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호] 도리스 레싱 연구의 완결편ㅣ김순식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8-12-29 15:04
조회
46
 
 

도리스 레싱 연구의 완결편:
『도리스 레싱, 21세기 여성 작가의 도전』


김순식(명지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 (Doris Lessing, 1919-2013)은 88세의 나이에 2007년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가장 고령의 수상자이며, 여성 작가로는 11번째의 수상이다. 1954년 서머셋 모옴 상을 시작으로 유럽의 주요 문학상을 거의 다 수상하다시피 한 작가치고는 늦은 나이에 노벨상이 왔다. 어떤 이들에게는 “뜻밖의” 수상으로 여겨지기도 하였으나, 정작 본인의 반응은 당연한 수순으로 생각한 듯하다. 1950년 『풀잎은 노래한다』(The Grass is Singing)로 데뷔하여 2008년 『알프레드와 에밀리』를 끝으로 긴 작품 활동을 마감했다.


한국에서의 도리스 레싱에 대한 최근의 연구 활동은 작가의 명성에 비하면 소강상태라 할 수 있다. 2004년 민경숙 교수의 연구서인 『도리스 레싱: 20세기 여성의 초상』이 이제껏 유일한 단행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도리스 레싱을 꾸준히 연구하는 민경숙 교수가 2018년 새로운 연구서 『도리스 레싱, 21세기 여성 작가의 도전』을 출간했다. 처음 연구서에서 다루지 않은 레싱의 1974년 작품 『어느생존자의 비망록』부터 2007년 고령의 나이에 출간한 『클레프트』에 이르기까지 후반기 주요 작품들을 연구한 비평서이다. 나이 들어가면서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레싱과 그녀의 작품을 25년간 꾸준히 연구하는 민 교수의 열정은 서로 닮아있다고 할 수 있다.


레싱의 후반부 저서들에 대한 일반적 평가가 민 교수의 서론에 의하면, “실망스러운 작품” 또는 “읽을 만하지 못한 작품”들로 치부되어 온 상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더구나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이라 하더라도, 민 경숙 교수는 레싱이 작품에서 구현하는 메시지의 중요성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그 가치에 대해 이 비평서를 통해 설파하고 있다.


우리는 현재 21세기에 들어와 있고 여전히 온난화 등의 환경 문제, 테러 문제, 인종 및 민족 간의 갈등 문제로 시끄러운 세상에 살고 있다. 레싱이 60년간 작품을 통해 해온 일은 바로 이런 갈등으로 인해 인류가 분열되고 결국에는 종말에 이를 수 있음을 경고한 일이다. 현재의 갈등 구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지 말고 회의하고 변화시켜야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마치 세례 요한처럼 경고한 것이다.1)


이런 점에서 민 교수는 레싱을 “이 시대의 위대한 무당”으로 인정하였고, 노벨상은 그에 대한 예우라고 말한다.


민경숙 교수의 이 연구서는 세 가지 측면에서 주요 기여도를 살펴볼 수 있다. 고전문학비평계나 과학소설계 양쪽으로부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레싱의 작품들을 재평가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는 것이 이 책의 첫 번째 강점이다. 과학적 요소를 가미한 판타지 소설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평가하는 장을 마련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오늘날 과학기술 덕분에 인류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고 60, 70대 노인은 과거 40, 50대 중년과 맞먹는다고들 말하고 있다. 레싱의 경우 80, 90대에 이르러서도 젊은이들의 전유물로 간주되는 과학소설과 판타지를 계속 창작했다는데 그녀만의 커다란 차별성이 있다. 게다가 자신의 스토리에 학문의 한계, 과학기술의 야누스적인 측면, 역사의 진실 등에 대한 깊은 사색과 끈질긴 의문을 덧붙여 포스트모던적인 작품으로 변모시켰다. 하지만, 레싱의 후반부의 작품들이 판타지나 과학소설 (우주소설) 류의 작품들이기 때문에 독자들과 비평가들로부터 외면당한 측면이 있다. 독자들은 물론 인문학자들도 과학에 대한 지식이 얕은 경우가 많아 “과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레싱의 작품들을 읽어내는데 어려움을 겪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민경숙 교수의 이 비평서는 그런 어려움을 걷어내고 작품의 근간과 깊이를 이해하는데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생각된다.


