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호] 사물들의 우주, 그 아름다움의 느낌ㅣ강미정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2-02-18 20:53
조회
865
 

사물들의 우주, 그 아름다움의 느낌


강미정(미학자, 서울대 강사)


2010년 퀑탱 메이야수의 『유한성 너머』가 국내에 소개된 이래 여러 저자의 저술이 사변적 실재론이라는 제명으로 차례로 번역되고 있다. 메이야수의 다른 역서 『형이상학과 과학 밖 소설』(2017), 그레이엄 하먼의 『네트워크의 군주』(2019), 『쿼드러플 오브젝트』(2019), 레비 브라이언트의 『객체들의 민주주의』(2021), 『존재의 지도』(2020)는 그러한 사례들이다. 이제 국내 학계에도 제법 알려진 철학적 조류인 사변적 실재론은 2007년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칼리지의 한 학회에서 회동했던 메이야수, 하먼, 브라이언트, 이에인 해밀턴 그랜트, 레이 브라시에 등이 촉발했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들은 세부적으로 상이한, 때로 상충하는 주장을 펼치지만, 반인간주의와 비상관주의non-correlationalism를 견지한다는 점에서만은 모두 일치한다. 그들이 ‘상관주의’로 가리키는 철학적 관점은, 오로지 사고하는 주체와 존재하는 객체 간의 상관성만이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것이라는 메이야수의 정의로 요약할 수 있다. 사변적 실재론자들이 인간중심주의와 상관주의를 비판할 때 주요 참조물이자 목표물이 되는 것은 칸트와 그 이후의 대륙 철학이다. 그들에 의하면 칸트 이후 철학자들에게 존재와 사유의 상관관계가 핵심적이었다. 존재의 본성이 주체의 인식에 의해서만 알려진다는 근대 철학의 전통은 지금껏 굳건하게 유지되는 듯하다. 스티븐 샤비로에 따르면 후설, 하이데거,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의 근간을 이루는 지향성 개념은 전형적으로 상관주의를 예시한다. 『사물들의 우주』에서 샤비로는 비상관주의 및 반인간중심주의의 축을 중심으로 다양한 갈래로 펼쳐지는 사변적 실재론의 지도 그리기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단지 사변적 실재론의 전개 양상에 대한 해설에 그치지 않고, 21세기에 출현한 형이상학적 흐름을 일찍이 예견한 알프레드 화이트헤드와 더불어 자신의 고유한 사변적 실재론을 강구하고 있다.

21세기 문턱에 들어선 후 신유물론, 사변적 실재론 또는 객체지향존재론을 표방하는 철학자들 사이에서 화이트헤드가 꾸준히 재소환되고 있다. 이를테면 브라이언 마수미와 그레이엄 하먼도 샤비로와 마찬가지로 화이트헤드의 과정 철학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화이트헤드를 통한 사변적 실재론의 반성에서 샤비로는 벨기에의 과학철학자 이사벨 스탕거스의 업적에게 빚지고 있다(51). 그녀는 후기의 화이트헤드가 주체 외부(또는 객체)를 향한 과정과 주체 내부를 향한 과정을 서로 충돌하는 것으로 볼 것인가, 단지 대비적인 것으로 볼 것인가 라는 문제를 다뤘다고 본다. 전자를 상충하는 다양성, 후자는 대비하는 다양성이라고 한다면 화이트헤드 철학에서는 상충을 대비로 바꾸기를 요구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샤비로는 화이트헤드 말년의 저서 『관념의 모험』, 『사고의 양태』 등에서 추출한 ‘관심concern’과 ‘자기향유’ 개념을 전유하여 각각을 “타자에 의해서 촉발되는 본의 아닌 경험”(40)과 생명 개념을 구성하는 절대적인 자기긍정이라고 요약한다. 샤비로는 이 두 개념을 안티테제로 제시하고 있으나, 이때 반립하는 두 항은 주객의 이분법과는 무관하다. 본성상 자기향유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는 통상 그 자체를 넘어선 사물이나 사건에 관여하게concern 되기 때문이다. 샤비로는 화이트헤드의 ‘자기향유’를 존재의 사밀성으로, ‘관심’은 존재의 공개성으로 번역하고(46),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공개성과 함께 사밀성을 지닌다고 논변한다. 양자는 서로 긴밀히 얽혀 통합적 과정을 이루며, 시간의 지속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적 계기를 성립하는 것이다.

