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호] 무지개 빛 메이데이 역사 속의 녹색과 붉은색 갈래들ㅣ전지윤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0-06-18 09:58
조회
906
 

무지개 빛 메이데이 역사 속의 녹색과 붉은색 갈래들


전지윤 (다른세상을향한연대 실행위원 / https://www.anotherworld.kr/)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올해 메이데이는 낯설었다. 전세계적인 격리와 봉쇄가 우리가 거리로 나서고 광장에 모이는 것을 가로 막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우리가 손을 잡고 어깨를 걸고 함께 행진하는 것을 힘들게 했다. 너도나도 쓰고 있는 마스크가 우리가 서로의 표정을 살피며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주고받는 것을 어렵게 했다.


한국에서는 메이데이 바로 전날에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건으로 수십 명의 가장 밑바닥 이웃들이 사망했지만,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을 부비며 슬픔을 나눌 권리마저 맘껏 누리지 못하게 됐다.


이것은 코로나 팬데믹이 세상의 지배자들에게 가져다 준 역설적 기회들을 보여 준다. 저들은 대량실업과 해고의 쓰나미 속에서 불안감에 떠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중국인, 신천지, 성소수자 등 계속 새로운 희생양을 찾을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우리가 거리와 광장에서 집단적으로 모이고 함께 외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핑계를 갖게 됐다.


우리는 또한 되돌아 봐야 한다. 메이데이에 우리는 기꺼이 모이고 다 함께 싸워왔는가? 우리는 왜 모였고 무엇을 위해 싸웠고 어떤 요구를 해 왔는가? 메이데이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는가? 코로나 팬데믹이 메이데이의 결집을 가로막은 지금이 바로 이런 물음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생각을 굴려볼 좋은 기회일지 모른다.


피터 라인보우의 <메이데이: 노동해방과 공유지 회복을 위한 진실하고 진정하며 경이로운 미완의 역사>는 이것을 위한 딱 좋은 마중물이다. 여기에 실린 11편의 글은 반복해서 그런 내용과 고민을 우리에게 던져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라인보우는 우리에게 직접 말을 거는 듯한 선동적이고, 한편으로는 시적인 글들을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은 메이데이 역사의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다루고 있다. “메이데이의 역사는 녹색과 붉은색의 모습으로 나뉘어 있다. 무지개 아래에서 우리의 방법론 역시 가지각색이어야 한다. 대지와 거기에서 자라는 것들 간의 관계는 녹색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흩날리는 피의 관계는 붉은색이다.”


이 두 가지 중에서 우리가 많이 놓쳐 온 측면, 그리고 역사적으로 더 앞선 측면은 바로 ‘녹색’이다. 라인보우는 유럽 중세 역사의 삼림세에서 ‘메이데이의 기원’을 찾는다. 그때 사람들은 ‘숲속으로 들어가 나무를 심고 5월의 기둥을 세우고 춤을 추며 술을 마시고 사랑을 싹틔웠다’는 것이다. 그것은 겨울이 끝나고 봄이 발돋움하는 때에 벌어지는, “땅을 밟고 일하는 사람들”의 축제였다.


“메이데이가 신성한 의식이건 불경한 의식이건, 이교도에 의한 것이건 기독교, 무슬림 또는 유대교 일신론자에 의한 것이건, 마술이건 아니건, 이성애자에 의한 것이건 동성애자에 의한 것이건, 고귀한 자의 손길에 의한 것이건 우악한 자의 손길에 의한 것이건, 이날은 언제나 자유롭고 녹색이며 생명을 주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축하하는 날이었다.”


당연히 부와 권력을 가진 지배자들은 이 날을 싫어했고 없애려고 했다. “따라서 권위자들은 메이데이를 공격했다. 여성을 화형에 처하면서 억압이 시작되고 16세기 미국이 ‘발견’되고 노예무역이 시작되며 민족국가와 자본주의가 형성되면서 이러한 억압은 계속되었다.”


특히 주목하게 되는 것은 ‘마녀사냥’이다.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대안을 가지고 있던 여성들은 마녀로 고발되어 말뚝에 묶여서 화형 당했다. 수용, 정복, 기근, 전쟁 그리고 전염병은 사람들을 황폐하게 하고 사람들은 공유지를 잃는 동시에 5월의 기둥을 세울 곳조차 잃었다.” 우리에게서 생명과 봄을 빼앗아간 것은 바로 ‘가부장적 자본주의’이고, 그것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들이었다.