두 번째 강점은 한 작가의 작품에 관한 비평집이지만 계속 다른 관점을 이용하여 글 읽기를 하려 했다는 점이다. 페미니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과학소설이론,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롯하여, 페미니즘에서도 급진적 페미니즘, 페미니즘노인학 등을 차용하였고, 과학소설의 경우 대안역사, 유토피아, 판타지 이론 등을, 포스트모더니즘의 경우 미와 추에 대한 기존 편견의 전복, 젠더에 관한 기존 사고의 전복, 역사와 신화 관한 기존 신뢰도의 전복, 이항대립의 내파 등을 이용하였으며, 현대 생물학과 현대 물리학을 인문학적 사고와 접목하여 융합적 사고를 하도록 제안하는 등 각 작품에 관한 비평을 읽을 때마다 새롭게 사색할 거리와 즐거움을 선사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딱딱한 비평집이지만 레싱의 인간적 매력을 충분히 담고 있다. 이미 노벨을 받았어야 할 레싱이 2007년에 이르러서야 받게 된 이유를 설명하면서 저자는 레싱이 ‘제인 소머즈’라는 필명으로 책을 출간하여 출판계를 당황하게 만든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인터뷰를 하거나 강연을 할 때 독자나 비평가들의 비위를 맞추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외면하게 하여 ‘컨트래리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는 일화는 레싱의 개성을 엿보게 한다.


『도리스 레싱, 21세기 여성 작가의 도전』은 “반영에서 회절로 비상하다”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레싱의 작품 성격이 전반부와 후반부가 다른 것을 “반영에서 회절로 비상하다”라고 응축해낸 것이다. 레싱의 전반부 작품이 현실 사회를 재현한 사실주의적 경향을 지녀서, 민교수는 그것을 현실의 “반영”이라고 칭했다. 반면, 레싱의 후반부 소설이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정신적·관념적 영역을 보여주는 기발한 상상과 철학적 사변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보고 마치 빛이 “회절로 비상”한 것처럼 표현했다. 레싱이 사색과 회절을 통해 과거에 일어났었을 수도 있는 일, 미래에 일어 날 수 있는 일 등에 대한 사변소설을 구현했다면(판타지, 과학소설), 그 세계로 따라 들어가서 읽어내는 일 또한 여러 학문 분야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생물학, 물리학, 지리학, 역사학 등에 대한 관심은 물론, 수피즘과 융의 정신분석학 등의 제반 사상에 대해 레싱만큼의 학문적 역량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분야에 대해 일반 독자는 물론 인문학 연구자들이 어려워하는 것과는 달리, 저자는 이블린 폭스 켈러의 『과학과 젠더』, 그리고 다나 해러웨이의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겸손한_목격자@제2의_천년.여성인간ⓒ_앙코마우스TM를_만나다』등의 번역을 통해 그 역량을 증명한 바 있다.


연구자들에게 이 비평서는 레싱 길잡이로 초석을 다지고 유용하게 이바지 하겠지만, 정작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상당 부분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지 않다. 문학 작품들을 번역하여 출간을 하는 일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작업이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음을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레싱 전문가로서 민경숙 교수의 우리말 번역으로 레싱의 다양한 작품이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많이 읽힐 수 있기를 아울러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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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의 책, p.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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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한 장의 잎사귀처럼(다나 해러웨이 외 지음, 민경숙 옮김, 갈무리, 2005)

동물학자, 페미니즘 이론가, 문화비평가로 널리 알려진 다나 J. 해러웨이와 예술비평가이자 해러웨이의 제자인 사이어자 니콜스 구디브의 대담집이다. 1997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Fleshfactor'에 실린 것을 책으로 출간했다. 영장류학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판, 사이보그 페미니즘 이론 창시, 후기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문화비평 등으로 페미니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해러웨이의 이론이 나오게 된 전기적 배경을 대담을 통해 추적한다.


집안의 노동자(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지음, 김현지·이영주 옮김, 갈무리, 2017)

이 책에서 달라 코스따는 뉴딜을 둘러싼 투쟁의 역사를 되짚는다. 이 투쟁의 흐름 속에서 노동자는 국가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 사회 재생산의 지형을 새롭게 그려나간다. 그렇다면 뉴딜과 복지 국가가 설립한 여러 기관은 노동계급을 구한 구원자였는가, 아니면 노동계급이 자율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망가뜨린 파괴자였는가? 달라 코스따는 여성과 국가가 맺고 있는 관계를 중심으로 복지 체계를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즉, 저항과 투쟁의 역학, 가정 안팎에서 기꺼이 일하려는 또는 일하기 꺼려 하는 상황, 대공황 기간 미국에서 여성이 구호 체계와 맺고 있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복지 체계를 포괄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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