샤비로가 판단하기에 이와 같은 화이트헤드의 말기 철학은 메이야수나 하먼 같은 사변적 실재론자들의 비칸트적 반상관주의를 예견했을 뿐만 아니라 더 탁월하게 구현했다. 칸트는 우리의 지성이 접근할 수 없는 물자체를 상정하는 초월적 관념론을 펼쳤다. 잘 알려진 것처럼 칸트가 철학사의 코페르니쿠스로 일컬어지는 이유는 그가 인식할 수 없는 사물 자체는 뒤에 남긴 채 인간 인식의 조건과 구조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이야수 같은 사변적 실재론자에게 칸트의 ‘잔여 실재론’은 실망스러울 뿐 아니라 대재앙과도 같은 것이다(132). 그가 보기에 칸트의 상관주의는 과학적 객관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현대 자연과학은 생명이 출현하기 이전의 존재와 우주에 대한 사실들을 쏟아내고 있다. 상관주의자들은 인간 사유와의 상관관계에서 나타날 수 없는 이 선조적 존재에 대한 과학자들의 언명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세계는 오직 살아있는(생각하는) 존재에게 주어진 것으로만 의미가 있는”(202) 것이 아니다. 상관주의를 전복하기 위해 메이야수는 그것을 내부로부터 교란한다. 그는 “사고의 무능함으로 착각한 것을 사물 그 자체에 돌려놓는” 칸트적인 책략을 밀어 붙여(133) 상관주의 논리를 벗어나면서 ‘거대한 바깥’에 대해 사유할 것을 촉구한다. 샤비로는 이와 같은 메이야수를, 실재는 원천적으로 개념화될 수 없다고 하는 브라시에와 함께 제거주의적 사변적 실재론자로 분류한다(140). 왜냐하면 메이야수나 브라시에에게 실재란 사유와 전적으로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수학이 메이야수에게 거대한 외부 세계를 추론할 주요 도구가 된다면 물리학은 브라시에에게 실재와 우리의 개념화 사이의 간극을 탐구하는 방안이 된다.

샤비로는 자신의 입장을 메이야수나 브라시에보다는 하먼과 그랜트에 더 근접한 범심론panpsychism이라고 밝힌다(157). 그의 판단에 제거주의는 상관관계 바깥에 존재하는 물질을 의미나 가치와는 무관한 수동적이고 관성적인 것으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그다지 건전하지 않다. 반면 범심론은 상관주의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는 동시에 제거주의의 오류에 빠지지 않게 하는 장점을 지닌다. 범심론을 취함으로써 샤비로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생각하는 또는 느끼는 마음mind의 능력을 인간과 동물만 독점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는 여기서 “지향성은... 객체 일반의 존재론적 특징”이라는 조지 몰라르의 물리적 지향성 논변을 끌어 들인다(152-155). 사고와 느낌은 우주의 모든 사물들 가운데 편재하는데, 이는 소금이 물에 용해될 때 드러나는 것과 같은 물리적인 힘의 존재로 해명될 수 있다. 물리적 힘은 사물의 고유한 성질이기에 그것이 실제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존재하는 것이다. 샤비로가 주요 참조점으로 삼는 몰라르의 형이상학은 최근의 비인간 전회를 예시하는 한편 화이트헤드의 철학과 맞물린다고 보인다. 샤비로의 말대로 이미 한 세기 전에 화이트헤드는 “물질이 관성적이고 수동적이지 않고 내재적으로 활동적이고 생산적이며 형성적임”을(185) 과학과 철학 사이에서 종횡무진하며 논증했기 때문이다.

