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호] 자본주의의 바다에서 배회하는 ‘노예선’이라는 유령 / 염운옥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06-04 15:49
조회
269
자본주의의 바다에서 배회하는 ‘노예선’이라는 유령

마커스 레디커의 『노예선』 (갈무리, 박지순 옮김, 2018)

염운옥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 이 서평은 2018년 6월 4일 <교수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1870

지난 3월 중순 노예선 유물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워싱턴 D.C.에 있는 국립 아프리칸 아메리칸 역사문화 박물관에서였다. 2016년 가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한 이 박물관은 노예로 끌려왔지만 자랑스런 미국 시민으로 성장한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역사를 담은 성스런 전당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워싱턴기념비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는 장소성 역시 특별하다. 인상적인 건축과 넓은 공간, 3만3천점에 달하는 유물, 최신 연구와 첨단 전시기법을 반영한 전시도 훌륭했지만 가장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노예선 사우조제(Sao Jose)호에서 발굴한 유물 전시였다.

사우조제호는 1794년 12월 27일 동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512명의 노예를 싣고 브라질을 향해 출발한 포르투갈 노예선이다. 출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희망봉 인근 케이프타운 앞바다에서 좌초해 침몰했다. 512명 가운데 221명은 사망했고 나머지는 구조됐지만 곧 다시 노예로 팔려갔다. 2015년 6월 1일 난파 노예선 사우조제호의 발굴은 중간항로 해양고고학 최초이자 최고의 성과였다. 노예선 항해는 그동안 문헌기록으로만 존재했다. 선장과 선원의 기록, 생존자와 관찰자의 증언, 거래장부 같은 문헌자료 이외에 노예선 유물이 발견된 적은 없었다. 사우조제호의 목재 선체 일부, 구리 못, 도르래, 대포알 이외에도 철제 밸러스트, 쇠고랑 같은 유물이 이 배가 노예선이었음을 증명한다. 특히 철제밸러스트는 노예선의 유력한 증거다. 인간의 무게는 나무나 철보다 가볍기 때문에 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예선은 배 바닥에 철제 밸러스트를 실었다. 때로는 노예와 같은 수의 철제 밸러스트를 싣기도 했다. 노예무역의 ‘물증’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대단했다(사진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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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조제호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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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밸러스트와 선체 일부.

귀국 후 4월초 마커스 레디커의 역작 『노예선-인간의 역사』 가 번역 출간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우조제호 발굴 과정을 기록한 도록에 노예선은 ‘떠다니는 지하감옥’(floating dungeons)이라는 『노예선-인간의 역사』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가 인용돼 있었기에 더욱 반가웠다. 대서양노예무역과 노예제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축적돼 있다. 노예제 플랜테이션경제, 노예제와 자본주의의 관계, 아프리카인의 강제이주에 관해서는 물론 노예제폐지운동에 대해서도 탁월한 연구가 산더미처럼 존재한다. 하지만 노예선 자체에 주목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기존 연구들은 삼각무역의 한 축인 대서양 중간항로 항해를 노예제의 예비과정으로만 다뤘지 노예선 자체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았던 것이다. 레디커의 연구가 빛나는 이유는 노예선을 무대로 펼쳐지는 인간 드라마를 정공법으로 다뤘다는 점에 있다. 이제 해양고고학 발굴로 노예선 유물을 건져 올리는 데 성공하게 되면서 레디커의 연구는 재조명받게 될 터이다.

『노예선-인간의 역사』는 2007년 대서양노예무역 폐지 20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책이다. 영국은 1807년에, 미국은 1808년에 노예무역을 폐지했다. 2007년 영국에서는 떠들썩한 기념행사가 열렸고 제법 논쟁도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조용히 지나갔다. 왜 일까? 레디커는 미국에서 노예제는 정의를 회복하려는 노력과 노예제 피해 배상 같은 불편한 논쟁을 유발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2013년 12월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했던 인터뷰에서 레디커는 제도적 노예제는 겨우 수세대 전에 폐지됐을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노예제는 단지 불행한 역사이거나 잔혹함의 대명사가 아니라 ‘인륜에 반하는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로 재정의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리의 현재는 노예제 위에 세워진 것이고 노예제의 결과를 매일 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노예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항해 중이라는 것이다. 인종차별, 인종화 된 빈곤, 제도적 인종주의 같은 구조적 불평등에서 현대판 노예제에 이르기까지 노예제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런 현실을 바꾸려는 저항의 의지를 어떻게 길어 올릴까라는 진지한 고민을 담아 레디커는 노예선 하갑판으로 내려가 거기서부터 노예제의 역사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현실을 바꾸려는 저항의 의지

