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호] 삶을 포획하는 자본주의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ㅣ이수영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11-19 11:56
조회
60
 
 

삶을 포획하는 자본주의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이수영 (미술작가)


 

 

정동(情動, affect) 이론은 ‘다중지성의 정원’과 ‘갈무리’ 출판사가 오랫동안 힘써오고 있는 이론실천의 분야이다. 자본주의적 삶을 스스로 내면화하여 욕망하는 지금 여기의 삶에서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삶’을 발명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치와 윤리를 정동이론은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출판은 이런 맥락에 있다.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에서 밝히듯이, 이 책은 정동에 대한 오해 즉 ‘정동은 정서 혹은 감정과 같은 개인적 심리 관습’이라는 오해를 바로잡으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이 오해를 바로잡는 것이 왜 중요한지는 책 제목이 말하고 있듯 정동은 정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관계와 윤리의 문제이다. 신자유주의가 더 이상 상품이 아닌 비물질적 삶의 전 과정을 포섭하여 이윤을 창출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스스로 자본의 노예 되기를 욕망하고 있다. 이주자와 난민에 대한 차별, 갑질과 성차별 등 모든 ‘차이’에 대한 폭력이 증폭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마수미는 희망과 자유의 근거로 정동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당황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미시파시즘을 우리가 스스로 욕망하고 있다는 기묘한 문제이다. 마수미는 권력은 우리 바깥에 있지 않고 정체성을 가진 나 또는 우리의 발생의 일부라고 말한다. 권력이 현실화되는 것은 우리 자신 안에서인 것이다. 자본주의가 정동을 포섭하여 우리의 삶 자체가 시장이 되고, 시장은 우리의 삶 안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정동의 역동성이 자본의 역동성과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지경이다. 책에서 예를 들고 있는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처럼, 티브이를 사는 순간 우리는 티브이라는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서비스, 스트리밍 서비스, 홈쇼핑과 물류서비스라는 온갖 서비스 상품을 모두 사는 것이며 그런 패션과 삶의 스타일을 사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 스스로가 상품의 생산과 소비 경로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더불어 미디어의 정동 포획은 삶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생산하고 우리는 보험과 금융 상품을 산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마수미는 정치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책을 찾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강렬도를 머물게 할 것인가라고 말한다.(112쪽)


강렬도는 정동하고 정동되는 이행의 느낌이다. 이행하며 우리의 능력이 변화된 것을 느끼는 것, 달라진 차이가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의 몸 자체가 관계의 효과이며 표현이기 때문에 정동은 집단적으로 벌어지는 관계의 장, 즉 사건에서 발생한다. 집단적 운동이라는 중층결정적 이행은 매번 다르게 발생할 수밖에 없고 여기에 질적인 차이들, 무궁한 잠재성이 있다. 잠재성은 불확실하고 우발적이며 상황 의존적이다. 바로 이 불확실성과 우발성이 자유와 희망의 여지이다. 상황 의존적이라는 것은, 제약의 파괴나 회피가 자유가 아니라 바로 그 제약의 상황 자체가 자유의 근거라는 것이다. 저항은 무균실에서 태어나지 않고 폭력과 제약에서 태어난다. 정동의 공명과 간섭이라는 조율은 직접적이다. 어떤 매개도 거치지 않는다. 즉 파시즘과 자본주의적 포획에 대한 저항은 밖에서 설정되거나 대의 될 수 없다. 이데올로기 비판이나 계급 정체성 투쟁, 혹은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훈육식 저항은 낡은 것일 뿐만 아니라 지배 권력과의 공모라고까지 마수미는 말한다.


중력의 저항이 없다면 걷지도 춤추지도 못하듯이 억압과 저항은 쌍생이다. 자본주의에서 반-자본주의 정치학이 시작된다. 제약이 없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수미의 정동정치는 사건의 태동, 경험과 강렬도의 발생적 순간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밖에서 저항의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동의 잠재력으로 침잠하여 젖어 들어가 항해하며 절망적인 상황의 한계 내에서 그럼에도 지속의 방식을 찾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더 강렬하게 살 것인가, 어떻게 하면 더 충만하게 할 것인가. 미리 결정할 수 없고, 차이의 발생으로 변화해 가는 능력의 직접성은 직접민주주의의 토대가 된다. 생성에 참여하는 것만이 자유이다.


