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 올립니다

작성자
Yeongdae Park
작성일
2019-02-12 19:09
조회
983
□ 다지원 <니체> 세미나 ∥ 2019년 2월 12일 ∥ 발제자: 박영대
텍스트: 니체, 『차라투스트라』

1. 자기극복에 대하여

- 더 없이 지혜롭다는 자들이여, 이것이 힘에의 의지의 일종으로서 너희 의지의 전부렷다. 너희가 선과 악에 대해, 그리고 가치평가에 대해 말할 때도 그렇다. / 너희는 아직도 너희가 그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그런 세계를 창조하려고 한다. 이것이 너희의 마지막[궁극의] 희망이자 도취렷다.
→ 더없이 지혜로운 자들이 ‘진리를 향한 의지’라고 여기고 있는 것도 실은 ‘힘에의 의지’의 일종이다. 니체에게 리얼한 것, 작용하는 것은 ‘힘에의 의지’ 뿐이며, 우리 자신도, 우리의 삶도 모두 ‘힘에의 의지’의 산물이다(고 보는 것 같다). 실로 이 지혜로운 사람들도 결국은 세계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데 다만 그 방법이 사유가능한 것으로 ‘만들면서’ 일 뿐이다. 그 방법 밖에 안 남은 사람들이다.

- 강물은 이제 너희가 띄운 조각배를 보다 멀리 떠내려보낸다. 강물로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결이 부서져 포말을 내며, 노기를 띠고 용골에 부딪힌다 하더라도 문제될 것 별로 없다! / 더없이 지혜로운 자들이여, 너희의 위험은 강에 있는 것도 선과 악의 종말[끝난 지점]에 있는 것도 아니다. 저 의지 자체에, 곧 힘에의 의지, 지칠 줄 모르고 생명을 탄생시키는 생명 의지에 있는 것이다.
→ 강물이 바로 힘에의 의지다. 혹은 힘에의 의지들이 서로 부딪히고 충돌하는 전쟁터다. 나아가 이 전쟁터 전체가 ‘삶’이라고 할까. 즉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이 조각배에는 우리의 의지, 가치, 선과 악 등이 실려 있다. 그런데 이는 우리의 손을 떠나서 이탈한다. 이 가치들이 힘에의 의지가 맞부딪치는 엄청난 급류 속에서 변화한다. 때문에 우리의 삶은 매우 위태롭다. 조각배에 실려 멀리 떠내려가고, 배가 뒤집혀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원한 급류와 전쟁터 속에서 언제든 다시 조각배는 떠오른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더 강한 힘을 추구하는 강물이야말로 리얼한 것이다.

- 그리고 두 번째의 것은 이것이니, 자기 자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존재에게는 명령이 떨어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 번역확인. ‘명령이 떨어지는?’ 명령을 받는? 혹은 명령을 내리는?

- 내 보기에 모든 명령에는 시도[실험]와 모험[리스크]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명령을 할 때 생명체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걸게 되니. / 자기 자신에게 명령할 때조차도 그렇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명령에 대해서조차 보상[수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는 그 자신의 법에 대해 판관과 수호자가, 그리고 제물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이 명령은 생명 자체, 삶 자체, 혹은 힘에의 의지들이 부여하는 명령이다. 위대해지고 강해지는 댓가로 자신의 현재 삶을 건다. 자기 존재를 걸어서 획득하는 극복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법에 스스로가 ‘제물’이 될 수밖에 없다.

- 생명체를 발견하면서 나 힘에의 의지도 함께 발견했다. 심지어 누군가를 모시고 있는 자의 의지에서조차 나는 주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예상컨대 니체는 이러지 않았을까. 가까이 있는 동·식물을 관찰하고, 또 주변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니 그들 모두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 ‘힘에의 의지’라는 것을 발명해서 설명하니 모든 행동과 양상들이 설명되었다! 이 힘에의 의지는 여기 맥락에서는, ‘주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라고 할 수 있다. 노예조차도 주인이 되길 원하고 더 강한 힘을 원한다. 다만 약자들은 스스로를 걸지 않고(이게 약자의 정의이기도 하다), 강자의 힘을 훔치는 데 급급한다. 그럼에도, 이런 방식에서도 힘에의 의지는 실현되고 있다.

