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 올립니다 <거머리>

작성자
Yeongdae Park
작성일
2019-03-12 16:47
조회
34
□ 다지원 <니체> 세미나 ∥ 2019년 3월 12일 ∥ 발제자: 박영대
텍스트: 니체, 『차라투스트라』, 4부

처음 1부부터 3부까지 내용까지, 차라투스트라는 실패했다. <머리말>의 목표였던 길동무, 자기의 길을 가기 위해 차라투스트라를 따라나설 친구를 만나지도 만들지도 못했다. 사람들에게 초인을 알려주고, 자신의 인간(적인 것)을 극복하도록 노력했지만, 어디까지나 그들은 인간이었고 동물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다시(영원회귀로 인해) 끝없이 인간이었고, 동물이었다. 끝없이 돌아오는 동물들, 영원히 다시금 생겨나는 인간들이다. 그럼에도 계속, 영원히 사람들과 함께 하겠는가? 예스! 결국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에선 실패했지만, 이 공부를 통해 영원한 회귀를 긍정하게 되었다. 미리 예상하지 못했던, 자신을 가리고 있던 것을 다시금 극복하게 된 것. 의외의 성공이자 성취였다. 머리말에서 성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연설했던 내용과 비교해보면, 그는 3부 끝에서 얼마나 달라졌던가. 얼마나 멀리 왔던가. 이 긍정 이후에 찾아오는 것들이 4부의 내용이다.

4부는 보다 높은(higher) 자들, 차라투스트라의 (일종의) 제자들의 이야기다.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이들, 가르침에 공감하는 이들이다. 물론 제자이기에 부족한 면도 있다. 그러나 쉽게 조롱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이들에 대한 연민. 차라투스트라는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동굴의 손님으로 초대한다!>
처음에는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부정적이며, 차라투스트라가 가차없이 비난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놀라운 반전! 차라투스트라는 오히려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자신의 동굴로 초대한다. 차라투스트라(=니체)가 인정사정없이 사람들은 비판/팩트폭행만 하리라 예상했던 것이야말로, 나의 오해였다. 그건 예전의, 최소한 1,2부의 모습이었다. 4부의 인물들을 하찮게 보고 있는 것은 니체가 아닌 나였다. 물론 등장인물들이 모두 단점도 있고, 잘못을 범하고도 있다. 하지만 비판만 해서는 그들을 유혹할 수 없다. 오해일지라도 약간의 ‘이해’라고 지니고 있는 이들을 안는 일이 필요하다. 보다 높은 자들이 부르짓는 비명소리를 듣고 못본 체 할 수 없다. 이것이 ‘어린아이’로서의 창조자 모습인가.

꿀 봉납: 사람을 낚는다는 것. 자기극복은 강제로 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약자와 복수(=보상)에 눈이 먼 사람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내용을 이해할 수도 없다. 남은 방법은 유혹, 미끼로 꾀어내는 것이다. 이 지점이 자발과 강제의 중간지점, 혹은 자발적이면서 강제적인 무언가 새로운 방법이지 않을까.

<거머리>
피로서 공부하고 있는 자. 좁은 거머리의 세계만을 바라보지만, 그 세계를 좁다고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좁은 부분을 깊게 탐구하는 자이며, 그 외의 부분에서는 무지하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자. 피를 제공함으로써만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실천하는 자. 하지만 그 공부가 자신을 소진시키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이 안타까움과 연민!

피를 흘리고 있던 사내는 여전히 화는 풀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웃어보였다. “웬 상관이람!”
- 예상외의 인격!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웃어주기도 쉽지 않다.

오, 이 무슨 행운인가! 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나를 이 늪으로 유혹한 이 하루는 찬양받을지어다! 오늘날 살아 있는 자 가운데 더없이 활발하게 피를 빨아내는 자는 찬양받으라. 위대한 양심의 거머리인 차라투스트라는 찬양받으라!

