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다니엘 부어스틴, 『이미지와 환상』 1, 2장 27-118쪽

작성자
etranger
작성일
2018-12-07 01:03
조회
51
<1장 뉴스 모으기가 뉴스 만들기로>


발제자 - etranger



신에게서 기자에게로

과거 지루한 신문을 읽은 독자가 “오늘 세상은 재미 하나도 없다”고 말하던 때가 있었다. 이때 신문 기자의 일이란 신이나 악마가 일으킨 ‘무수한 사건’들에 대해 설명을 제공하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늘날 독자들은 지루한 신문을 읽으면, “오늘 신문은 재미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이제 기자들은 신이 일으킨 사건을 설명하는 것이 아닌, 뉴스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평범한 사건으로부터 인간적 흥미를 유발시킬 요소를 찾아내든지, 아니면 ‘뉴스 뒤에 숨은 뉴스’를 발굴해서라도, 기자들은 뉴스를 만들어야 한다. ‘뉴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 변화는 환상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키웠고, 정보와 권력에 대한 태도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이는 현대사회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뜻한다. (29-31)

가짜 사건의 발생과 기원

지난 20세기 전반기 동안 보고, 듣고, 읽은 일상적 경험들 중 더 많은 부분이 진짜가 아닌 가짜 사건으로 채워졌다. 부어스틴은 가짜 사건의 발생과 기원을 미국 현대사의 흐름에서 찾았다. 뉴스 소비와 공급이 거대하게 늘어난 것은 전신기가 발명된 19세기 초반부터였고, 전문적인 기자나 증인이 흥미진진한 사건에 대해 최신 뉴스를 만들어 공급한 것은 19세기 중반부터였다. 특히 미국-스페인 전쟁은 많은 기자들에게 신문 발행부수 확대와 보도경쟁을 일으켰고, 이들의 경쟁은 ‘그래픽 혁명(graphic revolution)’을 낳았다. 인쇄속도의 증가와 함께 이미지를 만드는 현상기술 발달도 혁명적이었다. 이제 이미지의 세계에서 활자 인쇄는 운명적으로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 이후 미국은 1세기도 안 걸려서 텔레비전 시대로 진보했다. 기술의 발달은 새롭게 정치와 결합했다. 라디오로 정치 집회가 미국 전역에 중계되고,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음성과 몸짓은 화면을 통해,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현실감과 친밀감으로 미국인에게 다가가게 되었다. ‘진짜’라는 말은 이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 예컨대 진짜 서부 카우보이보다 가짜 존 웨인을 더 멋있는 카우보이로 여기는 식으로.(34-36)

미국적인 발명품

오늘날 미디어는 한시도 쉬지 않는다. 뉴스와 뉴스 사이의 공백이 거의 없어졌다. 채워야 할 지면이 점점 많아지면서, 기자들은 기사를 좀 더 빠르게 채워넣어야 했다. 여기에는 환상에 대한 대중의 욕구와 신문 인쇄비용, 방송 제작비용의 증가라는 요인이 결합돼 있었다. 뉴스를 모으는 일은 이런 상황에서 뉴스를 ‘만드는’ 일로 변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인터뷰’라는 새로운 발명품이다. 인터뷰는 유명인사들이 나오는 토론이나 퀴즈 프로그램, 그리고 3시간짜리 산만한 토크쇼 등으로 계속 발전하였다. 부어스틴은 인터뷰를 분명한 가짜 사건으로 분류하며, 현대 저널리즘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분히 미국적인 현상이라 평가한다. 인터뷰의 등장은 초기에 이루어진 “노회한 정치가의 거짓말과 노련한 기자의 속임수”, “독자의 지성을 모독하는 책략”, “사생활 침해”와 같은 비판이 그 경향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인터뷰는 미국에서 빠르게 자리잡은 후, 전 세계로 퍼져나가 보편화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인터뷰의 기원이다.(37-39)

