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호] '부채 통치', 악순환되는 부채의 무간지옥 / 한태준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3-14 15:46
조회
713
'부채 통치', 악순환되는 부채의 무간지옥

마우리치오 랏자라또의 『부채 통치』 (갈무리, 2018)


한태준(일본문화 연구가 및 번역가)


* 이 서평은 2018년 3월 12일 인터넷신문 <대자보>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goo.gl/31fyMS


부채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은 오늘날, 서평을 쓰고 있는 내 자신도 부채라는 신자유주의가 준 선물(?)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개인적인 부채를 겨우 은행에 상환했을 때도 부채의 무게는 여전히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런 나의 불안감은 틀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공공 부채들이 세금인상과 복지 혜택 감면 등으로 내 미래를 저당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매일 부채를 졌다는 죄책감을 안고 신자유주의적 순례자의 삶을 살고 있다. 대학 입학부터 학자금 담보라는 부채로 시작하는 세대에게 마우리치오 랏자라또(이후, 랏자라또)의 『부채 통치』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본 저서는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시작과 문제제기라는 점에서 8장의 결론과 대척점을 이루며 현재의 상황을 개념 설명으로 대체한다. 시작과 결론이 묘한 대구법을 이루며 부채통치의 순환성을 구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주요 개념들을 사전적인 의미로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례들로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낸다.

모든 장들을 관통하는 중요한 역사적 지점이 있는데 1929년 경제 ․ 금융 위기,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대두 그리고 2007년 서브프라임 금융위기가 그렇다. 역사 속 경제적 변혁/위기를 통해서 금융 자본에 대한 이해와 시간적 영속성을 밝힌다. 선형적인 역사 구성이 아닌 각각의 시간들을 서로 교차시키면서 모든 시기를 관통하는 금융 자본에 대해 접근한다.

2장은 2007년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로 시작하는데, 이러한 위기에는 어떠한 기원이 존재하고 있음을 저자는 설명한다. 이윤 금리 세금의 자본주의적 관계 이해를 통해 사태의 원인과 결과를 밝히고 있다. 자본주의적 단계의 연속 (케인스 주의 - 포디즘/ 신자유주의 -포스트포디즘/이어지는 신자유주의 - 포스트포디즘의 주요 위기)으로 드러나는 이윤 금리 세금의 공고한 관계는 부채의 민낯을 보여준다. 이 장에서는 『부채 통치』의 핵심 사상을 이루는 들뢰즈 ․ 과타리와 대척점에 있는 칼 슈미트의 사상을 고찰하고 그의 이론이 지닌 한계에 대해 설명한다.

3장 부채사회의 모델로서의 미국대학은 현재 한국 대학생들에게도 매우 유효한 주제이다. 입학하면서부터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하는 미국 대학생의 모습은 우리에게 그다지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랏자라또가 미국 대학에 대해 한 장을 할애하면서까지 서술한 이유는 그가 보기에 미국의 대학은 채권자/채무자 관계의 이상적 구체화이기 때문이다. 한국 대학생들이 그러한 것처럼 미국의 대학생들 대부분은 부채를 상환하지 못한 상태로 졸업한다. 한국과 미국의 젊은 세대는 노동 시장에 들어서기도 전에 부채를 지고 자신들의 미래를 저당 잡힌다. 그들은 부채 인간의 조건을 완벽히 구현하고 있는 세대이다.

4~6장은 통치성 비판으로 자유주의적 통치성 고찰과 그에 따른 변화와 흐름들을 지적한다. 푸코의 분석을 통한 통치성의 배치에 대한 고찰과 부채위기에 대한 해석은 랏자라또의 이론적 치밀함을 느끼게 해준다. 5장은 맑스와 프랑스 철학가들의 정치경제 이론을 토대로 오늘날 현대 자본주의의 공리계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6장에서는 자본주의가 개별화된 주체를 만들어내는‘사회적 예속화’와 탈주체화를 만드는‘기계적 종속화’라는 상이한 두 장치를 통해 주체성의 생산과 통제를 조직하는 이중적 작용을 설명한다.

신자유주의는‘자기와의 관계’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면서 그 관계를 펼쳐내는 자신만의 특별한 방법을 가진다. 사회적 예속화의 완성이라 할‘인적 자본(자기 기업가)’은 인간을 하나의 자본으로 만들어 버린다. 한 인격에 대해 이익과 손실, 수요와 공급, 투자와 수익성의 논리에 입각한 평가와 측정을 강요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개인/대중의 쌍을 해체하면서 주체성에 강력하게 작용하는 기계적 종속화가 이루어진다. 통제사회에서 개인은‘분할 가능한 것’이 대중은 견본, 데이터 시장 혹은‘은행’이 되었다.

우리는 저마다 부채에 책임이 있고 유죄인 개인들이라는‘본성’을 할당받은‘주체들’로서 제조된다. 우리의 잘못을 속죄하고 채권자에게 빚을 지불하고 갚아나간다. 그러나, 본 조비(Bon jovi)가 힘차게 불렀던 <기도하는 삶 livin' on a prayer>(1986) 에서의 두 남녀의 희망적인 미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의 희생으로 사랑을 채워가며 미래를 기약하던 철없는 남녀는 오늘날 부채 사회에서는 무기력한 삶을 살 뿐이다.

