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맑스코뮤날레 다중지성의 정원 세션 발표문 모음

작성자
ludante
작성일
2019-05-24 22:47
조회
2565

제9회 맑스코뮤날레


다중지성의 정원 세션



페미니즘, 정동정치, 그리고 공통장


일시 : 5월 25일 토요일 오후 1시~3시
장소 : 서강대학교 정하상관 J209


1- 사회자 : 이수영 (미술 작가)


2- 발표와 토론


발표 1 : 공통장 감수성의 징후들과 예술인간-예술체제의 동선 (조정환)
토론 1 : 이성혁 (문학평론가)


발표 2 : 여자떼 공포, 여성혐오와 인종 차별의 복합성과 역사적 전개 (권명아)
토론 2 : 이임하 (성공회대학교)


발표 3 : 움직이는 별자리들 : 포스트 대의제의 현장과 문학들 (김미정)
토론 3 : 김대성 (생활예술모임 '곳간')


발표 4 : 공통성 없는 자들의 연루 : 차질, 응축된 반작용, 취약성 (신지영)
토론 4 : 손보미 (다중지성의 정원)


*



공통장 감수성의 징후와 예술인간-예술체제의 동선
장자연 사건과 윤지오의 증언투쟁을 중심으로


조정환 (다중지성의 정원)


장자연 사건 재조사의 정치적 배경

2002년 월드컵 서포터즈(응원부대) 레즈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권력장을 ‘대~한민국’이라는 국민 공통장으로 재구성하려는 다중의 욕망을 표현했다. 2008년 촛불봉기는 공통장으로서의 대~한민국이 헌법1조에 어렴풋이나마 이미 규정되어 있는 형상임음을 발견한다. ‘대한민국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민주공화국’이라는 규정이 그것이다. 이 헌법규정은 ‘주권이 자본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자본으로부터 나오는 자본공화국’의 현실과 상충하는 상태에 있었다. 수 개월간 메트로폴리스를 중심으로 전개된 촛불봉기는 국가가 자본의 이익(자유무역)을 위해 광우병이라는 반생명적 질병을 도입하는 것에 무심하다는 사실을 고발하면서 이 상충과 모순을 축소하고 ‘공통장 대~한민국’을 회복하려는 투쟁이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현실의 대한민국의 행정, 입법, 사법, 언론 등의 권력부(府)들이 국민들의 생명을 보호하기는커녕 수장시키는 기관이며 이것들이 이윤중독적 자본주의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정치적 기둥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이때 다중들의 공통장 감수성은 미안함, 즉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로 나타났다. 그것은 자신들도 그 체제에 한 발이 묶여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공감의 정동이었다. 2016년에 이르러 2년간의 세월호 진실규명 투쟁에 의해 정부가 국민다중이 아니라 대자본에 의해 섭정되고 있음을 발견한 촛불국민들은 생명 공통장을 자본에 갖다 바치는 박근혜 대의정부를 퇴진시키고 대~한민국을 다중의 촛불공통장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다시 일어섰다. 그 최초의 성과가 국회와 헌법재판소에 대한 촛불 섭정을 통해 달성한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파면이고 그 두번째 성과는 차기정부가 촛불정부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압박하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자신을 촛불정부라고 말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2018년, “내가 겪은 성폭력”을 고발하면서 법조계, 정치권, 문화예술계 등 각계에서 터져나온 미투운동은 사회 및 생활 곳곳에 보편적으로 확산되어 있는 성폭력 체제를 가시화했다. 그것은 이른바 ‘촛불정부’가 남북관계, 한미관계, 적폐청산, 권력기관 혁신, 소득분배 등 몇몇 영역에서 거둔 일정한 개혁성과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를 온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폭로이고 도전이었다. 촛불혁명 이후의 대한민국이 여전히 성차별과 성폭력으로 분단되어 있는 현실에 대한 여성들의 이 대중적 폭로와 거부는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에 대한 전면적 여성 대중봉기의 형태로 나타났다. 미투(me-too)는 ‘미(me)’라는 특이점의 성폭력 체험과 그에 수반되는 아픔을 공통의 것으로 만들어 반-성폭력 공통장을 구축하려는 투쟁이었다. 이것은 여성에게 보편적인 체험들을 사적이고 개인적이며 특수한 수치(羞恥) 체험으로 만들어 온 권력장의 개별화 및 분할지배 테크놀로지에 대한 집단적 거부와 연합을 표현했다.  위드유(“당신과 함께”) 운동은 이 미투봉기 공통장에 대한 연대 감수성의 표현방식이었다.

미투위드유 봉기가 다중의 섭정정치의 형태로 표현된 것이 2018년 2월 장자연 사건 진상규명 청와대 국민청원이었다.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를 적폐로 규정하고 국가기구로 하여금 그것을 청산하도록 명령하는 것이 이 섭정운동의 본질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공약으로 내건 적폐청산의 틀 속에서 미투위드유 운동으로부터 제기된 장자연 사건 재조사 국민청원을 받아들여 2018년 4월 2일 장자연 사건을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사전조사대상으로 선정하고 5월 28일 검찰에 이 사건의 재조사를 권고했다. 이것은 미투위드유를 통해 구축된 반성폭력 공통장이 권력장의 성폭력적 구조를 개혁하도록 압박하는 섭정 사례이다.

윤지오의 증언투쟁

윤지오는 장자연과 함께 연예기획사 더콘텐츠에 소속되어 일했던 계약직 연예노동자였다. 그의 꿈은 훌륭한 배우가 되는 것이었지만 그의 꿈과 달리 계약기간 중 그의 노동력은 다중을 위한 연기가 아니라 권력자들을 위한 성적 서비스노동(식사 및 술 접대)으로 이용되었다. 그런데 더콘텐츠와 체결한 계약은 그러한 노동을, 연예활동 기회를 얻기 위한 프로모션, 이벤트, 인터뷰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러다가는 이미지만 실추되고 영영 배우가 되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한 그는 기획사 대표에게 연예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계약 중도해지에 대한 반성문 및 600만원의 합의금을 지불한 후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다.

2009년 3월 7일 장자연의 사망과 장례식 후 장자연이 남긴 문구 “저는 나약하고 힘 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윤지오는 “나의 언니 장자연이 왜 죽어야 했나?”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세월호의 침몰과 승객들의 난망(難忘)한 죽음 앞에서 사람들이 느꼈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감수성의 한 걸음 진전된 발현이었다. 그는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유장호와의 통화들을 녹취하여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한편 봉은사에서 본 문건 및 리스트의 사본과 원본에 대해 진술했다. 이후 그의 삶은 윤지오로서가 아니라 장자연의 동료배우로, 그리고 장자연 문건/리스트에 대한 증언자로서 규정되었다. 여러 차례의 경찰, 검찰, 법정 증언에도 불구하고 장자연과 자신이 겪었던 부당한 대우(노예계약)에 대해서는 인정되지 않았고 ‘장자연 문건’에 등장하는 ‘힘센 자들’인 방사장 일가는 무혐의처분되고 ‘리스트’는 수사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처벌은 겨우 기획사 대표들인 김종승, 유장호를 가볍게 처벌하는 것에 머물렀다. 이것이 그에게는, 언론기관이나 사법기관이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진실을 흐지부지 덮는 것을 업으로 하는 기관들이라는 것을 경험한 배신과 각성의 시간이었다.

9년 후인 2018년 한국에서 일어난 미투 봉기와 위드유 운동의 물결은 그에게 성폭력 체제와 장자연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이제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주었다. 이 기대 때문에 그는 2018년 여름 PD수첩 <故 장자연>의 인터뷰에 응했고 과거사 조사위원회 진상조사단의 증언자 요청을 계기로 마침내 장자연 사건 재조사의 증인으로 나갈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로써 윤지오는 권력이 장자연의 죽음에 대해 지난 10년간 구축해온 지배적 이미지(‘우울증-유서-자살’)에 도전하는 특이점으로, 반성폭력 공통장의 실제적 첨점으로 부상했다. 그는 한국으로 와서 조선일보 기자였던 조희천의 성추행 현장에 대해 증언했다. 윤지오의 증언을 근거로 조희천은 기소되었다. 이것은 윤지오의 증언이 실제적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시발점이었다. 이것은 2019년, 그 존재에 대해서는 유장호, 장자연 오빠, 윤지오가 공히 진술했으면서도 지금까지 아무도 그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진술하지 않았던 ‘장자연 리스트’의 일부 내용을 증언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것이 권력자들의 성폭력 행위 가능성에 대해 증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성폭력 체제 권력장과 가해자들의 반발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 반발은 아마도 재계, 정치권, 언론계, 법조계, 연예계 등의 저 ‘힘센 사람들’(장자연), ‘법 위의 사람들’(윤지오)로부터, 그리고 그 체제와 인물에 의존하고 있는 익명의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가해져 올 것이었다. 이것은 증언자가 아닌 사람들은 경험하기도 실감하기도 힘든 실제적 압력이었다.

윤지오는 이것을 회피하기보다 정면으로 맞서는 길을 택했다. 지금까지 그는 수사기관 진술증언과 언론 인터뷰에서 가명과 모자이크 처리된 가면을 사용했지만, 이제 그는 가림을 통해 자신을 방어하는 방법 대신 실명과 실면을 공개하고 증언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보호장치를 필요로 했다. 첫째로 그는 생존방송(라이브방송)을 통해 자신의 신체를 대중의 시선에 노출시켜 그 시선이 자신의 신체를 보호할 수 있도록 배치하는 한편 다수의 사람들과의 집단적 이동 및 회견을 통해 신체를 집합화함으로써 물리적 백래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했다. 둘째로 그는 국가에 대해 자신의 개인 행동 시간에 대한 경호를 요청하고 이를 제도화할 수단으로 증인보호법 제정을 국민청원했다. 이것은 진실규명을 위한 핵심장치로서 진실증언자에 대한 국가보호를 확고히 하려는 섭정노력의 표현이었다. 또 그가 “5대 강력범죄에 속하지 않는 범죄의 증언자, 목격자, 제2의 피해자들이 실질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시설과 24시간 경호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서 비영리단체 <지상의 빛>을 조직하고 후원계좌를 개설한 것도 반권력 공통장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이 두려움 없이 그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국가 지원의 부족함을 보충할 수 있는 시민들의 자구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이것은 체험한 사람만이 구체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필요였고 그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실천이었다.

그는 증언의 범위와 대상도 넓혔다. 지금까지는 주로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에서의 진술증언의 형식 속에서 수사관, 법관, 기자가 그 증언의 대상이었지만 그들이 진실의 사회화를 가로막는 행위자들일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그는 JTBC, 다스뵈이다, 고발뉴스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한 실시간 인터뷰 증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의 기자회견 등을 통해 다중들이 장자연 사건에 대한 좀더 직접적 앎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라이브방송도 다중들에게 이 사건에 관해 직접 증언할 수 있는 기회로 이용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2019년 3월 7일 장자연 10주기를 맞아 <13번째 증언>을 출판한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증언에 확고부동한 물질적 실체를 부여했고 그 물질성을 통해 다양한 유언비어들을 잠재울 수 있는 실효적 장치로 기능했다. 이러한 것들은 지금까지 경찰, 검찰, 법관, 진상조사단 등 엘리뜨의 수중에서 검토되고 자신들의 계급적 신분적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인용되어온 그 증언들을 다중이 직접 읽고 검토하면서 아래로부터 장자연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다중적 에너지가 분출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것들이 윤지오가 권력장 가해자들에 맞서 실명, 실면의 증언을 하기 위해 ‘영리하게’(smartly) 선택한 물질적이고 실천적인 장치들이었다.

성장하는 반성폭력 공통장을 해체하기 위한 백래쉬의 방향과 양상들

진실 공통장을 확대하고 아래로부터 다중의 참여를 불러내기 위한 윤지오의 이러한 ‘영리한’ 시도가 반발을 가져오리라는 것은 권력장과 공통장의 적대라는 우리 사회의 배치구조를 고려할 때, 그리고 다중지성 공통장의 특이점들(2008 촛불의 미네르바, 2014 세월호의 홍가혜, 2016 촛불의 혜경궁김씨)이 범죄자로 낙인찍혀 고초를 겪어온 역사를 고려할 때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것이었다. 권력장의 백래쉬 공세는 윤지오의 증언 자체를 흔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많은 사실들이 그 증언을 뒷받침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김학의 사건, 버닝썬 사건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었던 권력형 성범죄는 장자연의 죽음이 어떤 구조 속에서 전개된 것인지를 간접적으로 짐작케 하는 살아 있는 물증으로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백래쉬는 증언보다는 윤지오라는 증언자/메신저를 겨냥해서 주로 이루어졌다. 증언자를 관종, 패륜아, 거짓말쟁이, 사기꾼으로 만드는 여론몰이가 그것이었다.

가장 먼저 이루어진 공세는 한국 사회 가부장제의 대리인격체인 ‘아버지’로부터 가해진 폭력이다. 이 폭력은 <13번째 증언> 출판 직후인 3월 8일에 이루어졌다. 아버지는 딸이 장자연 사건에 증언하는 것에 반대했고 성과도 없이 끝날 그 증언이 어리석은 것임을 가르쳐주고자 했다. 이것은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의 가내수행자인 가부장이, 자신의 딸이 고 장자연 사건에 대해 증언한다면서 권력자들에게 성적 서비스 노동을 수행한 것을 공개리에 대중 앞에 발설할 때 그 증언들이 지금까지 늘 진실이 흐지부지되어온 역사를 고려할 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역사적 직관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할 그 숨은 이력의 공개증언을 가문의 수치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사(私事)화하고 특수화하는 관점에서 나올 수 있는 통념적이고 일반적인 반응양식이다. 가부장의 폭력은 보통 가족 구성원을 자신의 재산으로 또 노예(실제로 가족의 영어표현인 family의 어원 famulus는 ‘하인’, ‘노예’라는 뜻이다)로 간주하고 그 구성원의 행위가 자신의 뜻과 위배될 때 가부장이 행사하는 처벌형식이다. 가부장은 가문의 보존과 안녕(安寧)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무릅쓴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이 자신의 뜻에 거스르면 처벌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인데, 국가는 가정에서 가부장(혹은 그 대리인들)의 이 사적 처벌 행동에 최대한 덜 관여함으로써 가부장제를 돕고 그것과 동맹하는 방식으로 가부장제 가족을 자신의 세포기관으로 포섭한다.

두번째 공세는 권력자들과 깊게 결부된 미디어들로부터 가해져왔다. 예컨대 윤지오의 증언이 사회적 설득력을 강하게 얻어서 국회에서 윤지오가 여야 국회의원들과 간담회를 가진 날(4월 7일) 뉴시스는 이후 지속될 반윤지오 공세의 밑그림과 가이드라인(“‘증인’ 윤지오와 장자연 사건”)을 권력장 행위자들에게 제공했다. 그것은 다음 다섯 가지의 내용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1)윤지오는 장자연과 친하지 않았다 2)윤지오는 고비용의 과도한 경찰보호를 받으며 생활중이다 3)윤지오는 옛날부터 유명해지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제 장자연을 이용하여 팔로워 76만명이 넘는 SNS 스타가 됐다 4)윤지오는 장자연을 이용하여 후원계좌를 열어 돈을 벌고 있다 5)윤지오는 거짓 증언을 했으며 그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 이것들은, “윤지오가 친하지도 않았던 장자연에 대한 거짓 증언을 이용하여 유명세와 돈을 버는 사기행각을 하고 있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것으로 윤지오를 ‘제2의 왕진진(전준주)’으로 만들어 추락시키기 위한 포석이었다.

세번째 공세는 <13번째 증언>의 북콘서트가 국회에서 열린(4월 14일) 직후에 박훈-김대오-김수민 반윤지오 트리오로부터 가해져왔다. 이들은 변호사, 기자, 작가라는 전문가 지위를 윤지오를 무너뜨리는 무기로 이용했다. 이들의 주장은 크게 보면 이미 뉴시스에 의해 생산된 반윤지오 가이드라인을 자신들의 입지에서 확대재생산하는 것이었다. 박훈은 2010년 유가족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예로 들며 윤지오가 가해자의 편이지 장자연과 그 유가족의 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대오는 장자연 문건 ‘원본’에는 ‘리스트’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수민은 공적으로 알려진 윤지오는 자신이 사적으로 알고 있는 윤지오와는 다른 위선적 윤지오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들의 결합체는 윤지오를 관종, 위선자,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실제로는 가해자 편이면서 장자연을 위하는 것처럼 연극하여 사적 실리를 챙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네번째 공세는 가족, 미디어, 전문가로부터 가해진 앞의 세 유형의 공세를 유튜브, SNS를 통해 다른 형태로 무한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언어폭력과 결합시켜 윤지오의 인스타그램과 라이브방송에 퍼붓는 우/극우 세력들의 연합적이고 집중적인 디지털 테러공세로 나타났다. 이것은 justicewithus와 같은 디지털저격수, 무수한 댓글로 공격하는 디지털소총부대, 심지어 윤지오 지지자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은밀히 공격을 퍼붓는 디지털 편의대 등을 포함하는 다방면의 조직적 공세였다. 이것들은 한결같이 윤지오를 여자-왕진진으로 만드는 것에 집중되었다.

