 누가 정치 재해를 덜 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시민들은 괴롭다. 그럼에도 우리는 선거에 참여해야 하고 투표를 해야 한다는 압력에 놓인다. 이것을 시민이 쟁취한 1987년 체제가 다시 시민들을 옭아매는 덫이라고 한다면 좀 심한 표현일까.

2021년 한국어판 출간에 이어 진행된 『도둑이야!』(서창현 옮김, 갈무리)의 저자 피터 라인보우의 강연회에서는 정치에 대한 쟁점이 있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국가 혹은 정부를 정점으로 하는 정치가 과연 공통장의 운동에 쓸모가 있는가, 라는 질문이었다고 해야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단정적으로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가는 공통장의 생성과 운영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방해하고 파괴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가능한가? 그것은 현장에서 대안을 찾는 사람들이 답을 해야 하는 과제다. 『도둑이야!』라는 책은 다양한 현장의 맥락에서 때로는 요청에 따라, 때로는 역사학자로서의 개입을 위해, 그리고 지역 주민으로서 참여를 위해 작성된 글들로 이루어졌다. 독자인 우리는 그의 공통인으로서의 방법론을 차용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생성되고 또 사라지는 공통장의 역사를 축적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과정에 주체로서 개입하고 참여해야 한다. 정치 혐오는 곧 탈-정치주체화의 현상이자 결과일 수 있다. 즉 관람객으로서 공연에 실망을 하거나 팬덤으로서 아이돌을 지지하는 행위는 대의나 대표를 넘어서, 자신을 정치인에 수동적인 주체로 투사하는 것에 가깝다.

처음 『도둑이야!』를 읽었을 때는 완전히 낯선 서구의 미시적인 역사에 압도되었다. 사건은 흥미로웠으나 그런 사실들의 나열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익숙한 『자본론』에서의 쿠겔만 장을 다룬 2부 ‘찰스 맑스’의 5장과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을 상세히 다룬 3부 ‘영국’의 6장 그리고 토머스 페인을 키워드로 인클로저 과정으로서 미국의 건국을 다룬 4부 ‘미국’의 11장이 좋았다. 어디까지나 공통장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로서의 관점이었고 ‘지식으로서 의미가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연말에 다시 책을 보면서 기존에 서론 격으로 치부한 1부 공통장의 3개 장과 청년 맑스가 『라인 신문』에 기고한 ‘제6차 라인주의회 의사록’에 대한 논평의 주제인 도벌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2부 4장, 그리고 “모두를 위한 공통장을 지지하는 당신들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태의 5부 15장에 더 눈길이 갔다. 이들의 장은 각각 미국의 SDS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작성되거나(1장) 저자 자신이 살던 앤아버 지역의 부지 중 상당수에 주차장을 짓는 것에 대항하기 위해서(2장) 거리 점거 운동이 폭발했던 마드리드에서 행해진 강연을 위해 작성된 것(3장)으로 모두 2010년에서 2013년 사이에 쓰였다. 맑스가 1842년에 작성한 논설은 그동안 처벌되지 않았던 벌목을 범죄로 삼고자 하는 도벌법 제정 과정에 대한 입장을 보여주며 피터 라인보우는 그와 같은 범죄화가 인클로저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오웰, 워즈워스, 제임스의 맹점

하지만 가장 눈에 오래 머문 글은 조지 오월과 윌리엄 워즈워스와 아이티 혁명을 근대혁명의 하나로 자리매김한 『블랙 자코뱅』을 쓴 미국의 트로츠키 계열의 공산주의 운동가 C.L.R. 제임스를 다룬 15장 「공통장의 비가시성」이다. 이 장은 『도둑이야!』의 전체 구성에서 가장 마지막 장을 이루지만 가장 마지막에 작성된 글은 아니기 때문에 저자가 이 책에서 제시하고 싶은 주장의 결론에 해당된다. 이 글은 거대한 장작을 들고 가는 노파의 모습을 동정적으로 그린 조지 오웰과 ‘가난에 찌든 소녀’의 모습에서 “우리가 싸우는 이유”를 호소하는 워즈워스 그리고 제3세계 해방운동을 열정적으로 지지했던 제임스를 ‘공통장의 비가시성’의 사례로 언급한다. 그러니까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편지 글 형태의 글은 실비아 페데리치 등 동료들을 수신자로 하여 작성되었는데 엄밀하게 보면 뭔가를 설명하거나 일상적인 안부를 묻는 글이라기보다는 공개적인 질문을 담은 글로서 ‘뭔가를 채근하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장작을 짊어지고 가는 노파에 눈길이 머문 조지 오웰의 동정심은 왜 그 노파가 들고 가는 장작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부분으로 이어지지 않는가? ‘가난에 찌든 소녀’를 동정하는 워즈워스는 그가 지지하는 반-군주제 공화주의 운동이 오히려 가난에 찌든 소녀가 의존했던 공통자원들을 빼앗고 있는 사실에 대해 왜 무지한가? 제3세계의 해방에 대해, 20세기 초반 미국으로 유입된 제3세계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분노한 제임스는 왜 당대에 벌어진 인디언들의 투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가?

