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 <인지자본주의> 3장 발제

작성자
ludante
작성일
2018-05-12 15:41
조회
193
□ 다지원 고전읽기 세미나 ∥2018년 5월 12일∥발제자: 김정연
텍스트: 조정환, <인지자본주의>, 갈무리, 2011, 3장 인지자본주의로의 이행

1. 요약, 발췌

소제목 : ‘노동하는 신체’에서 ‘노동하는 영혼’으로
1. 2008년 이후의 자본주의의 위기도 자본순환의 일부이자 계기로서의 순환적 위기이고 곧 다시 호황으로 돌아설까? 현재 드러나고 있는 경제적 현상들과 사회정치적 현상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2. 이러한 상황의 원인은 무엇일까? 지난 30년간 자본주의의 변화를 살펴보자. 우리는 정보화를 산업혁명의 연속된 국면 중 하나로, 3차 산업혁명으로 인식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은 산업혁명의 연속이면서도 자본의 탈산업적, 인지적 재구성을 가져왔다. 이것은 생태혁명이라 부를 만한 새로운 국면으로, 도구의 도움으로 생태체계를 국지적 수준에서 보유, 보존할 수 있게 했던 신석기 혁명의 마지막 단계(농경-상업-산업), 마지막 국면(1차-2차-3차)일 뿐 아니라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생물권과 생태체계를 전지구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에서 보유, 보존할 수 있게 하는 생태혁명(신석기-생태)을 준비하는 첫 시대, 첫 국면(3차 산업혁명 = 1차 생태혁명)이다. (부탕, 인지자본주의)
3. 그러나 자본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주도되어온 생태혁명, 생물혁명은 그간 착취와 수탈을 생리이자 논리로 삼아온 자본관계 그 자체와 화해할 수 없는 주체들과 관계들을 거대하게 생산해 왔고, 오늘날의 위기의 바탕에 놓인 것은 생태혁명과 자본주의 사이의, 이 과정이 낳은 새로운 주체, 관계들과 낡은 자본관계 사이의 이 화해불가능성이다.

소소제목 : 자본주의 다이어그램의 고유성
1. 신석기 혁명은 인간이 자연자원을 채취하여 생활하던 것에서 자연자원을 가공하면 안 되는 시대로의 이행, 인간이 점점 자연지배적인 생명체로 변신하게 되는 것을 표현한다. 농경시대 나타났던 돌 도구와 토기는 산업혁명에서 방적기, 증기력, 제철업 등으로 이어졌고 이 모든 과정은 인간의 노동력이 자연을 가공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2. 농경과 산업의 차이는 산업이 도구의 기계로의 고도화, 노동력의 집중과 사회화, 그로 인한 도시의 광대한 발전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집중되고 사회화된 노동력과 발전된 생산수단의 결합만이 노동력의 단순한 재생산을 넘어 축적 가능한 잉여가치를 창출할 수 있고, 이 잉여가치의 집적과 집중에 기초해서만 자본주의의 체제의 자립적 성장과 확대가 가능했다. 자본주의는 사회화된 노동력을 노동수단과 강제적으로 분리시킨 후에 다시 재결합할 때 나타나는 특수한 효과인, 잉여가치를 착취하도록 구축된 사회적 다이어그램이다.

소소제목 : 산업자본주의의 특성과 자본구성
1. 산업자본주의의 노동력 사회화의 초점은 양의 문제이고, 노동량의 양적 분배(필요노동과 잉여노동의 시간적 분절방식)가 주요한 문제였다. 그래서 시장과 규모가 자본주의 진화의 필수적 요인이었다.
2. 시장에서 본질적인 것은 소유의 격차에 따른 불평등이다. 노동력이 사회의 최하위에 놓이는 위계제는 산업자본주의가 조직되는 기본원리였다. -- 노동력은 가축을 대신하는 에너지 상품, 노동자는 생산과정에서는 생산수단의 하나로서 그들이 생산한 기계류와 경쟁, 시장에서는 소비품으로서 그들 자신이 생산한 생산물과 경쟁. 공장의 생산과정에서는 자본가의 감독과 감시 하에 착취당했고, 시민사회에서는 자본의 재생산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감시하고 조직하는 국가에 의해 수탈되고 억압당했다.

