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호] 투사회보 / 김명환

김명환의 삐라의 추억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4-16 11:09
조회
370
김명환의 삐라의 추억 9

투사회보

1980년 5월 27일 새벽 1시, 박용준은 『투사회보』 제작을 중단했다. 계엄군이 광주시내로 진입 중이라는 급보가 이어지고 있었다. 계획대로 여성 동지들을 피신시켜야 했다. 『투사회보』 제작팀을 소집했다.

5월 19일부터 광천동 들불야학에서 유인물 작업을 시작했다. 호소문, 선언문, 궐기문 등 세 종류의 유인물이 먼저 나갔다. 계엄군을 몰아낸 21일부터 『투사회보』 제호를 달았다. 24일부터 작업실을 대의동 YWCA 2층 양서조합 사무실로 옮겼다. 시민항쟁지도부가 들어선 26일치 제9호부터 『민주시민회보』로 제호를 바꿨다. 27일치 제10호는 뿌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9일 동안 박용준은 잠을 잔 기억이 없다. 등사기에, 필경을 한 원지를, 그 밑에, 16절지를 넣고 가리방을 긁었다. 원지 필경을 세 번, 네 번, 어떤 때는 스무 번을 했다. 손가락이 부르트고 손목은 퉁퉁 부었다.

5월 19일, 총을 비껴 메고 곤봉을 든 계엄군이 광주YWCA신협으로 들어왔다. 계엄군은 신협 교도계장 박용준의 소지품을 검사했다. 양서조합 직원 황일봉을 연행하려다가 이를 말리는 신협 실무책임자인 참사 김영철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건너편 무등고시학원 학원생들이 야유를 보냈다. 계엄군들이 무등고시학원으로 몰려갔다. 곤봉을 휘둘렀다. 군화발로 차고 짓밟았다. 피투성이가 된 학원생들을 트럭에 실었다. 박용준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서있었다.

“야, 용준아! 빨리 와라. 지금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윤상원에게 전화가 왔다.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들불야학 일반사회 강학이 된 윤상원은 박용준의 방에서 함께 살았다. 박용준은 광천동 시민아파트 김영철의 집에 살고 있었다. 윤상원의 목소리는 다급했지만,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73년, 숭의실업고등학교 야간부 1학년이었던 박용준은 광주영신원 서경자 원장의 추천으로 광주YWCA신협 교도직으로 일하게 됐다. 광주영신원은 박용준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박용준은 조합원 방문교육, 물품배달과 수금을 담당했다.

78년 7월, 김영철이 광주YWCA신협 실무책임자인 참사로 부임했다. 광주영신원에 이어 광주YWCA신협에서, 박용준은 김영철을 다시 만났다. 김영철은 신협 소파에서 자고, 연탄난로에 라면을 끓여먹으며 생활하던 박용준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박용준은 김영철과 의형제를 맺었다.

그즈음, 광천동 천주교회에서 들불야학이 시작되었다. 김영철은 생활강학으로 참여해 시사와 레크리에이션 등을 가르쳤다. 박용준도 특별강학이 되어 대화법 등을 가르쳤다. 글씨를 잘 쓰는 박용준은 교재와 소식지를 만들었다. 박용준은 윤상원이 자신을 급하게 부르는 이유를 직감했다. 박용준은 광천동 들불야학으로 달려갔다.

이것이 웬 말입니까? 웬 날벼락입니까? 죄 없는 학생들을 총칼로 찔러죽이고, 몽둥이로 두들겨 트럭에 실어가며, 부녀자를 백주에 발가벗겨 총칼로 찌르는 놈들이 도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이제 우리가 살 길은 전 시민이 하나로 뭉쳐 청년학생들을 보호하고, 유신 잔당과 극악무도한 살인마 전두환 일파와 공수특전단 놈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쳐부수는 길뿐입니다. 5월 20일 정오부터 계속해서 광주 금남로로 총집결합시다!

박용준은 윤상원이 건네준 호소문을 원지에 철필로 썼다. 손이 떨려 필경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가슴이 떨리고 자꾸만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시작한 유인물 작업이 9일째다.

“형님! 지금 시민들이 총을 들고 싸우면서 피를 흘리고 있는데 이따위 유인물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우리도 나가서 싸우든지 해야 될 게 아닙니까?”