바로 이 맹점이 앞서 다룬 ‘강연회’에서 피터 라인보우가 말한, ‘국가를 신뢰하지 않는다’라는 어떤 정치의 기각과 연결되어 있다. 조지 오웰의 노파에 대한 동정심이나 워즈워스의 가난에 찌든 소녀에 대한 동정심은 국가가 빈곤을 해결하는 복지국가에 대한 관심이거나 좀 더 온정적인 공화주의적 정부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도를 통해서 만들어지거나 법률을 통해서 가능하도록 된 다음의 일이다. 그러니까, 노파든 가난에 찌든 소녀든 자신의 빈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 자신의 주변에 있는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에 주목하기보다는 그것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을 직접 ‘쥐여 주는 쪽’을 택한다. 비슷하게 제임스의 해방운동은 당대의 정당성을 상실하거나 관심이 덜한 인디언 운동과는 상관이 없다. 오히려 전세계적으로 끓어오르고 있는 대문자 해방운동의 성패에 따라, 그리고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하나의 운동을 통해서 다른 여러 운동들이 해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만들어진다. 제임스가 거주했던 “목장의 위치가 인디언 보호구역에 있었다는 것을 그가 인정한 것과 별개로, 제임스가 토지분쟁은 말할 것도 없고 주민들과 관계를 형성했다는 증거는 털끝만큼도 없다”(334쪽)라는 증언을 통해서 피터 라인보우가 하고 싶은 말은 분명하다.

“공통장은 정부의 외부에 위치”하고 “일반적으로 법률이 아닌 관습이 공통장을 보호하고 규정”하며, “공통장은 종종 구매와 판매의 영역에 속하지 않으며, 상품 영역이라고도 할 수 없다”(이상 32쪽)면 제도를 통해서, 정부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오웰과 워즈워스와 제임스의 눈에는 공통장을 통한 문제해결은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왜냐하면 근대국가는, 그리고 그곳에서 작동하는 근대의 정치와 운동은 ‘개인’을 그가 속한 구체적인 공통장과 분리하기 때문이다. 이를 단적으로 알아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피터 라인보우가 말한 “공통장은 투옥과 사유화의 두 가지 방식으로 파괴된다”(12쪽)는 말을 활용하는 것이다.

정부 바깥의 공통장

범죄화와 프롤레타리아를 강조하는 맑스의 초기 기사를 언급하는 4장 ‘칼 맑스, 목재 절도 그리고 프롤레타리아’를 보자. 저자가 지적했듯이 해당 시기는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 시기도 아니었고 관련한 소유 관련 법률이 강화되던 시기는 아니었다. 이미 그 이전에 그런 제도적 이행은 완료되었다. 다만 그것이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울창한 삼림 속에서 땔나무를 수레에 실을 수 있었던 시절’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행은 제도가 아니라 감각의 폐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감각의 폐기는 그 행위를 ‘범죄화’하는 것과 동시에 구체적인 ‘처벌’을 통해서 실행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즉 제도의 여부와 상관없이 감각적으로 실체화되는 경험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일례로 2020년 5월에 공식적으로 5년간의 점유를 끝낸 경의선 공유지의 사례를 보자. 정부는 공유지의 점유자들에게 30억 원이 넘는 구체적인 피해를 청구했다. 그리고 그 점유가 현행 법률에 의해 명확한 범죄라는 점을 법원에 고발했다. 실제로 그 공간을 점유함으로 어떤 경제적 이익을 보았고 그것이 누구의 이익을 침해한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서, 시가 수십억 원의 정부 소유의 땅을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고 지목되자마자 ‘퇴거’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문제는 그래서 점유자들이 퇴거한 경의선공유지 부지는 2022년 현재까지 펜스로 가려진 채 방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 비싼 수십억 원의 정부 소유 땅이 방치되어 있기 때문에 ‘손해를 본다’고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땅을 아무런 대가 없이 사용하는 것만으로 정부는 ‘손해’를 본다. 어떻게 방치되어 있는 땅을 이용하는 순간 손해가 발생하게 되는가. 이것은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토지가 사실상 사유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유지가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땅과 같이 소유자는 땅을 방치할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정작 국가를 형성하는 국민 개개인은 국유지에 대해 타인으로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그 비싸다는 땅을 방치하고 있는 한국철도공단에 대해서는 어떤 비난도 발생하지 않는 이 역설이 바로 ‘공통장의 맹점’에 해당한다.