이처럼 라인보우는 자본주의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마녀사냥의 핵심적 구실을 주목한다. 그래서 그는 <사회주의: 공상에서 과학으로>에서 엥겔스가 마녀사냥, 노예무역, 원주민 대학살 등을 제대로 언급하지 않은 것에 커다란 실망을 드러낸다. 라인보우는 엥겔스가 미국을 “시작부터 부르주아적인 사회”라고 언급한 것을 지적하며 한탄한다. “세상에나,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그에게 미국은 인디언 원주민들이 공유지의 권리를 누리던 ‘공산주의’ 사회였다. 그의 ‘영웅’은 엥겔스보다 원주민 추장 ‘티컴세’다. 백인 남성 권력자들은 이 모든 것을 피로 짓밟고 가부장적 자본주의를 구축해 나갔다. 따라서 이제 붉은색이 등장할 차례이고, 현대 메이데이 역사의 붉은색 측면을 봐야 할 차례이다. 그것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1886년 시카고 헤이마켓에서 시작됐다.


앨버트 파슨스와 어거스트 스파이스의 피가 여기에 뿌려졌다. 그리고 이것은 ‘마녀사냥’의 새로운 확대였다. 교수형을 선고하며 재판부는 말했다. “피고인들이 폭탄을 던지거나 폭탄을 던진 사람을 알지는 못하지만 폭탄 투척이 있기 전에 그들의 연설이나 글이 미지의 누군가에게 폭탄을 던지도록 영감을 주었을 수도 있다.” 증거는 없고 사실은 모르지만, 어쨌든 너희들은 마녀고 죽어야 한다!


물론 메이데이의 붉은색 측면 또한 권력자들은 싫어했고 없애려고 했다. 특히 반세기에 가까운 신자유주의 시대에, 그런 시도는 절정에 달했다. 메이데이의 “이러한 메시지는 현대판 노예화, 부채 노동자, 교도소 강제노역, 수출지역 착취공장, 강제 초과근무, 다중 직업 보유, 빈곤의 여성화를 거치며 모두 잊혀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반세기는 이제 기후위기와 경제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이 상승작용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다층적이고 복합적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라인보우는 경고한다.


“이제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이 행성은 고통을 겪고 있으며 공기와 물은 죽어가고 있다. 이 행성의 땅은 시궁창이 되었고 물은 하수도가 되었다. 이제 아이들의 놀이터 아래에는 베릴륨이 뭉쳐있고 태평양의 수면은 플라스틱병이 막고 있다. 호수 위에는 질식시키는 조류가 피어나고 하늘은 이산화탄소로 숨 막힌다. ‘여섯번째 종말’이 우리 앞에 도래한다.”


트럼프, 보리스 존슨, 보우소나르, 신나치, 네오파시스트, 대안우파가 이 시대의 어릿광대들이다. 그리고 이제 마녀사냥은 더욱 더 일상적이고 잔인하게 반복되고 있다. ‘마녀’는 유대인을 거쳐서 무슬림과 성소수자로, 코로나 시대에 이제는 중국인과 동양인으로, ‘공산주의자’에서 ‘페미니스트’로 변화하고 확대되고 있다.


마녀는 꼭 여성만이 아니지만, 여전히 여성이기도 하다. 지금 여기 한국사회에서 이정희가, 윤지오가, 정경심과 그 딸이, 윤미향과 그 딸이 계속 불려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여론의 광장에 불려나와 ‘도덕정치’의 십자가에 매달려 살이 발라지고, 뼈가 조각내지고 있다. 냉정한 사람들은 이 모든 과정을 팔짱을 낀 채 기꺼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어거스트 스파이스가 말했듯이 언젠가는 “오늘 당신들이 조르고 있는 목의 목소리보다 우리의 침묵이 더 강력한 힘을 가지는 날이 올 것이다.” “함께 서는 가운데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녹색의 축전”과 “붉은색의 시위”가 서로 어우러지면서 더 큰 물줄기로서 거대한 바다를 이루는 날이 올 것이다. 라인보우는 우리에게 선동한다.