이 떼몰이 공세에 사용되는 언어들이 곰곰이 살펴보면 어떤 근거도 없는 거짓말, 지어낸 소문, 모욕 등이지만 그것들이 사실의 편린들과 결합하여 폭발성 있는 디지털 화약으로 기능함으로써 이 공세는 지배계급이 필요로 하는 낡은 감정질서 및 인지프레임을 선동적으로 재생산하면서 반성폭력 공통장을 해체하고 권력장의 영토를 넓혀 나갔다. 이 언어화약들은 진실의 편린들과 낡은 도덕감정, 그리고 가짜뉴스를 마구 버무려 만들어 낸 폭발물이었는데 이것들이 기술적으로 조직되고 반복적으로 사용되면 여론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재확인해 되었다. 그것의 효과는 미투-위드유 운동 이후에 윤지오의 증언에 의해 성장되어오던 반성폭력 공통장이 균열되어 그 일부가 권력장에 재포섭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장자연 사건을 다루는 과거사 진상조사단 내부의 갈등으로도 나타났다. 어떤 언론은 이것을 ‘국론 분열’로 표현했다.

예술인간-예술체제의 특이점과 그 동선

백래쉬로 나타난 권력장의 이러한 재포섭 전략에 대항하는 투쟁들은 어떠했는가? 권력장의 수복을 위한 반윤지오 공세가 개시된 후 그 전에 윤지오의 증언행동을 지지하고 뒷받침했던 언론들과 인사들의 상당부분은 방어를 하기보다 뒤로 물러나 관망하는 태도를 취했다. 주로 친문 언론들이 그런 태도를 취했다. 이것은 아마도 윤지오에 대한 법적 조력이 반문-비문 경향의 정의연대로부터 나왔다는 것과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윤지오 증언의 힘을 살려 내고 지키는 투쟁은 제도권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거의 전적으로 비제도 성폭력 공통장 다중으로부터 주어져야 했다. 이 투쟁은, (1) 백래쉬 주장들의 허구성에 대한 사실검증 투쟁 (2) 반성폭력 공통장의 첨점이자 특이점인 윤지오를 지키기위한 투쟁  (3)장자연 사건 재수사와 특검 요구 투쟁 그리고 (4)윤지오의 자기방어 투쟁 등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백래쉬 주장들의 허구성에 대한 사실검증 투쟁은 그 주장들이 근거 없는 풍문이나 사실에 대한 편협한 해석과 오판, 혹은 과잉된 비난 욕구 등에 의해 조작된 것들임을 비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래쉬 주장들은 특히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는 주장에 집중되었다. 이것은 장자연의 죽음이 개인적 문제이거나 기껏해야 소속 기획사의 문제이지 성폭력 권력체제나 권력자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하여 그 체제와 가해 당사자들을 방어하는 효과를 낳는다. 따라서 이 주장에 대한 사실 검증투쟁은 장자연 리스트가 실재했음을 확인하는 투쟁으로 나타났다. 이민석 변호사와 JTBC 이호진 임지수 기자 등의 노력은 이 문제를 다룸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SBS <그날이 알고 싶다>에서 방송된 장자연의 녹취육성도 장자연 리스트가 실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방향에서 조사를 수행해 나갈 수 있는 중요한 동력을 제공했다. 이처럼 장자연이 ‘힘센 사람들’로부터 받고 있는 압력을 육성으로 표현한 것, 윤지오가 유장호와의 통화내용을 녹취하여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에서 명단과 목록이 거론된 점, 2009-10년 사이의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이루어진 진술서(유장호, 윤지오, 장자연 오빠)에 ‘조심해야 할 사람들’의 명단 등이 진술된 점 등이 장자연의 실재성을 증거하는 물질적 증거로 사용될 수 있었다.

윤지오 지키기 투쟁은 반윤지오 백래쉬를 성폭력 체제의 자기방어와 재생산을 위한 ‘마녀사냥’으로 규정하고 그러한 마녀사냥식 공세에 대한 방어를 수행하는 한편 마녀사냥에 의해 입게 된 윤지오의 심리적 정신적 상처를 정서적 인지적 유대를 통해 치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그리고 윤지오가 청원한 증인보호법에 동의서명하고 증인보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 등에 참여하는 것 등으로 나타났다.

장자연 사건 재수사와 특검 요구 투쟁은 정의연대와 녹색당 등에 의해 수행되었다. 이들 시민단체와 원외 정당은 지난 10년간의 수사가 부실수사로 드러났고 조선일보 등에 의한 수사방해 외압이 실재했던 만큼 철저한 재수사가 요구되며 이를 위해서는, 이미 장자연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기존 검찰이 아니라 특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윤지오의 자기방어 투쟁이었다. 윤지오는 4월 24일 백래쉬가 폭발하던 시점에 캐나다로 몸을 옮겨 자신의 신체를 보호한 후, 인스타그램 포스팅과 라이브방송을 중심으로 방어투쟁을 전개했다. 이것은 배우지망 신인 예술가였던 윤지오가 증언자 윤지오를 거쳐 예술인간 윤지오로 변모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것은 성폭력 체제가 자신을 관종으로 이미지화하려는 시도에 맞서 자신을 예술인간으로 내세우고 예술인간 공통장을 구축하려는 시도였다. 그 시도들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포함한다.

첫째는 권력장과 그 파수꾼 및 십자군들을 향한 것으로 이들의 마녀사냥식 인신공격 디지털 테러의 범죄성을 고발하는 것이었다(선처 없는 처벌).
둘째는 거짓말쟁이, 사기꾼이라는 공세에 대해 자신의 존엄함과 떳떳함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셋째는 누구나의 특이성과 존엄성(당신들은 놀랄 만한 존재이다. 스스로 자신을 믿는 존재는 자신의 존재를 타인에게 증명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을 주장하고 연합한 특이자들의 힘(시민의 힘)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넷째는 요리 식사 잡담 등과 같은 생활시간을 투쟁과 연합의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었다.(라이브방송)
다섯째는 투쟁을 음악, 만화, 일러스트, 시, 에세이 등의 예술형식들과 결합하는 것이었다
여섯째는 투쟁을 유머와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일곱째 이러한 예술인간적 투쟁 속에서 윤지오는 증인보호법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역설했고 증인보호를 위한 비영리단체 <지상의 빛>의 구상을 구체화했다.

이 투쟁 속에서 윤지오는 고펀드미의 펀딩을 해제하여 펀더들에게 모두 되돌려줌으로써 박훈의 사기죄 고발을 무력화시키고, 후원금을 착복했다는 비난에 대해 1원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디지털 댓글테러에 대한 처벌을 통해 받을 벌금을 <지상의 빛> 후원금으로 돌리겠다고 말하고, 자신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기사, 에세이, 자료들을 지지자들과 공유하여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는 친권력담론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라이브방송을 통해 시민들과의 정서적 교감을 지속하고, 좋아하는 음악의 교류를 통해 취향공통장을 확대해 나갔다. 또 진상조사단의 행보나 발표를 비롯하여 장자연 사건 조사 관련 발언들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여 지지자들과 공유하는 것도 중요한 예술인간적 실천이었다. 가족을 욕되게 한다는 비판에 맞서 그는 가부장제 전통이 말하는 혈연적 제도적 가족이 아니라 오직 현실에서 삶을 함께 나누는 특이자들의 모임(assemblage)만이 우리 시대에 필요한 가족일 수 있다는 새로운 가족형상을 제시함으로써 전통적 가족주의의 후진성과 억압성을 고발했다. 또 고인을 욕되게 한다는 비난에 맞서 그는, 살아생전에 장자연을 알지도 못했고 고인이 된 장자연의 진실규명을 위해 삶의 단 한조각도 나누지 않은 ‘자격 없는 자’들이 산 장자연을 이용한 권력자들에게 고인을 다시 갖다 바칠 목적으로 ‘고인을 이용하지 말라!’는 자가당착적 구호를 이용하고 있다고 맞섰다.

자신을 관종으로 왜곡하고 사기꾼으로 범죄화하려는 성폭력 체제와 가해의 권력장에 대항하는 이 자기방어투쟁의 과정 속에서 윤지오는 권력장의 영토를 해체하여 공통화하는 투쟁의 예술인간 특이점으로, 삶예술의 비전문가 배우/행위자(actor)로 나타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에서 공통장을 가시화하고, 지키고, 확장해온 것은 지금까지 권력이 ‘폭도'(광주의 항쟁시민들), ‘허위사실유포자'(미네르바), ‘허언증환자'(홍가혜) 등으로 불러, 죽이고 가두고 고립시켰던 사람들의 예술인간적 행동들이었다. 윤지오의 이 예술인간 증언행동도 이러한 역사적 비운을 피할 수 없을 것인가? 아니면 이 역사적 비운을 비스듬히 비켜가는 동선을, 사선(斜線)의 도주로를 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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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장 감수성의 징후와 예술인간-예술체제의 동선」에 대한 토론문


이성혁(문학평론가)


조정환 선생님의 발표문은 윤지오의 ‘증언투쟁’을 2002년 월드컵 응원, 2008년 촛불봉기, 2014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투쟁, 2016-2017년 ‘촛불혁명’, 2018년 ‘미투 운동’을 통해 형성되어 온 ‘공통장’의 구성과 연결하여 그 의의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 ‘증언투쟁’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특히 최근 ‘좌파를 싫어하는 우파’ 및 한국사회의 권력층이 합세하여 윤지오를 공격하는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그 투쟁은 더욱 절실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증거 미비로 검찰에 재수사를 권고할 수 없다는 과거사위원회의 ‘장자연 사건’ 조사 결과 발표는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사회에 뿌리박은 권력 카르텔이 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과거사위원회 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장자연 사건 조사 발표는 위원 중 검사 측 위원의 입장 위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과거사위가 내세운 증거미비 중 하나는 증언의 신빙성-특히 윤지오의 증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증언의 신빙성을 따지는 일은 재수사 과정에서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만큼은 수사권이 없다며 미온적인 활동을 벌인 과거사위가 검찰처럼 신빙성을 판정했습니다. 이러한 발표는 권력층과 우익이 합세하여 벌인 ‘윤지오 때리기’와 ‘증언 더럽히기’가 없었다면 여론 상 감히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윤지오를 둘러싼 일련의 상황 진행은 조선일보와 같은 권력과 국가권력(검찰 등), 그리고 그 권력층을 배경으로 운동하는 ‘파시즘’ 세력-‘권력장’-이 어떻게 합세하여 반격하고 있는지 소름끼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촛불혁명’은 대의정부를 교체하는 위력을 보여주었습니다만, ‘장자연 사건’의 재수사 촉구와 이후 과정은 한국사회의 숨어 있는 진짜 권력이 무엇인지 가시화하면서 여전히 그 세력이 건재하고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이 권력과의 투쟁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권력은 사회 내부 곳곳에, 그리고 개인의 내면에까지 스며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동적인 차원에까지 권력은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지배 권력은 이러한 작동을 통해 자신의 지배를 유지하고 자신의 권력에 대한 도전을 격파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지오의 자기방어적 투쟁을 조명하고 그 투쟁에서 ‘예술인간적 실천’을 포착하는 선생님의 발표는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유투브에 깔려 있는 윤지오에 대한 비열한 공격-대부분이 인신공격, 특히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혐오와 폭력을 바탕으로 한 모욕주기–은 한 사람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것입니다. 이러한 공격에 ‘영리하게’ 대처하는 윤지오의 싸움-선생님이 일곱 가지로 정리하신-이 언어화약들의 폭발물 속에서도 ‘사선의 도주로’를 열 수 있는 가능성을 열 수 있는 예술인간적인 실천-‘예술인간 공통장’을 구축하는 실천-의 예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사실 전 윤지오가 라이브방송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저 권력 네트워크가 쏟아내는 폭력에 맞서고 도주로를 열기 위해서는 정동의 공통장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 실천 방향이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한국의 권력네트워크는 ‘촛불’의 힘을 무력화하기 위해 사회 저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권력 역시 정동의 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혐오의 정동을 통해 세력화를 시도합니다. 이 권력과 싸우기 위해서는 정동의 공통장을 형성하고 확산시키는 실천이 필요하다고 선생님도 생각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 장은 어떠한 정동의 장이어야 하는지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발표문의 ‘예술인간 공통장의 구축’이라는 표현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그렇다면 이 구축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질문 드려봅니다. 한편으로, 현재 부각된 정동의 문제설정은, 그간 다중론과 함께 거론되어온 ‘다중지성’의 문제를 가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 들기도 합니다. 이에 ‘정동의 공통장’과 ‘다중지성’의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현재 한국의 담론장에서 반지성주의가 횡행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도, ‘다중지성’의 문제 역시 정동의 문제설정과 함께 긴급하게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좀 맥락에서 벗어난 질문일까요...)
지금은 ‘적폐세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자신의 권력을 확장하고 있는 정세인 것 같습니다. (사실 국내적-국제적인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촛불세력’과 ‘촛불정부’가 밀리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래서 제2의 촛불혁명이 필요하며, 다중이 다시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자한당 해체’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촛불민심이 여전히 식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광장의 정치가 재개될 수 있을지, 그 전망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만약 광장정치가 다시 불붙는다면 공통장의 구축과 그 광장정치는 어떠한 관계를 이루게 될지, 그리고 그 방향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나아가야 하는지)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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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떼 공포, 여성 혐오와 인종 차별의 복합성과 역사적 전개


권명아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지은이)


1. 여자떼 공포,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역사적 결합체

2019년 한국 사회는 인터넷 댓글 창에 진보 논객의 팟캐스트까지 미투 운동을 음모론으로 매도하고, 피해 여성을 꽃뱀으로 공격하는 증오 선동이 끊이지 않는다. 필자는 최근 간행된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부대낌과 상호작용의 정치』에서 이에 대해 자세하게 논의를 한 바 있다.
먼저 “여자떼 공포”라는 개념은 “여성혐오(misogyny)” 개념의 초역사성을 보완하고 차별의 복합성과 역사성을 구체화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페미니즘 운동이 다시 부상하기 시작한 최근 몇 년 여성혐오는 페미니즘 운동의 이론과 실천의 핵심 개념이 되었다. 또한 여성혐오 담론은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의 번역(2012년)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여성혐오를 역사적 구체성보다는 초역사적 특성으로 개념화하는 우에노 치즈코의 논의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 혐오 개념을 탈역사적인 방향으로 정향시키는 주요한 근원이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의 다른 글 「한국과 일본에서의 반헤이트 스피치 운동과 이론에 대한 비교 고찰」1)에서 자세하게 다룬 바 있다.
한국에서는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법적 대응을 국가별로 비교한 연구는 꽤 축적되어 있다. 모든 연구에서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법적 대응 못지않게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논의되고 있지만, 막상 그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축적되지 못했다. 일본에서 헤이트 스피치 억제법이 제정되면서 한국과 비교가 되곤 하지만 막상 일본에서 헤이트 스피치 대응이 어떻게 이뤄지는 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오히려 ‘법’ 제정이 강조되면서 법적 규제에 반대하는 논자들에게는 참고 대상으로 선호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혐오를 혐오한다』가 한국어로 번역된 것이 혐오 담론 확산의 “역사적 사건”이라고까지 평가될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과 비교해보면 매우 역설적이다.2)
한국에서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최근 논의는 혐오 담론의 확산, 특히 여성혐오 담론이 확산하게 된 저간의 사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에서 주요 표적 집단은 재일조선인이고 여러 차별이 절합되는(articulation) 중층 결정 구조에서 인종차별 심급이 지배적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차별의 중층 결정 구조에서 성차별 심급이 지배적이기에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논의가 성차별에 대한 논의와 떨어질 수가 없다. 일본에서도 복합 차별에 대한 논의가 다양하듯이 차별은 이질적인 차별 방식이 결합되면서 여러 양태로 발현된다. 차별이 만들어지고 축적된 역사적 구조에 따라서 차별의 지배적 형식과 절합 방식이 다르다.3) 결국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대응은 이런 차별의 역사적 구조와 그 차이, 이에 따른 차별 심급들의 절합과 발현의 공통성과 특이성을 규명하고 이에 적절한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다.
반면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혐오에 대한 논의는 여성혐오의 탈역사적인 ‘원초성’에 보다 치중되어 있다. 남성의 성적 주체화 과정과 성적 욕망, 특히 남성 연대와 여성혐오 구조를 고대에서 현재까지 동일한 양태로 규정한다. 전시 강간은 역사적 파시즘이라는 근대 제국 일본의 역사와 구조에서 비롯되기보다는 “남성 동료 간의 연대감을 높이기 위한” 초역사적인 원초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규정된다.4) 다른 한편 일본에서 헤이트 스피치 논의는 일본의 제국주의 지배 역사와 파시즘 경험, 청산되지 못하고 반복되는 배외주의나 증오 정치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혐오에 대한 논의가 과잉되게 영향을 미치는 반면,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논의는 기이할 정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방식, 이것이 한국의 헤이트 스피치 담론 구성의 어떤 특이성을 살펴볼 수 있는 하나의 지표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에서는 제주도에 에멘 난민 사태를 계기로 페미니즘 내부의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기도 했다. 한국에서 성차별은 매우 독특한 형태의 인종차별주의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오늘날 페미니즘’의 어떤 문제들은 실상 기존의 차별주의를 계승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그런 점에서 한국의 성차별주의가 어떤 점에서 인종차별주의의 독특한 버전인지를 “여자떼 공포”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오늘날 페미니즘 정치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하낟.

