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예술] 8/17 세미나11 왜상

작성자
philo
작성일
2018-08-17 18:10
조회
196
왜상

이 장에서 라캉은 “의식을 무의식의 관점에서 어떻게 위치시킬 수 있는지를 규정”하고자 한다. 프로이트 반복 개념을 소개하다가 응시에 관한 논의로 선회한 장이다. 그는 구축되는 것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어떤 것이 쌓이고 쌓이는 데 거기에 일정한 형상이 생성되는 것, 그런데 그 형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가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의식의 관점에서 학문의 대상에서 밀려난 것을 논의의 중심으로 가져오면서 오히려 의식에 대해 묻는다.

‘나는 내가 나를 보고 있는 것을 본다’
라캉은 여기서 철학자의 모습을 본다고 말한다. 데카르트 ‘코기토’에서 나타나는 “주체가 스스로를 사유로서 파악하게 만드는 기본 양태”에 대응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현상학자들은 “나는 ‘밖에서’ 보고 있으며, 지각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각에 의해 파악된 대상들 쪽에 있다”고 명시하며, 여기에 인용된 들어가는 문장에서 그러한 태도는 “내재성에 속한 듯이 보이는 지각”을 통한 세계의 파악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각으로서의 시각은 여전히 주체의 ‘의식’과 관련되어 있다. 그것이 데카르트적 사유하는 주체를 무화하는 힘에 이르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메를로 퐁티에 이르러서 시각은 “세계의 육신이라 부른 것으로부터 시각의 원점이 출현하게 되는 과정을 복구하고 재구성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것은 “그가 남긴 엄밀한 의미에서 정신분석적인 무의식에 대한 지표들”에 이르게 하는 새로운 성찰이라고 라캉은 말한다.

응시란 무엇인가.
라캉이 응시에 대해 이야기하며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주체가 자기 자신의 분열로부터 얻는 이익이 그 분열을 결정짓는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실재가 근접함에 따라 이뤄진 자기절단, 그 최초의 분리로부터 출현한 어떤 특권적 대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라캉의 대수학에서 대상a라 불리는 것이다. 그리고 응시는 “주체가 어떤 본질적인 흔들림 속에서 환상에 매달려 있다면, 시관적 관계에서 그 환상이 의존하는 대상”이라고 말한다. 이 응시는 타자와 관계된 것처럼 보인다. 라캉은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에서 응시를 타인의 실존이라는 차원에서 다뤘던 것을 가지고 응시가 의식의 이면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말한다.
사르트르가 생각하는 응시는 불시에 나를 엄습하는 응시이다. “그 응시가 나를 엄습한다는 것은 그것이 나의 세계의 모든 관점들과 역선들을 변화시키고, 내가 자리 잡고 있는 무의 지점으로부터 유기체들의 방사형 그물망을 통해 나의 세계를 질서 짓기 때문”이라 한다. 사르트르는 이러한 타인의 응시 아래에서 응시는 포착되지 않고 사라진다고 한다. 그러나 라캉은 사르트르의 이 구절을 인용하며 “응시는 가시화된다”고 말한다. 주체를 기습해 수치심에 빠뜨리는 이 응시는 “사르트르의 텍스트 자체에서 볼 수 있듯이-내가 보고 있는 응시가 아니라 내가 타자의 장에서 상상해낸 응시”라고 해석해낸다. 여기서 “문제의 응시는 바로 타인의 현존 그 자체”이며, 이를 통해 응시의 핵심이 “주체와 주체의 관계 속에, 즉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실존이라는 기능 속에 있다”고 말한다. “주체가 대상성의 세계의 상관항”인 “반성적 의식의 주체가 아니라 욕망의 주체”라는 것이다. “욕망의 변증법을 강조하지 않으면 무엇 때문에 타인의 응시가 지각의 장을 교란시키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왜상과 원근법
원근법의 연구와 관련하여 왜상이라는 놀이가 유행했다는 것은 주체의 구성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시각의 영역이 욕망의 장에 통합되는 연결을 보여줌으로써 “욕망의 기능 속에서 응시가 갖는 특권”을 서술한다.
원근법 연구는 데카르트적 주체의 구성과 관계가 있다. 기하광학적 원근법이 회화사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그림을 구성해내는 시기와 데카르트의 성찰이 “주체의 기능을 순수한 형태로 출범시킨 바로 그 시대”는 일치한다. 그런데 이 기하광학적 원근법은 시각이 아니라 공간의 좌표화일 뿐이다. 이러한 “시각의 기하광학적 차원은 시각의 장 자체에 의해 제시되는 주체화의 본원적 관계를 완전히 규명해주기엔 한참 부족하다.”
이러한 원근법의 시대와 함께 유행했던 왜상은 원근법의 거꾸로 사용이며, 바로 이러한 방식이 주체의 사유하는 의식 바깥으로 밀려난 것들에 대한 반영처럼 보이기도 한다. “원근법을 뒤집어 사용하게 되면 저 끝에 있는 세계가 또다른 평면 위에 복원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게도 처음에 얻었던 이미지의 왜곡된 형상을 얻게 된다.” 라캉은 “[형상의] 뒤틀림은 온갖 편집증적 다의성을 유발하는데....이러한 [뒤틀림에 대한] 매혹이 원근법에 대한 기하광학적 탐구가 시각에서 놓친 것을 보완해주고 있다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주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기하광학이 연구되던 바로 그 시대에 홀바인은 무화된 것으로서의 주체에 다름 아닌 어떤 것을 가시화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주체는 엄밀히 말해 거세라는 ‘마이너스-파이’를 이미지로 구현하는 어떤 형태 속에서 무화된 주체이다. 이때 거세는 우리에게 욕망들이 근본적인 충동들의 틀을 통해 조직되는 전 과정의 중심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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