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평론 37호] 유체도시 2012에 관하여 ㅣ 이와사부로 코소

시론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2-21 11:19
조회
779
※다음의 글은, 치마타/거리의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전 지구적 도시혁신운동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제시한 책들인 『뉴욕열전』과 『유체도시를 구축하라』의 저자, 이와사부로 코소(Sabu Kohso)가 2012년 8월 16일에 발표한 글이다. 이 글은 '도시, 몸, 그리고 예술'이라는 주제의 제2회 <리트머스 아트포럼>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사부 코소에 의해 대학로 <예술의 집>에서 발표되었다. 글의 게재를 허락해준 예술집단 <리트머스>와 백용승 대표께 감사드린다. 원문(Notes on the Fluid City). [편집부]


유체도시 2012에 관하여


이와사부로 코소(Sabu kohso)


내가 2007년 <유체도시를 구축하라>>를 저술한 후, 도시를 둘러싼 환경과 도시화는 급격하게 강화되었다. 도시는 ‘장소’를 의미하는 한편, 도시화는 전기구적으로 팽창하는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이 두 가지는 하나로 우리의 욕망과 희망과 절망이 섞여 있는 소위 말하는 대도시(metropolis), 혹은 세계 도시(global city)를 구성한다. 도시화는 전 지구를 걸쳐 그 어느 때보다 더 깊고 널리 스며들었고, 인간이 만든 것과 자연적인 것 간의 전통적인 구분을 구닥다리로 만들었다. 절대적 상호연결성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반면에 도시에서의 삶은 모든 면 –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측면 - 에서 전례가 없는 궁핍화를 내재한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폭동의 주요 원인 중의 하나이다. 평범한 거주자들을 더욱 더 비참하게 만드는 도시개발의 공세는 바로 그 일단의 이익 – 끝간 데 없이 팽창하는 자본 – 에 의해 기계적으로 조종당하는 자동 작용적 특성으로 인해 자기 스스로는 멈출 수 없는 반면, 이러한 공세에 대한 다중의 실존적 거부는 편재하며, 더욱 강해지고 있다. 이 거부는 더 이상 지구의 남반구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 지구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는 극단적인 황폐와 우리가 지금껏 소중히 간직해온 진심 어린 혁명적 전환에 대한 희망이 공존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는 이 긴장을 최대한 안고 가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대한 임무이다.


거대화한 금융화라는 배경과 금융의 체계적 붕괴를 겪으면서 부채는 경제적 활동의 주요한 동인으로 작용해왔다. 유산계급과 지배계급이 신용대출을 통해 가차없이 자신들의 금융 지배를 강화하는 동안 무산계급과 피지배계급은 적자로 인해 계속적으로 자신들의 일자리와 집과 사회적 지위를 잃어갔다 – 그들이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그들은 더욱 더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 계급에게 있어서 교육, 재생산, 소비와 사회화의 측면에서의 생산력은 빈곤과 같은 의미일 뿐이다.


도대체 누가 이러한 구조적 부당함과 예속화를 견디어 낼 수 있겠는가? 이에, 정치적, 사회적 제도의 균열들이 더욱 넓어졌고, 마침내 또 다른 개선안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예를 들면, 뉴욕시의 경관을 구성하는 많은 새로 지은 멋진 빌딩들이 다양한 재정상의 결핍을 이유로 하여 텅 비어있다. 투자와 개발의 과도한 공세의 결과물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임대료와 부동산 가격은 하락하지 않고 있고, 비우량 주택담보 대출(subprime mortgage)의 무분별한 확대로 인해 점점 더 많은 다중이 자신의 집을 차압 당하여, 인간의 기본권 중의 하나인 거주권의 완전한 박탈을 우리의 두 눈으로 직접 목도하는 지경에 왔다. 과도한 개발과 거주 공간의 부재 간의 이와 같은 불균형은 뉴욕의 주요 특징이 되어 버렸다. 이것이 바로 점령운동이 금융 자본주의의 중심에 공동 구역을 열게 된 근원이다.


도시화는 거대 빈민지구(mega slum)를 더욱 확장시키는 한편, 반(半) 도시라 부를 수 있는 교외지역 혹은 자연 환경의 상품화를 강화하는 등 다양한 면을 갖고 있다. 이것이 바로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가 기술적, 재정적 사회적 측면까지를 포함하여 “거대 기계(mega machine)”라고 개념화한 것이다. 고대 전제군주의 피라미드에서부터 군사력과 핵에너지를 바탕으로 한 오늘 날의 세계 질서까지, 이것은 인간을 그 자신의 부품으로 사용하면서 사회적 공간 전체와 모든 민중들을 삼켜버리는 기괴한 개발을 위한 도구나 기계를 의미한다. 그것은 공유지(commons)에 대한 극한의 착취, 다시 말해서 우리의 생활 세계 – 결국 환경이나 지구를 의미하는 것이다 – 의 재생산을 위해 공유되어야 할 모든 자원과 기반에 대한 극한의 착취이다. 따라서 광의의 도시화는 생태계의 식민화를 수반한다. 그 가장 위험한 예시 중의 하나가 생명체의 유전 코드를 조작하고, 여기에 저작권을 적용하는 것이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같은 자유무역협정(FTA)과의 제휴 속에서 도시화는 전통적인 농업 활동뿐만 아니라 문화와 자연 간의 역사적 관계 전부를 종식시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다. 산업 사회에서 늘 발생했던 상황의 연속 속에서, 상품화의 부정적 부산물들, 혹은 나쁜 공유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명백하게 사회화된다. 잘 보호받는 자신들의 성 안에서 살고 있는 자들 (가령 1%의 상류층들)은 공유지 상품화의 혜택을 최대한 누리겠지만, 거리 주변을 살고 있는 자들(가령 99%의 다중들)은 피치 못하게 나쁜 공유지를 사용하도록 강요 받는다.


