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1 『프랑켄슈타인』 토론거리

작성자
bomi
작성일
2022-05-11 17:35
조회
452
SF읽기 세미나 ∥ 2022년 5월 11일 수요일 ∥
텍스트: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지음, 오수원 옮김, 현대지성, 2021


1.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의 공부(와 노동)을 주제로 논의해 보자.
1부에는 프랑켄슈타인의 공부와 노동에 관한 이야기가 2부에는 괴물의 공부와 노동에 관한 이야기가 자세히 그려진다.

<프랑켄슈타인의 공부>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과학의 매력을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겁니다. 다른 분야에서는 선배들만큼 공부하면 더 이상 알 것이 없지만, 과학에서는 계속해서 새것을 발견할 수 있고, 놀라운 것들이 나타납니다. ...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현상 중 하나는 인체 그리고 생명을 부여받은 모든 동물의 신체 구조였습니다. “생명의 원리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58)
생명의 원인을 살피려면 먼저 죽음을 연구해야 합니다. 해부학을 익히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습니다. 인체에서 일어나는 자연 부패와 변질 또한 관찰해야 했으니까요. ... 부패의 원인과 진전사항을 살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하 납골당이나 시체안치소에서 수일 밤낮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여린 감정을 가진 사람들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대상을 살피는 일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이행하는 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든 세세한 인과를 끈기 있게 살피고 분석했지요. (59)
그러다 마침내 이 어둠의 한가운데서 갑자기 한 줄기 빛이 나를 비추었습니다. 지극히 찬란하고 경이로운 동시에 너무나 단순해서 그것이 알려주는 어마어마한 가능성에 아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같은 과학을 추구하던 수많은 천재 중에서 나 홀로 이토록 충격적인 비밀을 알아냈다는 것이 경악스럽기도 했습니다. ...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중노동painful labour과 피로로 점철된 수일 밤과 낮이 지난 후 나는 드디어 생명 발생의 원인을 알아냈습니다. 아니, 오히려 생명 없는 물체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되었다고 정확하겠지요. (60)
내가 왜 그 비밀을 함구하는지. ... 지식을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61)
그토록 경이로운 힘 ... 생명을 부여하는 힘은 있었지만, 생명을 받을 수 있는 몸, 온갖 복잡한 섬유질과 근육과 혈관을 갖춘 인체를 마련하는 일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상상하기 어려울 어렵고 고된 노동이었지요. ... 하지만 첫 성공에 너무 달뜬 나머지, 인간처럼 복잡다단하고 경이로운 존재에도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믿을 지경에 이르렀지요. (61)
달빛이 한밤중 내가 하는 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에도 나는 잔뜩 긴장한 채 숨 쉴 틈 없는 열정으로 자연이라는 여인을 그 깊숙한 곳까지 추적해 들어갔습니다. 무덤이라는 불경스러운 습지를 휘젓고 다니거나 죽은 진흙을 살아 움직이게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산 동물을 고문하던 내 은밀한 노동에 담긴 공포를 누군들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 다른 집들과 복도와 계단으로 완전히 분리된 독방, 오히려 감방 같은 곳에서 더러운 창조 실험실을 운영한 셈입니다. 세밀한 작업에 몰두하느라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었습니다.
내 눈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63)