소소제목 : 영혼이 노동하는 시대의 개시
1. 산업자본주의의 양적인 착취방식은 근대 이전에 종교나 철학에 의해 권력에 종속되어 있었던 노동자들의 영혼을 착취과정의 주변에 배치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노동자의 영혼이 저항을 조직해 내는 동력이 되었다.
2. 자본주의 발전 초기에 이 저항에 대한 자본의 대응방식은 수도원적인 것이었다. 자본은 이데올로기의 생산을 통해 영혼을 통제의 대상으로 삼았고, 영혼의 장소인 신체는 고통스런 훈육을 부과하거나, 감금, 격리시켜 다스렸다.
3. 그러나 노동자의 투쟁은 점점 더 큰 규모로 반복되었고 1871, 1917에는 권력을 장악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공포 때문에 자본은 영혼 그 자체를 직접적인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방법을 채택하게 된다. 기계화는 그것의 일차적 수단이다. 기계는 조직된 지성이며 물화된 영혼이다. 노동자의 영혼을 기계와 기계적 과정 속으로 이전함으로써 노동자의 내밀한 능력들(솜씨, 경험, 우애, 협동, 성찰, 상상 등)이 자본의 것으로 전유된다.
4. 자본의 기술집약적 재구조화는 직접적 생산과정에서 육체노동을 추방함으로써 노동의 저항을 무력화하는 반면, 자본에게는 노동에 대한 커다란 권력을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노동자는 한편에서는 신체로 직접 노동하는 물적 생산과정의 담당자가 아니라 기계를 만들어내는 연구자나 생산자의 역할을 하도록 촉구되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기계를 돌보거나 감독하는 관리자의 역할을 맡도록 강제되었다. 신체가 아니라 영혼이 직접적으로 노동하는 시대는 이렇게 적대적 투쟁의 과정 속에서 열리게 된다.

소제목 : 자본의 인지적 재구성
1. 자본주의의 이 전환을 무엇이라고 표현할 것인가? 개념을 둘러싼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것은 정보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는 문제이기도 하다.

소소제목 : 기계체제와 계급투쟁
1. 기술 발전과 산업의 역사 사이에는 긴밀한 연관이 있다. 1차 산업혁명 - 증기기술의 생산에의 응용, 2차 - 전기기술, 3차 - 전자기술이다. 전자기술의 발전과 생산에의 도입은 생산을 인간노동력의 도구적 연장이나 기계적 재현의 차원에서 벗어나게 한다. 노동계급은 낡은 기계체계에서 해방되지만 정보적 명령체계라는 새로운 기계체제에 종속된다.
2.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의해 제기된 비관주의적 해석은 1968에 의해 반박된다. 마르쿠제가 기술적 합리성의 전일적 지배력에 시선을 뺏겼다면 맑스는 기술발전과 그 결과에 내재하는 모순과 갈등을 분석하는 데 관심을 모았다.
3. 맑스에 따르면 기계의 목적은 누구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잉여가치의 생산이다. 잉여가치의 원천은 노동시간인데, 자본이 노동의 양을 늘리지 않고 노동을 절약하는 기계를 도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본이 “기계의 가치와 기계가 대신하는 노동력의 가치 사이의 차이”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노동력 가치가 상승하면 기계발명과 기계개량 및 기계도입에의 동기가 상승한다. 노동력 가치(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가치로서의 노동력 가치는 육체적으로 필수불가결한 생활수단의 가치 이하로 내려갈 수 없고 적게 일하면서 사회적 부의 더 큰 몫을 쟁취하려는 노동계급의 투쟁에 의해서 상향 압박을 받는다. 따라서 자본가는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고, 노동자를 기계와 경쟁시킴으로써 노동력 가치를 하향시키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것이 상대적 잉여가치 전략이다.
4. 기계체계의 도입은 두 가지 측면을 갖는다.(수동혁명이자 반혁명) 하나는 그것이 노동자들의 요구의 흡수라는 점이다. 기계체계는 노동계급의 노동시간 단축 요구를 실현한다. 그와 동시에 기계는 자본의 독재에 대항하는 노동계급의 반항을 타파하는 무기이다.
5. 기계의 효과 - 여성노동과 아동노동을 착취의 대상으로 끌어들여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을 높임, 노동력 가치를 구성하는 (주로 생필품들인) 상품 가격을 하락시켜 노동자들의 노동력 가치를 현저히 저하시킴, 전체 노동의 강도를 높임, 자본가는 자연적 제한이 없는 한 기계를 끊임없이 돌리고자 함, 노동일 연장의 무기로 전화되기도 한다. 이렇게 기계체계는 자본의 노동일 연장의 욕구와 긴밀하게 결합되며, 노동시간 단축의 요구에서 발생한 기계들이 오히려, 노동시간을 늘리는 도구로 역전된다.
6. “매뉴팩쳐와 수공업에서는 노동자가 도구를 사용하는데, 공장에서는 기계가 노동자를 사용한다.”
7. 인간의 인지능력이 기계화라는 방식을 통해 자본가가 노동자 투쟁을 진압하는 무기로 사용되는 상황에서,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이 폭발한다.

