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0_발제] 제4고원(159-168)

작성자
objectapple
작성일
2018-11-10 10:20
조회
467
제 4고원. 1923년 11월 20일 – 언어학의 기본 전제들

p. 159
분명 실제 역사는 어떤 사회적 장에서 전개되는 몸체들의 능동작용과 수동작용을 말해주고 있으며 특정한 방식으로 그것들을 소통시키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또한 명령어들, 다시 말해 능동작용과 수동작용의 전개 속에 삽입되는 순수 행위들을 전달하기도 한다. 역사는 날짜를 몰아내지 않을 것이다.

p. 160
배치물들은 끊임없이 변주되며, 끊임없이 변형들에 내맡겨진다. 우선 상황이 개입되도록 해야 한다. 하나의 수행적 언표는 그것이 수행되도록 만들어주는 상황이업다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점을 벤베니스트는 분명히 보여준다. 누구라도 “나는 총동원령을 내린다”라고 소리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언표할 권리를 부여하는 유효한 변수가 없다면 그것은 어린애 장난이거나 정신나간 짓이지 효력을 미치는 언표행위가 아니다. 이는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말에도 해당된다. 그 말에 신뢰성을 부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 그 말을 하나의 진정한 배치물로 만드는 상황이 없다면, 그리고 이것이 짝사랑하는 사람의 말이라 해도 이 말을 하나의 권력의 표지로 만드는 상황이 없다면 이 말에는 어떤 의미도, 주체도, 수신자도 있을 수 없다. (여기서도 여전히 사람들이 복종하는 것은 권력 의지를 통해서이다...)

inq. 풍경, 사랑합니다 고객님

p. 161
그런데 상황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갖는 함의 때문에 단지 외부 상황만이 중요하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 그것은 몸체가 겪는 동일한 상황이 아니며, 또한 동일한 빗물체적 변형도 아니다. 몸체들에서 변형이 일어난다고 말하지만, 변형 자체는 비물체적이며 언표행위 내부에 있다. 랑그를 바깥과 관계시키는 표현의 변수들이 존재하지만, 이는 정확히 말하면 그것들이 언어에 내재적이기 때문에 그렇다.

화행론은 외적 상황에만 호소하지는 않는다. 화행론은 랑그가 자기 안에 갇히지 않을 충분한 내적 이유가 되는 표현의 변수들 또는 언표행위의 변수들을 도출해 낸다. 바흐친의 말마따나, 언어학이 상수들만을 추출해 낸다면 어떻게 단어 하나만으로 완전한 언표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결코 이해시키지 못할 것이다. 비록 언표행위 이론이나 랑그 이론에 완전히 내부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어떤 언어학적 범주나 규정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보충 요소”가 필요하다. 명령어의 순간성과 직접성은 변형이 귀속되는 몸체들을 변주할 역량을 단어에 제공한다.

inq. “도래할 존재의 아이를 숭배했어. 그 아이는 아버지를 선언해야 했어. 이를테면 아이는 나무보다 더 나이가 많은 열매였던 셈이지.” -Carl Jung, RED BOOK 중

p. 162
화행론은 언어의 정치학이다. (장-피에르 파예의 연구) 변형에 관한 그러한 탐구는 명령어의 변주와 관련되어 있고, 비물체적인 속성들의 변주와 관련되어 있다. 이 속성들은 사회체들의 내재적 행위들을 실행시키는 것이다.

p. 163
“모든 개개의 슬로건은 특정한 정치적 상황이 갖는 특수성들의 총체로부터 연역되어야 한다.”이러한 특수성은 언어학이 아니라 정치로 귀착될 뿐이라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가 얼마나 철저하게 안으로부터 언어에 작용하느지를 주목해야만 한다. 명령어(=슬로건)가 바뀌자마자 정치는 어휘뿐 아니라 구조며 모든 문장 요소들을 변주시킨다. 한 유형의 언표는 그것이 화행론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것에 따라서만 평가될 수 있다. 다시 말해 한 유형의 언표는 그 언표의 암묵적 전제, 그 언표가 표현하는 내재적 행위들이나 비물체적 변형, 즉 몸체들을 새롭게 재단하게 될 내재적 행위들이나 비물체적 변형과 관련해서만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직관은 문법성을 판단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 전체와 관련해서 언표행위의 내적 변수들을 평가하는 데 있다.

p. 164
(명시적 지령 → 암묵적 전제, 명령어 → 명령어가 표현하는 내재적 행위 또는 비물체적 변형, 언표행위라는 배치물 → 명령어는 이 배치물의 변수) 이 변수들이 특정한 순간에 결정 가능한 관계에 들어가게 되면, 배치물들은 기호 체제 또는 기호계적 기계 안에서 결합된다. 하지만 분명히 한 사회를 가로질러 가는 기호계는 여럿이며 한 사회에는 사실상 혼합된 체제들이 있다. 순간순간 새로운 명령어들이 생겨나서 변수들을 변주시킨다. 아직 알려진 체제에 속하지 않은 명령어들이. 따라서 명령어는 몇 가지 방식으로 잉여이다. 명령어는 자신의 본질인 전달의 견지에서 잉여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도 잉여이다.