“우리는 거리를 메워서 우리가 99퍼센트라는 사실을 실제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체류허가를 받지 않은 동료들의 존재를 환영해야 한다. 우리는 백인 우월주의라는 괴물의 심장을 꿰뚫는 말뚝을 박아 넣어야 한다. 우리는 이름을 숨기고 아닌 척 다가오는 독재를 탈피해야 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감옥이 없는 미래를 그려주어야 한다. 우리는 학교가 그들에게 주었던 현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황야를 녹색의 땅으로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공유지를 되찾고 새로운 공유지를 창조해야 한다. 누구도 혼자서 이를 이룰 수는 없다. 우리들 자신에게 다 같이 함께라면 할 수 있다고 확신해 보자. 단지 우리가 할 일은
깨어나라! 각성하라! 일어나라!
메이데이를 위해 점거하라!“


물론 메이데이의 역사는 라인보우가 우리에게 알려준 것보다도 훨씬 더 많고 다양할 것이다. 녹색과 붉은색을 넘어서 다채로운 무지개의 역사일 것이다. 노동과 돌봄과 사랑과 연대는 공장과 거리와 광장만이 아니라, 정신병동에서, 콜센터에서, 게이클럽에서, ‘찜방’에서도 특수하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로 계속됐을 것이다. 곳곳에서 구조신호(메이데이! 메이데이!)를 울려왔을 노동자들, 소수자들, 조선족들, 이주민들, 정신질환자들, 사람들, 동물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찾아서 듣고 더 채워 넣어야 한다.


*



※ 편집자 주 : 이 서평의 축약본은 2020년 6월 18일 <매일노동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s://bit.ly/3hD3yF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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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마그나카르타 선언(피터 라인보우 지음, 정남영 옮김, 갈무리, 2012)


저명한 역사가 E. P. 톰슨의 제자인 미국의 역사학자 피터 라인보우의 대표작. 인류의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전제(專制)를 제한해 온 방책들이 어떻게 축소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1215년 이후 이러한 방책들의 원천인 마그나카르타의 역사적 궤적을 제시하면서, 사유화의 탐욕, 권력욕, 제국의 야망이 국가를 사로잡을 때마다 예의 오래된 권리들이 어떻게 무시되는가를 보여준다. 이 마그나카르타 민중사는 광범한 오래된 투쟁들을 생생하게 들고, 정치적 권리들의 복원이 어떻게 경제적 권리들의 회복에 의해 성취될 수 있는지를 당당하게 보여준다.


히드라(마커스 레디커, 피터 라인보우 지음, 정남영, 손지태 옮김, 갈무리, 2008)


제국주의 초기 식민지 건설과 노예제 상황을 역사적 사료를 통해 밝혀낸 역사서이다. 공식적인 역사서에서는 만날 수 없는 장작 패고 물 긷는 사람들, 흑인 하녀들, 혁명적인 해적 선장, 아프리카 노예들, 진정한 아메리카 혁명의 주역인 잡색 부대 등을 만날 수 있다. 히드라는 헤라클레스 신봉자들에게 맞서 싸운 선원들, 노예들, 평민들 즉 다중(multitude)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17세기 초 영국 식민지 확장의 시작부터 19세기 초 도시중심의 산업화에 이르기까지, 지배자들은 점점 세계화·지구화되는 노동체계에 질서를 부과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노예선 : 인간의 역사(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갈무리, 2018)


노예선은 아프리카 해안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을 싣고 대서양을 가로질러 그들을 신세계로 데려갔다. 노예무역과 미국 농장체제에 관해서는 많은 것이 알려졌지만, 이를 가능하게 한 노예선에 관해서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뛰어난 수상 경력의 역사학자인 마커스 레디커는 『노예선』에서 해양기록에 관한 30년간의 연구를 정리하여 이 전례 없는 함선에 관한 역사를 만들어 냈으며 함선의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격동하는 인간의 드라마를 그려냈다. 그는 상어를 꼬리처럼 끌고 다니는 떠다니는 지하 감옥에 타고 있는 선장, 선원, 노예의 삶과 죽음 그리고 공포를 냉혹하게 재구성했다.


캘리번과 마녀(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김민철 옮김, 갈무리, 2011)


자본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남성이 임금 노동자로 탈바꿈된 것 만큼 여성이 가사노동자이자 노동력 재생산기계로 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페미니즘 역사서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닦았던 이 폭력적인 시초축적 과정에서 마녀사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었음을 밝힌다. 이 책에서는 공식적인 역사서나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쓰인 역사책에서도 다뤄지지 않는 산파 여성들·점쟁이 여성들·식민지의 원주민 여성 노예들·여성 마술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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