2. 파시즘의 젠더 정치와 유산: 국체와 여성 신체의 독특한 연계의 역사와 여자떼 공포

한국 사회에서 성차별은 독특한 인종주의의 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폭력을 음모론으로 인지하는 건 성차별과 인종차별이 복잡하게 뒤섞인 파시즘 젠더 정치의 유산과 관련이 깊다. 특히 국체(National Body)와 여성 신체를 매우 폭력적으로 연계해 강박적으로 통제해온 파시즘 증오 정치가 남긴 적폐라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천만관객 영화의 포문을 열었던 영화 <쉬리>에서도 이러한 신체에 대한 젠더 정치는 반복된다. 국정원 요원인 남성 주인공을 파멸로 이끄는 것이 연인/부인으로 위장한 여자 간첩이고, 배 속에 도청기와 폭탄이 숨겨진 열대어 쉬리는 여자 간첩의 속성과 등가를 이룬다. 여성의 신체는 투명하지 않고,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여성의 신체는 ‘남성 주인공’과 사랑으로 연결된 것처럼 위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국가를 무너뜨리는 파괴적인 외부 세력과 연결되어 있다. 배후에 있는 ‘외부세력’도 척결 대상이지만, 외부와 연결된 내부의 적인 여성은 더 문제다. 여성 신체는 그 자체로 이렇게 외부에 의해 침투되고 오염될 위험이 많다. 그래서 항상 이성적이고 투명한 남성에 의해 감시되고 훈육되거나 그 대리인인 국가의 ‘보호’에 위탁되어야 한다. 이런 표상 체계는 역사적으로 파시즘 체제에서 형성되어, 냉전과 탈냉전을 거치며 반복과 변형을 계속해왔다.
근대 주체인 신여성은 남성 주체처럼 조국과 사회의 미래를 짊어질 정치적 주체가 아니라 서구 문물을 과도하게 동경하는 ‘허영녀’거나, 성적 주체가 아닌 과도한 욕망에 물든 ‘문란녀’로 매도됐다. 여기서 신여성은 근대적 주체이면서 동시에 서구 문물이나 서구 풍습에 과도하게 물들고 경도된(침투와 감염 공포) 존재로 매번 할당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허영녀’라는 차별표현과 여성을 ‘허영녀’라며 공격하고 배제하는 증오 선동과 혐오표현은 성차별에서 비롯된 것만이 아니라 특정한 인종공포의 산물이다. 즉 ‘허영녀’라는 차별표현을 사용한 혐오표현 공격은 역사적으로 조선과 서구적인 것에 대한 인종화된 경계가 여성의 신체로 표상되는 젠더화된 인종공포의 산물이다. 두 번째 자본의 전지구화가 막 진행된 1990년대 대표적인 성차별적 혐오표현이 ‘된장녀’라는 차별표현과 함께 다시 도래한 것은 이런 역사적 경험이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근대 초기에 사용된 ‘허영녀’와 1990년대 생산된 ‘된장녀’는 서구적인 것과 조선적인 것의 경계를 설정하고 그 경계가 문란해진 문제적 장소를 여성 신체에서 발견하는 방식을 반복한다.
근대 체제에 만연했던 여성 신체에 대한 인종화 된 공포는 파시즘의 증오정치를 통해 집단화된 ‘여자 스파이단(red women:공산주의 계열의 여성을 의미한다.)’에 대한 공포와 모순 없이 결합하였다. 레드 워먼은 주로 로자 룩셈부르크로 상징되는 사회주의 지역 여성을 상징했고,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는 러시아, 중국과 연결된 여성들이 주로 여자 스파이단으로 지목되었다. 파시즘의 젠더 정치는 이처럼 자유주의 여성과 사회주의 여성 양자를 부정하면서, 조국과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애국부인’, ‘총후부인’과 같은 정체성을 강조했다. 파시즘의 이러한 정체성 정치가 반복된 결과 건전한 가정과 ‘애국’을 앞세운 단체들이 헤이트 스피치를 생산하는 증오선동 세력으로 구축되었다.
성차별과 인종공포가 결합한 한국 사회의 독특한 여성혐오는 식민 지배를 통해 이식됐고, 탈식민화를 이루지 못한 채 냉전 체제에서는 국가에 의해 정책적으로 정당화됐다. 냉전 체제 동안 여성 신체에 대한 강박적인 훈육과 감시는 국가에 의해 정당화됐고(국가에 의한 출산 관리, 성에 대한 국가 관리 등), 여성의 집단적 주체화를 범죄나 문란한 행위로 매도하고 가치 절하하는 방식은 반복됐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은 세계사적으로 공통성을 보이지만, 한국 사회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변동, 그리고 이에 따른 이른바 열강의 세력관계 재배치, 그리고 이와 대비하여 ‘취약한 조국의 국체’라는 주체화의 삼각형을 매번 호출하면서 진행되었고 이에 따라 매우 독특한 ‘한국적 반페미니즘 담론’이 구성되었다. 국제관계 재편 속에서 미투 운동을 음모론으로 계속 할당하는 담론은 한국의 역사 속에서 근대 초기 이래로 반복되어 왔으며 결코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니다.5)
한국 사회에서 근대적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여성들의 해방에 대한 요구가, 역사를 반복하면서 ‘시민성’과 ‘노동 해방’을 위협하는 이중의 위협으로 치부된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과 닿아 있다. 해방을 향한 여성의 요구는 문명, 정치, 시민성, 합법, 그리고 국가의 정상성을 위협하는 음험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모호하고 의심스러운 주장으로 취급되어 왔다.6) 전근대적·근대적 가부장제에서 이탈하려는 여성의 힘이 분출하면 여성범죄에 대한 담론이 급증하는 양태가 역사를 통해 반복되었다. 문란하고 위험한 여성에 대한 공포는 일상적이었으나 이런 공포가 여성범죄에 대한 공포로 전환하는 국면은 한국 사회의 전환과 이행 시기에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한국 사회에서 전환과 이행은 ‘내재적 힘’에 의해서보다는 ‘외부적 힘’의 압력에 의해 이뤄지곤 했다. 물론 이런 이분법적 구별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전환과 이행기에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이렇게 힘의 ‘정체성’을 구별하고 판별하려는 강박이었다. 이행과 전환을 향한 ‘내재적 힘’이 부재하지는 않았으나, 언제나 강력한 국제적 힘 관계에서 ‘내재적 힘’은 무력하고 왜소해지곤 했다. 가부장 체제를 벗어나려는 여성의 힘은 한국 사회를 내부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내재적 힘’이었으나, ‘내재적 힘’과 국제적 힘 관계가 부대끼는 전환기에서 여성의 힘은 ‘내재적 힘’을 붕괴시키거나 거세하는 위협적 힘으로 치부되었고, 이런 배제 과정은 여성의 힘을 ‘외부 세력’과 공모한 불순한 힘으로 몰아세우면서 정당화되고 내면화되었다. 힘 관계를 둘러싼 ‘내재적 힘’, ‘외부적 힘’, ‘공모한 힘’이라는 정체성 강박은 명확하게 신체의 문제로 드러났고 인지되었고 유통되었다. 여성의 신체는 ‘외부 세력과 공모한 힘’과 등가물이 되었으며 내재적 힘은 남성 신체, 사회의 신체social body, 조국의 신체National body로 상상되고 인지되었다.
‘외부 세력과 공모한/연루된 힘(여성 신체)’과 ‘내재적 힘(남성 신체와 남성화된 사회적, 정치적, 국가적 신체)’이 부대끼고 충돌하는 사건은 여성의 ‘사적이고 음험한’ 욕망이 조국의 운명과 미래 그 자체인 남성 신체를 파괴하고 거세하는 일로 여겨지고 해석되었다. 그 역사는 한국사 모든 장면에서 반복된다. 달리 말하면 국제적 힘 관계가 변화되는 역사적 국면에서 내재적으로 전환의 동력을 만들어가지 못한 남성 주체의 집단적인 거세 공포와 자기방어로 인해 ‘외부 세력과 공모한 힘(여성 신체)’에 대한 공포가 여성범죄에 대한 집단적 패닉으로 부상하고 반복되었다. 역사가 주는 교훈은 여성범죄에 대한 집단적 공포가 만연할 때 한국 사회는 전환과 이행을 향한 힘 관계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다는 점이다. 기성 권력이 된 남성 주체는 변화를 위한 힘을 상실했고, 새롭게 등장한 힘(여성, 소수자, 비엘리트 등)의 강렬도는 높아졌음에도, 내재적인 힘의 이행이 이뤄지지 못하고, 기성 힘 주체가 새로운 힘 주체를 억압하고 배제하면서 기성 권력을 고수하려는 보수 반동이 반복되어 온 역사였다. 또한 이행과 전환을 향한 여성의 힘을 ‘여성범죄’라는 담론으로 포섭하여 현실적으로도 범죄로 만들고 제어하는 과정은 언론 보도, 의료적 진단, 지식인의 윤리적 계몽, 경찰력의 집행과 사법적 정당화 등이 결합한 총력전이었다.
예를 들어 조선 후기에서 일제 시기까지 팽배한 여성범죄 담론은 ‘본부 살해’ 담론이었다. ‘남편을 독살한 악독한 여편네’라는 담론은 훈육으로 정당화된 남편에 의한 여성 살해, 조혼 제도로 정당화되고 합법화된 여성 아동 매매와, 결혼으로 정당화되고 합법화된 여성 매매와 노예화라는 현실을 완벽하게 가려버리고 가부장을 살해하는 음험한 힘으로 여성을 표상한다. 조선 후기에서 일제 시기에는 ‘본부 살해’가 여성범죄 담론의 지배적 유형이었다면 해방과 전쟁을 거치며 ‘이브의 범죄’라는 ‘서구화된’ 이름을 얻게 된다.7)) 또 위기에 처한 ‘조국’의 운명을 풍전등화로 만들면서 밤마다 풍악을 울리며 문란한 행각을 일삼아 남성/왕/정치 주체를 거세한 문란녀(이른바 ‘민비’에 대한 1900~1990년까지의 재현 방식),8)급박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와 열강의 ‘조국’ 침탈 전략 속에서 조국의 운명을 위협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성 스파이들(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시기, 그리고 한국전쟁과 냉전체제까지 이어진)에 대한 담론 구조는 바로 근대적인 시민적 노예화와 여성해방의 구조에 대한 정치사상사적 이해를 통해서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
최근 이른바 ‘진보 논객’들이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여성들의 집단적 문제제기를 “엄혹한 국제정세 속에서 조국의 운명을 위협하는 음험한 음모”9)로 간주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너무나 역사적이고 전형적이다. 여성 피해자를 ‘꽃뱀’이나 다른 이해관계를 위해 위장된 피해자로 간주하는 것은, ‘여성 스파이’에 대한 경계와 집단적 불안감을 조성해 여성 해방의 집단적 힘을 ‘조국을 배신하고 위협하는 음험하고 위장된 힘’으로 억압하고 매도해왔던 역사를 전형적으로 반복한다.
그리고 여성 스파이에 대한 불안은 바로 파시즘이 전 세계를 휩쓸고 불태운 원동력이 되었기에, 파시즘이 도래한다는 역사적 지표로 간주되었다. 파시즘은 ‘약자의 해방의 정치’를 표방했다는 점에서 전체주의와 구별된다. 파시즘 정치가 (무언가의) 위기, (무언가의) 몰락, (무언가의) 파국을 자양분으로 삼는 이유다. 여기서 (무언가의) 자리에 기생하고 서식하고 증식하는 것이 바로 신체에 대한 가부장적인 수컷 판타지이다.10)파시즘에서 해방의 가능성을 발견한 남성들은 자신들이 차별받고 있고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느꼈다.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등장한 백인 남성중심주의가 백인 남성의 상처받고 박탈된 취약성vulnerability을 증오정치의 동력으로 삼는 것은 바로 이런 파시즘 역사에 원천이 있다. 또 남성의 ‘약자로서’ 취약성은 역차별 주장에서 나타나듯이, ‘우리도 약자다’, 혹은 ‘우리는 이제, 약자다’라는 권력 박탈의 서사를 바탕으로 한다. 즉 스스로를 ‘약자’로 설정했던 집단들이 파시즘에 매혹된 과정은 동시에 독특한 자기 서사를 구성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 자기 서사에서 ‘약자’라는 자리는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몰락이라는 ‘권력 박탈’의 서사를 바탕으로 생산되고, 이러한 권력 박탈의 서사는 ‘회복’의 서사, 즉 빼앗긴 권력을 되찾아야 한다는 서사를 적극적으로 구성한다. 파시즘과 약자라는 주체성이 퇴폐와 재생, 몰락과 신생과 같은 ‘데카당스’ 서사를 동반하는 이유다.
“베르사유 조약의 사슬을 끊자”며 몰락한 조국의 위기를 강조한 독일과 이탈리아 파시즘은 “잃어버린 제국을 되찾자”는 영토 탈환의 기획과 퇴폐 집단 척결을 주요 정치 기획으로 내세웠다. 또 이렇게 ‘잃어버린 권력과 영토’를 회복하자는 주장은 “취약해진 남성성”을 회복하자는 집단적 자기 복원 의지와 분리불가능하다. 파시즘에서 “피와 대지”가 분리 불가능한 이유다. “전후 70년 체제의 사슬을 끊자”는 아베 총리의 구호는 바로 “베르사유 조약의 사슬을 끊자”는 파시즘의 구호를 정확하게 인용하고 있다. 일본 제국의 경우 파시즘의 몰락과 위기 서사는 “아시아 몰락”과 “대동아 공영권”과 같은 아시아주의 서사를 바탕으로 했다. 파탄 난 중국과 ‘사회주의’ 소련을 대신해 몰락한 아시아 제국의 영광을 회복할 주체로 일본 제국의 자리와 역할이 강조되었다. 국제 관계의 요동 속에서 위협받는 취약한 ‘조국’의 국체와 이를 위협하는 여성의 여성 신체라는 차별적 할당의 담론 구조는 이처럼 역사적으로 파시즘 정치를 통해 만들어졌는데 최근의 사례인 ‘해일과 조개’에 대한 담론에서도 이런 할당은 반복된다. 국체/정치체/남성 신체를 위협하는 거대한 외부적 힘(해일)이 몰려오고 있음에도 여성들은 ‘사소한 문제’로 위기 앞에서 국체/정치체/남성 신체를 더욱 무력하게 만든다. 조개를 줍는 일은 너무나 사소하고 무의미한 일인데 동시에 국체/정치체/남성 신체를 붕괴시킬 수 있는 위협적 힘이 된다. 사소한데 과잉된 힘,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국체/정치체/남성 신체)을 모두 붕괴시킬 수도 있는 과잉된 힘, 그것이 여성의 힘이다. 해일과 조개의 변증법은 이렇게 완성된다.
단어 선택, 문장 구성 그리고 이를 통해 구축되는 인식, 인지가 개인의 이성, 앎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서사와 힘에 의해 구축된다는 것을 이 사례에서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발언과 인용으로 재생산되는 남성 주체는 자기 앎에 대한 확신과 숭배를 갖고, 모든 것에 대한 통찰을 자기 정당화의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이러한 남성 주체의 앎과 발언, 이성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역사적 힘과 집단적 지식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축적된 파시즘 정치를 신성한 지식으로 떠받들기를 반복한다.
취약해진 남성의 신체를 회복하는 일은 상실한 영토, 잃어버린 권력을 찾고자 하는, 과거에는 권력을 가졌으나, 이제는 모든 걸 상실한 ‘약자’ 해방 정치의 근간을 이룬다. 물론 이 과정에는 기존 정치 체제에 자리를 갖지 못했던 여성의 권력 투쟁 서사도 기입되어 있다. 파시즘은 당시 새롭게 부상하던 페미니즘을 부정하면서 동시에 사회주의적 여성 주체도 부정했다. 파시즘 정치에서 여성의 자리는 탈정치화된 채 철저하게 체제를 재생산하는 기능으로 할당되었다. 일본 제국을 통해 식민지 조선에 기입된 파시즘 정치에서 여성은 재생산과 후방에 대한 전시 선전, 보국 기능에 할당되었다. 파시즘 정치에서 여성의 자리는 어머니 조직, 부인회, 애국반 조직을 통해 구성되었다. 식민지였던 조선에서 여성의 자리는 이마저도 제한적이었다. 일본 제국에서 여성의 법적 지위에 비해 식민지 조선의 여성의 법적 지위는 여전히 보장되지 않았다.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처’가 되어 남성 가부장의 소유물이 되어 금치산자가 되었다. 이런 법적 구조에서 정조 유린 죄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관계없이 ‘남성 가장의 소유물을 침해한 죄’였다. 식민지 조선의 여성은 파시즘 정치에서도 어떤 지위의 변화도 갖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해방 이후 한국 전쟁을 거치며 일제 시기 파시즘 전시 동원에 참여하고 적극 협력했던 여성 조직과 집단이 ‘남한’의 여성 정치권력을 형성하는 바탕이 되었고, 이들 여성 정치권력이 한국 사회에 극소수로 제한된 여성의 자리를 도맡았고 유구하게 상속, 계승되었다. 한국 사회에 극소수 세력을 가질 수 있었던 여성 조직과 주체는 현실적으로나 상징적으로 남성 정치 세력의 부인이나 딸의 역할로 할당되기를 반복해왔다. 파시즘 정치에서 여성 조직이 어머니회, 부인회, 건전한 가족 만들기, 건전한 사회를 위한 모임 등의 가족 재생산을 위한 교화 조직 형태로 재생산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또 이들 조직은 건전한 가족의 이념을 바탕으로 신체에 대한 파시즘 정치(개인의 몸, 사회의 몸, 국가의 몸)를 반복하는 핵심 세력을 이루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 정치는 이렇게 파시즘 정치가 할당한 여성의 자리와 역할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투쟁이기도 했다. 이론, 조직, 인적 주체 모든 면에서 말이다. 낙태죄 폐지, 차별금지법 제정, 성폭력 비판, 여성의 신체적 자기 결정권에 대한 현재 페미니즘의 대표적인 정치적 주장은 바로 이런 한국 사회에서의 페미니즘 정치의 역사를 정확하게 반영한다. 페미니즘과 파시즘의 연루를 논하는 증거로 제시되는 난민 거부 문제는 그 추동 세력이 기존 파시즘 조직과 정치 세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 여러 면에서 명확하게 밝혀지고 있다. 이를 페미니즘 정치의 한계나 페미니즘이 약자의 해방의 정치라는 명분으로 파시즘에 기울게 될 것이라는 주장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 조직이나 여성 정치의 역학 관계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모든 여성 조직을 페미니즘으로 환원하여 매도하는 담론 전략이다.