7장의 레닌의 날카로운 통찰을 통해서 우리는 반복되는 역사(금융 자본주의)의 고리를 짚어보게 된다. 1870년에서 1914년 동안 금융자본의 주도로 귀결된, 자본의 완전한 과정이 전개된 시기와 1970년대의 금융자본과 그 공리계에 의해 세계 자체가 재배치되어 버린 시기를 레닌의 제국주의 비판에 입각해 읽어낸다. 레닌의 날카로운 분석은 시간을 관통하여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8장은 구성상 이 책의 결론 부분이면서 부채 통치의 탈출을 향한 출발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게으름으로 설명할 수 있는 노동의 거부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게으른 행동이란‘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최소한으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의 거부는 노동의 사회적 분업 속에서 미리 확정되어 있는 어떤 정체성 ․ 역할 ․ 기능에 대한 거부이다. 노동의 거부는 공장 노동의 거부 이론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당 혹은 국가로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의 거부와 그것의 정치적 잠재성에 머무르면서도 노동의 거부가 갖는 가능성을 완전히 펼쳐야 한다.

본문의 비참함과 절박함에 비해 결론이 갑자기 너무 장밋빛처럼 변모해서 당황스럽지만 부채라는 틀을 깨버리기 위해서는 노동이 아닌 거부를 선택해야 한다고 랏자라또는 주장한다. 내일이란 시간 속에 나도 부채를 짊어지고 노동을 행하겠지만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단순한 부품이 아닌 고귀한 주체성을 지닌 한 개인이란 점을 다시금 인식하게 되었다. 적어도 나는 모르는 것과 아는 것 사이의 간격은 크다고 믿는다. 사고의 변환은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부채 통치』는 부채에 대한 탈출의 가능성을 우리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이제 저당 잡힌 미래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무한한 가능성으로 행동에 옮기는 것은 책을 읽고 있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참고로,『부채 통치』를 읽기 전에 한 번 정도 읽어보면 좋은 저서는 과타리와 들뢰즈의 공저 『자본주의와 분열증』으로 1권 『안티 오이디푸스』와 2권 『천 개의 고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다음 과타리와 들뢰즈만큼 많이 인용되는 철학가는 미셸 푸코이다. 특히 푸코의 1977~78년 강의록 『안전, 영토, 인구』와 1978~79년 강의록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은 4~6장의 통치성 비판을 관통하는 주요 저서들이다. 이 책들에 대해 언급하는 이유는 랏자라또 본인이 프랑스에서 학위를 딴 만큼, 현대 프랑스 철학가들의 사상이 책의 전반적인 이론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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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기호와 기계』(마우리치오 랏자라또 지음, 신병현‧심성보 옮김, 갈무리, 2017)

들뢰즈와 가따리의 기호론으로 자크 랑시에르,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빠올로 비르노, 주디스 버틀러,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안또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등에까지 걸쳐 있는 언어중심적 정치이론을 비판하면서 물질적 흐름과 기계들의 흐름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기호들을 분석한다. “자본은 기호로 움직인다.”는 가따리의 주장에 근거하여 “오늘날 비판이론은 언어와 재현 중심의 사고를 넘어서고 있는가?”, “오늘날 기호들이 정치, 경제, 주체성의 생산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묻고 이로부터 자본주의 비판을 위한 새로운 이론과 비재현적 주체 이론을 전개한다.

『사건의 정치』(마우리치오 랏자라또 지음, 이성혁 옮김, 갈무리, 2017)

이 책에서 랏자라또는 현대 사상의 급진적 정치성을 되살리면서 현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권력에 저항하고 사회를 변혁하는 길을 모색한다. 그는 들뢰즈/가타리와 푸코 등의 급진적인 현대사상을 바탕으로 바흐친과 빠졸리니, 라이프니츠와 타르드와 같은 이들의 사상을 재평가하고 ‘구제’하며 현실화한다. 가능성의 발명으로부터 정치의 가능성을 사고하고 있는 『사건의 정치』는, 현대의 저항 정치가 가지고 있는 시적이고 예술적인 성격을 적실하게 드러내고 있는 책이다.

『크레디토크라시』(앤드루 로스 지음, 갈무리, 2016)

주택 소유자, 학생, 의료보험 없이 병을 앓는 사람, 신용카드 소지자 모두가 부채 상환에 허덕이며 흡사 빚구덩이에 빠져 있는 듯하다. 그 사이에 대출 상품을 판매하는 은행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몸집을 키우거나 유례없는 고수익을 올린다. 하지만 입법자들은 은행 통제에 관한 한 철저하게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앤드루 로스는 이 인상적이고도 괄목할 만한 조사연구에서 우리가 끔찍한 크레디토크라시의 손아귀에 붙들려 있다고 주장한다.

『인지자본주의』(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1)

'인지자본주의'는 인지노동의 착취를 주요한 특징으로 삼는 자본주의이다. 우리는 이 개념을 통해서 현대자본주의를 다시 사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의 문제설정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할 수 있다. 이 개념을 통해서 우리는, 금융자본이 아니라 인지노동이 현대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을 가져오는 힘이라는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그 노동의 역사적 진화와 혁신의 과정을 중심적 문제로 부각시킬 수 있다.

『빚의 마법 : 화폐지배의 종말과 유대로서의 빚』(리차드 디인스트 지음, 권범철 옮김, 갈무리, 2015)

부채를 기본적인 인간의 조건으로 다루면서, 모두가 모두에게 빚을 지고 있는 세계가 지닌 다양한 함의를 분석한다. 저자는 다양한 주제를 횡단하면서 현 채무 체제의 모순을 드러내고, 그러한 채무 체제를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유대로 재구상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우리가 한편으로는 억압적인 채무 체제를 단호히 거부할 것을, 다른 한편으로는 상호의존에 기초한 자유로운 사회적 유대로서의 빚을 발명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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