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9 발제문 올립니다

작성자
Yeongdae Park
작성일
2018-06-19 17:52
조회
676
□ 다지원 <말과 사물> 세미나 ∥ 2018년 6월 19일 ∥ 발제자: 박영대
텍스트: 푸코, 『말과 사물』, 9장

1.1 422쪽 : “이 물음들에 대해 사실 나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또한 이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합당할지 모르겠다. 언젠가는 대답할 수 있을지, 또는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에 충분한 근거를 갖게 될 날이 올지 나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왜 내가 모든 사람처럼(그리고 모든 사람들 또한) 이 물음들을 스스로 제기할 수 있는지, 그리고 왜 오늘날 내가 이 물음들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지 알고 있다. 나는 이것을 칸트나 헤겔보다는 퀴비에, 보프, 리카도에게서 더 분명하게 배웠는데, 읽을 줄 모르는 이들만이 이에 대해 의아스러워 할 것이다.”
→ 처음에는 자기 이야기를 불쑥 꺼내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니, 이 부분이야말로 이 책을 쓰게 된 이유, 혹은 절실함을 나타내고 있었다. 바로 앞 문단에서부터 푸코는 ‘물음의 조건, 질문의 발생근거’를 쓰고 있다. 우리가 언어에 대해서 제기하는 질문들은 아무런 배경없이 불쑥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사유와 지식의 방식이 바뀌고 인간이 솟아오르는 맥락 속에서 언어에 대한 새로운 질문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 질문에 답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는 조건, 사유가 그렇게 진행되는 바탕을 탐색하는 일이 중요하다. 오랜 연구 끝에, 푸코는 이 질문들이 발생하는 조건을 알았다. 헌데 이는 푸코 자신과 무관하게, 사람들이 제기하는 질문이 아니다. 푸코 자신이 지금껏 이 질문을 계속 던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았던 것이다. 즉 자신이 놓여있는 에피스테메, 자신의 사유가 전개되고 있는 조건을 파악한 것이다. (에피스테메라는 용어 자체도 푸코가 만든 것이므로, 이는 애초에 그런 것이 있다고 의심한 적도 없는, 자신의 근거를 포착하기 위한 도구인 셈이다.) 자기의 근거, 동시에 자기 사유의 조건을 이해하는 것은 왜 필요할까? 푸코는 지금의 자기 자신에게서 도약하고자 했다. 우리 시대를 떠나 더 멀리 나아가고자 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지금의 자신을 이루고 있는 조건을 탐색하는 일이고, 이 조건이 역사적으로 형성된 결과라는 것을 이해하는 일이다. 이 때문에 이전 시대의 에피스테메를 연구한 것이다. 곧 자기 자신과 자기 사유를 새롭게 구성하고, 스스로 ‘반시대적’이기 위해서 이 연구들을 수행했고 이 책을 쓴 것이다. 인간을 넘어서고자, ‘초인’이 되고자 이 책을 썼다. 물론 푸코 역시 인간을 넘어서면 무엇이 될지, 초인은 무엇일지는 몰랐다. 하지만 모르고 가는 것이야말로 진정 새로운 길이니 그건 중요하지 않다. 결국 푸코가 단순히 에피스테메들을 설명하기 위해, 사유의 변천과정을 사람들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에피스테메를 입증하기 위해 연구했다는 것은 푸코의 절박함을 외면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1.2 467쪽 : “이와 같은 (인간학이라는) 잠으로부터, 역설적이게도 사유가 각성 상태로 느끼고, 따라서 자신의 근거를 자신에게서 찾기 위해 이분되는 독단론의 순환 논리적 특성이 근본적으로 철학적 사유의 경쾌함 및 불안과 혼동될 정도로 사유를 깊은 잠으로부터 깨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사유가 가장 일찍 깨어날 가능성을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인간학의 ‘사변형’을 철저하게 허물어뜨리는 것 이외의 다른 방법이 없다. …… 오늘날의 사유가 필시 인간학의 근절을 위해 기울일 최초의 노력은 아마 니체의 경험에서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문헌학적 비판을 통해, 어떤 형태의 생물학주의를 통해 니체는 인간과 신이 서로에게 속하고 신의 죽음이 인간의 사라짐과 같은 뜻을 지니고 약속된 초인의 출현이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의 임박한 죽음을 온전히 의미하는 지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니체는 이 미래를 우리에게 약속과 동시에 책무로 제시하면서, 현대 철학이 다시 사유하기 시작할 수 있는 문턱을 가리키며, 아마 앞으로도 오랫동안 철학의 진전을 계속해서 지배하게 될 것이다. 회귀의 발견이 정말로 철학의 종언이라면, 인간의 종말은 철학의 새로운 시작이다.”

1.3 426쪽 “고전주의적 사유에서 인간은 다른 모든 존재물의 경우처럼 생득적으로 부여받는 국지적이고 제한되고 특수한 ‘본성’을 매개로 자연에 자리하지 않는다. 인간이 자연과 얽히는 것은 지식의 메커니즘과 이 메커니즘의 작용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해 고전주의 에피스테메의 광범위한 지식 속에서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이 양자의 관계는 확실하게 예견할 수 있는 기능적 계기다. 그리고 인간은 결코 고유한 밀도를 지닌 기본적인 실재로서, 모든 가능한 인식의 까다로운 대상이자 자주적 주체로서 거기에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아니다. 경제학, 문헌학, 생물학의 법칙들에 따라 살아가고 말하고 일하면서도, 또한 일종의 내부적인 비틀림과 중복에 의해 이 법칙들의 상호작용을 인식하고 완전히 밝힐 권리를 획득한 개인에 관한 근대적 주제들, 우리에게 친숙하고 ‘인문과학’의 존속과 깊은 관계가 있는 이 모든 주제는 고전주의적 사유에서 배제되어 있다. 즉 자연을 인식하고 따라서 자기 자신을 자연적 존재로서 인식하는 것을 본성으로 갖는 존재의 기묘한 중요성이 그 시대에는 세계의 한계에서 솟아오를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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