- 양심은 곧 거머리다. 우리가 잘못된 일을 할 때 양심이 우리를 콕콕 찌른다. 마치 피를 조금씩 빨아먹는 거머리처럼,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자극을 주는 것이다. 때문에 거머리는 양심 자체를 가리킨다. (ex, 소크라테스의 빈대(이).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테네의 빈대이며, 잡아죽이기 보다 오히려 필요하고 상을 줘야한다고 변론했다.) 그러므로 피를 빨아먹는 자, 거머리, 차라투스트라는 모두 좋은 삶을 위한 약간의 고통이 된다. 따라서 이 거머리 연구자는 양심의 가책을 강하게 느끼고 있는 학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양심 자체가 전부 긍정적이지는 않다. 이 양심은 죄의식이나 강제가 내면화된 형태이기 때문에 거꾸로 사람을 가장 수동적으로 만들고, 일반적인 선과 도덕에 종속되도록 만든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에 가장 소중한 피를 뺏기고 소진되고 있으면서도 이를 공부의 과정으로 오해하고 있다. 양심의 가책을 더 많이 느낄수록, 더 많이 따갑고 피를 흘릴수록, 궁극적으로 죽음이나 ‘순교’에 이를수록 배움(도덕, 윤리, 성인)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신실한 종교인들, 지나치게 도덕적인 연구자들에게 이런 일이 흔히 일어나지 않을까.) 그래서 니체는 기본적으로 ‘양심’에 비판적이다. 하지만 4부 전체 내용을 살펴보건대, 이 양심의 한계나 문제보다는 긍정적인 면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 유혹하기 위해.

나 정신의 양심을 지닌 자다. 누구든 정신의 문제에서 나보다 더 엄격하고, 엄밀하고, 가혹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 내가 그것을 배운 사람, 즉 차라투스트라를 예외로 한다면 말이다.
많은 것을 반쯤 알기보다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낫다! 낯선 사람의 판단[승인]에 힘입어 현자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주먹을 믿는 바보가 되어라! 나 사물의 바닥[뿌리, 근본]에까지 파고들어가지.
……
한 뼘 정도의 바닥[토대], 사람들은 그 위에 서 있을 수 있으렷다. 참된 앎의 양심[진실로 양심적인 앎]에는 큰 것도 작은 것도 따로 없으니.

- 차라투스트라의 제자다. 혹은 ‘반(半/反)-제자’다. 실제로 차라투스트라(=니체)는 이런 류의 말을 했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자신에게 가혹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엄격한 양심’의 문제는 아니어야 하지만, 그 맥락에서 차라투스타를 읽었다. 그러니 절반의 제자이면서 ‘안티’적 제자다. 남들의 인정이나 승인에 좌우되지 않고, 자신의 앎을 스스로 탐구한다. 양심의 뿌리와 그 토대를 모색하면서,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다.

나의 정직성이 끝나는 곳, 그곳에서 나 장님과 다를 바 없으며, 또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앎을 소망함에 있어 나 정직하기를, 말하자면 가혹하고, 엄격하며, 엄밀하고, 잔인하며, 가차없기를 바란다.

- 나름대로 정직하고 양심적인 앎을 추구하는 자. 자신의 한계도 인정하고 있다. ‘거머리’ 따위의 뇌를 연구한다고 쉽게 무시할 사람이 아니다. 그렇지만 ‘양심’의 본질을 추구하는 게 안타깝기는 하다.

“오, 차라투스트라여, 일찍이 그대는 말했지. ‘정신은 스스로 생명(삶) 속으로 파고드는 생명(삶)’이라고. 이 말이 나를 그대의 가르침으로 이끌고 유혹한 것이다. 진정, 나 내 자신의 피고 내 자신의 앎을 키워온 것이다!”

-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따르려고 한다. “정신은 스스로 생명 속으로 파고드는 생명”이다. 이 말의 본 뜻은 무엇이려나. 우선 정신조차 생명이자 삶의 한 형태다. 흔히 정신은 삶 자체와 다르며 외부에서 이를 평가하거나 뒤에서 반성하는 느낌이다. 즉 정신은 비-생명과 같은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정신 역시 생명의 한 현상이며 표현이다. 또한 정신은 ‘파고드는[cut into]’ 것으로 삶에 끼어들어 참견하면서 삶을 다르게 변화시킨다. 그런 능력이 정신과 앎에 들어있다. 때문에 삶은 자신의 일종인 ‘정신’을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다. 때문에 삶과 정신의 교차, 서로의 끼어듬이 곧 삶의 자기극복이다. [잘 와닿지는 않지만 지어냈습니다.] 그런데 이 거머리(=거머리 연구자)는 이 문장을 ‘자기 극복’이 아니라 ‘자기 소진’으로 이해하고 있다. 혹은 ‘극복’이라는 것을 소진이나 죽음으로 해석하고 있다. 공부와 올바른 삶에 대한 진정성은 있지만, 자신의 말을 오해한 것에 대한 연민이 차라투스트라에게 있다. 자신의 말이 나은 결과이기도 하고. 이 자를, 이 연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비밀은 4부 뒷부분에서, 동굴에 모인 이들을 보면서 밝혀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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