레디커는 ‘노예선의 민족지학(ethnography of the ship)’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수많은 연구들이 플랜테이션에 집중되어 있지만, 노예제의 역사적 과정은 사실상 바다에서 이루어졌다. 노예선이야말로 문화형성(cultural formation), 인종형성(race formation), 계급형성(class formation)의 장소였다는 것이다. 레디커는 『노예선-인간의 역사』 전반부에서 한 장을 할애해 돛의 개수, 배의 크기 등을 따져가며 노예선의 진화에 대해 서술한다. 초기에는 무역선을 노예선으로 개조하기도 했지만 1750년경부터는 리버풀에서 맞춤식 노예선이 건조됐다. 노예선에는 수갑, 족쇄, 쇠사슬, 채찍, 나비나사, 스펙큘럼 오리스 같은 폭력과 테러의 도구들이 실렸다. 나비나사는 엄지손가락을 죄는 나비 모양의 고문 도구이고, 스펙큘럼 오리스는 강제로 목구멍을 개방해 음식 거부하는 노예에게 강제급식을 하는 도구다. 노예선 하갑판은 가능한 한 많은 수의 노예를 싣기 위해 개조됐고 질식을 막기 위해 통풍구를 뚫었다.

하지만 레디커의 관심은 선박으로서 노예선이 아니다. 그의 영웅은 이름 없는 선원들과 노예들이다. 레디커는 이름 없는 이들을 통계 수치로 환원하는 ‘추상화(abstraction)’의 위험을 경계하고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인간적 노예무역을 추상적 통계로 다루는 것은 숫자 뒤로 숨어 죄의식을 덜어 보려는 비겁함의 발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추상화의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레디커가 활용하는 사료는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enslaved African)’ 올라우다 에퀴아노의 자서전, 선원 제임스 필드 스탠필드의 논설과 자서전, 노예선 선장이었다가 회개하고 목사가 된 존 뉴턴의 일기, 노예선 승선 의사 알렉산더 팔콘브리지의 일기 같은 노예, 선원, 선장, 의사의 기록들이었다. 이런 사료들의 행간을 꼼꼼하게 읽고, 서아프리카 노예무역항을 현지 조사해 아래로부터의 시각에서 노예무역과 노예제를 그려냈다. 아래로부터 쓰는 노예제역사, 이것이야말로 『노예선-인간의 역사』의 특징이자 미덕이다.

인간사냥에 다름없는 포획과 납치에서부터 아프리카 부족전쟁의 포로를 사들이는 경우에 이르기까지 노예를 징발하는 과정은 다양했다. 4장에서 상술하고 있는 올라우다 에퀴아노의 경우는 납치였다. 에퀴아노는 1745년 나이지리아 중부에서 이보족 족장의 아들로 태어났고, 11살 때 여동생과 함께 납치당해 노예가 됐다.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식민지 버지니아로 팔려갔다가 여러 번 주인이 바뀌는 과정을 거쳐 런던으로 오게 됐고 자유를 얻었다. 해방노예 에퀴아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서전 『에퀴아노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출판하고 노예제폐지운동에 헌신했다. 역사가 빈센트 카레타는 에퀴아노가 아프리카 출신이 아니라 아메리카 플랜테이션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레디커는 에퀴아노의 출생지가 어딘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고 본다. 노예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을 집대성한 것이 에퀴아노 이야기일 수 있으며 그럴 경우 에퀴아노는 노예무역의 구술역사가, 서사의 전승자, ‘목소리 없는 다수의 목소리(voice of voiceless)’를 대변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출신이 아니라고 해도 에퀴아노 자서전의 진정성은 훼손되지 않는다. 이러한 레디커의 해석은 ‘노예서사(slave narrative)’를 읽어내는 혜안을 보여준다.