어쨌거나, 이제 폐기물, 과다 그리고, 공해가 지구의 곳곳에 침투해있다. 한 쪽에서는 지구 온난화의 문제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야기된 핵 재난은 불행히도 나쁜 공유지가 이제 지구 상에서 좋은 공유지를 압도하고 있다는 징후일 지도 모른다.


그 책의 기저에 있는 주요 전제 중의 하나는 바로 다중의 투쟁이 도시와 도시화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로 거기가 주요 격전지이며, 이 전투는 결단코 공유지를 되찾고자 시작되었다. 즉, 이 전투는 일방적으로 공유지를 빼앗고, 상품화하고 부정적 부산물의 처리 책임을 다시 무분별하게 공공의 장으로 강제한 힘과 공유지를 완전히 고갈시키고 파괴하지 않으면서 공존할 방법을 찾는 힘 간의 충돌이다. 전자에게 있어서 공유지는 착취하고 소비할 자원일 뿐인 반면에, 후자에게 있어서 공유지는 생존을 위한 것이고 보다 중요하게는 생존 이상의 무엇이다. 왜냐하면 바로 여기에서 생명계 전체, 모든 지구적 과정의 재생산이 위기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앞으로 다가올 다중의 지구적 투쟁에서 매우 중요하다.


유체도시 개념은 바로 이 지점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유체도시는 우선 도시와 도시화 안에서의 일시성와 관계한다. 유동적이라 함은 영속성에 반하는 그것의 덧없음을 뜻한다. 둘째로, 유체도시 개념은 공간성과 관계한다. 유동적이라 함은 바로 영원히 고착된 정형성에 반하여 그것이 비고정적이고, 이동성이 강하고 상호 교차함을 의미한다. 유체도시는 앞서 언급한 거대 기계(mega machine)을 현실화하는 힘이지만, 그것이 완성된 후에는 사라진다. 그것은 본체의 동적인 힘의 형상이며, 유한자에게 본래적인 바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역설, 즉 노동력과 자본 간의 관계, 생산계급이 자신의 생산물로부터 소외되는 상황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그 역설이 존재한다. 피라미드를 건축하고, 그 건축에 강제로 동원되는 기획에 사회적, 경제적으로 얽혀 든 노예들을 예로 들었듯이, 유체도시는 거대 기계를 건설하는 실제적 힘이지만, 그 결과물에서 제외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의 모든 부정적 부산물들이기도 하다. 유체도시의 정수는 바로, 인간의 육체, 육체성의 집단, 그리고 그들의 공동체들, 특히 노동계급과 이주 계급의 공동체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반어적인 것은 유체 도시가 그것이 만들어낸 ‘마천루들’에 반하는 도시의 실제적인 근간이라는 점이다. 고대 인도의 시를 인용하면, “서있는 것들은 무너질지나 움직이는 것들은 영속하리라.” (빅터 터너, 드라마, 광장 그리고 상징 코넬대학 출판부, 1974, p281: Victor Turner, Dramas, Fields, and Metaphors, Cornell University Press, 1974, p 281)


이런 점에서 유체도시는 지배 권력에 대항하는 다중의 모든 투쟁들의 모체이다. 그것은 도시화의 자본주의적 동력 안에 내재되어 있으나, 거기에는 또한 외부,즉 공유지의 궁극적 한계인 환경 혹은 지구와의 연결 통로가 존재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이 거대 기계를 건설하도록 내몰린 부채를 안고 있는 노동력으로 식민화되었기 때문에, 또한 공유지와 함께 식민화된 것이 다름 아닌 도시의 이 요소이기 때문에, 그 상처는 환경과 지구적 과정에 재앙과 사건으로서의 반란이라는 형태로 벌어져 있다.


오늘날, 공유지를 되찾기 위한 투쟁에서 유체도시에 도전하는 새로운 적들이 등장한다. 하나는 파괴와 건설이 공시적으로 발생하는 전무후무한 속도로 진행되는 도시개발이며, 다른 하나는 환경 오염, 혹은 나쁜 공유지의 거대화와 심각성이다. 도시화의 기동성과 속도는 심각하게 살펴봐야 하고 지리적으로 철저히 연구되어야 한다. 더하여 체르노빌 과 후쿠시마 사태에서 보았듯 방사능의 확산은 우리의 계산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매우 복잡하게 진행된다. 대기의 움직임 (바람, 비, 해류 등)과 대도시의 작용(교통, 운송, 배포 등)에 영향을 받아서 방사성 물질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어느 곳으로나 갈 수 있다. 방사능 수치가 높은 위험지역이 나타나고 복잡한 모자이크의 형태로 움직여 다닌다. 일본인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이와 같은 방사능의 특성에 대해 배워야 했다.


이제 지구의 상호 연결성의 과정들에 대한 새로운 연구 기획을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다. 싫든 좋든 어떻게 도시화가 이 모든 요소들을 동일한 범위 내에서 하나로 묶어내는 지에 대해 연구를 시작할 때인 것이다. 우리가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이 과정들은 위기, 재난, 그리고 재앙의 형태로 점점 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는 동안 고정된 장소, 혹은 정형적 모습으로서의 도시는 – 우리는 도시의 이런 단일한 모습을 너무도 사랑해왔다 – 이제 전지구적 도시화 네트워크의 매듭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점점 더 드러내고 있다. 더하여, 인류의 역사는 오직 지구적 운동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모든 사회적 상호작용의 총합인 보이지 않는 세계의 전체는 오직 지구, 모두를 길러내는 어머니이자, 동시에 분노의 여신이기도 한 지구의 보이지 않는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번역: 리트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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