자본주의는 정동을 포획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시 정동의 맨활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바로 그 정동의 활성화의 장에 푸코의 자기배려, 자기 조직인 새로운 관계 즉 정치와 윤리의 가능성이 있다.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존재력(존재 역량을 증대시키는 가정)의 한 종류로 만들어 왔다. 그러므로 현시대에 저항의 임무는 단지 권력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 존재력에 맞서 어떻게 싸울지를 아는 것이다. 세계가 이미 언제나 증폭될 준비가 된 자유의 정도들을 제공하고 있다는 참여적 믿음, 이것이 우리가 가진 전부이다.”(169쪽)


이 책은 번역자가 빛난다. <정동정치>는 여러 인터뷰를 엮은 책이라 조직적으로 이론을 직조하기보다는 다양한 질감과 색채로 반복하여 정동 문제를 다루며 독자를 설득하고 있다. 번역자 조성훈은 각 페이지마다 친절하고 적극적인 주를 달아 마수미의 이론을 튼튼하게 받치고 넓히며 편안하게 독자를 안내하고 있다. 두툼한 옮긴이 해제를 따로 두어 마수미의 정동이론의 주요 개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인터뷰 엮음 책의 한계를 보충하며 넘어서고 있다. 이런 역서를 보면, 번역이란 지은이의 책 쓰기에 역자가 능동적으로 협업하여 다른 언어의 공간을 넓혀 번역자 역시 한 명의 저자로 활동하는 것이라는 말에 강하게 동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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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18년 8월 26일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개최된 『정동정치』 서평회에서 발표되었으며 ( http://bit.ly/2QqAQth ), 2018년 11월 14일 <울산저널>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bit.ly/2Q4Y3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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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공유인으로 사고하라 ― 새로운 공유의 시대를 살아가는 공유인을 위한 안내서(데이비드 볼리어 지음, 배수현 옮김, 갈무리, 2015)

우리 주변에 이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공유임을 인식하지 못했던 다양한 종류의 공유 사례를 보여 준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공유의 역사와 현재의 현상들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새로운 사회 패러다임으로서, 삶의 방식으로서 공유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그런 공유의 새로운 역할을 위해 우리가 공유를 어떻게 관리해 나가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텔레코뮤니스트 선언(드미트리 클라이너 지음, 권범철 옮김, 갈무리, 2014)

저자는 벤처 코뮤니즘의 개념을 발전시키면서, 자본주의 내로 문화를 포획하려 하는, 자유소프트웨어와 자유문화에 대한 기존의 자유주의적 관점과 카피라이트(copyright) 체제에 대해 비판한다. 클라이너는 카피파레프트(copyfarleft)를 제안하면서, 또래생산 라이선스의 유용한 모델을 제공한다.


마그나카르타 선언 ― 모두를 위한 자유권들과 커먼즈(피터 라인보우 지음, 정남영 옮김, 갈무리, 2012)

저명한 역사가 E. P. 톰슨의 제자인 미국의 역사학자 피터 라인보우의 대표작. 인류의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전제(專制)를 제한해 온 방책들 ― 인신보호영장, 배심재판, 법의 적정 절차, 고문 금지 그리고 커먼즈(the commons) ― 이 어떻게 축소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역사 속에서 잊힌 <삼림헌장>을 복원함으로써 커머닝의 역사를 복원한다.


인지자본주의 ― 현대 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1)

'인지자본주의'는 인지노동의 착취를 주요한 특징으로 삼는 자본주의이다. 우리는 이 개념을 통해서 현대자본주의를 다시 사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의 문제설정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할 수 있다. 이 개념을 통해서 우리는, 금융자본이 아니라 인지노동이 현대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을 가져오는 힘이라는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그 노동의 역사적 진화와 혁신의 과정을 중심적 문제로 부각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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