다음으로 살펴볼 미국적인 발명품은 ‘보도자료(news release)’다. 보도자료는 미리 정해진 미래의 시점에 일어날 사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보도자료의 등장은 한 사건의 진짜 ‘오리지널’이 무엇인지 혼동하게 만들었다. 무엇이 ‘일어났고’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보도하는 진짜 뉴스가 점차 사전에 제공된 뉴스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뉴스는 점점 더 드라마틱하게 제작되고 있으며, ‘뉴스 진행자와 기자들’은 단지 준비된 원고에 따라 연기하는 데 지나지 않았다. 단연 최고의 연기자들은 성공한 정치인들이었다. ‘최고 기자’라 비유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우호적인 기자들에게 정책을 흘려 신문 1면 헤드라인을 늘 자기 이름으로 장식하게 했다. 이러한 정략적인 뉴스 유출 외에도, 사적 자리에서 흘러나온 애매모호한 가짜 정보를 기자가 옷감으로 다시 엮어, 독자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짜 뉴스 유출은 또 다른 가짜 사건을 불러온다. 가짜 사건 참여자들은 누가 행동을 하고 누가 행동을 기록하는 사람인가를 알지 못하며, 일반 시민들은 무엇이 진짜 현실인지를 판달할 수 없게 된다. 주체와 객체, 역사와 역사가, 행위자와 기자가 뒤섞인 것이다.(42-59)

나가며

부어스틴은 링컨의 교훈을 통해 두 가지 민주주의 전제를 말한다. 첫 번째는 선동적인 정치가의 거짓말과 마땅히 있어야 할 진실 사이에는 명백하고 가시적인 구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사람들이 진실과 인위적인 이미지 중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 전제조건중 어느 것도 갖고 있지 못하다. 부어스틴은 그 원인을 기술진보의 악용으로 인해 진실과 허위의 경계가 허물어졌다는 점과 뿌리 깊은 고정관념에서 찾았다. 전자의 경우 ‘가짜 뉴스’의 스펙터클은 자연발생적인 사건보다 재미있고 유혹적이어서, 진짜 사건을 경험하지 못하게 만든다. 부어스틴은 역설적이게도 정보를 더 얻으려하면 할수록 병은 고치지 않고 증세만 키우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현대인들이 미디어로부터 얻는 정보는 대개 가짜 뉴스이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의 경우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의 명확성과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갖게 되는 편견을 말한다. 불안과 무질서의 고통 속에서 단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극적이고 극화된 가짜 뉴스는 이 지점을 파고든다.(62-66) 당장 가까운 예로 중동에서 온 제주 난민과 조현병 환자를 다루는 언론과 몇몇 사람들의 방식을 언급할 수 있겠다. 중동 난민 = 테러리스트, 조현병 환자 = 잠재적 범죄자와 같은 고정관념은 그들을 ‘국민’, ‘정상인’과 분리하길 원한다. 언론에서 소비되는 특정한 이미지가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다. 이런 편견 앞에서 전쟁으로 터전을 잃은 난민의 인권과 일상적으로 범죄위험에 노출된 조현병 환자의 위치는 가려지게 된다.




<2장 영웅이 유명인사로>

사라진 영웅

19세기에 그래픽 혁명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인간의 위대함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 약 200년 전에 위대한 인물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그의 출현 이면에는 무언가 신의 의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곤 했다. 가령 청년 헤겔은 역사에 절대적인 법칙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자유를 향해 나가는 신의 뜻 또는 절대정신(absolute spirit)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조국을 유린한 나폴레옹은 원수가 아닌,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인류 보편에 전파하는 절대정신이었다. 그러나 현대 사람들은 위대한 인물의 출연 이면에 신의 의지가 아닌, 언론 담당 매니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제 현대의 새 영웅상은 시장에서 팔릴 가치가 있는 ‘영웅’들이고, 이들은 시장을 만족시키기 위해 거침없이 대량 생산되었다. 우리는 날이 가면 갈수록 유명인과 영웅을 구분하지 못하고, 위대함에서 얻어야 할 명성을 이름만 유명해서 얻는 명성으로 격하시키고 있다.(75-79)