샤비로의 비인간주의 실재론은 이렇듯 정신적인 것과 물리적인 것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범심론의 형태를 취한다. 그의 체계 안에서 랍스터, 중성미자, 화강암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정신성을 지닌 존재자다(167). 그에 의하면 이 모든 것들은 인간과 다름없이 의미와 가치의 중심으로서 즉자적, 대자적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중성미자가 어떻게 스스로에 대해 가치평가를 하는가? 이는 무엇보다도 화이트헤드가 말한 것처럼 시간을 통해 존속하는 객체를 구축하는 존재의 행위를 통해 가능해진다. 스피노자가 자기 파괴에 저항하고 스스로가 되기 위해 힘쓰는 성향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한 ‘코나투스’는 화이트헤드가 말한 사물의 활동적 존속성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을 제공한다. 이처럼 존재자들 간의 위계가 사라진 평평한 존재론을 지향한다는 점에서도 샤비로는 객체지향철학자 하먼과 공명한다. 그러나 이 두 철학자의 가장 의미심장한 교차점은 무엇보다도 미학에서 존재론적 문제의 해결을 찾는다는 데 있다.

샤비로에 의하면 주객의 상관관계에서 벗어나 있는 사물 자체는 사고나 개념화에 의해 소진되지exhaust 않는다. 이 점이 샤비로와 하먼이 화이트헤드와 마찬가지로 미학을 제1철학으로 간주하는 이유다. 미학은 “사물들의 특이성singularity과 그들 간의 상보성에 관한” 학문이기에(106), 실용적 목적으로 사용되거나 규범적으로 규제되거나 규칙에 따라 정의되지 않는 사물 그 자체와의 접촉을 가장 적절하게 해명할 수 있다. 샤비로와 하먼에 따르면 “다른 객체와 나와의 접촉은 항상 메울 수 없는 거리에 걸쳐 일어나는”(260) 외적이고 암시적인 참조일 수밖에 없다. 하먼은 샤비로가 화이트헤드를 따라 ‘사물의 현실태’라고 부르는 것을 “존재의 순수한 진실성” 또는 ‘매혹allure’이라고 부른다(107). 사물이 발현하는 매혹은 사유나 인식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객체의 현존을 보여준다. 우리는 사물의 아름다움에 매료당했을 때, 오직 그럴 때에만 상관관계를 초월한 존재 자체와의 만남에 이르게 된다. 샤비로의 논의를 따라 유추하자면, 후기 화이트헤드가 미학에 우선성을 부여한 것은 존재의 진실성이 오로지 미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고 보았던 까닭이라고 하겠다.