소소제목 : 테일러주의 및 포드주의의 기술혁신에서 케인즈주의로
1. 1848~20세기 초 러시아 혁명까지의 일련의 노동계급 투쟁들은 노동자 저항의 두 번째 국면이다. 이때 공장의 선진 노동자와 노동계급의 유기적 지식인들은 전위당을 구축하여 노동자대중의 경제투쟁을 정치투쟁으로 이끄는 방식으로 자본의 독재에 저항했다. 이에 대해서 자본은 노동자 전위들과 프롤레타리아 대중 간의 동맹의 기초를 파괴했다. “전위를 공장으로부터 절단하는 것, 그리고 계급으로부터 공장을 절단하는 것”(네그리/하트, <디오니소스의 노동>). 자본의 개혁주의의 표현인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는 생산과정의 대규모화와 노동력의 탈숙련화를 통해 볼셰비끼 전위를 계급으로부터 분리하고 그들의 계급대중에게 행사하던 헤게모니를 박탈하기 위해 채택되었다. 노동자는 움직이는 컨베이어벨트의 한 부속품이 되었고, 이를 통해 숙련노동과 그것의 권력은 해체되었다. 이를 통해 노동계급은 수평적이고 대중적인 것으로 재구성되었다.
2. 이것은 일정한 실효를 거두었지만 자본의 의도와는 반대로 노동자를 대규모로 창출하고 이들을 더 높은 사회화 수준에서 결속시키고 노동계급의 자율성을 이전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재구성했다. 대량생산에 상응하는 대량소비의 주체를 창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음으로써 체제의 모순을 증폭시켰다.(1929년 대공황) 국가와 시장의 분리라는 고전적 자유주의 신화의 종말을 가져왔다.
3. 이런 상황에서 체제의 안정은 국가권력의 이 새롭고 위험스러운 기초, 즉 노동계급의 불복종적 힘에 대한 인정을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는 생각이 케인즈를 통해 표현되었다. 케인즈는 경제와 정치의 분리를 주장하는 자유방임주의에 대항해서, 국가 자체가 경제적 구조로, 경제적 생산의 주체로 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제출했다. 국가는 생산적 주체로 되어 유효수요를 창출해야 하는데, 유효수효는 노동계급의 자율성을 승인하면서 그것이 자본의 외부로 탈주하지 않고 자본 내부에서 행동하도록 만드는 유인이다. 이렇게 노동계급과 그들의 투쟁은 자본주의 발전의 동력으로 계획될 수 있다. 케인즈는 노동계급의 요구를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 재현하는 전위의 역할을 국가에 위임하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혁명 이후 레닌의 생각과 상통한다.
4. 서구의 선진적 노동기술 혹은 노동방식과 엄격한 노동규율을 결합시키는 것이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촉진할 것이라는 레닌의 생각은 <옥중수고>의 그람시에서도 거의 그대로 재생산된다. 그람시는 미국주의와 포드주의가 경제를 계획화하려는 경향의 표현이며 이에 걸맞은 새로운 유형의 노동자를 길러내기 위한 장치들임을 밝힌다.
5. 그람시는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가 전래의 인간성이나 정신성을 파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성이나 정신성이 노동 속에서 유지되고 실현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부정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6. 그람시가 말하는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의 이 노력은 사회주의의 유지를 위해 당 및 국가의 권력을 빌어 엄격한 노동규율을 부과하려한 레닌의 의지와 동질적이다. 그람시 역시 레닌처럼 노동규율의 부과를 반대하지 않았으며, 동물성의 극복과 새로운 인간유형의 창출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 그는 미래의 새로운 사회에서는 규율들이 습관화되어 노동계급의 자기규율로 전화될 것이라고 보았다.