1) 「한국과 일본에서의 반헤이트 스피치 운동과 이론에 대한 비교 고찰」, 『여성문학연구』 45호, 2018년
2) 한국에서 헤이트 스피치는 여성혐오 담론과의 관련을 통해서 ‘혐오’라는 규정으로 확산되었다. 이에 대해 손희정은 “여성혐오가 드디어 비평 용어로서 그 지위를 확보하게 된 것은 2012년 4월이다. 이즈음 여성혐오 담론사에서 그야말로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할 만한 일이 벌어진다. 바로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혐오를 혐오한다』가 번역, 출간된 것이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손희정, 앞글. 26쪽.
3) 이에 대해서는 권명아, 「신냉전 질서의 도래와 혐오 발화/증오 정치 비교역사적 연구」, 『역사문제연구』, 35호, 2016.
4) 우에노 치즈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나일등 옮김, 은행나무, 2012, 39쪽.
5) 이하 논의는 권명아,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부대낌과 상호작용의 정치』, 갈무리, 2019의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6) 여성범죄 담론과 근대 정체성 정치와 파시즘 정체성 정치는 필자가 『음란과 혁명』, 『역사적 파시즘』에서 다룬 주요 주제이기도 했다.
7) ) 여성범죄 관련 연구는 상당히 축적되어 있다. 최근 연구로는 소영현, 「식민지기 조선 촌부의 비/가시화 : 친밀성 범죄와 여성범죄에 관한 메타적 성찰」, 『동방학지』, 175권,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6, 그리고 홍나래, 「조선 후기 가부장 살해 설화의 문화사회적 의미」, 『구비문학연구』, 42권, 한국구비문학회, 2016 참조. 여성범죄에 대한 선행 연구를 정리한 소영현의 논문을 참조해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류승현, 「구한말~일제하 여성조혼의 실태와 조혼폐지사회운동」, 『성신사학』, 16호, 동선사학회, 1998.
이종민, 「전통․여성․범죄: 식민지 권력에 의한 여성범죄 분석의 문제」, 『한국사회학회 사회학대회 논문집』, 한국사회학회, 2000.
류승현, 「일제하 조혼으로 인한 여성범죄」,『여성 : 역사와 현재』, 박용옥 편저, 국학자료원, 2001.
김경일, 「일제하 조혼 문제에 대한 연구」,『한국학논집』, 41, 한양대 한국학연구소, 2006.
장용경, 「식민지기 본부살해사건과 여성주체」, 『역사와 문화』, 13호, 문화사학회, 2007.
최애순, 「식민지 조선의 여성범죄와 한국 팜므파탈의 탄생: 방인근의 마도의 향불을 중심으로」, 『정신문화연구』, 32권 2호, 한국학중앙연구원, 2009.
전미경, 「식민지기 본부살해(本夫殺害) 사건과 아내의 정상성 : ‘탈유교’ 과정을 중심으로」,『아시아여성연구』, 49권 1호, 숙명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연구원, 2010.
홍양희, 「식민지 조선의 “본부살해(本夫殺害)” 사건과 재현의 정치학」,『사학연구』, 102호, 한국사학회, 2011.
홍양희, 「식민지시기 ‘의학’ ‘지식’과 조선의 ‘전통’」, 『의사학』,44호, 2013호###
최재목․김정곤, 「구도 다케키 (工藤武城)의 ‘의학’과 ‘황도유교’에 관한 고찰」, 『의사학』 51호, 2015년
소영현, 「야만적 정열, 범죄의 과학: 식민지기 조선 특유의 (여성) 범죄라는 인종주의」, 『한국학연구』 41호, 2016년
Park, Jin-Kyung, “Husband Murder as the “Sickness” of Korea: Carceral Gynecology, Race, and Tradition in Colonial Korea, 1926-1932,”, Journal of Women’s History ,25, 2013.
8) 이른바 ‘민비’에 대한 담론의 변화와 1990년대 ‘명성왕후’ 담론에서 젠더, 민족의 교차에 대해서는 공임순의 일련의 연구가 명확하게 밝혀준 바 있다. 공임순, 『식민지의 적자들:조선적인 것과 한국 근대사의 굴절된 이면들』, 푸른역사, 2005년.
9) 김어준, <다스뵈이다> 27회.
10) 파시즘의 몰락과 재생에 대한 판타지를 연구한 대표적 연구인 male fantasie는 수컷의 환상이라 할 수 있다.
male fantasie, klaus theweleit(1977), 영문판, 1987, Translated by Chris Turner, Carter Erica, and Stephen Conway, Foreword by Jessica Benjamin and Anson Rabinbach,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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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 지금 이곳이, 페미니즘 정치이고 일상이다


이임하(성공회대학교)


- 여자떼 공포 ; 여성혐오 개념이 초역사성이 아닌 차별의 복합성과 역사성을 갖고, 그것이 인종차별주의의 독특한 버전이라는 것 동의하고 그것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차별이 만들어지고 축적된 역사적 구조에 따라서 차별의 지배적 형식과 절합 방식이 다르다. 한국 성차별주의가 어떤 점에서 인종차별주의의 독특한 버전인가. 한국 사회에서 성차별은 파시즘 증오 정치가 남긴 적폐임과 동시에 학살과 냉전의 증오 정치가 그 뒤를 이었다.
이점이 구체적 현실을 바탕으로 한 이론의 생산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 현실 분석에서 출발해야지 만이 새로운 것, 새로운 정치를 말할 수 있다.
한국 역사를 돌이켜보면 ‘여자떼’와 그에 대한 공포는 가부장제의 균열이 다각적으로 시작되는 지점에서 항상 있어 왔다. 여성들은 작은 틈과 균열이 있다면 그 역사적 맥락은 다르지만 목소리를 냈다. 해방공간, 건국부녀동맹-조선부녀총동맹-남조선민주여성동맹으로 이어지는 역사, 1950년대-60년대 초반 간통쌍벌죄 재판장에 떼지어 몰려든 여성들도 그 역사의 하나이다.
한국전쟁 동안 부역자 처벌 과정에서 한 검사는 동료 검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그것은 ‘3개월간 가장 악랄한 부역자는 여성들이었다. 그 여성들은 놈들에게 부역을 하여야만 될 불가피한 사정은 별로 없는 것이오. 더구나 여학생들 같은 것은 놈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하여 하등의 위험조차 있을 리 만무할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놈들에게 가담한다는 것은 가장 악질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이러한 견지에서 바라볼 때 여성, 더욱이 20전후의 여성들은 가차없이 엄벌하여야 할 것이다’라는 의견이었던 것이다.” (유병진, ?재판장의 고뇌?)
간통쌍벌죄가 제정되자 곧장 한 여성이 남편을 간통죄로 고소했다. 이는 간통죄 제1호 사건으로 알려져 법정은 젊은 여성 방청객들로 가득 찼고, 미처 법정에 입장하지 못한 여성들은 창문 위로 올라가서까지 방청했다. 그러자 여론은 “숙녀들이 법정 창문 위로 악을 쓰며 기어오르고 또 기어오르는” 추태를 보인다면서 ‘광기’어린 여성들이라고 비난했다.
이 목소리에 허영과 사치라고 말하는 것에서 넘어서 ‘악질’ ‘미친’ ‘광기’라고 규정했다. 그 광기를 잠재우는 억압이 여자떼 공포라는 담론 규정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여맹’은 한때 곶감보다 무서운 이름으로 떠돌았지만 흔적도 없다.

- 내재적 힘, 불순한 힘으로 : 가부장 체제를 벗어나려는 여성의 힘은 한국 사회를 내부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내재적 힘’이었으나, ‘내재적 힘’과 국제적 힘 관계가 부대끼는 전환기에서 여성의 힘은 ‘내재적 힘’을 붕괴시키거나 거세하는 위협적 힘으로 치부되었고, 이런 배제 과정은 여성의 힘을 ‘외부세력’과 공모한 불순한 힘으로 몰아세우면서 정당화되고 내면화되었다.
내재적 힘(여성신체) - 외부 세력과 공모한 불순한 힘 <-> 내재적 힘(남성신체)
외부세력과 공모한 연류된 힘이라는 여성신체는 무엇인가?
언론보도, 의료적 진단, 지식인의 윤리적 계몽, 경찰력의 집행, 사법적 정당화 등의 총력전 -- 이들을 내재적 힘으로 부를 수 있는가. 언어를 달리 해야하는 것은 아닌지.

- 거세 공포와 자기방어 기제 : 여성범죄 / 여성의 남성화

- 해일과 조개 : 언제나 정의의 이름으로, 자유의 선택으로 해일만을 말해왔다. 그리고 그 해일을 유지하기 위해 희생과 양보라는 가치로 ‘조개’를 무시해왔다. 역사적으로 되돌아보면 개발이냐 분배냐는 구분이 결코 행복한 미래를 담보하지 못하는 것처럼 해일과 조개는 선택적인 것도 정의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성차별적 구조와 일상을 체제와 정치를 분리시키고 동원하는 틀거리 다름 아니다. 일상과 분리된 정치는 도대체 무엇을 전망할 수 있는건가.

-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기우. 페미니즘 정치의 한계나 페미니즘이 약자의 해방의 정치라는 명분으로 파시즘에 기울게 될 것이라는 주장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 조직이나 여성정치의 역학 관계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모든 여성조직을 페미니즘으로 환원하여 매도하는 담론 전략. 오히려 ‘페미니즘’에 대한 자기방어 기제와 기우들은 단 한번도 변하지 않고 순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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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별자리들
포스트 대의제의 현장과 문학들


김미정 (문학평론가, 『움직이는 별자리들』 지은이)


1. 모이고 표현하는 사람들 : 집회assembly 그리고 포스트post 대의제의 현장

‘의회’와 ‘집회’는 ‘모인다’는 의미만 공유할 뿐 전혀 다른 말이다. 둘 다 ‘assembly’에 해당하지만,1) 의회는 집회의 활동을 두려워하고 적대시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예기치 않게 사람들이 모일 때마다, 그때까지 표현되지 않아온 정치적 잠재력이 어떤 방향으로건 분출되었기 때문이다. 즉, ‘assembly’는 모이는 사람들의 입장과 성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의회’는 “집회를 대의제라는 제도로 이동”2)시킨 것이라고도 하듯, ‘집회’는 직접민주주의의 원리를, ‘의회’는 간접민주주의의 원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근대 정치의 근간을 이루는 대의제적 원리하에서 ‘assembly’는 마치 ‘의회’의 측면만을 가지거나 ‘집회’와는 대립되는 듯 이해되기도 했다.
역사 속의 봉기와 혁명은 물론이고 2016~17년의 ‘촛불’ 역시 이러한 ‘assembly’의 각기 다른 방향성과 원리를 환기시켰다. 시민들은 위임받았으나 대의하지 않는 정치의 정당성을 질문하며 자신의 주권을 직접표현하고 항의하는 모임을 이어갔고 이전 시간들을 가로지르는 ‘사건’을 발생시켰다. 물론 심화되어온 살기 힘듦의 문제나, 개개인의 삶·죽음을 공적인 것으로 확인시킨 2014년 4월 16일 등과 같이, 촛불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이전의 계기들 없이 이 사건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건은 늘 누적된 발밑의 상황과 맥락 속에서 그 고유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것은 국지적이고 개별적인 사건으로만 한정지을 수도 없다. 2010년 이후 ‘아랍의 봄’, 뉴욕 월스트리트 점거OWS, 2011년 3·11 이후 일본의 다양한 운동들, 2014년 홍콩의 우산혁명, 그리고 지금까지의 전 세계적 ‘미투’의 목소리, 최근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 또한 알려지지 않은 곳곳의 크고 작은 집회와 연결들을 떠올려 보자. 즉, 2010년대의 세계에서는 민주주의, 반신자유주의, 젠더역학의 의제를 포함하여, 다양한 항의를 위해 직접 모이고 서로 연결되는 일이 빈번해졌다. 한국의 촛불 역시, 2010년대 이후 전개된 전 세계적 시민행동의 네트워크나 그 정동과 별개로 놓이지 않는다. 지구적 규모에서 모든 장소는 일종의 유기적 생산기관3)이고, 발밑의 조건은 점점 더 구조적으로 공유되고 있으며, 그 안의 저항 역시 서로 닮고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대의 전지구적이고 연쇄적인 항의 표현에 주목해온 이들이 출간한 저서 표제에 공통적으로 ‘assembly’라는 단어4)가 들어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때의 어셈블리는, 대의제적 의회와는 달리 스스로 무리를 이루고 자기표현하는 사람들의 모임assembly의 양태와 원리를 의미한다. 이 ‘집회’는 반드시 현장 시위, 데모와 같은 전통적 항의행동에 한하지 않는다. 온라인을 매개로 사람들이 연결, 접속, 동원되는 모든 과정 역시 이 집회의 의미를 구성한다. 이때 미디어는 집회의 중요한 자원이다. 또한 미디어는 그 자체로 ‘우리’와 ‘너희’를 둘러싼 헤게모니 쟁투의 장이기도 하다.
버틀러, 네그리, 하트 등이 주목하는 집회는, 대의제적 제약을 보완, 극복, 활용하는 의미를 지닌다. 그들의 논의는 전지구적 집회의 정동뿐 아니라 오늘날 직접표현의 형식과 원리 전반을 이해하는 데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가령, 주디스 버틀러는 2010년대 뉴욕의 거리, 광장에서 펼쳐진 마이너리티 집회를 촉발시킨 조건으로서 신자유주의적 ‘불안정성’precarity을 우선 확인한다. 그리고 나아가 그녀는 ‘모인다’는 것 자체가 수행적으로 인민·민중people의 주권을 가시화한다는 점을 주목했다. 누가 살고 누가 죽임당할지를 관리하는 신자유주의의 생명정치는 불안정함을 상례화했다. 하지만 그 불안정함의 ‘최전선’에 있는 “여성, 퀴어, 트랜스젠더, 빈민, 장애인, 무국적자, 종교적·인종적 마이너리티”는 자신들의 바로 그 조건(불안정함)으로 인해 오히려 “모인다.”5) 이 존재들은 특별한 언어행위나 통일된 주장 없이 단지 공공의 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정치적 의지를 행위화enactment했다. 그들이 모인 것만으로도 ‘2등, 3등 시민’을 둘러싼 암묵적인 배제/소외의 구획이 가시화되었다. 나아가 그들의 모임은 누가 포함되고 포함되지 못하는지를 정교하게 오픈시키며6) 민주주의적 평등의 원리를 확인, 구현하는 기능을 했다. 가시화된 그 무리는 분명 대표제적 의회의 대안, 비대표제적인 권력power처럼 기능했다고 버틀러는 말한다.
한편, 네그리와 하트에게도 집회란 근대적 대표-위임의 관계로 환원되지 않는 자기표현이다. 그들은 특히 이전과 같은 소수의 대표,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에 의거하지 않는 원리를 주목했다. 이때 ‘수평적 의사결정의 구조’ ‘리더 없는 운동’이 “수평주의의 물신화”7)로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대목은 각별하게 보아야 한다. 대표-위임 관계의 흔들림을 말하는 것은 모든 조직, 제도를 거부하거나 냉소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의사결정 구조의 수직성을 탈피한다는 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과제를 던진다. 전통적, 수직적 권위의 메커니즘을 내면화하지 않는 대신에, ‘자기구성’(버틀러)과 ‘자기조직화’(네그리, 하트)라는 미답의 과제를 풀어야 한다. 네그리와 하트에게 ‘다중’multitude이 본래 주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었듯, 대의제적 원리 너머의 자기표현을 주목하는 것은 아나키한 상태에 대한 예찬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구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2. 민주주의와 주권의 괴리, 그리고 반동bachlash의 배후