<괴물의 공부>
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소. 야만적인 마을 주민들에게 당한 푸대접을 잊을 수 없었으니까. 장차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보더라도 당장은 헛간에서 이 가족들을 지켜보면서 마을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찾아봐야겠다고 결심했소. (139)
나는 점차 훨씬 더 중요한 것들을 발견해갔소. 이 가족이 명료한 소리로 경험과 감정을 서로에게 표현한다는 것을 알게 된 거요. 그들이 하는 말 때문에 듣는 사람은 마음과 얼굴에 즐거움이나 괴로움, 미소나 슬픔을 짓는 것도 알았소. 정말 신성한 앎이었소. 나도 그것을 알고 싶다는 열망이 강렬해졌소. 하지만 말을 해보려 할 때마다 좌절했소. 이들의 말은 너무 빨랐고, 사용하는 단어들도 눈에 보이는 사물과는 연관성이 없어보여, 그들이 가리키는 수수께끼를 풀 만한 단서를 찾아내지 못한 거요. (141)
나를 보면 혐오감이 들겠지만, 내 점잖은 태도와 호감을 자아내는 말로 먼저 호의를 얻고 나면 그다음에는 사랑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소. 이런 생각들로 잔뜩 달떠, 언어를 습득하는 일에 새삼 더더욱 매진했소. 내 몸의 기관들은 몹시 조악했지만 유연했소. (145)
언어 실력이 향상되면서 문자도 배웠소. ... 문자를 습닥한 덕에 기쁨과 경이로움의 광할한 지대가 내 앞에 펼쳐졌소. ... 펠릭스가 사피를 가르칠 때 썼던 책은 볼니의 ‘제국의 폐허’라는 데목의 책이었소. ..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선언조로 말하는 문체가 동양 사상가를 모방하는 틀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소. 이 책을 통해 나는 역사에 대해 대략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세상에 현존하는 여러 제국을 일별하는 견해를 얻었소. ... 유럽 반대편에 있는 아메리카를 발견한 일에 관해서도 들었는데, 그곳 원주민의 불행한 운명에 대해서는 읽으면서 사피와 함께 울었소. (151)
이 경이로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어요. 인간이란 정말 그토록 정말 그토록 강하고 훌륭한 덕성을 갖추었으며 아름다운데, 동시에 어떻게 그토록 사악하고 부도덕할 수 있단 말인가?... 펠릭스가 아라비아 여인에게 들려주는 가르침을 귀 기울여 듣는 동안 인간 사회의 희한한 체제를 알게 되었소. 재산 분배, 막대한 부와 궁상스러운 빈곤, 계급, 가문 그리고 고귀한 혈통에 관한 이야기도 알게 되었지요. (152)
부타 혈통 중 하나만 있어도 존경은 받지만, 둘 다 없다면 매우 드문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선택된 소수의 이익을 위해 힘을 탕진할 운명에 처한 부랑자나 노예로 간주되더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이었던가? 나는 내 창조와 창조주에 관해 완전히 무지했소. 내게는 돈도 친구도 어떤 종류의 재산도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소. 게다가 나는 흉측한 기형에 혐오스러운 외모를 부여받았소. (152) ... 그렇다면 나는 세상의 한 점 얼룩에 불과한 괴물일 뿐인가? 인간 누구든 보면 달아나는 존재, 연을 끊어버린 존재였나?
이러한 생각 때문에 내가 겪은 고뇌는 당신에게 묘사할 수조차 없소. 고뇌를 떨치려 무던히 노력했지만, 아는 것이 늘어갈수록 슬픔은 커졌소. 아, 차라리 원래 살던 숲에서 영원히 살았더라면, 배고픔과 갈증과 열 말고는 아무것도 알거나 느끼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지식에는 얼마나 기이한 성질이 있는지요! 이미 알게 된 것은 바위에 붙은 이끼처럼 머릿속에 들러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오. 이 모든 생각과 감정을 떨쳐내고 싶을 때도 있었소. 하지만 고통을 극복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두렵지만 이해할 수 없는 상태임을 알았지요. ... 나는 그저 비참하고 불행한 괴물일 뿐이었소! (153)
그 밖에 다른 교훈은 훨씬 더 깊게 내게 다가왔소. 남녀 차이, 아이들의 탄생과 성장에 관해서도 알게 되었소. ... 형제자매뿐 아니라 한 인간을 다른 인간과 상호유대로 묶어주는 다양한 관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소. (162)
책들은 내가 오두막에서 익힌 언어로 되어 있었소. <실낙원>과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한권 그리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었소. (162) 그러나 책을 읽을수록 읽는 내용에 나의 감정과 처지를 더 많이 이입하게 되더군요. 읽고 경청하던 책 속 인물들과 나 자신이 한편으로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이하게 달라 보였소. 그들에게 공감했고 부분적으로는 이해도 했지만, 내 정신은 아직 형성되지 못한 상태였소. 누구 하나 의지하거나 관계를 맺지 못했으니까요. 길은 자유롭게 떠나면 그만이었고, 내가 죽어도 슬퍼할 사람 하나 없었소. (163) 몸은 흉측했고 덩치는 거대했소. 이건 무슨 뜻일까? 나는 누구일까? 나는 무엇일까? 나는 어디서 왔을까? 내 목적지는 어디일까? 질문이 끝없이 떠올랐지만, 답을 찾을 길이 없었소. (164)
<실낙원>이 일깨워준 감정은 다른 책과는 완전히 달랐고 훨씬 심오했소.
전능한 신이 피조물들과 싸우는 장면은 온갖 경이와 외경심을 일깨웠어요. 나와 비슷한 점에 놀라 여러 상황을 내 처지와 빗대어보곤 했소. ... 내 처지에대한 상징으로는 사탄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 적이 여러 차례였소. 내 보호자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사탄이 그러했든 쓰라린 시샘 덩어리가 내 안에서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오. (165)
이런 감정을 더욱 강화하고 확인해준 사건이 더 있었소. ... 그 문건은 나를 창조하기 전, 넉 달 동안 당신이 기록한 일기였소. 당신은 이 문서에 작업의 진행 상황을 단계별로 상세히 기록했더군요. 그것과 더불어 집 안에서 일어났던 일에 관한 설명도 있었소. (165)
내 저주받은 기원과 관련된 사항이 모조리 적혀 있소. 내가 세상에 나올 무렵의 역겨운 정황들이 세세하게 펼쳐져 있었어요. 불쾌하고 끔찍한 내 몸에 관해서도 당신은 상세히 묘사해 놓았더군요. 자신이 느낀 공포뿐만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지워지지 않는 공포 그 자체라고 그려놓았소. 읽을수록 역겨워졌소. 나는 번민에 빠져 ”내가 생명을 얻은 그날이 증오스럽다!“라며 울부짖었소.(166)

