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호] 결코 안녕하지 않은 세계에 보내는 공생의 편지ㅣ안진국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2-01-22 15:31
조회
95
 

결코 안녕하지 않은 세계에 보내는 공생의 편지


안진국 (미술비평가)


세상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선과 악, 밝음과 어둠, 정신과 신체, 직선과 곡선, 남과 여, 강자와 약자…. 세상은 이렇게 단순하게 나뉘어 있지 않다. 이런 이분법은 게으른 자의 자기변호일 뿐이다. 상황에 따라 선은 악이 되고, 낮도 밤도 아닌 새벽이 존재하고, 신체와 정신은 하나로 묶여 있고, 젠더는 복잡하며, 온전한 강자도 약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 세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구분 짓기에 힘쓰기보다는 교차 지점을 유심히 봐야 한다. 어쩌면 그곳에 세상의 실체가 숨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광석의 『피지털 커먼즈』는 세상이 단순하지 않음을, 다층적으로 분화된 전선들이 서로 뒤섞여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질적인 것들의 교차 지점을 살피면서 세상의 실체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은폐된 욕망이 무엇인지 밝힌다. 더불어 욕망의 협곡을 건너갈 공생의 다리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저자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피지털’과 ‘커먼즈’, 그리고 ‘피지털 커먼즈’

어쩌면 당연한 말이지만, 이 책의 제목인 ‘피지털 커먼즈’는 책의 내용을 압축하고 있다. ‘피지털’(phygital)은 ‘피지컬’(물질)과 ‘디지털’(비물질)의 혼합 현실을 의미하며, ‘커먼즈’(공통장, the commons)는 ‘사유’(私有)와 ‘공유’(公有)를 넘어서,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우리 스스로 짜는 대안 기획이자 실천 방식으로서의 ‘공유’(共有)를 뜻한다. 저자는 이 두 단어를 통해 오늘의 세계와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피지털’이란 개념으로 이 책에서 저격하는 대상은 자본주의 욕망이다. 저자는 디지털이 사회적 물질 자본의 ‘인클로저’ 욕망과 어떻게 연계되고 영향을 미치는지 그 양태를 드러낸다. 디지털과 디지털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없음을, 그 둘이 서로 들러붙어 하나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디지털을 기반으로 하는 기술 ‘가속주의’는 신체와 사물 등의 물리적 대상을 디지털의 비물질적인 요소와 더욱 잘 연동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현재도 이미 세계는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나눌 수 없을 정도로 엉켜 있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체의 세계와 만질 수 없는 데이터의 세계가 뒤섞인 현실은 살풍경이다. 디지털 네트워크는 자본주의 체제의 인클로저 욕망을 촉진하는 기폭제이자 유지할 수 있는 연료로 작용하고 있다.

저자는 ‘물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비물질적인 것, 즉 디지털 네트워크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작동의 뒤편에 자본주의 욕망이 들끓고 있음을 드러낸다. 더 쉽고 간편하게 노동자를 착취하고 이전보다 단시간에 자본가의 부를 불리는 시스템이 피지털계를 구성하고 있는 현 상태의 민낯을 보여준다. 이 시스템에서 노동자가 ‘티끌 모아 티끌’일 뿐임을 경험할 때, 플랫폼자본가는 ‘티끌 모아 태산’의 부를 축적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자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커먼즈’다. 커먼즈는 한마디로 공동 소유권에 기초한 ‘반인클로저’의 실천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피지털계를 점령하고 있는 플랫폼자본주의에 대항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끌려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대안 실천의 무기력을 깨기 위한 방법으로 커먼즈”를 강조한다. 플랫폼자본주의(피지털 자본주의)를 전복하기 위해서 “유·무형 자원을 시민 스스로 자율 관리하고 공동 생산하며 상생의 규칙을 만들어가려는 호혜의 공동체 흐름”을 만드는 ‘피지털 커먼즈’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저자의 논의는 단순히 인간 사회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지구 행성적 차원에서 자본의 인클로저 욕망이 가져온 폐해를 지적하며, 지구 생태적 차원의 피지털 커먼즈까지 논의를 확장한다. 저자는 피지털 커먼즈를 통해 궁극에 지구 행성적 차원에서 공생의 생태정치적 실현이 가능하리라 여긴다.

초기술복제시대의 저작권과 복제문화

『피지털 커먼즈』는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정세, 대안, 문화, 생태를 주제로 한 네 부로 구성되어 있다. ‘정세’가 주제인 1부는 피지컬화되는 신생 기술을 살피는 과정에서 자본주의 기술 조건의 현실을 드러낸다. 여기서 플랫폼 테크 기업을 ‘양봉업자’로 비유한 것과 ‘데이터 계급’, ‘사회화된 공장’ 체제, ‘단말기형 인간’, ‘데이터 소외’ 등으로 현재의 기술예속사회 구조와 자본주의의 작동방식을 설명하는 부분이 무척 인상적이다.

‘대안’이 주제인 2부는 오늘의 현실에 대안으로써 ‘커먼즈’의 역할을 강조한다. 커먼즈의 의미와 층위, 비물질 커먼즈의 가치 등 저자가 지금까지 주의 깊게 관찰하고 연구했던 커먼즈의 여러 측면이 여기에 녹아 있다. 저자는 공유(sharing)와 커먼즈의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내며, 현재 플랫폼자본주의에서 사용하는 ‘공유’는 용어 자체를 쓰기가 민망할 수준이며, 차라리 ‘중개’라는 단어가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3부는 ‘문화’에 주목하여 인류 창의력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문화 커먼즈’를 논의의 중심에 둔다. 저자는 “문화 커먼즈의 핵심에는 자본주의 인클로저에 문제 제기하는 공유 문화와 커머닝(commoning)의 실천, 즉 ‘카피레프트’(copyleft) 정신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인류의 창작 활동을 크게 신장해 온 디지털 복제문화의 갈래와 층위, 차이점 등을 자세히 살핀다. 더불어 예술 행동주의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아방가르드 운동의 역사를 고찰하고, 그 영향이 현재에까지 이어지는 상황을 통해 지식 재산권 체제에 대항하는 문화 커먼즈의 형상을 조형한다.