소소제목 : 1968년 혁명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전자, 정보 혁명
1. 그러나 1929년의 위기를 노동규율에 의지한 포드주의와 테일러주의만으로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케인즈는 소득과 소비의 지속적 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것은 고용율을 완전 고용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임금을 생산성 향상의 수준에 맞추어 지속적으로 향상시켜 나감으로써 가능했다. 이것이 전후 서구 복지국가들과 동구의 사회주의 국가들을 지탱한 새로운 정치적 프레임이다. 1968년 혁명은 이 프레임에 대항하여 폭발했다.
2. 서구에서 그것은 먼저 제도적 노동자운동의 위기로 표출되었다. 제도적 노동자운동은 노동규율을 내면화하여 영구개혁주의를 실천했다. 그것은 노동계급의 인지적 능력 전체를 ‘자발적으로’ 계획자 국가에, 그리고 거대기계들에 위임하는 것이었다. 이 힘은 전자기술에 기초한 집중화되고, 대규화된 새로운 생산체계를 가능하게 했고 산업생산을 대체한 에테르적인 정보기계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이제 노동은 탈영토화, 비물질화되며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교육적, 정보적 강제를 통해 노동자를 온종일 자본의 전횡 아래에 묶어 놓는다.
3. 들뢰즈는 이러한 사회를 통제사회라고 명명한다. 이러한 공간에서 지배는 노동자를 기계에 묶어두는 직접적 노동규율, 즉 훈육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적 통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소소제목 : 정보화의 결과
1. 정보화는 포드주의 노동자의 결정적 패배, 자본에의 총체적 포섭을 함축한다. 노동자의 힘의 기계로의 이전은 자본의 일관되고 영속적인 지배전략이다. 오늘의 전자 혁명 역시 그 과정의 최근의 국면으로서, 개별 노동자들의 지성과 지식, 그리고 감정을 생산적 기계체계 속으로 직접적으로 전유하고 병합하는 과정이다.
2. 오늘날의 정보화는 기술집약적 생산을 높은 수준의 인지집약적 생산으로 다시 대체한다. 이로써 인간이 창조한 신이 인간을 지배하고, 노동자가 생산한 기계가 노동자를 지배하듯, 노동자가 생산한 인지기계들이 그 인지력의 원천인 노동자를 생산세계에서 추방하는 역설이 재연된다.
3. 오늘날 노동이 추방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고기술 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증대된다. 디지털화된 지구적 노동기계체제는 고기술 노동자들(과학자, 엔지니어, 연구자들, 기술자)을 이용하여 소프트웨어를 생산하면서 나머지 노동자들을 유연한 노동자로 배치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4. 복지국가 혹은 사회적 국가에서는 노동을 계획하고 조직하는 수단으로 자본이 국가를 사용할 수 있었고 노동 역시 자본의 운동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국가를 사용할 수 있었는데 오늘날 국가는 더는 디지털화된 자본의 이동을 제어하지 못하며, 자본의 논리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떠맡는다. 자본의 자유화와 민영화의 후원, 자본의 핵심적 이윤원천으로 된 지적재산권과 특허권의 보장, 노동자들의 지구적 탈주 운동인 이민의 통제, 아래로부터의 저항에 대한 경찰적 통제 같은 것이 국가의 주요한 역할이다.

소제목 : 노동의 인지적 재구성
1. 자본과 국가의 인지화는 노동의 인지화의 결과이다. 노동의 인지화를 비물질노동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는데, 이는 노동과정에서 독립된 물질적 생산물이 산출되지 않음에 주목할 때 그러하다.
2. 신체의 운동인 산업노동에서와 달리, 영혼의 운동인 인지노동에서 노동시간은 양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다. 인지노동자의 모든 시간들은 생산된 가치의 관점에서 볼 때 서로 동질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평균화하거나 양적으로 분할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3. 인지노동에서는 교환이 생산을 매개하기를 중지한다. 생산과정이 직접적으로 소비과정이자 유통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에 노동의 ‘가치’는 교환가치에 의해 지배되기보다 노동과정에서 그 노동이 갖는 구체적 유용성과 특수한 질에 의해 더 많이 지배된다.
4. 하지만 인지노동자의 노동력은 여전히 교환되는 상품으로 존재한다. 노동력이 교환되는데 생산물을 낳지 않기 때문에 교환을 거치지 않고 생산과정에서 직접 소비되어 가치화된다면 노동력의 교환가치는 무엇에 의해 측정되며 어떻게 달성될 것인가?
5. 이것은 오늘날 자본주의가 직면한 실제적 어려움 그 자체를 반영한다. 이 난점은 노동의 인지화와 교환가치의 지배 사이의 실제적 모순과 갈등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인지노동들은 그 노동의 수행형태상의 유사성이 커져감에도 불구하고 내용에서는 점점 더 호환불가능한 것으로 되어간다. 그래서 양적 추상화가 점점 어려워진다. 이것은 다른 가치화의 요구, 가치전환의 요구를 더 강력하게 제기하는 힘이자 조건으로 되고 있다.