이들은 모두 어떤 경계를 탐구한다. 하지만 그 초점이 다르다. 프랑켄슈타인은 생명이란 무엇일까? 질문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탐구한다. 반면 괴물은 나는 무엇인가? 질문하며 비인간과 인간의 경계를 탐구한다.
이들은 탐구 대상이 다르다. 공부가 시작되는 조건과 동기, 즉 출발점도 다르다. 하지만 그 결말은 모두 비극적이다. 양쪽 모두 자신이 얻은 지식으로 인해 좌절하고 고통받고 슬퍼하고 분노한다. 왜 그런가?



2. 3부에서는 다시 만들기(혹은 여성 만들기)의 어려움, 곤란함에 관해 이야기한다. 괴물의 꿈은 왜 좌절되는가?

새로운 존재를 창조하는 데 필요한 재료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이 일은 머리 위로 물이 한 방울씩 계속 떨어지는 고문과 같았습니다. (206)
처음 도착했을 때는 아침에 일하고 저녁에 나가는 식으로 작업했지만, 진척될수록 점점 짜증과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가끔 마음을 잡을 수 없어 며칠 동안 실험실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또 어떨 때는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더러운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처음 실험하던 때는 어떤 광기에 눈이 멀어 끔찍한 실험의 실체를 보지 못했습니다. 일의 결과물에만 생각이 꽂혀 그 과정의 공포를 외면한 겁니다. 하지만 이제 내 피는 차갑게 식어 있었고, 마음은 내 손이 하는 일에 메스꺼움을 자주 느꼈습니다. (213)
일이 잘 끝나리라는 희망이 있었기에 감히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거기에는 막연히 불길한 예감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이런 예감 때문에 속이 역겨워지곤 했습니다. (214)
이들이 설사 유럽을 떠나 신세계의 사막에서 살더라도 악마가 목말라했던 교감의 결과로 자신이 생길 것이고, 악마 종족이 지상에 번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구는 인간이 살기에 위험하고 공포 가득한 곳이 될 수도 있지요. 내 이익을 위하려고 영원히 이어질 후세대에 이런 저주를 남길 권리가 내게 있는가? 내가 창조한 존재의 궤변에 마음이 움직였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의 기괴한 위협에 충격을 받아 분별력을 잃었던 게지요. 그러나 이제 내가 괴물에게 한 약속이 얼마나 사악한 것인지 처음으로 깨달음이 왔습니다. 미래 세대가 나를 인류의 역병 같은 자로, 즉 제 한 몸을 건사하려고 전 인류의 생존을 주저 없이 희생양으로 삼은 이기적인 존재로 저주할 것이라는 생각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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