‘생태’를 주제로 한 4부에서는 지구 행성적 위기를 불러온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이 위기의 상징 단어처럼 사용되는 ‘인류세’가 지닌 함정까지 다양한 시각으로 현재의 생태정치를 분석한다. 그리고 신기술을 생태 대안 기획으로 다루는 현재의 과학만능주의와 경제성장 우선주의에 심각한 우려를 표현한다.

간략하게나마 『피지털 커먼즈』의 전체 내용을 살폈다. 이 중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저작권과 복제에 관한 내용이었다. 저자는 2부 ‘피지털 커먼즈의 조건’에서 비물질계 커먼즈를 논의하면서 정보와 의식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지식) 재산권이라는 강압적인 방식으로 법과 제도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약탈적 시장주의의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저작권(copyright)을 벗어난 ‘카피레프트’적 관점에 서서 다양한 대안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대 디지털 권력의 질서 속에서는 이러한 저항조차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자는 공동체 성원이 감사와 답례를 동반한 사회적 ‘증여’(gift) 효과가 비물질 커먼즈를 구축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저작권과 복제문화는 트러블이 잦은데, 3부 ‘문화 커먼즈의 창작 유산’에는 이에 관한 내용이 집중적으로 담겨 있다. 여기서 저자는 복제문화의 발생과 전개, 다양한 복제형식의 소개 및 분류 등을 중심 내용으로 다루면서 자본주의 인클로저 수익 모델인 저작권이 복제문화를 강제하는 구조적 방식에 관해 분석한다. “인간 지식과 창작 대부분은 인류 공통의 상호 영감의 소산이자 유산”이고, “복제와 모방(mimesis) 행위는 인류가 지닌 보편의 문화 이식과 확산 기제”인데, “자본주의 인클로저 질서는, 모사를 행하는 이용자 주체의 창제작 행위를 법과 코드 모두를 동원해 제한하고 통제하여 이를 상업적 시장으로 끌고 와 문화산업 수익으로 만들어왔다.” 오늘날 저작권 위반 기소는 일상이 됐다.

복제와 관련된 내용 중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대목은 다음의 두 가지다. 먼저, “산업자본주의 시절 이래 생산과 비즈니스의 기본 원리는 복제를 기본으로 한 대량생산 시스템이었다”는 점, 즉 산업자본주의의 주요한 기초 중 하나가 복제였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대상 세계의 모사가 두 세계로부터 이뤄지는데, “하나는 현실세계로부터의 ‘직접 복제’, 다른 하나는 현실로부터 이미 복제된 판본에서 또 한 번 이뤄지는 ‘간접 복제’”라고 한 부분이다. 이에 따르면 사진작가가 풍경을 촬영하는 건 직접 복제일 것이고, 촬영한 풍경 사진을 재촬영하거나 다른 매체로 복사하는 건 간접 복제가 될 것이다. 여기서 직접 복제는 저작자를 특정할 수 없어 저작권에 문제가 되지 않지만, 간접 복제는 저작권 침해로 법적인 제재를 받게 된다.

이 두 대목이 흥미로웠던 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상황에 따라 복제가 시스템의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법적인 제재를 통해 수익 모델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자세히 따지고 들어가면 이 복제행위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겠으나, 복제라는 보편적인 행위의 층위에서 보면 자본주의 체제가 복제를 적극 활용하거나 정반대로 적극 제재하면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는 점이 무척 이상하고 인상적이었다.

복제가 더욱더 쉬워진 초기술복제시대에 “창제작을 위해서 현대인은 기존의 상업적 이미지와 데이터를 사용할 필요가 더욱 커져 가지만, 이들 정보와 지식은 이미 재산권 형태로 상품화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자는 창작 활동 영역의 커먼즈를 ‘로고스’(logos)의 합리적 사고와 구별되는, 정념의 영역을 의미하는 ‘파토스’(pathos)의 커먼즈라고 명명하고, 이 커먼즈가 지닌 독특한 위상과 특징을 분석한다. 그는 예술의 반인클로저 전통으로 원본 혹은 그것이 지닌 아우라를 거부하고 무위화하고자 했던 아방가르드 예술을 상세히 살피면서, 문화예술 영역에서 자본주의 인클로저 욕망을 대항할 파토스 커먼즈의 역사를 정립하고 그 중요성을 부각한다. 특히 1918년에 탄생해 1923년 쇠퇴한 베를린 다다의 특징을 살피면서 포토몽타주의 사회 미학적 함의를 드러내고, 그 흐름을 현재 패러디 미학으로 연결하여 패러디 미학이 지닌 의미를 자세히 분석한다. 이를 통해 파토스 커먼즈적 자원으로 복제문화를 사유화하는 플랫폼 데이터 질서에 맞설 방안을 모색한다.

『피지털 커먼즈』는 기술 가속주의 시대의 자본주의 인클로저 욕망을 논의의 중심에 두고 정보, 지식, 문화, 예술, 생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착취 구조를 분석한다. 더불어 그것에 대항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커먼즈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지금 우리는 자본주의 바깥을 상상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시기에 저자의 진단과 발언은 갇힌 생각의 틀을 넘어서 자본주의 바깥을 상상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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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2년 1월 21일 <참세상>( https://bit.ly/3IssFr7 )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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