그러나 한편, 집회가 곧바로 민주주의와 등치되어서는 곤란하다. 민주주의의 정치형식과 주권의 원리는 같은 것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집회가 반드시 (대의제) 민주주의를 보충하거나 재정의한다고 여길 수 없는 장면도 빈번해졌다. 2018년 한국 제주에 난민이 상륙한 이래, 제주와 서울 도심에서는 반난민집회가 당당히 열렸다. 토요일마다 서울역에 모여 광화문으로 행진하는 태극기의 행렬이나 반페미니즘, 반난민을 주장하는 크고 작은 집회나, 대학 총여학생회 폐지 주장에 민주주의가 전횡되는 일 등등이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다. 온라인과 거리와 대학가 곳곳에서는 ‘이것이 진짜 민주주의다’라는 선언과 함께, ‘옳고 그름’을 둘러싼 판단의 언어가 위태롭게 소환된다. 진화를 거듭하는 미디어는 그 자체가 새로운 장소성을 획득하고 있고 인터넷 커뮤니티, SNS, 포털사이트마다 자기표현을 가장하여 여론의 정향orientation을 의도하는 은밀한 싸움도 횡행한다.
서로를 향해 경쟁적으로 빗장을 잠그는 이야기는 국경에서부터 나-이웃의 층위에 이르기까지 매일 갱신되고 있다. 여성, 사회적 약자, 마이너리티 등을 향한 백래시는 온오프라인의 대중 안에서 자생적인 논리-정동의 회로를 갖추고 유통되는 듯 보인다. 일상에서는, 민주주의의 원리나 가치에 대한 기존의 합의들이 간단없이 재전유, 재맥락화의 대상이 된다. 그 결과, 타자를 보지 않게 하는 논리나, 타인의 생존권보다 나의 소유권을 우선시하는 감각이나, ‘법’ 이외에는 공통의 언어가 없다는 믿음도 자연화한다. 인권, 평등, 생명, 평화, 사회적 약자, 마이너리티, 사회적인 것 등등, 근대 이래로, 그리고 20세기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인류가 성찰reflection하고 정교화해온 개념과 사유들이 불안하다.
이때 민주주의 형식과 주권의 원리가 괴리disjunction의 관계8)임도 다시 기억해야 한다. 2015년 1월 유럽으로의 이슬람유입을 반대하는 독일의 반이민정당 페기다는 ‘우리가 인민·민중이다’We are the people라고 주장했다. 2017년 5월 촛불혁명 직후 한국에서는 ‘우리가 다중이다’라는 선언이 친민주당 성향이면서 여성, 소수자와 선을 긋는 남초커뮤니티에서 속출했다. 그들 모두가 민주주의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지금 확실한 것은, 이들이 ‘누가 진짜 ○○인가’라는 질문을 특정 정치적 맥락과 의도 속에서 증폭, 뚜렷이 부각시키면서, 민주주의와 주권의 이접을 쟁점화했고 이후 무수한 에피고넨 증식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누구를 포함하고 누구를 배제하는지의 암묵적 구획에 이의제기하기 위해 사용된 마이너리티의 개념과 문제의식이 이런 식으로 단번에 재전유, 재맥락화된다. 평등의 원리를 교란시키는 신자유주의 가치를 내면화한 능력주의, 그리고 순수성을 강조하는 언설(예컨대 반난민)은 이러한 구조 속에 난망하게 얽혀 있다. 2010년대 이후 많은 활동가, 학자들이 주목한 대표-위임 관계의 극복과 그 투쟁은 이제, 민주주의의 이름붙임을 둘러싼 투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대중(인간)의 속성을 비관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사례로 기억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표현미디어를 매개로 자생적 회로가 만들어진 듯 보이는 현상의 배후에는 국민국가-자본주의의 결탁이 있다. 발터 벤야민이 파시즘 폭주의 전야에 쓴 예술론/매체론의 한 대목이 그간 읽혀온 맥락과 다르게 자꾸 떠오르는 것도 이러한 비관의 구조가 오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그로부터의 인용이다.

점진적인 무산계급화와 대중의 점진적인 형성은 동일한 사건의 양면이다. 파시즘은 새로이 생겨난 무산계급화한 대중을 이 대중이 폐지하고자 하는 소유관계는 조금도 건드리지 않은 채 조직하려 하고 있다. 파시즘은 대중으로 하여금 결코 그들의 권리를 찾게 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들 자신을 표현하게 함으로써 구원책을 찾고자 한다. 대중은 소유관계의 변화를 요구할 권리가 있지만 파시즘은 소유관계를 그대로 보존한 채 그들에게 표현을 제공하려고 한다.9)(강조는 인용자)

잘 알려져 있듯, 그는 이 글에서 대중, 기술이 전면화되기 시작한 시대의 비가역성을 명확히 인지하며 예술과 수용자의 변화를 논했다. 이 글(「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1930)이 대중, 기술에 대한 단순한 낙관론/비관론이 아니라는 점은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의 예술론에서 대중과 기술은 일종의 매트릭스matrix 같은 조건이다. 이 글의 목적은 예술관념 및 수용자의 변화를 상기시키는 데 있었다. 벤야민의 관점에서 기술의 변화는 인간을 종속시키거나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자연의 ‘관계’를 재고·조정케 한다는 점에 방점이 찍힌다.10)
한편, 이 글은 기술과 대중이 예술변화의 중요한 항으로 대두되는 상황을 기록한 글인 동시에 그 변화의 조건을 잘 이용했던 당대 파시즘 미학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그가 적확히 지적했듯 파시즘은 ‘소유관계’, 즉 이 세계 배후의 자본주의 구조와 거기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보이지 않게 만든다. 그리고 대중에게 ‘표현’과 ‘표현의 수단(기술)’을 제공하며 대중 안의 의미유통의 자생적 회로를 만들게 한다. “대중은 소유관계의 변화를 요구할 권리가 있지만 파시즘은 소유관계를 그대로 보존한 채 그들에게 표현을 제공하려고 한다.” 이 말처럼 ‘자본주의(경제)의 문제-대중의 자기표현 기제-예술’의 연결성을 단번에 환기시킨 대목도 드물 것이다. 그의 시대나 오늘날이나, 소위 먹고사니즘의 투쟁이라 할 갈등, 즉 한정된 장 안에서 한정된 자원의 배분을 둘러싼 갈등의 궁극적 원인을 보이지 않게 하면서 그 갈등의 정동만 표현하도록 하는 배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대중은 결정되어 있는 선도 악도 아니다. 종종 대중의 정동은 미디어에 노출되는 인플루언서influencer의 발화에 따라 확연한 부침을 보이기도 한다.11) 뉴스보도나 TV 토론회 등 미디어에 노출되는 인플루언서의 발화는 종종 일종의 잠금해제 효과를 갖는다. 이때의 인플루언서는 반드시 정치인만은 아니다. 2011년 미국 보수주의 티파티 논객인 마이클 프렐이 ‘언더도그마’underdogma 12) 같은 개념을 백래시의 논리에 제공했다. 누구에게 이득이 될지 자명한 말인, ‘약자라고 항상 선하지 않다.’는 세간의 흔한 워딩wording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이것은 민주주의와 정의의 문제를 순식간에 프레임전쟁으로 밀어 넣었다.
누군가가 피 흘린 결과 간신히 쟁취하고 느슨하게나마 합의해온 민주주의의 가치들이 대중 사이에서 원리부터 부정되거나 퇴행하는 듯 보이는 것은, 이러한 인플루언서의 발화(인식)와 분리되지 않는다. 그 발화는 어떤 이들에게는 경악할 것이었다. 하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타자를 향한 폭력적 무의식도 허용될 수 있다고 착각하게 한다. 보수주의, 신자유주의 인플루언서의 발화는 암묵적으로 드러내지 않아야 할 속내와 드러내도 되는 속내의 경계를 지우게 하는 미디어를 매개로, 일종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리는 효과를 지닌다. 한번 해제된 언어들은, 그 사회의 역사 속에 누적되어온 기억, 경험, 사건들과 접속하면서 어떤 확장회로(가령, 혐오→차별→배제→폭력)를 만들어내기 쉽다. 그것이 수년간 이 세계가 경험해온 곤경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처럼 오늘날의 정보·의견·정동은 수평적이고 분산적이지만, 반드시 탈중심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도로 컨트롤되는 회로 속에서 분산적 네트워크의 말단까지 컨트롤되고 있다.13) 이때 무엇이 진짜/가짜인지, 무엇이 옳은지/틀린지를 판별하는 것 자체는 부차적 문제가 되어 버리고, 그것에 대한 접근은 이전 시대와 다른 관점과 논리를 요구한다. 권력은 촉발만 시켜도 된다. 무리 안에서 활성화될 조건은 이전보다 더 잘 마련되어 있다.
그렇기에 새로운 파시즘, 반지성주의, 신자유주의와 결합한 전 세계적 우경화, 우파의 정동정치 등에 대한 우려14) 역시 오늘날 대의제 너머의 현장 속에서 동등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물론 이런 공기를 과장되게 강조하며 비관과 체념으로 유도하는 “악마의 속삭임”15)도 유의해야 한다. 권력만 촉발시키는 것이 아니다. 수평적 네트워크 안에서는 그것을 거스르는 또 다른 촉발과 문턱의 계기가 있다. 그러므로 포스트 대의제의 현장은 혼돈과 무질서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현장은 모든 사회적 주체들의 근원적 다양성이 만개하고 있고, 앞서 언급했듯 새로운 자기구성, 자기조직화, 혹은 “모두에 의한 모두의 통치”16)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일단은 무수한 가능성들의 진원지로 보아야 한다.

3. 모이고 연결되는 사람들의 현장과 문학

모이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 스스로 이 세계의 젠더 역학을 거절하는 장소를 만들며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장면은 수년간 한국 문화예술계의 변화와 움직임movement으로 펼쳐졌다.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으로 상징되는 문화예술계 고발-항의의 연대는 단발적 이슈의 층위를 넘어서, 문학(예술)의 젠더형식뿐 아니라, ‘누가’ ‘어떻게’ 문학을 대표해 왔는지의 조건을 질문에 부쳤다. 문학의 좋음과 가치를 말할 때 구사되어온 가치, 담론이 누구의 시선(대표)에 의해 무엇을 위해 편향되게 구사되어왔는지, 그리고 그 시선이 선택하고 ‘재현’한 대상이 어떤 주체화/타자화의 역학 속에서 특정 ‘표상’을 구축해갔는지. 이것은 문학의 직역(독자, 작가, 평론가, 출판인 등)을 불문하고 질문하고 고심해온 내용이다.
권력형 폭력에 대한 고발과 항의는 물론이거니와, 과거였다면 공론장에서 주변적이거나 ‘관용’의 대상이었던 여성(퀴어)의 문제의식과 그 예술이 확연히 가시화되었고, 기존 언설체계 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기입하며 문학의 의미를 보충하고 조정해가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내내 한국의 이론, 담론 현장에서 전개된 타자, 소수자 논의가 비로소 얼굴과 신체를 가진 구체적 타자로 등장했다. 이것이, 평론의 언어 혹은 이름 있는 기성작가의 목소리가 아닌 작가 지망생, 독자의 경험과 고발 등에서 시작된 것도 기억해야 한다. 기존 문단의 ‘구성적 외부’the constitutive exclusion 17)에서 처음 문제가 제기되고, 그 과정에서 문학의 구성원이 누구이고, 문학이 무엇인지 질문이 심화되어온 일도 강조되어야 한다. 이것이 공론장 안팎의 네트워킹을 통해 가능했던 점도 함께 말이다.
이 항의가 문학계를 향했을 때 질문에 부쳐진 것은 우선은, 문단=문학이라는 관념, 혹은 문단문학이 문학 전체를 대표한 것처럼 여겨져 온 인식이었다. 물론 ‘문단’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지면이 필요하다. 문단은 등단여부가 준거가 되는 장이기도 하고, 문학을 매개로 한 공동체이기도 하다. 또한 비평적 호명에 의해 생산되는 미학의 권역(세력)을 통해 구성되는 장소이기도 하고, 중앙집중적 가치와 결속되기 쉬운 제도이기도 하며, 하나의 상징형식에 불과하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여성, 퀴어의 목소리는 문단 안팎의 분산된 힘들과 다양하게 교차, 교류하며 역량을 발한다. 즉, 지금의 변화는 비평가 vs. 비평가, 작가 vs. 작가 식의 대립의 결과가 아니다. 과거 지식인 사이에서의 헤게모니 투쟁, 소수의 전위가 다수의 민중과 결합하던 식의 양상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움직임이다. 쟁점, 담론의 생성과 유통의 방법이 달라진 사태를 반영하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페미니즘, 젠더, 퀴어 언어의 기입은 문단문학 안팎의 연결(특히 오래된 젠더역학의 구조를 깨달은 20, 30대 젊은 여성 스스로의 정동과 그 표현들),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화 요구에 빚지고 있음을 우선 정당하게 인정해야 한다. 수년 사이 중앙집중적 문단이나 문학의 개념은 변화의 도정에 내내 놓여 있었다. 새로운 잡지나 문예지의 창간이 이어졌다. 의미·가치의 생산-재생산 구조가 비교적 견고했던 문단 중심성은 약화되는 듯 보이지만, 독립잡지, 독립서점, 작은 모임을 중심으로 하는 문학이 상대적으로 융성하는 듯 보인다.18) 여성, 소수자를 둘러싼 ‘재현’의 주체, 방법, 시각이 달라졌고 그에 따른 ‘표상’ 역시 변화하고 있으며, 여성의 서사를 상상하고 방법화하는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진행 중이다.19) 적어도 이 운동성 자체는, 문학을 둘러싼 이전의 묵시록과는 다른 방향의 사건과 흐름을 만들고 있다. 열패감이 아닌 어떤 생동력을 갖고 있음도 분명하다.
기우에서 덧붙이건대 이 운동성은 ‘문학(예술) 대 정치’ 구도로 조망할 수 없다. 이 구도는 각 영역의 자율성(문학, 철학, 역사, 정치 등등의 분과적 자율성)에 토대를 두어온 근대적 원리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가령, 산업노동과 예술노동 사이의 질적 차이를 근거로 작동해온 예술의 “문화적 예외 전략”이 불가능해진 시대20)를 살고 있다. 또한 문학사 속 ‘문학 대 정치’의 구도에서 ‘정치’의 항은, 종종 ‘운동’의 장면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말하자면, ‘운동으로서의 문학’이 등장할 때마다 ‘문학 대 정치’의 구도가 곧바로 소환되곤 했다. 그런데 만일 ‘문학 대 정치’의 구도를 ‘문학 대 운동’의 구도로 바꿔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문학(예술)’과 ‘운동’이 원리적으로 다를 이유는 충분치 않다. 문학(예술), 운동 둘 다 공히, 보이고 들리고 말할 수 있는 것 ‘너머’의 잠재성을 추적하고 끄집어낸다. 그리고 기존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말할 수 없던 것을 가능케 하여 ‘다른’ 세계를 열어젖힌다. 이런 공유되는 원리 앞에서 분야를 나누고 각 정체성을 주장하는 일은 부차적이다.
그러므로 지금 고민할 것은 (작가의 서명에 의존하던 자율성의 원리로만 환원되지 않는) 문학을 둘러싼 여러 주체가, 반드시 매개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네트워킹하며 예술의 경험을 공유하고 구축하는 ‘관계성’의 원리를 환기시키는 장면이다. 오늘날 독자는 문학의 중요한 주체로 호명된다.21) 출판과정 역시 문학생산(창작)의 중요한 과정이라는 점이 공유되고 있다. 독자의 부상이 설사 문학출판시장이나 문학저변 확대의 요구 때문이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단지 대상으로 놓여 있지 않다. 이는 미학의 문제와 분리시킬 수 없다. ‘자율성’ 미학만으로 환원, 설명되지 않는 현장들에 어떤 ‘이름’이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잠시 일본의 이야기지만, 현재 한국에서와 유사한 흐름이 ‘관계성’ 미학이라는 이름하에 논의되어온 것도 떠올려 본다. 2014년 한 일본 문예지에는 ‘전위의 좀비들’이라는 도발적인 제목과 함께, 일본 문화예술계에서 당사자가 전경화되는 경향을 비판하는 논의22)가 발표된다. 젊은 SF계 문예평론가 후지타 나오야藤田直哉는, ‘지역아트’라는 이름을 얻어 활성화하고 있는 일종의 예술 네트워크 현장을 대상으로 비판을 전개했다. 그는, 현재 예술성을 증명하는 것이, 세상에 대한 문제제기나 페미니즘 등의 사상성에 의탁되고 있다고 비판하며, 소동이나 문제제기 자체가 예술적 평가로 착각되는 경향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서로가 연결되고 협력하면서 예술적 생산을 경험하는 ‘관계성의 미학’이 예술의 진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질문한다. 요컨대, 예술의 생산, 유통, 향유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원리를 주목하고 당사자가 전경화하는 미학이 부상하면서, 제대로 된 비평의 개입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후지타의 논의는 일본에서 활황하는 지역 아트프로젝트, 즉 향유와 창작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향유자와 생산자의 자리가 유동적인 일종의 공공성 예술 전반을 향하고 있다. ‘참여자의 부상 vs. 비평의 후퇴(처럼 보이는 현상)’ 혹은 ‘당사자의 표현’ vs. ‘재현 예술’의 구도는, 최근 한국 상황과도 겹쳐 보이는 바가 있다. 후지타가 이런 상황에 부정적인 것은, 현재의 예술이 썩 명백하고 견고한 제도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불과 1세기 남짓한 역사를 갖고 있는 (근대)예술의 존립이 현재 사회의 구조변동과 조응하면서 사라져버릴 가능성까지 있다고 그는 우려한다. 그의 문제제기는 예술의 진보와 관련해 유의미한 것이었지만, 근대 재현예술의 수호를 재귀적으로 역설한 것이기도 했다.
한편, 관계성 미학에 대해 후지타와는 다른 가능성을 가늠하는 비교문학·문화연구자 시미즈 도모코淸水知子는, 이전 예술이 지시적이고 표상적이었던 것에 비해 오늘날 예술은 ‘직접적’이고 ‘제시적’인 양상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녀의 간명한 진단이 아니더라도, 오늘날 예술이 이전과 같은 생산/유통/향유가 견고하게 구별된 장 안에만 놓여 있지 않다는 사실은 체감하기 어렵지 않다. 고정된 항을 통해 위치를 부여받던 작가/수용자 식의 구분에 따른 각각의 경험은 오늘날, 서로의 자리를 빈번하게 교차하는 경험으로 전환된다. 지금 예술은 제도와 자격에만 갇혀 있지 않다. 예술의 생산과 향유는 반드시 고독한 밀실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지지하는 기술적, 철학적 조건들 하에서 곳곳의 사람들은 각자의 예술현장을 만들어간다.
즉, 시미즈의 말대로, 관계 속에서 미적 체험을 도모할 때 거기에서 드러나는 것은 우선, 세계의 구축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의 다양성이고, 거기에서 발명될 특이성일 것이다.23) 그녀가 말하는 오늘날 예술의 가능성은, “모든 것이 예술일 수 있고 누구나가 예술가일 수 있”는 시대에 대한 조정환의 진단과 공명한다. 조정환은 예술종말론이 득세하는 최근까지의 상황 속에서 오히려 ‘예술부흥의 시대’의 조건과 장면을 읽어낸 바 있다. 그리고 그 장면들에서 “모든 것이 특이함과 동시에 공통되기의 과정 속에 열려”24) 있음을 읽어낸다. 즉, 시미즈와 조정환의 문제의식은 그 저류에서 만나는 지점들이 있고, 또한 오늘날 예술을 둘러싼 한국적 상황들에 개입되어야할 논의들이기도 하다.
즉, 적어도, 기존 미학의 언어로 환원되기 어려운 변화하는 예술현장과 조건에 대한 논의는 단순히 예술과 사회, 예술과 정치 식의 논의틀을 넘어서 있다. 이미 그것은 ‘미학’의 영역 안에서 위화감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예술(문학) 주체 혹은 관계성의 문제가 ‘미학’의 범주에서 본격 논의되지 않아온 것은 어쩌면, 지난 시절 문학사 논쟁의 유산과 그 부담감 때문일지 모른다. 또한 여전히 픽션, 재현미학이 예술가의 윤리를 담보하는 거의 유일한 형식처럼 믿어지는 미학적 원리주의와도 관련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4. 생명정치의 시대, 그러나 삶예술의 가능성