- 생명은 이 비밀도 내게 직접 말해주었다. 그는 말했다. “보라, 나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해야 하는 존재렷다.
→ 생명. 이것은 생명체와는 다르다. 모든 생명체들을 추동하는 것이다. 이 생명(=삶)이 힘에의 의지들의 전쟁터인 듯. 우리 자신이 극복하고자 결심하기 이전에, 삶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극복하도록 만든다. 변화하고 창조하도록 만든다. 물론 변화하기 위해서 기존의 것이 죽고 몰락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니 우리를 죽이는 것이기도 하고 살리는 것이기도 하다. 혹은 죽이면서 살리는 것. (ex, 몰락과 낙엽)

- 나 투쟁이어야 하며 생성과 목적, 그리고 목적[들] 사이의 모순이어야 한다는 것, 아, 나의 의지를 간파하는 자는 나의 의지가 그 어떤 ‘굽은’ 길을 가야 하는지도 간파하리라!
→ 그렇기에 내가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이미 투쟁이며 투쟁의 결과물이다. 나의 ‘힘에의 의지’는 나를 ‘굽은’ 길로 이끈다. 곧 생명(=삶)은 우리를 일부러 위험에 처하도록 만들고 더 가혹한 시련을 끌어당긴다. 더 빨리 몰락하도록, 더 위대하게 다시 태어나도록. 우리는 여기에 병이나 불운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아닐까. (우울증, 혹은 새로운 변화에 도전해야 하는 징표?)

- 내가 무엇을 창조하든, 내가 그것을 얼마나 사랑하든, 나 곧 내가 창조한 것과 나의 사랑에 대적하는 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되기를 나의 의지가 원하고 있으니 말이다.
→ 내가 창조한 것들은 이미 과거다. 그것과 싸워 이겨서, 나의 창조물(과거의 나), 내가 사랑하는 대상들 모두를 죽여야 한다.

- 가치를 평가하는 자들이여, 너희는 선과 악에 대한 평가와 언어[교리]로써 폭력을 휘두르고[힘을 행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너희의 숨겨진 사랑이요 영혼의 광휘이며 전율이자 넘쳐흐름이란 것이렷다. / 그러나 너희의 가치로부터 더욱 강력한 폭력[힘]과 새로운 극복이 자라나고 있다. 그것에 의해 알과 알껍질이 부서지고 있고. / 그리고 선과 악에서 창조자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자는 진정, 먼저 파괴자가 되어 가치들을 부숴버려야 한다. / 이렇게 하여 최상의 악은 최상의 선에 속하게 된다. 최상의 선은 그러나 창조적인 선이다.
→ 선과 악이라는 용어, 설명, 표현자체도 이미 힘에의 의지가 드러나는 방식이다. 이런 용어를 쓰고 이렇게 평가함으로써 힘에의 의지가 실현되고 있다. 하지만 영원하게 고정된 선악은 없다. 이 선악의 평가도 그 안에서 새로운 극복이 생겨난다. 극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기존의 선악 개념을 모두 없애야 한다. 기존의 가치에 대한 부정, 곧 사자의 방식이다. 때문에 파괴자가 필요하다. 기존의 가치를 모두 부정하기 때문에 이는 ‘악’한 것이지만, 그것은 이를 통해 창조할 자유를 얻어낸 것이기 때문에 ‘선’이기도 하다. 다만 창조로서의 선!

- 우리의 진리를 견뎌내지 못하고 부서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남김없이 부숴지기를! 지어야 할 집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으니!
→ 너무나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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