바로 이 때문에 언표행위라는 집단적 배치물이 갖고 있는 언표들은 언제나 간접 화법이다. 간접 화법은 보고하는 언표 안에서의 보고된 언표의 현존이고 명령어 안에서의 명령어의 현존이다. 언어 전체가 바로 간접 화법이다. 간접 화법이 직접 화법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반대로 직접 화법이야말로 간접 화법으로부터 추출된 것이다. 이 추출 과정은 하나의 배치물 안에서 의미생성의 작업과 주체화의 과정이 분배되고 귀속되고 할당되는 것이고, 배치물의 변수들이 잠정적으로나마 상수적 관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직접 화법은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이며 집단적 배치물이 절단된 결과 탄생한다. 하지만 집단적 배치물은 언제나 소문(나는 여기서 내 고유명을 길어낸다)과도 같고, 서로 어울리거나 어울리지 못하는 목소리들(나는 여기서 내 목소리를 끄집어낸다)의 집합과 같다. 나는 언제나 분자적 언표행위라는 배치물에 의존한다. 이 배치물은 나를 외적으로 나타내주는 사회적 규정들에만 의존하는 것도 아니고 내 의식에 주어주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많은 이질적 기호 체제들을 결합한다. 이 배치물은 횡설수성인 것이다.

글쓰기, 그것은 아마도 이 무의식의 배치물을 백주에 드러내고, 속삭이는 목소리들을 골라내고, 부족들과 비밀스런 관용어들을 소환하는 일이며, 거기서 내가 <자아>라고 부르는 그 무엇을 추출해내는 일이리라. <나>는 하나의 명령어이다. 한 정신 분열자가 말한다. “나는 목소리들이 <그는 삶을 의식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런 의미에서 실제로 분열증적 코기토가 존재한다.
p. 165-166
하지만 그 코기토는 자기 의식을 명령어의 비물체적 변환 또는 간접 화법의 결과물로 만드는 코기토이다. 여전히 나의 직접 화법은 여기저기서 나를 가로지르는, 다른 세계나 다른 행성에서 온 자유 간접 화법이다.

그래서 우리가 명령어에 고유한 능력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상한 특징들을 알아둬야 한다. 명령어를 발송하고 지각하고 전달하는 행위는 순간적이다. (..) 사람들에게는 비물체적 변형을 파악할 때 정말로 이상적이거나 환상적인 능력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거대한 간접 화법 아래서 언어를 파악하는 소질을 갖고 있다. 부풀리고 부풀려지는 능력이 되었건 잉여에 따라 한 곡조 안에 언제나 다른 곡조를 넣어 노래할 수 있는 능력이 되었건 종교의 방언능력이 되었건 배운 적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이 되었건, 사람들은 정말로 무당과 같은 능력을 갖고 있다.

p. 166
<언어-기능이 언어와 공통의 외연을 갖는 기능이라면 어떤 점에서 그렇게 정의되는가?>
명령어, 집단적 배치물, 또는 기호 체제는 언어와 혼동될 수 없다. 하지만 그것들은 언어의 조건이다.(표현의 초선형성) 그것들은 매번 조건을 채운다. 그것들이 없다면 언어는 순수한 잠재정으로 남을 것이다(간접 화법의 초선형적 특징)

p. 167
우리는 명시적이거나 명시될 수 있는 언어적 요소인 상수들과 비언어적인 외적 요소인 변수들을 이분하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왜냐하면 상수를 사용하는 데 개입되는 화행론적 변수들은 언표행위 내부에 있고, 또한 랑그의 암묵적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 주체화 과정과 의미생성 운동이 기대고 있는 것은 바로 기호 체제나 집단적 배치물이니까. 언어-기능은 명령어들의 전달이다. 명령어들은 배치물들에 의존하고, 배치물들은 자신이 기능하는 데 필요한 변수들을 빗물체적 변형들에 의존한다. 언어학은 언어의 조건의 실행과 랑그의 요소들의 사용을 규정해주는 화행론(기호계적인 것이건 정치적인 것이건) 바깥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p. 168
Ⅱ. 어떤 “외부적” 요소에도 호소하지 않는 랑그라는 추상적인 기계가 있으리라

내용의 형식과 표현의 형식은 서로 대응하지도 부합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본성도 다르고 상호 독립적이고 이질적이다.

스토아학파는 이런 독립성을 이론화한 최초의 사람들이었다. 스토아 학파는 몸체의 능동작용-수동작용(이들은 “몸체”라는 말에 가장 큰 외연을 부여했다. 즉 형식을 부여받은 내용이라면 모두가 <몸체>이다)과 비물체적 행위(이것은 언표의 “표현된 것”이다)를 구분한다. 표현의 형식은 표현된 것이라는 날실을 통해 구성되며 내용의 형식은 물체들이라는 씨실을 통해 구성된다. 칼이 살에 박힐 때, 양분이나 독이 몸에 퍼져갈 때, 포도주 방울이 물에 떨어질 때에는 몸체들의 혼합이 있다. 하지만 “칼이 살을 벤다” “나는 먹는다” “물이 붉어진다”라는 언표는 이와는 본성상 아주 다른 비물체적 변형(사건)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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