한국에서 예술(문학)의 주체 혹은 관계성의 문제가 ‘미학’의 문제틀 안으로 들어오기 어려웠던 맥락을 잠시 생각해본다. 예컨대 보리스 그로이스의 예술 다큐멘테이션 논의를 떠올려 본다. 그의 논의는 픽션, 재현미학으로 환원되지 않는 ‘삶예술’의 가능성을 역설하는 것이지만, 한국에서 그것은 픽션, 재현미학의 위기를 부정적으로 점검하는 듯한 문제의식 하에서 소개되었다.25) 보리스 그로이스는, 푸코의 ‘생명정치’biopolitics 26)의 관점을 통해 오늘날 세계의 국면과 미학의 문제를 논한다. 알려져 있다시피, 생명정치는 인간 생명, 삶의 관리 자체를 정치의 중심에 놓는, 근대 이후 정치의 통치술을 지칭한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 인식, 가치, 취향, 좋은 삶에 대한 의지나 열망을 만들어내고 관리하는 권력체계다. 이 통치술은, 말하고 활동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경쟁하기를 독려한다. 자기계발, 자기책임이라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지상과제도 이 독려에 숨겨져 있다. 그로이스는 “삶 자체가 기술적이고 예술적인 개입의 대상”이 된 오늘날 우리는 “예술작품 대신에 예술 다큐멘테이션”27)을 만나고 있다면서, 오늘날 예술 역시 생명정치적인 것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로이스의 논의는 시대의 통치술과 그 조건이 어떻게 인간의 변화, 예술의 변화에 개입되는지 생각하게 한다. 앞서 나는 집회assembly의 관점에서 확인되는 포스트 대의제의 복잡한 현장들을 떠올려 보았지만, 오늘날 통치술, 권력이 개별적 삶들을 직접 겨냥한다는 점에서도 포스트 대의제적 조건은 (다른 맥락에서) 다시 오버랩된다. 예술도 오늘날 통치술에 상응하는 듯, 삶과 직접적으로 교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로이스에게 이것은 비관, 비판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예술을 오늘날 자본주의의 생명정치 통치술과 그 조건을 전유하여 “인공적인 것에서 살아 있는 것”을, “기술적인 실천에서 살아있는 행위를 만들어내는 예술”의 가능성을 읽어낸다.
그가 명명한 예술 다큐멘테이션은 정의상 예술이라고 할 수 없을지 모른다. 삶, 세계가 텍스트에 직접 육박, 기입될 때 그것은 예술, 문학으로 여겨지지 않아 왔다. 형상화, 일종의 픽션의 과정이 정교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것을 ‘작품’이라 부르기 주저해왔다. 그러나 예술 다큐멘테이션은 예술을 기록document하고, 지시refer한다. 그리고 예술이 “현존하거나 가시적이지 않다는 점, 오히려 부재하거나 가려져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즉, 예술 다큐멘테이션이 단지 오늘날 생명정치시대를 구현하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로이스는 이러한 다큐멘테이션이 각각의 상황(맥락) 속에서 새로운 장을 설정하고 스스로를 기입함으로써, ‘인공물이거나 반복가능한 것’을, ‘살아있고 반복불가능한 것’으로 변용시킨다는 데에 주목한다. 일종의 존재론적 자리바꿈, 발명의 의미를 그의 아이디어로부터 떠올릴 수 있다.
이쯤에서 ‘주술적’, ‘전근대적’ 같은 말들이 떠오를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근대 재현미학이 준거하는 구조 속에서의 말들이다. 그로이스의 전략은 차라리 마르셀 뒤샹이 말한 ‘영매로서의 예술가’를 떠올리게 한다. ‘영매-예술가’라는 말에 대한 탁월한 해석을 참고하여 재규정하자면, 예술 다큐멘테이션 작업은 “예술가의 주체성과 공중의 주체성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창조적 행위에 의해 실행된 ‘비물질적인’ 변형들”28)이다. 또한 그것은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라는 68혁명 전후 아방가르드(플럭서스) 그룹의 모토를 자본이 전유하고 ‘모두가 기업가다’식으로 바꿔치기한 것에 대한 ‘재전유’, ‘재탈환’의 기획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조정환이 푸코가 서술한 ‘경제인간 homo economicus’으로부터 ‘예술인간’으로의 이행 가능성과 현실성을 찾고 거기에서 ‘삶예술’의 잠재력을 논한 것처럼, 보리스 그로이스의 작업 역시 생명정치 시대의 조건을 ‘삶예술’로 전유하는 것에 상응한다.
한편, 문학이 운동하고 있는 대의제적 현장뿐 아니라 ?82년생 김지영?(조남주, 2017) 현상도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다시 생각해본다. 2018년 100만 부가 넘게 팔렸다는 이 소설은, 12월에는 국경을 넘어서 일본에 번역되었다. 발매 4일 만에 3쇄를 찍기로 결정했고29) 관련 문제의식을 가진 소설들이 연이어 일본어로 번역되었다.30) 이것은 전형적인 문화현상 분석의 대상일지 모른다. 국경을 넘어 확산, 공유되는 오늘날의 정동(여성, 퀴어 이슈)과 함께 설명되어야 할 문화적 현상이다. 하지만 지금 주목하려는 것은 판매부수가 아니라, 독자(향유자)의 반향·실감과, 그 과정에서 오갔을 정동적·인지적 감흥, “비물질적 변형”들이다.
작품을 접하면서 각자 안의 무언가가 건드려지고 거기에서 각자만의 내밀한 재의미화, 재맥락화가 생길 때 그것이 얼마나 문학적인지를 계측하는 것은 어딘지 혹독한 일이다. 사람마다 무언가와 접촉할 때 결코 동일한 반응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란 존재가 본래 불가해한 복잡성을 갖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독자는 어떤 매개를 요하는 균질적 대상이라기보다 그 스스로 문학(예술) 과정에 참여하고 작품의 의미를 완성시켜가는 복잡한 주체다. (근대적 재현)미학의 관점에서 이 소설은, 구체적 삶들을 단편적으로 재현한다는 점이 치명적인 단점으로 지적되어왔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모든 재현은 언제나 누군가로부터의 시선과 삶을 대표(대의)한다. ?82년생 김지영?의 평면성을 극복한 다양한 특정 시선의 작품은, 평균치의 삶 이외에도 무수한 삶이 존재한다는 점을 증거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시 ‘대표’ ‘재현’이라는 측면에서는 ‘평균’ ‘평면성’의 취약점이 지목되는 이 소설과 ‘원리적’ 차이가 없다.
한편 지금까지와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지금의 독자에게 픽션, 재현미학을 설득시키는 일, 도달해야 할 무수한 타인의 삶을 읽고 공감하는 것을 실현시키는 일에는 일종의 새로운 페다고지 역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공감과 문학을 강조하는 일이 일종의 기능부전에 빠진 상황은 개인적 체감만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문학(예술)과 공감의 관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독자를 낭만화하지 않고, 문학이 ‘고전적 계몽’이 되어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문학이 더 전략적이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이것은 재현미학의 원리나 문학의 좋음/나쁨의 판단critic을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단, 제도와 유관/무관하게 ‘자기의 테크놀로지’로서의 읽기-쓰기가 이루어지는 무수한 현장을 숙고하는 일이 미학과 무관한 곳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일을 질문하고 싶을 뿐이다.

5. 움직이는 별자리들

즉 ‘포스트 대의제 시대’라는 문제설정은 근대의 원리로서의 대의·재현 등에 대한 거부가 아니다. 포스트post라는 말 자체가 ‘~이후’ ‘탈~’의 의미 모두를 함의하고 있었던 것에 대한 세기말의 논의를 생각해보자. 지금 ‘포스트 대의제’ 역시 대의·재현미학에 대한 ‘거부’나 ‘대체’ ‘극복’이기 이전에, 처음부터 늘 명쾌하게 구분될 리 없었던 세계의 어떤 혼재됨을 확인시키는 개념이다. 대의제와 대의제 너머에 대한 상상력은 늘 함께 존재해왔다. 그리고 재현미학과 그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미학현상 역시 늘 함께 존재해왔다.
그러므로 ‘포스트 대의제’는, 기존 대의(재현)에 대한 부정인가, 그 연장선상에서의 계승인가 식의 양자택일적 선택을 강요하는 개념이 아니다. 문단, 예술사에서 생산되고 이어져 온 어떤 가치와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소중하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포함하고 무엇을 포함하지 않을지 구획 지으며 구심력만을 요구하는 폐쇄성을 반복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이것은 무언가를 허물고자 하는 충동이 아니라, 문학(예술)의 가능한·잠재된 다양성의 범위와 질을 묻는 것이다. 예술, 문학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쉬운 사례로 갈음해보자면, 처음 글을 익혀 일기를 쓰고 시를 쓰는 순천할매, 칠곡할매의 글쓰기를 괄호치고 문학을 생각할 수 있을까. 글쓰기와 문학에의 열망을 노인이 되어 수줍게 실현시키는 작은 모임의 딜레탕트들을 괄호치고 문학을 말할 수 있을까. 우리를 미학적으로 감화, 훈련시킨 재현예술의 산물과 그 인류적 유산의 소중함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러한 재현미학의 규준에 미달/초과하는 무수한 쓰기와 예술의 현재가 그 소중함과 무관하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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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과적 구획(시/소설 전문, 한국문학/외국문학 전문 등등)이 자연스러운 세계에서는 예술을 자율적으로 다루지 않는 논의가 어딘지 미심쩍게 여겨질지 모른다. 점점 조밀해지는 분과 속에서 우리는 전문가가 되기를 권장받아왔다. 하지만 연동되는(더욱 연동되어 가는) 유기적 세계를 괄호치고 그 분과적 구획에 스스로를 한정 짓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적 소외, 나 스스로를 물화Verdinglichung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쓰고 있는 글이 어떤 위치와 맥락에서 어떤 소용과 의미를 가지고 어떤 과정에 놓여 있는지 지도를 가지지 못할 때, 나는 내 작업에서 스스로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분과와 관심이 세분화되기 이전 세계에서 우리는 분명, 세상의 이치와 그 시야를 공유하고 있었을 터였다. 가령, ‘별이 총총한 하늘’을 보고 갈 길을 알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고 한다. 시간도 흐르지 않고 밤하늘의 별을 따라 내면의 격정 등과 겨루지 않고, 그 별들의 인도에 따라 주어진 생을 영위하는 것으로 충분한 세계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할 때 그 세계는 ‘영웅’ ‘성숙한 남성’(G. 루카치)이라는 수사가 암시하는 존재들에게만 삶이 존재하고, 노예와 여성과 어린아이와 노인은 그 같은 삶을 누릴 수 없었음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세계였다. 헤파이스토스가 아킬레우스에게 만들어준 방패의 가장 끝 원을 오케아노스 강이 두르고 있듯, 그 세계는 외부를 상상하지 못하고 하늘에 변함없이 놓인 그 별자리에 정초되던 세계였을 따름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시대가 선험적 향수와 역사철학적 비전의 기원일지언정 그 세계로 돌아갈 수도, 그 세계를 반복할 수도 없음을 안다. 어쩌면 지금 시대는, 오케아노스 강 안쪽에서 영웅이 아니고 성숙한 남성이 아니었던 이들 스스로가 밤하늘의 별자리를 만들고, 오히려 별자리도 이동시키는 와중의 시대다. 외부의 초월적이고 선험적인 준거들이 더는 제 기능을 못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애통함이나 묵념의 대상이 아니다. 필부필부인 우리가 오히려 별이 되고 별자리를 대신할(늘 대신해왔을) 역량을 갖고 있음을 지금 다시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문학의 몰락이나 조종弔鐘 같은 이미지와는 무관하다. 삶예술은 생명정치의 시대에 상응하는 듯 보이고, 포스트 대의제는 민주주의에의 열망, 우파 파퓰리즘 모두가 혼재되는 현장인 듯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관계는 일방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인간(예술)은 늘 주어진 세계에 구속되어 있지만 동시에 그 조건을 극복하고 세계를 다시 구축하는 존재다. 우리 시대에는 불안정함, 취약함이 사람들의 상례화된 조건이지만 거기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모이고 항의할 조건을 발견하듯, 그리고 생명정치의 조건을 재전유하여 삶예술로 전환시키는 현장들이 그러하듯, 요컨대 주어진 조건에 구속되면서 한편으로 그것을 재조정, 극복하는 존재가 인간, 예술이다. “움직이는 별자리”31)는 바로 그러한 인간, 예술을 위해 잠시 빌리고 싶은 말이다.