21일 오전, 궐기문을 배포하러 나갔던 서대석이 들어오자마자 울분을 터뜨렸다. 모두들 일손을 멈췄다. 서대석 말대로 시내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게 무슨 한가한 놀음이냐 싶었다.

“너 지금 혼자 시내로 뛰어가, 분노 하나로, 시민들을 조직하고 통제할 수 있어? 시민들의 투쟁을 조직하고 통제하면서, 그 투쟁을 한 차원 높이기 위해, 우리가 지금 이 고생을 하는 거야. 저놈들은 지금, 총을 든 한 사람보다, 천 사람이 총을 들게 만드는 한 장의 유인물을, 더 무서워한단 말이다. 이 자식아!”

윤상원이 화내는 걸 그날 처음 봤다. 들불야학 식구들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총을 든 한 사람보다, 천 사람이 총을 들게 만드는 한 장의 유인물! 운명과도 같은 그 한 마디가 항쟁기간 내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심장처럼 박동했다.

시민군은 마지막 항전을 앞두고 있었다. 여성 동지들을 YWCA 옆 건물에 연결해 놓은 비상사다리를 통해 대피시켰다. 『투사회보』 제10호 2천부를 창고에 감췄다. 박용준은 도청으로 갔다. 총이 필요했다. 300여 명의 시민군들이 도열해 총과 실탄을 지급받고 있었다.

“여러분!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투쟁에 임합시다. 불의에 대항해 끝까지 싸웁시다. 이 새벽을 넘기면 기필코 아침이 옵니다.”

윤상원이 비장하게 외쳤다. 김영철이 도청 현관 앞에 윤상원과 함께 서있었다. 김영철과 두 눈이 마주쳤다.

“형……!”

목이 메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삿짐을 리어카에 싣고 끌며 밀며, 대의동 신협에서 광천동 시민아파트까지 가던 날이 떠올랐다. 박용준에게 사람의 정을 건네준 사람. 이제 다시 못 만날지 모른다. 두 눈이 뜨거워졌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다. 박용준은 그 슬픔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아, 형……! 박용준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렸다. YWCA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용준아……!”

김영철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박용준은 뒤돌아보지 않고 뚜벅뚜벅 걸었다.

2층 양서조합 수십 장의 유리창이 박살나면서 콩 볶는 듯 총소리가 이어졌다. 사과탄이 터졌다. 다시 총소리 비명소리 군화발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였다. 박용준은 계단으로 뛰었다. 계단 밑에 김영철이 서있는 듯했다. 자신을 구하러 온 거 같았다.

“어여 가! 난 괜찮아…….”

박용준이 오른손으로 난간을 잡고 M1소총을 든 왼손을 들었다. 순간, 박용준은 자신의 눈동자 속에서 파바박 튀는 불꽃을 보았다. 박용준은 계단으로 쓰러졌다.

새벽 4시, 항쟁지도부 대변인 윤상원이 계엄군에게 살해됐다. 항쟁지도부 기획실장 김영철은 계엄군에게 체포되어 상무대로 연행됐다. 박용준이 계엄군에게 살해됐다는 말을 듣고 자살을 기도했다. 화장실 모서리에 거듭 머리를 부딪쳤다. 뇌에 깊은 상처가 났지만 계엄군은 치료해주지 않았다. 8월경부터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1981년 성탄절 특사로 출소했다. 정신질환으로 투병하던 김영철은 1998년 8월 16일 영면했다.

* 『투사회보』는 광주항쟁기간 제1호에서 제10호까지, 각 5천부에서 4만부까지 발행되었다. 제10호 2천부는 계엄군에게 압수되어 시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이 글은 박호재와 임낙평의 『윤상원평전』(풀빛, 2007년 개정판), 윤동수의 『윤상원』(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3년), 박혜강의 『5월의 불사조 박용준』(다지리, 2010년), 김영철 유고집 『못다 이룬 공동체의 꿈』(5·18기념재단, 2015년), 5‧18민주유공자유족회의 『꽃만 봐도 서럽고 그리운 날들 3』(심미안, 2008년)을 참조해서 쓴 글이다. 이글을 쓴 김명환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4년 사화집 『시여 무기여』에 시 「봄」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89년 월간 『노동해방문학』 문예창작부장, 2000년 ‘철도노조 전면적 직선제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본부’ 기관지 『바꿔야 산다』 편집장, 2007년 철도노조 기관지 『철도노동자』 편집주간으로 활동했다. 같은 제목의 시집과 산문집 『젊은 날의 시인에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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