노예선은 끔찍한 폭력의 현장이었고, 선장이 휘두르는 폭력에 살해되거나 자살한 노예들은 늘상 노예선을 따라 헤엄치는 상어 떼의 밥이 됐다. 하지만 노예선은 파괴만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대로 문화형성, 인종형성, 계급형성이 일어나는 ‘생산’의 장소이기도 했다. 근대 세계는 바로 노예선 위에서 ‘형성’됐던 것이다. 서부와 중부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서 끌려온 이보족, 템네족, 멘데족, 판테족, 골라족, 아샨티족은 언어가 달랐지만 노예선 하갑판에서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해가며 노예들의 문화를 형성했다. 동시에 노예선은 인종이 형성되는 장소였다. 여러 부족 출신의 아프리카인들은 모두 ‘흑인’으로 불리며 흑인 ‘노예’로 만들어졌다. 흥미롭게도 선원들은 아프리카인이든 유럽인이든 피부색에 관계없이 ‘백인’이라 불렸다고 한다. 흑인과 백인의 인종적 구분은 노예선상의 역사를 딛고 시작됐던 것이다. 노예선주와 선장, 상급선원, 하급선원, 노예 사이에 계급적 위계가 재생산되는 장소 역시 노예선이었다.

노예들은 단식, 자살, 사보타지, 선상 반란, 선박 탈취, 귀향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저항했다. 실패를 알지만 감행하는 투쟁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노예들은 저항했는데 저항하는 행위만이 인간임을 증명해주었기 때문이다. 두 명씩 수갑과 족쇄로 묶여 오물과 배설물로 뒤집어 쓴 채 배 밑바닥에 갇혀 대서양을 건너는 항해, 운동을 위해 북소리에 맞춰 갑판 위에서 억지로 춤을 춰야 하는 참담한 비극 속에서 저항만이 노예를 인간이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황규관 시인의 「패배는 나의 힘」에 나오는 한 구절, “끝내 패배한 자여,/ 패배가 웃음이다./ 그치지 않고 부는 바람이다”는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들의 저항에 더없이 어울리는 시구가 아닐까.

과거의 역사 아닌 노예제

노예선주와 선장의 입장에서 볼 때 노예의 가치는 선원 보다 높았다. 노예는 손상되면 손해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의사도 승선해 노예를 돌봤고, 단식투쟁을 하면 악명 높은 도구 스펙큘럼 오리스로 강제급식을 단행했다. 아메리카의 항구에 도착하기 직전에는 노예를 건강하게 보이기 위해 덥수룩해진 머리를 깍고 분칠도 했다. 반면 선원들은 항해를 끝마치고 귀향할 때 쯤 없어져 준다면 급료를 주지 않아도 되니까 좋은 일이었다. 고된 노동과 아프리카 풍토병, 말라리아 같은 열병으로 인해 선원의 사망률은 높았다. 스탠필드가 리버풀의 선원 모집에 관해 남긴 기록을 보면 노예선 선원들은 충원될 때 이미 빚더미 위에 올라있는 하층민들이었다, 밑바닥 인생인 이들은 빚을 갚기 위해 선금을 받고 노예선을 탔다. 만취한 상태에서 무슨 계약인지도 모르고 노예선 승선 계약서에 사인하고는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급선원들의 처지는 노예보다 그리 나을 것도 없었던 셈이다. 노예와 선원이 때론 동료선원 즉, ‘뱃동지(shipmate)’로서 유대감을 느끼기도 하고, 아메리카 어느 항구에 주검으로 도착해 버려진 선원을 노예가 묻어주는 인간애를 발휘했다는 사례는 그래서 실감나게 느껴진다.

마지막 장에서 레디커는 노예선 브룩스(Brooks)에 관해 썼다. 브룩스호는 1781년 리버풀에서 건조된 노예선으로 비인간적 노예무역을 고발하는 이미지로 유명해졌다. 브룩스호는 1804년 일곱 번째 항해를 마치고 은퇴했지만, 노예무역폐지운동단체가 출판한 브룩스 이미지는 향후 수십 년 동안 노예제에 대항하는 투쟁을 진전시키는데 맹활약했고 지금도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체게바라의 사진처럼 노예선 브룩스 이미지는 저항의 보편적 아이콘이 된 느낌마저 있다. 저항적 이미지의 유통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정의를 회복하는 구체적 행동과 실천에 나서는 일일 것이다. 노예제의 유산에 대한 고발은 이미지의 영역에만 머물 수 없다. 2013년 7월초 자메이카, 앤티가바부다, 아이티, 수리남 등 카리브해 국가들로 구성된 카리브해공동체(카리콤) 14개국이 300여년 만에 노예제 과거사를 청산하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노예무역과 원주민 대량학살의 과거를 보상받기 위해 영국·프랑스·네덜란드 3개국 정부를 상대로 공동 법정투쟁을 벌이기로 결의한 것이다. 케냐 독립운동에서 고문 피해를 입은 마우마우 운동가들의 개인배상을 승소로 이끈 영국 법률회사 리데이가 카리콤 보상위원회의 법률 대리인을 맡았다.