1) 엄밀히 말해 ‘의회’는 parliament(말하다라는 의미의 'parler'(프)와 관련)라는 말을 갖고 있지만, 이 글에서는 이 말이 근대적 의회의 의미로 정착되기 이전의 맥락, 그리고 J.J.루소의 ?사회계약론?, 가라타니 고진의 ?柄谷行人講演集成1995-2015 思想的地震?의 아이디어를 참고하며 써내려갔다.
2) 柄谷行人, 「「哲学の起源」とひまわり革命」, ?柄谷行人講演集成1995-2015 思想的地震?, 筑摩書房, 2017.
3) 조정환, ?인지자본주의?, 갈무리, 2011, 265면.
4) J. Butler, Notes Toward a Performative Theory of Assembly, Harvard University Press, 2015. ; A. Negri, M. Hardt, Assembly, Oxford Univ Press, 2017.
5) J. Butler, 앞의 책, 2015, p. 53.
6) J. Butler, 앞의 책, 2015, p. 5.
7) A. Negri, M. Hardt, 앞의 책, 2017, xiv.
8) J. Butler, 앞의 책, 2015, p. 2. 한편 네그리와 하트는 대의제의 전제로서의 주권 개념 자체를 근본적으로 질문한다. 하나의 통합, 중앙집중적 힘의 행사에 기반을 두는 주권(sovereignty)은, 늘 권력/지배의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들이 논증하는 현재의 ‘주권’ 개념은 ‘정체성’과 ‘소유’라고 하는 근대(자본주의)적 요소와 결합하여 작동한다.(A. 네그리, M. 하트, 앞의 책, chapter3, 2017.) 한편 M. 푸코가 ?생명정치의 탄생?에서 근대의 권력론을 전개할 때 주권, 민중, 신민, 국가, 시민사회 같은 개념을 본래부터 자명한 것으로 삼지 않은 맥락도 이와 함께 읽을 수 있다.
9)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제3판)」(최성만 옮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사진의 작은 역사 외?, 길, 2007, 147면.
10) 기술은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류 사이의 관계를 지배하는 것”(발터 벤야민, 조형준 옮김, ?일방통행로?, 새물결, 2007, 178면.)이라고 한 벤야민의 말은, 비관·낙관의 기술결정론과 무관하다. 오히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 재조정 과제가 기술로부터 부과됨을 상기시킨다.
11) 아베정권 발족 직후인 2012년 이후 인터넷상 폭발적으로 증가한 혐오발화도 그렇거니와(모로오카 야스코 (조승미, 이혜진 옮김), ?증오하는 입 ― 혐오발언이란 무엇인가?, 오월의 봄, 2013), 2016년 사가미하라 학살 사건이 일본 정치인의 혐오발언과 그 정동의 확산에 연결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신지영, 「‘타자’없는 듣고-쓰기 : 사가미하라 장애인 학살사건, 그 이후」, ?문학3? 1호, 2017년 1월)도 그러하다.
한편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 혐오가 어떤 문턱을 넘은 과정도 생각해본다. 2017년 4월 군대 내 동성애자 색출이라는 폭력이 ‘군 기강 해이 바로잡기’라는 명목으로 보도된다. 그리고 조기 대선을 앞두고 유력 후보들이 같은 달 28일 TV 생중계 토론회에서 ‘동성애 반대’ 발화를 공식적으로 주고받는다. 언론미디어에서 이 일들이 노출된 직후 인터넷 커뮤니티, SNS, 일상 등에서의 광기도 기억해보자.(명료한 인과관계를 위한 데이터가 보충되어야 하지만, 자세한 정황은 김미정, 「공포와 희망의 정동 사이에서」(제8회 맑스코뮤날레 다중지성의 정원 세션 <2017 촛불다중혁명과 한국사회의 이해> 자료집, 2017.) 참조.)
12) 미국에서는 Underdogma : How America’s Enemies Use Our Love for the Underdog to Trash American Power 라는 제목으로 2011년 발간, 한국에는 2012년 번역되었다.
13) 이것은 (윌리엄 버로스가 처음 제안하고 질 들뢰즈가 발전시킨 개념인) ‘통제사회’(coltrol society)의 특징과 그 실현 속에서 본격적으로 생각할 문제들이다. ― 질 들뢰즈, 「창조행위란 무엇인가?」(1987 ; 이윤영 엮고 옮김, ?사유 속의 영화?, 문학과지성사, 2011.) ; 질 들뢰즈, 「통제사회에 대하여」(1991 ; 김종호 옮김, ?대담?, 솔, 1993) ; 브라이언 마수미(정성훈 옮김), ?정동정치?, 갈무리, 2018.
14) <Chantal Mouffe : “We urgently need to promote a left-populism”> First published in the summer 2016 edition of Regards. Translated by David Broder. http://grassrootspolicy.org/wp-content/uploads/2017/08/Mouffe-on-Populism.pdf 이 글에서 무페는 아예 ‘좌파 파퓰리즘’의 기획을 제안한다. 인간의 정서적(정동적) 요인을 겨냥하는 우파 파퓰리즘의 전략에, 좌파엘리트 정치는 지나치게 인간의 합리적 이성에 대한 신뢰, 결벽성을 고집해오지 않았는지 질문한다. 또한 최근 번역된 책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이승원 옮김, 문학세계사, 2019)에서도 현재 세계를 헤게모니적 위기로 파악하고 그간 무화되어온 듯 보이는 정치적 경계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인간에 대한 평면적 이해나 신뢰만으로 이 표현의 시대를 건널 수는 없다는 절박함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 그밖에 2000년 이후 특히 미국에서의 우파 정동정치와 그 방법들에 대해서는 B. Massumi, Ontopower : War, Powers, and the State of Perception(Duke UIniversity Press, 2015) 및 ?정동정치?(조성훈 옮김, 갈무리, 2018) 참조.
15) A. Negri, M. Hardt, 앞의 책, 2017, xvi.
16) 정남영, 「지금, 여기 커먼즈」, ?2018 커먼즈네트워크 워크숍 자료집?, 2018, 13면.
17) 상탈 무페, 에른스트 라클라우(1986), 이승원 옮김,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후마니타스, 2012.
18) 최근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내일을 여는 작가? 2018년 상반기, 하반기 호의 기획들이 잘 보여주고 있다.
19) 제도로 수렴되지 않는 여러 방법들(학내 지원, 텀블벅, 공모 등)을 이용하여 자발적으로 모이고 잡지, 서적을 만들며 자신들의 문학을 발화하는 장면들을 접하거나 다양한 채널을 통한 독자들의 목소리를 듣게 될 때 이러한 역동성은 직접적으로 체감된다.
20) 마우리치오 랏짜라토, 「유럽의 문화적 전통과 지식생산 및 유통의 새로운 형식들」(서창현 옮김), ?비물질노동과 다중?, 갈무리, 2005.
21) 2015년 이후 창간된 문예지들이 독자를 중요한 항으로 설정하여 출발, 진행되어온 정황을 떠올려 보자.
22) 藤田直哉, 「前衛のゾンビたち ― 地域アートの諸問題」, ?すばる?, 2014년 10월호. 후지타는, 68혁명 이후의 의제들을 현재 일본의 지역아트라는 이름의 예술들이 실천하고 있는 것 같지만(그러므로 전위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떤 자각적 비평의 문제의식이 아니라, ‘관계성’ 미학의 의도만이 활황하거나 ‘지역활성화’라는 관·재계의 목적에 호응하는 바가 크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전근대적인 것으로 후퇴하고 있으며, 지금 전위를 표방하는 이들은 단지 좀비다라는 것이 그의 비판이다. 최근 ?좀비사회학 ― 현대인은 왜 좀비가 되었는가?(선정우 옮김, 요다, 2018)라는 제목의 책이 번역, 소개되기도 했다.
23) 淸水知子, 「Shall We “Ghost Dance?” ― ポスト代表制時代の芸術」, 藤田直哉編, ?地域アートー美学·制度·日本?, 堀之内出版, 2016.
24) 조정환, ?예술인간의 탄생?, 갈무리, 2015, 129면.
25) 보리스 그로이스(김수환 옮김), 「생명정치시대의 예술」, ?인문예술잡지 F? 19호, 이음, 2016. 이 글은 ‘픽션의 위기’를 문제화한 기획 속에 번역, 배치되었다. 이 글과 기획의도 사이의 묘한 이질감은 가령 “도큐먼트와 아카이브(혹은 데이터베이스)는 넘쳐난다. 그러한 것들을 호기심/경이(curiosities/wonder)의 대상으로 삼는 작품들, 전시들, 공연들은 넘쳐난다. 그러한 예술(활동)을 둘러싸고 있는 인문학적 담론과 교사들은 넘쳐난다. 하지만 어떠한 픽션들이 그려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변하지 못하는 이상 그들은 모두 ‘예도락’(art dilettante)에 그칠 뿐이다.”라는 기획의 말에서도 가늠해볼 수 있다.
26) 미셸 푸코가 ?생명정치의 탄생?(1978~9)에서 논한 개념. 조르주 아감벤은 그의 3부작(호모 사케르, 예외상태, 왕국과 영광)에서 이 주제를 이어받아 생명정치에 대한 논의를 정교화했다. 한편, 네그리와 하트는 생명정치(biopolitic) 개념을 전복시키고 거기에서 역으로 그 가능성을 발견하고 한다. 이런 차이를 감안하기 위해 네그리와 하트의 biopolitics 개념을 한국에서는 ‘삶정치’로 번역하곤 한다.
27) 보리스 그로이스(김수환 옮김), 앞의 글, 2016.
28) 마우리치오 랏짜라토(주형일 옮김), ?정치실험?, 앞의 책, 2018, 232면.
29) 치쿠마쇼보(筑摩書房) 공식 트위터 https://twitter.com/ChikumaHenshubu/status/1072850091864518657
30) 일본에서는 2019년 3월 시점에서 한국소설로서는 이례적으로 8만부가 판매되었고, 이 소설에 이어『현남오빠에게』(조남주 외, 다산책방, 2017)도 2019년 2월 번역·발간되어 한국소설×페미니즘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婦人民主クラブ발간, <ふぇみん>, No.3214(2019.3.5.) 참조.
31) A. 네그리, M. 하트, 앞의 책, 2017,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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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와 대피소


김대성(생활예술모임 <곳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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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화된 깃발을 부착하고 안정적으로 띄운 ‘공인된 드론’이 아니라 크고 작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띄운 ‘비인가 드론’으로 세상을 조망하면서도, 너무 복잡하고 시시때때로 굴절되는 탓에 그 면면을 들여다볼 엄두가 나지 않는 바로 그 세상의 세세한 면들을, 저공비행으로 포착하고자 하는 비평적 글쓰기로 읽혔던 이 글의 아슬아슬한 운전술에 주목하게 된다. 상공에 떠 있는 상태이지만 발딛고 서 있는 사람들의 시선에까지 내려와 그들 사이를 정교한 테크닉으로 가로지르며 채집한 오늘의 ‘꼴’이 어떤 ‘틀’ 위에 놓여 있는지를 일정한 예열이나 문턱 없이 곧장 펼쳐보이는 ‘비평적 운전술’에 감탄을 하면서 말이다. “문학을 둘러싼 여러 주체가, 매개와 유관/무관하게 네트워킹하며 예술의 경험을 공유하고 구축하는 ‘관계성’의 원리”(김미정, 『움직이는 별자리들-잠재성 운동 사건 삶으로서의 문학에 대한 시론』, 갈무리, 2019, 36쪽)에 주목하며 기존의 미학적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변화하는 예술현장과 조건에 대한 논의를 펼치고 있는 이 글은, 생명정치시대의 통치술과 그 조건을 전유하는 비정규적이고 비규정적인 집합(assembly)의 현장에서 생성되는 예술의 가능성과 그 “존재론적 자리바꿈”(42쪽)이 만들어갈 세상에 대한 기대로 가득하다.

“스스로 무리를 이루고 자기표현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양태와 원리”(22쪽)가 헤게모니 쟁투의 장이기도 한 터라 하나의 깃발(민주주의) 앞에 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셈블리라는 말속에 집회를 대의제로 이동시킨 ‘의회’라는 뜻이 잠복해 있는 것처럼 새로운 주체들의 출현이 언제라도 혐오와 차별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우리가 인민이며 민중이자 다중이다’) 재전유되고 재맥락화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에 대해서도 경계하고 염려하는 데에도 소홀하지 않은 이 글은 그럼에도 무엇보다 무언가가 바뀌고 있는 생생한 트랜지션 현장에 흘러넘치는 정동적 에너지에 집중하고 있다. 그 변화를 조망하고 진단하는 것만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위험할 수도 있는 비평적 운전술을 통해 현장(들)을 누비는 과정이 내겐 이 글이야말로 존재론적인 자리바꿈을 감행하고 있는 비평적 현장이라 생각되었다.

2

내 글쓰기는 진단하고 조망할 수 있는 드론을 띄우기는 커녕 한줌의 영역도 벗어나지 못해 애면글면 아등바등 하는 형편이라 이 글과 같은 눈높이에서 응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작은 ‘오솔길을 찾는 걸음의 감각’으로도 괜찮을지 염려되지만 산자락을 타고 산맥을 횡단하는 트래킹 모드로 전환해 그간의 이력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작게나마 만들어보고 싶다. 『움직이는 별자리들』을 읽으면서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했던 글이 ‘#문단_내_성폭력’에 관한 글(주제)이었던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별자리’(“필부필부인 우리가 오히려 별이 되고 별자리를 대신할(늘 대신해왔을) 역량을 갖고 있음을 지금 다시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47쪽)와 ‘흔들리는 재현체계’에 관한 것이었음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 저간의 사정을 다각도로 접근할 수 없는 조건에 놓여 있다는 점, 그런 상황에도, 아니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조금 더 선명하게 논의의 전선을 구축할 수 있겠다는 의욕과 그 전선이 차별화된 지점일수도 있겠다는 욕심은 차라리 부차적인 것이었다는 점도 뚜렷해졌다. ‘문단 내 성폭력’ 사건을 겪으면서 물어야 했고 묻고 싶었던 것은 나-우리가 믿으며 기대고 있었던 ‘문학성’이 무엇이었는지를 오래전부터 자행되어온 ‘문단 내 성폭력’을 통해 마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강하게 이끌렸던 작품과 작가들이 여성혐오(misogyny)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집단군’임을 조망하고 그에 대한 비평적 반성과 성찰할 수 있는 영역을 마련해보고 싶었다.

2015년 이후(‘신경숙 표절 사건’이 아닌 ‘문단 내 성폭력’이 사건화된 이후) 변화된 비평장의 분위기에 대해 잠시 언급하고 싶다. 이런 물음을 품고 있다. 문단은 자신에게 도착한 편지를 ‘수신’하지 않고 ‘대독’하게 함으로써 답장이라는 응답이 아닌 이슈화해버린 것은 아닌가? 문단 내 성폭력 문제를 재빨리 ‘페미니즘적 독해’라는 방법으로 전환해 그것을 새로운 해석이나 해석의 확장이라는 미명으로 논점을 희석시켜버리지 않았는가? 소수자성(퀴어 서사)에 대한 주목으로 논의를 확장하는 것처럼 심화의 논리화를 꾀했지만 보다 보다 핫한 주제로 옮겨간 것은 아닌가? 이런 의구심이 거친 규정이자 도식화라는 것을 모르지 않으며 이런 문제일수록 문단 내의 차이를 선명하게 하고 가시화되지 않은 전선을 명확히 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도 의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진술하는 이유는 그간 ‘문단의 구조에 관해 뭔가를 말하기 위해선 그와 관련된 논의들을 빠짐없이 파악해야 한다’는 강박(이자 내부의 명령) 탓에 주객이 전도되어버린 경험이 적지 않기 때문에(실은 그 때문에 시작하지 못하고 좌초된 글이 대부분이어서) 여기에선 이런 의구심을 표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분명한 건 한국문학장이 ‘문단 내 성폭력 사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리고 문학장 내부엔 돌아갈 수 없는 길 위에서 오지 않은 시간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비평을 쓰는 이들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비평을 쓰는 이들과 다급하게 돌이킬 수 없게 된 이 길이 잘못된 길임을 공표하며 역사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려고 하는 이들로 양분된다는 것이다.

포스트 대의제 현장과 문학에 대해, ‘이후’를 가능하게 한 역사의 동력에 관해 논의하거나 주요 사건에 참여하지 못했던 이유, 응답하지 않았던 이유, 당사자라는 감각을 가질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거듭 생각하게 된다. 능력과 역량 부족이라는 말은 지루하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말해두고 싶다. 그 부분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는 점이라고 말이다. 게으른 자기정당화처럼 보이는 이 진술은 비평 행위의 영역이 보다 광범위해졌고 보다 세분화되었다는 변화에 대한 감각을 가리킨다. 문학이라는 공통장이 과거처럼 비평가 집단의 지평에 다 포섭되지 않는다는 것, 포섭될 수 없을 정도로 다종한 주체들의 목소리가 범람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평가 개인의 역량 부족이나 메인스트림의 감각을 가지지 못한 결여의 표지가 아니라, 이런 표지가 가리키고 있는 보다 선명한 현실의 좌표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렇게 말해도 좋을까. 비평(영역)은 국지화되었다. 또 비평은 국지화되어야 한다. 전처럼 (한국) 문학 전체를 포괄할 수도 없고 효과적으로 조망하거나 논평할 수도 없다. 너무 많은 주체들이, 다종한 욕망들이 앞다투어 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비행술로 개척한 항로 위에서, 각자의 걸음과 보폭으로 보고 말하고 상상하고 예감하는 논의가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건 비평이 더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비평 무용론이나 몰락의 징조가 아니다. 할당 받은 비평의 역할이 아니라 각자가 구축해가는 비평적 전선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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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성 없는 자들의 연루: 차질, 응축된 반작용, 취약성1)


신지영


<1> ‘연대’에 대한 질문 - 교차하는 권력, 보이지 않는 공통성

소수자 코뮌 사이의 연대 불/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타자에 다가가려는 노력과 그 실패로 인한 안타까움을 담은 것이었다. 저곳의 고통이나 슬픔을 이곳에서는 완전히 느낄 수도 이해할 수 없다는 자각, 타자에게 다가가려 해도 어쩔 수 없는 간극과 위계가 존재한다는 한계에 대한 인식은, 소수자 코뮌 사이의 섣부른 동일화가 아니라 특이성이 공존하는 관계를 상상하게 했다.

