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8/21 『니체 그의 사상의 전기』 5~10장

작성자
bomi
작성일
2018-08-21 19:34
조회
840
(149~150)
니체는 1873년에 쓴 「그리스 비극 시대의 철학」에서 디오니소스적 지혜의 유형에 대해 헤라클레이토스의 예를 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일하고 영원한 생성. 즉 헤라클레이토스가 가르치고 있듯이 끊임없이 작용하고 생성될 뿐 존재하지 않는 모든 현실적인 것의 철저한 비영속성은 우리를 마비시키는 공포의 표상이며, 이 표상이 미치는 영향을 놓고 보면 지진이 일어나 확고부동한 땅에 대한 믿음을 상실할 때 느끼는 감정과 가장 유사하다. 이 작용을 정반대의 것. 즉 숭고하고 행복한 경이로 옮기는 데는 놀라운 힘이 필요했다."
격동의 존재를 특정한 시각으로 견뎌내는 것은 단순히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정관靜觀(고요하게 보다)이나 의지를 소멸시키는 문제가 아니라, 다른 의지, 즉 구성의지를 활성화시키는 문제이다. 압도하느냐, 아니면 압도당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여기에는 투쟁적인 존재론적 관계가 작용한다. 최고로 능동적인 구성의지는 압도하려는 '의식 없는' 생명력에 도전한다. 이러한 구성의지는 예술적인 의지이며, '의식 없는' 충동의 단계를 넘어서서 상승하는 삶의 의지에 봉사한다. 이 때문에 니체는 헤라클레이토스를 "심미적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이 심미적 인간이란 예술가와 예술 작품의 생성 과정을 지켜보면서 (...) 예술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필연성과 유희, 투쟁과 조화가 어떻게 짝을 이루어야 하는지는 터득한 자이다." 예술적 구성의지에서도 전체를 하나의 이미지로 압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 이처럼 하나의 이미지로 압축하는 경험에서는 역사가 제거된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목표에 이미 도달해 있기 때문에 목표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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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한국에 큰 지진이 있었다. 내가 있던 곳은 진앙과 멀리 떨어진 곳이어서, '나도 지진을 겪었다.'고 말하기엔 좀 억지스럽지만, 그래도 '나는 분명 땅이 출렁이는 걸 느꼈다!'. 강도로만 치면 늘 타는 엘리베이터의 출렁임보다도 약했지만, 그 어떤 강한 출렁임보다 더 많은 공포의 표상들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 지진의 충격으로 여러 가지를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일본'에 관한 생각도 그중 하나였다.
일본이 자리하고 있는 땅에는 지진이 자주 또 강하게 일어난다. 출렁이는 땅에 사는 이들의 공포는 비교적 단단한 땅에 사는 이들에게는 짐작하기도 힘든 것이리라. 출렁이는 땅에 자리한 일본은 한때 무시무시한 의지를 드러내며 세계로 뻗어 나가고자 했다. 그런데 이는 분명 니체-자프란스키가 말하는 '구성의 의지'는 아니다. 하지만 이 의지도 의지다. 언제나 의지가 있다. 생명은 의지다. 공포와 함께 의지는 강하게 솟는다. 그냥 죽는 존재는 없다. 문제는 바로 의지다.
두 개의 의지가 있는 것 같다. 니체-자프란스키가 말하는 '구성의 의지'와 또 좀 전에 이야기했던 제국(과거 일본)의 의지. 이 의지를 앞의 것과 구별하기 위해 '정복의 의지'라 이름 붙여 보자. 그럼 이 두 의지는 어떻게 다를까? 첫 번째 의지(구성의 의지)가 '목표를 가질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 의지'라면 두 번째 의지(정복의 의지)는 '목표를 향한 의지'라 할 수 있다. 이 두 번째 의지는 니체의 말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지진이 일어나 확고부동한 땅에 대한 믿음을 상실할 때" '의식 없는' 충동의 단계에서 피어나는 의지이다. 그런데 이러한 의지는 매우 위험해 보인다. 위험한 듯 보이는 이 의지 자체를 소멸시키면 될까? 니체-자프란스키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의지자체를 소멸시켜야 한다는 건 어리석은 발상 혹은 착각이다. 이러한 착각은 의지를 소멸시키지는 못하고 억압하게 된다. 생명은 의지다. 따라서 의지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냥 죽는 존재는 없다. 억압의 공포와 함께 의지는 강하게 뒤틀린다. 뒤틀린 의지는 '정복의 의지'와 짝을 이루고 예속의 고리를 만든다.
헤라클레이토스-니체가 말하는 '지진'을 자연적인 현상으로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강한 지진 없이도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과 마을은 모두 사라졌으니까 말이다. 까페에서는 모니터 안에 출렁이는 화살표에 시선이 붙들린 채 공포의 탄식을 지르는 이들이 자주 목격된다. 공포가 공기처럼 떠다니고 '정복의 의지'들이 피어오른다. 억압되어 뒤틀린 의지가 아래에서 그것들을 부양한다. 사실 뒤틀린 의지도 '정복의 의지'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정복의 의지'는 오로지 쌍으로만 작동한다. '정복의 의지'를 넘어설 수 있는 건 의지의 소멸이 아니라 오직 '구성의 의지'를 통해서라고 니체-자프란스키는 말한다.
그런데, 의지를 소멸시키면 그로부터 비롯되는 위험도 모두 제거할 수 있으리라 여기는 착각처럼, '정복의 의지'도 어떤 착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즉, 애초에 모든 '공포'를 소멸시켜야 한다거나(소멸시킬 수 있다거나) 혹은 그러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을 모두 없애야 한다고(없앨 수 있다고) 믿는 착각에서 '정복의 의지'가 비롯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여기에서의 '목표'는 모든 공포스러운 것, 혹은 나쁜 것이 소멸한 이상적인 상태를 뜻하는 것이고 '정복의 의지'는 곧 그런 이상적인 상태를 향한 의지이다.
그렇다면 '구성의 의지'를 이야기할 때, 니체의 표현 '이미 목표에 도달해 있음을 깨닫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정복의 의지'에서 상정한 이상적인 상태로서의 목표(모든 공포가 사라진 상태)가 이미 도래해 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이러한 정의는 우리가 흔히 우스갯 소리로 쓰는 '정신 승리'란 말에 가까운 것 같다.) 그렇다면 이미 항상 도달해 있는 이 목표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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