400년 간 1천200만의 아프리카인이 피해를 입은 노예무역과 노예제와 피해를 어떻게 추산산하고 어떻게 배상할 것인가? 예상대로 2018년 현재까지 재판은 열리지도 못하고 있다. 노예제 배상과 과거 극복은 피해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노예제의 유산 위에 구축된 국가에서 살아가는 가해국 미래세대의 양심을 위해서도 절실하다. 레디커가 『노예선-인간의 역사』에서 힘주어 말하고 있듯이 노예제는 결코 과거의 역사가 아니다. 노예선이라는 유령선은 오늘도 우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철저하게 아래로 내려가 노예선 하갑판으로부터 노예제역사를 재구성해낸 역사가 레디커에게 격하게 공감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살벌한 자본주의 경쟁의 바다 한복판을 저마다의 노예선을 타고 지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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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히드라 : 제국과 다중의 역사적 기원』(마커스 레디커, 피터 라인보우 지음, 정남영, 손지태 옮김, 갈무리, 2008)

제국주의 초기 식민지 건설과 노예제 상황을 역사적 사료를 통해 밝혀낸 역사서이다. 공식적인 역사서에서는 만날 수 없는 ‘장작 패고 물 긷는 사람들’, 흑인 하녀들, 혁명적인 해적 선장, 아프리카 노예들, 진정한 아메리카 혁명의 주역인 잡색 부대 등을 만날 수 있다. 히드라는 ‘헤라클레스 신봉자’들에게 맞서 싸운 선원들, 노예들, 평민들 즉 다중(multitude)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17세기 초 영국 식민지 확장의 시작부터 19세기 초 도시중심의 산업화에 이르기까지, 지배자들은 점점 세계화·지구화되는 노동체계에 질서를 부과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마그나카르타 선언 : 모두를 위한 자유권들과 커먼즈』(피터 라인보우 지음, 정남영 옮김, 갈무리, 2012)

저명한 역사가 E. P. 톰슨의 제자인 미국의 역사학자 피터 라인보우의 대표작. 인류의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전제(專制)를 제한해 온 방책들 ― 인신보호영장, 배심재판, 법의 적정 절차, 고문 금지 그리고 커먼즈(the commons) ― 이 어떻게 축소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1215년 이후 이러한 방책들의 원천인 마그나카르타의 역사적 궤적을 제시하면서, 사유화의 탐욕, 권력욕, 제국의 야망이 국가를 사로잡을 때마다 예의 오래된 권리들이 어떻게 무시되는가를 보여준다.

『캘리번과 마녀 : 여성, 신체 그리고 시초축적』(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김민철 옮김, 갈무리, 2011)

자본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남성이 임금 노동자로 탈바꿈된 것 만큼 여성이 가사노동자이자 노동력 재생산기계로 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페미니즘 역사서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닦았던 이 폭력적인 시초축적 과정에서 마녀사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었음을 밝힌다. 이 책에서는 공식적인 역사서나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쓰인 역사책에서도 다뤄지지 않는 산파 여성들·점쟁이 여성들·식민지의 원주민 여성 노예들·여성 마술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로지스틱스 - 전지구적 물류의 치명적 폭력과 죽음의 삶』(데보라 코웬 지음, 권범철 옮김, 갈무리, 2017)

로지스틱스(logistics)는 비즈니스의 물류와 전쟁의 병참을 가리키는 말이다. 로지스틱스는 상식적인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로지스틱스에 대한 학술적 연구에서도 상품을 이동시키는 순수 기술적인 문제로 다루어져 왔다. 그렇다면 이 책은 두 분야, 즉 전쟁과 비즈니스 중 무엇을 다룬 책일까? 이 책은 유통 기술에 대한 책이 아니며 전쟁술에 대한 책도 아니다. 저자는 로지스틱스가 순수 기술적인 방편이 아니라 “완전히 정치적인” 기획이라고 주장하며 로지스틱스를 현대 세계의 중심적인 문제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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