샤비로는 화이트헤드와 하먼의 철학의 차이를 아름다움과 숭고 미학의 차이에 비견한다(88). 그에 의하면 화이트헤드가 “패턴화된 대비”로서 아름다움의 관념에 초점을 맞췄다면 하먼은 숭고의 관념에 호소한다. 화이트헤드를 따르는 샤비로는 자연스레, 숭고한 실체의 세계보다는 아름다운 관계의 세계에 더 쏠려 있다. 샤비로는 하먼의 객체지향철학의 논점들에 전반적으로 동의하지만 하먼의 논증에 전적으로 동조하지는 않는다. 샤비로가 보기에 숭고한 실체에 주목하는 하먼은 사물의 현실적 계기, 다시 말해 객체의 사밀성의 차원을 간과하고 있다(76-77). 앞서 설명한 것처럼 화이트헤드에게 사밀성은 공개성와 반립하면서 현실태의 모든 단계에 개입한다. 샤비로가 보기에 하먼은 집요하게 “사물의 숨겨진 내면적 삶”을 물고 늘어지지만, 실제로 그것에 화이트헤드처럼 주의를 기울이지는 않는다. 더욱이 하먼은 모든 객체가 평등하게 서로에게서 물러나 자신 안에 깊숙이 숨은 “이상한 세계”를 상정하고 있기에(68), 샤비로와는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2011년 하먼은 동료들과 함께 『사변적 전회』를 편저하면서 자신의 논문 「샤비로에게 보내는 응답」을 게재했다. 샤비로는 이 선집에 『사물들의 우주』의 2장 “활화산”의 초고 격인 「현실적 활화산The Actual Volcano」을 실었고, 하먼은 이에 대한 답변으로 「응답」을 실었다. 이 논문에서 하먼은 화이트헤드 철학에 대해 샤비로와는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하먼의 입장에서 볼 때 샤비로는 화이트헤드를 오독한 결과 화이트헤드와 들뢰즈의 철학을 동일하게 생성becoming의 존재론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했다. 하먼은 그가 객체의 사밀성을 간과했다는 샤비로의 비판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짐작컨대 하먼은 샤비로가 그의 ‘네겹 객체quadraple object,’ 특히 ‘실재적 객체’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탓에 “이상한 세계의 상정”을 운운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샤비로가 2014년 출판한 『사물들의 우주』는 그의 사변적 실재론을 제시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가 2009년에 펴낸 『규준 없이: 칸트, 화이트헤드, 들뢰즈 그리고 미학』의 연장선에서 전개한 논의이기도 하다. 시간 순서로 나열하면, 『규준 없이』가 가장 먼저 출판되었고 『사변적 전회』에 실린 샤비로와 하먼의 논문이 세상의 빛을 본 후 『사물들의 우주』가 출판되었다. 샤비로가 2014년 저서에서 2011년 글의 논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가 끝내 하먼의 반론을 수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샤비로와 하먼, 두 사변적 실재론자 중 누가 옳은가? 더 정확하게 말해 두 철학자 중 누가 화이트헤드를 (그리고 들뢰즈를) 정확하게 해석했는가? 쉽게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이에 답하는 대신 필자는 『사물들의 우주』에 대한 개인적 소회로 글을 끝맺고자 한다. 이 책의 마지막장 “아이스테시스”를 마무리하면서 샤비로는 자신의 사변적 실재론이 인식론이 아니라 미학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선언한 후(266), 이어서 『판단력 비판』에 집대성된 칸트 미학의 재해석을 시도한다. 샤비로에 의하면 칸트는 제1비판서와 제2비판서에서는 상관주의의 토대를 닦았으나 제3비판서에 이르면 상관주의를 회피할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미의 분석론”에서 칸트는 취미 판단이 언제나 “특칭 판단”일 수밖에 없다고 단언하는데, 이 순수하게 주관적인 판단은 모든 주체에게서 공통적으로 내려진다는 역설을 내포하고 있다. 샤비로는 칸트 미학에서 제안된 상호주체성과 ‘공통 감각common sense’에서 “특이성과 보편성 사이의 기묘한 공명” 또는 “즉발적이고 비인지적인 접촉”을(267) 목도한 것이다. 그가 칸트의 마지막 비판서에서 사변적 실재론의 단서를 찾는 대목이다. 샤비로의 신선한 『판단력 비판』 해석은 샤비로가 옳은가, 하먼이 옳은가를 떠나 그의 사변적 실재론 판본에 대한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책을 덮으면서 새삼 절감한 것은 칸트와 화이트헤드의 그늘이 얼마나 거대한가 하는 사실이지만, 『사물들의 우주』가 미학도에게 안겨준 감흥도 그리 작지 않다.

참고문헌
퀑탱 메이야수 (2017), 『형이상학과 과학 밖 소설』, 엄태연 옮김, 이학사
___________ (2010), 『유한성 너머』, 정지은 옮김, 도서출판b
레비 브라이언트 (2020), 『객체들의 민주주의』, 김효진 옮김, 갈무리
_____________ (2020), 『존재의 지도』, 김효진 옮김, 갈무리
스티븐 샤비로 (2021), 『사물들의 우주』, 안호성 옮김, 갈무리
그레이엄 하먼 (2019), 『네트워크의 군주』, 김효진 옮김, 갈무리
___________ (2019), 『쿼드러플 오브젝트: 새로운 유물론과 사변적 실재론』, 주대중 옮김, 현실문화
Graham Harman (2011), “Response to Shaviro,” Levi Bryant, Nick Srnicek, and Graham Harman, eds (2011), The Speculative Turn: Continental Materialism and Realism, Melbourne: re.press, pp.291-303
Steven Shaviro (2009), Without Criteria: Kant, Whitehead, Deleuze, and Aesthetics, Cambridge, MIT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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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2년 2월 18일 웹진 <콜리그>( https://bit.ly/3v7sKwO )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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