이뿐이 아니라, 최근 등장한 ‘용산정비창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보자. 정부는 용산정비창에 임대주택을 짓는데, 그에 필요한 돈을 정비창 부지를 민간사업자에게 매각하여 마련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충분한가 그렇지 않은가의 논란이 뜨거웠지만 정작 그렇게 되면 사실은 정부 소유의 땅이 개인 소유의 땅이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토론이 되지 않았다. 왜 정부의 땅은 그것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살 수 있는 사람에게 분할되어야 하나. 하지만 ‘임대주택을 짓는데 국유지를 매각하여 비용을 마련한다’라는 논리는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렇지 않으면 어떤 돈으로 임대주택을 짓나’라는 질문이 나오는 지경이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 소유권의 만들어진 신화인 ‘공유지의 비극’은 양 떼를 돌보는 목동의 문제가 아니라 공유지를 가로지르는 제도와 권력 때문에 발생한다는 분석은 정확하다.

 

“하딘은 세 번이나 ‘합리적인’ 목동을 언급한다. 그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모름지기 그가 의미하는 것은 아마 이기적인 목동이거나 외로운 목동일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를 살펴보면 공유지는 언제나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통인이 선출한 울타리 관리인, 공유 가축 관리인, 또는 그 밖의 관리인들은 그 암소를 압수하거나, 또는 자신의 몫 이상을 공유지에 집어 넣는 저 탐욕스러운 목동에게 벌금을 물릴 것이다.” (196~197)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그 해결책이 현재의 국가 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대 정치는 이를 ‘불가능의 영역’이라고 부르지만, 『도둑이야!』라는 책에서 저자는 ‘맹점’이라고 부른다. 맹점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시선의 초점을 다시 잡는 것이다. 공통장을 만드는 과정으로서 공통화가 동사라는 것은, 공통장 자체가 운동의 산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이라는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공통화 활동은 다른 자원들과 결합한 노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공통화는 “노동”과 “자연 자원”에 분할 선을 긋지 않는다. 오히려 공통화는 어떤 것을 하나의 자원으로 창조해 내는 노동이며, 노동 집단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것은 바로 이 자원에 의해서다. 하나의 행위인 이 공통화는 “공유재”가 아닌 하나의 동사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24쪽)

 

공적인 것으로 전락하지 않는 공통적인 것

서두에 소개한 저자와의 강연회에서 ‘당신의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례들은 전부 다 실패한 역사들이다, 그런 역사를 다시 꺼내 놓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다소 무례한 질문을 했다. 아마도 의식적인 낙관이, 그리고 모호한 가능성이라도 그런 희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겠다. 그에 대해 저자는 “역사학을 부정하는 이야기”라며 가볍게 답을 시작했다. 하지만 강조했던 것은 ‘그러한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넘어 ‘평범한 이들이 공통장을 지키기 위해 나섰던 수많은 투쟁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이어 가면 2022년 지금도 계속되는 공통장을 위한 투쟁들을 떠올리고 또 찾아보게 되지 않겠냐는 것이 저자가 『도둑이야!』에서 소개하는 사례들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겠다.

이를테면 마을의 오래된 마을 회관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주차장이 들어선다. 이런 일이 낯선가? 그렇지 않다. 이미 우리 주변에도 골목길에 선이 그어지고 주차장으로 변하는 일이나, 촘촘한 골목길이 거대한 아파트 단지 안으로 흡수되는 것은 흔하디흔한 일이다. 그래서 첫 번째는 장소를 발견하는 것이다.