부어스틴은 과거 사람들이 지녔던 영웅상이 사라지고 있는 첫 번째 이유로, 인간 평등권과 주민자치를 실현시킨 민주주의 제도를 든다. 그에 따르면 미국 민주주의는 카리스마적인 사람의 출현을 전혀 원치 않는다. 또한 독선적인 성향의 국민적 지도자나 신적인 인물 또는 독재자를 두려워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20세기를 피로 물들였던 무솔린주의, 히틀러주의, 스탈린주의와 같은 전체주의에 체제 속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맹종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러나 히틀러나 스탈린이 등장하기 훨씬 오래 전부터, 개인적인 영웅을 예찬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이기도 했다. 플라톤에서 칼라일에 이르기까지 영웅숭배는 반민주주의라는 독단적인 생각이 있었다.(80-82) 두 번째 이유로는 ‘과학적’인 비판적 역사와 여기에서 파생된 비판적 전기들이 등장하면서 영웅들은 더욱 위대함을 상실해갔다.(83) 세 번째 이유로는 대중의 관심이 단지 새로움에 따른 신비로움에 머물러 있는 데 반해, 각 분야의 영웅들은 전문화로 인해 이해받기 힘들 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과학에서의 획기적인 가능성은 이해 여부와는 상관없이 상상력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람들은 유리 가가린이 최초 우주비행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그들을 환호하였다. 잭 플록, 제임스 조이스, 포크너와 같은 예술가들의 작품도 마찬가지다.(87-89)

부어스틴은 가짜 뉴스의 범람과 영웅 상실이 이루어지는 미국을 두고, ‘민중(folk)’은 사라지고 ‘대중(mass)’은 늘고 있다고 분석한다. 민중은 글도 모르고 자의식도 약한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일상생활에서 자기 나름대로 창조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언어, 제스처, 노래, 민속, 민속춤, 민요로 자신을 표현한다. 민속품은 곧 주체적인 사람의 목소리다. 그러나 대중(mass) 미디어, 대량(mass) 생산 등에 쓰이는 매스(mass)란 말은 수동적인 타깃에 불과하다. 대중은 인쇄물, 사진, 영상, 음향을 만드는 사람들이 팔려고 다가가는 대상이다. 민중은 영웅을 창조하지만, 대중은 영웅을 단지 듣고 보기만 한다. 대중은 누군가가 보여주고 들려주기만을 기다릴 뿐이다.(90)

유명인

우리는 오늘날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하고 있다. 목적 없는 공허한 삶을 모아놓은 결과가 바로 새로운 형태의 영웅 모델인 유명인이다. 유명인들은 확대경을 통해서 크게 비추는 우리 자신일 뿐이다. 그러므로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의 삶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시야 범위를 넘어설 수 없다.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TV에서 만난 이들이 우리의 빈 공간을 채워주지 못하는 이유다. 또한 유명인이 몰락해서 아무도 모르는 원래 위치로 돌아갔다고 해도, 일반사람들은 절대로 슬퍼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비극적인 영웅이란 위대한 지위에 있다가 비극적인 단점이 드러나 몰락한 사람을 뜻했다. 그러나 한때 이름을 날렸던 유명인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단지 시대의 흐름에 의해서 원래 있었던 평범한 위치로 되돌아갔을 뿐이다.(96-100) 한때 영웅이었던 린드버그는 유명인으로서의 역할에 압도당해 비극을 겪으나, 종래의 영웅들처럼 기억되지 못하고 잊혀져버렸다. 부어스틴은 린드버그의 사례를 비극적 유명인의 전형으로 삼아 자세히 분석했다.(103-113)

나가며

부어스틴은 오늘날 진정한 영웅은 대부분 익명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그들은 모세나 나폴레옹으로 대표되던 고전적 영웅들과 다르고, 잊혀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유명인들과도 다르다. 그들은 누구일까? 박봉에 시달리면서 혼자서 묵묵히 일하고, 볼품도 나지 않으면서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선생님, 간호사, 어머니, 정직한 경찰,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이 바로 진정한 영웅들이라고 부어스틴은 말한다. 역설적이게도 이들은 칭찬받지 않기 때문에 영웅으로 남게 된다. 진짜 영웅인 그들의 가치는 공허함을 채우려고 억지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점에 있다. 이들은 번쩍이다 덧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익명으로 남기 때문에 오래 기억된다.(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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