소소제목 : 예술노동의 경우
1. 예술의 노동자성을 주장하는 것은 예술과 노동 사이의 공통성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 점에서는 진일보한 측면을 갖지만 이것은 간과할 수 없는 ‘상실’을 수반한다. ‘예술은 노동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술활동이, 고용된 산업노동과는 달리 강제성을 갖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술이 특이한 것이고 내재적 윤리성을 함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예술이 노동으로 된 실재적 현실을 외면하게 되며 노동과 자신을 분리시킴으로써 예술의 특권성을 주장하는 엘리뜨주의를 드러낼 위험에 노출된다.
2. 이 두 관념은 모두 산업노동을 노동의 표준에서 삼는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우리는 인지화된 노동의 평면에서 두 명제를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 우리 시대에 ‘예술은 노동이다’라고 할 때 노동이 산업노동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예술은 인지노동이다. 산업노동의 헤게모니 시대에 예술가들을 노동자로 만드는 경향이 부상했다면 인지노동의 헤게모니 시대에는 노동자들이 예술가로 될 필요성이 부상한다. 노동에 대한 예술의 헤게모니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소제목 : 감정노동의 경우
1. 신체가 노동에 예속될 때 영혼은 착취의 직접적 대상이 아니었다. 자본주의 이전에 영혼은 지배의 직접적 대상이었다. 오늘날 감정노동은 영혼이 신체력의 수탈을 위해 행해지는 지배의 대상에서 착취의 직접적인 대상으로 전화했음을 의미한다.
2. 감정노동자의 감정은 감정의 개인적 표현이나 활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에 의한 상업적 이용의 산물이다. 감정노동에 대한 착취는 정신질환을 사회적 규모에서 체제적으로 생산하는 과정이 된다.
전체 0

전체 53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사항
푸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읽기 세미나 참가자 모집! ― 8월 18일 토요일!
다중지성의정원 | 2018.08.12 | 추천 4 | 조회 385
다중지성의정원 2018.08.12 4 385
공지사항
비밀글 <정치철학 고전 읽기 세미나> 세미나 참가자 명단 - 2018년 8월
다중지성의정원 | 2018.02.25 | 추천 0 | 조회 20
다중지성의정원 2018.02.25 0 20
51
[발제공지] 10월 20일 오후 4시 푸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9강~12강
july123 | 2018.10.09 | 추천 0 | 조회 21
july123 2018.10.09 0 21
50
[10/06]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7강(229~262쪽) 발제
overthe | 2018.10.06 | 추천 0 | 조회 16
overthe 2018.10.06 0 16
49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8강 발제문
july123 | 2018.10.06 | 추천 0 | 조회 15
july123 2018.10.06 0 15
48
[발제공지] 10월 6일 오후 4시 푸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7강~9강
eunjin | 2018.09.19 | 추천 0 | 조회 55
eunjin 2018.09.19 0 55
47
[9/15] <생명관리정치의탄생> 6장 발제
eunjin | 2018.09.15 | 추천 0 | 조회 38
eunjin 2018.09.15 0 38
46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5강 발제
kyuslee | 2018.09.15 | 추천 0 | 조회 44
kyuslee 2018.09.15 0 44
45
[발제공지] 9월 15일 오후 4시 푸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july123 | 2018.09.02 | 추천 3 | 조회 75
july123 2018.09.02 3 75
44
[9/1] <생명관리정치의탄생> 2장 발제
eunjin | 2018.09.01 | 추천 2 | 조회 72
eunjin 2018.09.01 2 72
43
[9/1]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1강 발제
july123 | 2018.09.01 | 추천 1 | 조회 58
july123 2018.09.01 1 58
42
[8/18]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3강(83~111쪽) 발제
overthe | 2018.09.01 | 추천 2 | 조회 64
overthe 2018.09.01 2 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