 

“마을 회관은 사라지고 마을 광장은 주차장이 되었다. 따라서 공통화의 첫걸음은 현장, 장소를 발견하는 것이다. 만일 그러한 장소를 손에 넣을 수 없다면, 창출해야 한다. 미래의 부상하는 지리학은 우리가 공장과 사무실에서 장소들을 적극적으로 공통화하기를 요구하고 있다.”(30쪽)

 

저자는 인클로저의 도구 혹은 결과로서 도시를 다루면서(제3장) 끊임없이 원시적인 공통장이 존재하는 농촌공동체와 이동의 자유를 인클로저의 수단으로 사용한 도시화의 경향을 비교한다. 또한 초기 공산주의자들이 어떻게 범죄자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은 감옥을 매개로 어떻게 공통장을 위한 운동을 계속해 나갔는지를 촘촘하게 써내려간다. 그러면 대안은 다시 농촌으로, 소규모 공동체로 돌아가는 것일까? 그렇진 않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공통장을 만드는 것이다.

 

“법, 힘 그리고 상품이라는 의미에서의 도시가 시골의 공통장을 폐지하고 ‘부르주아’ 국가들이 ‘야만적인’ 국가들을 파괴했기 때문에 전 세계의 공통인들은 다시 숲으로 물러나거나 언덕으로 달려갈 수 없다.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과제가 되겠지만, 도시 자체를 공통화해야 한다.”(61쪽)

 

피터 라인보우는 공통적인 것과 공적인 것은 다른 것이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제도와 법률의 힘은 대개 공적인 것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공적인 것은 모두에게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강제력을 의미한다. 하지만 ‘일반성’과 ‘보편성’을 강제한다고 시민들 간의 공통성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더 극단적인 양극화를 불러일으키게 되고 정치를 힘겨루기로 만든다. 잘 생각해보면 지금 선거제도는 유권자인 시민이 후보자를 선택하기보다는 독점적인 정치자원을 지닌 정당과 후보자가 시민을 선택하는 것이지 않나? 그래서 우리는 복잡한 문제를 시간을 들여 복잡하게 해결하기보다는 단순하고 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상품화하고 이를 정당과 후보자들의 눈에 띄게 하기 위해 각종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있지 않은가? 공적인 것으로 대체되지 않는 공통적인 것은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지 않는다. 정확하게 우리 공통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힘을 통해서 생성되고 갈등하고 소멸하거나 전환한다. 대선이 코 앞이다. 우리의 미래를 그들의 선택으로 넘겨 두고 인정을 요구하지 말자. 그들이 우리를 선택하도록 두고 우리는 그들의 선택과 상관없이 우리의 커먼즈를 만들고 만들고 만들자. 그것이 정치 혐오를 만드는 수동태 정치를 벗어나는 방법이지 않겠나. 그러기 위해서 『도둑이야!』에서 제시하는 공통장 생성의 경험들을 차분히 들여다보면 좋겠다. 2022년, 지금의 정치는 그들에게만 맡겨두기엔 너무나 중차대하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와 지방자치 선거 바깥으로 밀려나 있는 영토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공통장의 장으로 옮겨가야 한다. 어쩌면 『도둑이야!』에서 나오는 실패의 역사들이 ‘한번 해 봐’ 라며 가볍게 등을 떠밀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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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2년 1월 19일 <문화연대> 웹진 <문화빵> 2022년 제2호( https://stib.ee/7yd4 )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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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노예선 : 인간의 역사』(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갈무리, 2018)


노예선은 아프리카 해안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을 싣고 대서양을 가로질러 그들을 신세계로 데려갔다. 노예무역과 미국 농장체제에 관해서는 많은 것이 알려졌지만, 이를 가능하게 한 노예선에 관해서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뛰어난 수상 경력의 역사학자인 마커스 레디커는 『노예선』에서 해양기록에 관한 30년간의 연구를 정리하여 이 전례 없는 함선에 관한 역사를 만들어 냈으며 함선의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격동하는 인간의 드라마를 그려냈다. 그는 상어를 꼬리처럼 끌고 다니는 떠다니는 지하 감옥에 타고 있는 선장, 선원, 노예의 삶과 죽음 그리고 공포를 냉혹하게 재구성했다.


캘리번과 마녀』(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김민철 옮김, 갈무리, 2011)


자본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남성이 임금 노동자로 탈바꿈된 것 만큼 여성이 가사노동자이자 노동력 재생산기계로 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페미니즘 역사서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닦았던 이 폭력적인 시초축적 과정에서 마녀사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었음을 밝힌다. 이 책에서는 공식적인 역사서나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쓰인 역사책에서도 다뤄지지 않는 산파 여성들·점쟁이 여성들·식민지의 원주민 여성 노예들·여성 마술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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