그런데 최근 연대 불/가능성에 대한 담론은 교차하는 권력에 의해 생긴 분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소수자들 사이의 갈등을 부각시킨다. 예를 들면 난민수용을 여성이 반대한다든가, 일자리를 놓고 난민과 경쟁하게 될 것이라든가 등의 담론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실재할까, 또 어떤 효과를 낳을까?

난민에 대한 혐오발언들은 한국 내 연합된 보수세력에 의해 유포된 것임이 알려지고 있다.2) 그러나 출처나 진위 여부와 별도로 이러한 담론들이 계속 이야기되는 것은 세 가지 점에서 문제적이다. 첫째로 이미 규정된 정체성에 기반하여 소수자들의 코뮌을 규정해버림으로써 생성되는 ‘이름 없는 코뮌’의 구성적 활기를 보지 못하게 한다. 둘째로, 각 신체를 통과하는 교차하는 권력들을 보지 못하고 ‘가짜 적’을 생산한다. 즉 소수자들‘에 대한’ 억압이 소수자들‘의’ 갈등 때문인 것 같은 착시현상을 낳는다. 셋째로, 소수자들의 코뮌을 비교 대상으로 만듦으로써 소수자들의 공통장 형성을 방해하고 다른 삶에 대한 상상을 불가능하게 한다.

자크 랑시에르는 <찾을 수 없는 포퓰리즘>이란 글에서 “유럽에서는 포퓰리즘의 위협을 고발하는 목소리를 듣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다. 그러나 이 말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하면서, 포퓰리즘의 담론적 효과를 비판적으로 논한다.3) 포퓰리즘 뿐 아니라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과장되게 설파하는 담론은 민주주의적 인민을 군중의 이미지와 같은 것으로 만들고, 현재의 통치자들과 체제를 신임하지 않으면 위험한 전체주의로 나아갈 것이라고 설파한다. 이처럼 “포퓰리즘의 치명적 위험에 대한 오늘날의 대대적인 선전”은, 결국 “우리에게 다른 선택이 없다는 생각을 이론으로 수립”하는 것이라고 한다.4) 이러한 포퓰리즘은 사실 난민처럼 “인구구성원의 일부를 불안정”하게 함으로써 “언제나 추방당할 수 있는 노동자들”과 “프랑스인으로 남는 것이 보장되지 않는 프랑스인”을 만들어내는 데 본질적인 목적이 있다고 간파한다.5) 바로 이 지점에서 소수자 코뮌은 비교와 갈등의 대상이 되고, 소수자들은 더 낮은 위계의 소수자가 되거나 그들과 겹쳐지지 않기 위해 분열된다.

다른 한편, 소수자들 간의 관계를 갈등과 비교의 언어로 담론화하는 경향은 한국 사회의 변곡점을 반영한다. 즉 촛불혁명으로 이뤄낸 민주주의는 그 속에 다양한 소수자들의 권리나 타자와의 관계성에 대한 사고를 심화시키지 못했고 이는 혐오발언이나 혐오 범죄의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단식장 앞 피자 폭식행위, 5.18에 대한 모독, 묻지마 범죄의 확산, 난민에 대한 혐오발언 등 최근 대중의 움직임에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공존한다. 미류는 이 상황을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부정되는 것을 넘어 정치의 기반 자체가 허물어지기 시작”한 상황이라고 진단한다.6) 또한 이렇게 질문한다. “새롭게 등장하는 대중적 움직임들에 혐오와 배제의 언어가 가득할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7)

김현미는 예멘 난민들의 유입과 함께 불거졌던 난민에 대한 혐오발언의 배경에는 “개혁정당이 대두된 2018년 한국사회의 정동 속 “히스테리적 혐오”8)가 있다고 말한다. 당시 한국 사회에는 외국인이나 무슬림에 대한 혐오와 함께 “재분배, 평등, 안전 등과 같은 가치지향적인 의제들”이 얽혀 있었고, 이는 10년간 신자유주의적 보수 우파 정권에서 가속화된 경제격차와 불안 이후에 “‘이게 나라냐’로 시작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특권주의적 정서가 강화된 문재인 정부를 관통하는 사회장 속에서 구성”된 것이라는 분석이다.9) 문재인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이며, 과정은 공정할 것이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바뀐 것은 없었고 일자리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며, “차별에 대한 분노는 공정성에 대한 집착으로 수렴되었다”는 것이다.10) 소수자들 사이의 관계가 비교와 갈등과 경쟁으로 이야기되는 상황 속에는 바로 이러한 촛불 정권에 대한 실망과 함께, 소수자가 되는 것에 대한 공포, 불안이 있다.

어떻게 하면, 포퓰리즘에 가담하지 않는 형태로 소수자 코뮌 사이의 관계를 섬세하게 말함으로써 태어나고 있는 소수자 운동을 연결해 갈 수 있을까? 또한 어떻게 하면 소수자 코뮌 사이의 갈등을 낳는 핵심에 자본주의와 식민주의 권력이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소수자 코뮌 내부에서 다시금 반복되는 폭력과 억압을 끊어내는 연대를 상상할 수 있을까?

『마이너리티 코뮌』(갈무리, 2016)에서는 생성되고 있는 무명의 코뮌을 기록하면서, 소수자 코뮌 사이 혹은 내부의 어둠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었다. 한 예로 <여자와 퀴어들의 외치는 회>의 경험이 있다. 미야시타 공원을 개발하고 유료화하려는 나이키 회사는 그 이유로 미야시타 공원에 홈리스가 많아 여성과 아이가 무서워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을 들었다. 당시 이 회를 하자고 메일을 보낸 이치무라 미치코의 메일에는 “여성과 아이들의 공포를 마주하지 않고 야숙생활자에게 돌려, 여성과 아이들을 야숙자와 대립시키”려는 논리에 반발하면서 “저주, 화, 한, 분노, 슬픔, 증오, 원망, 비방과 같은 소리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여성과 퀴어의 외치는 모임”을 연다고 쓰여 있었다. 이날 모인 여성과 퀴어들은 소수자 코뮌들의 용어를 차용하고 소수자 코뮌 사이에 갈등과 비교를 낳는 권력의 소리를 벗어나, 미야시카 공원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악 소리를 지를 때마다 참여자들의 얼굴은 마치 어린애들의 얼굴처럼 환해졌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그 소리는 너무나 여성적이지 않아 ‘소프라노로 소리지르는 여성’이라는 시나리오에 파격을 가했다.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이 달려 왔지만, 참여자들은 “소리를 지르면 안된대”라며 ‘무지한 여성’의 모습을 패러디하며 타이르고 그 와중에도 다른 쪽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곤 하여 경찰을 당황시켰다. 즉 “홈리스를 ‘무서워한다’고 정의된 여자들은 소리를 지름으로써 그들 스스로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비명’이라는 두려워하는 소리가 아니라, ‘외침’이라는 두렵게 하는 소리로. ‘두려워하는’ 수동태가 아니라 ‘두려운’ 능동태로.”11) 이처럼 소수자 코뮌의 관계를 말할 수 있는 순간은 소수자 코뮌을 비교/경쟁/대립시키려는 힘에 맞서 새로운 정체성과 공통장을 발명하는 제스추어와 목소리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포퓰리즘과 포퓰리즘에 대한 위험을 선전하며 다중의 접속을 무력화하는 힘들 속에서 <<마이너리티 코뮌>>에서 말했던 ‘연대’라는 말은 권력에 자주 활용되는 상황과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한 활동가의 질문, “권리에 이름이 없다는 것이 가능할까?”처럼, 기존의 정체성으로부터 과감히 이탈한 공통장은 계속해서 생성된다.12) 이번 글은 바로 공통성 없이 보이는 것들 사이의 연루를 살펴봄으로써 소수자 코뮌의 연결고리를, 정체성과 민주주의의 근거가 문제 제기되고 있는 현재의 변곡점 위에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특히 난민의 상태와 난민화된 소수자들의 상태가 구체적인 문제들 속에서 어떻게 긴밀히 관련될 뿐 아니라 난민인권운동과 소수자운동이 서로에게 얼마나 깊은 자극이 될 수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적’이라는 명확한 차이와 간극을 인식하고, 동아시아 및 현재의 전지구적 내전 상태에서 ‘연대’와 ‘연루’를 고민한 사상가들(최일수, 모리사키 카즈에, 김시종, 주디스 버틀러)을 통해서, 이 각 소수자 코뮌이 마주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여러 정동과 반응과 표현들(차질, 응축된 반작용, 류민의 언어)을 불/가능한 연대의 사상적 좌표들로 모색해 보았다.

이처럼 소수자 코뮌 사이의 불/가능한 연대라는 말을 타자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라는 원래적 의미로 되돌림으로써, 활동가, 연구자, 시민, 당사자 사이에서 끊임없이 맺어지면서 형성되는 관계성을 ‘매듭을 만드는 것’이라고 이름 붙이고 이때 형성된 증언이자 선언이자 요청인 표현물들을 살펴보았다. 이것은 불/가능한 연대가 일종의 매듭으로 연결되어 가면서 난민인권운동, 소수자운동, 평화운동이 기존의 정체성을 변형시키고 구성적 공통성과 공통장을 형성해가는 과정이었고, 그 속에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2> ‘어떤’ 난민인가 - 전지구적 내전 상태와 소수자 코뮌의 연루

낙인의 대상이 되는 소수자의 이름은 빨갱이->종북->여성->난민->성소수자로 트윅스터처럼 교체되어 왔다. 그러나 이 이름들은 각각 떨어져 존재하는 신체가 아니다. 오히려 이 정체성들은 권력과 맺는 관계에서 볼 때 긴밀한 공통성을 갖고 있다. 동시에 각 시기별로 드러나는 한국의 사회운동의 특이점 혹은 변곡점들을 가시화한다. 그 중 ‘난민’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그러나 ‘난민’을 ‘국적’이 있고 없다는 정체성에 한정시키지 않고 ‘난민화’된 상태(state)을 통해서 사고해 보려고 한다.13) 그렇지만 ‘난민화’되어가는 삶의 양태에 대한 사유는, ‘난민’의 상태가 다른 소수자들과 달리 ‘국적, 시민권’이 없는 법적 제도적 군사적 상태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이전부터 한국 사회에 난민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8년 중반 경 예멘난민 500여명이 집단적으로 들어오면서 가시화되었다. 이때 한국사회는 식민지기, 해방직후, 한국전쟁 때 난민의 위치로 살 곳을 찾아다녔던 경험에서 받아들이는 위치로 변화되었다고 이야기되었다. 그러나 이 상황은 한국 내부의 상황에서만 보면 그러하다. 그런데 북한으로부터의 난민도 아닌 예멘, 이집트, 시리아 등 중동지역 혹은 아프리카로부터의 난민이 한국사회에 눈에 뜨일 정도로 이주하기 시작했는가에 대해서는 좀 더 전지구적 차원의 변화 속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소수자 코뮌의 관계는 예전부터 국가, 민족, 인종, 성 등으로 환원될 수 없었지만, 난민의 확산, 혐오발언, 테러의 양상을 보면 소수자 운동은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지구적인 차원과의 관계를 가져야 할 상황에 직면해 있다.

에티엔 발리바르는 샤를르 엡도 사건이 일어났던 2015년, 제1세계 내부에 제3세계가 파고들어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형태에 대한 짧은 글인 <In War>를 발표한다. 전쟁은 저 멀리 떨어진 제3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테러라는 형태로 제1세계 한복판에 끼어들었으며 제1세계 사람들은 제3세계의 ‘인질(otage)’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들은 전쟁상태에 있다. 아니, 오히려 우리들은 이미 ‘전쟁’ 한복판에 있다. 우리들은 공격을 하고 그 응보를 받았다.”라고 말하며 이 전쟁의 근본에 제1세계의 선제공격이 있지 않은가 반성한다.14) 그리고 일종의 전지구적 내전의 형태를 띤 현재의 폭력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복수하려는 열망에 저항하면서 “용기와 비타협”을 통해 평화를 일상의 질서로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은 식민지 해방 이후에도 줄곧 내전과 독재를 겪어 온 아시아와 한국의 상황에서 생각해 볼 때 새삼스러운 느낌도 든다. 한국을 포함한 식민지 경험을 지닌 아시아는 지금 새삼 내전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쭉 내전을 경험해 왔다. 그러나 잠시 너무 익숙해 잊혀졌거나 비가시화되었던 내전상태가, 이번에는 한국 내부로부터가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난민’을 통해 실감되고 있다. 비록 탈분단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 내부의 휴전상태에 더하여, 저 멀리 있었던 분쟁과 전쟁이 한국 내부에 깊숙이 들어왔다. 이 내재하는 전쟁상태는 한국사회의 소수자 운동의 연대와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전지구적 연루가 발생하고 있다는 말에는 귀를 기울이게 된다. (예 삽입) 난민인권활동이 평화활동 및 소수자 활동과의 연관성을 재구축하는 지점이 여기다.

따라서 이러한 설명들은 다른 소수자의 상태 보다 난민의 상태가 특별하다고 주장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전지구적 내전과 연루되어 있다는 것은, 난민의 상태와 다른 소수자의 상태가 어떤 공통적인 기반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유도한다. 이 질문은 난민의 특수한 조건을 규정할 때보다, ‘난민’이 아닌 다른 소수자들의 난민화된 상태를 가시화할 때 래디컬해진다.

미류는 3월 23일에 개최한 사회인문학 포럼 티치인 <신인종주의와 난민>의 발제문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무엇을 포괄하는가>에서 소수자운동과 난민운동의 접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소수자운동과 난민운동은 서로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성소수자로서 생명의 위협을 받아 한국으로 와 난민신청을 했지만 다시 한국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 난민들의 상황을 예로 든다.15) 이처럼 난민신청이 받아들여졌다고 해서 성소수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난민운동과 소수자 운동의 접점이 아니라 난민운동 안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못한 성소수자 문제를 자각하게 하며 동시에 성소수자들 중 난민이 있음을 가시화한다.

난민X여성. 난민이면서 여성인 상태는 복합적이다. 난민인권센터에서 나온 난민들의 에세이집 <<안녕 한국!>>16)에서 자로스는 안정된 취직을 할 수 없는 인도적 체류지위 상태에서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고통에 대해 쓴다. 그 고통 속에는 가난과 동사무소에서 “떠돌이 개처럼 밖으로 돌려 보내졌”던(안녕/43) 기억과 흑인이라고 당했던 인종차별이 드러난다. 이러한 고통을 난민이며 여성이며 가난한 자이며 흑인이며 싱글 맘이며.... 라고 수많은 이름을 겹쳐 놓음으로써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수많은 이름을 붙이기 전에, ‘난민의 재생산 권리’라는 주제로 접근하면 이름들은 후경화된다. 그리고 ‘원치 않는 임신’이 전시성폭력 뿐 아니라 가정폭력, 무국적자의 이동 등 다양한 상황에 동반되는 위험임이 드러난다.17) 고은지는 <난민과 임신 중지 권리에 관한 메모>라는 글에서 난민여성은 전체 난민의 50%를 차지하며 그녀들이 난민이 된 원인에 전시성폭력이 있을 뿐 아니라 난민으로 이동하는 과정 뿐 아니라 정착한 뒤에도 끊임없이 강간과 성폭력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강간으로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그녀들은 한국에서 또 다른 어려움에 부딪힌다. 한국의 이주/난민 정책이 난민들을 삶의 기본권으로부터 철저히 배제시켜 왔기 때문에, 난민지원이 종교단체에 의해 이뤄진 경우가 많고 난민여성의 재생산 권리에 대해서는 논의되지 못했다. 따라서 임신을 한 여성들은 비난의 대상이 되거나 의료체계에 접근할 수 없는 상태에서 비합법적 임신중절을 시도하게 된다. 비합법적 임신중절은 건강에 심각한 해를 끼칠 뿐 아니라, 이것이 알려지면 강제송환될 수도 있다. 즉 난민여성의 강간 등 원치 않는 임신이라는 상황을 낙태시술의 접근성과 관련시켜서 살펴보면, 그녀의 몸을 통과하는 수많은 폭력들이 가시화된다. 전쟁 속 성폭력, 일상 속 성폭력, 말할 수 없는 피해경험, 집안의 감금, 불법낙태시술 등이 그녀들이 처한 상태이다.

난민여성이 난민인정 심사 절차에서 어떤 상태에 놓이는지에 초점을 맞춰보자. 심사 과정에서 난민 여성들은 기본적 인권을 인정받기 위해서 피해경험을 감추거나 침묵해야 한다. 고은지는 난민 여성들에게 난민심사가 그녀들의 경험을 침묵시키는 과정임을 지적한다. 난민심사는 “가족패키지” 즉, 가족단위로 이뤄지는데 여성들은 생존과 보호를 대가로 가정 내 폭력에 침묵할 수밖에 없다. 임신이 강간이나 성매매라는 사실을 숨겨야 하는 상황 속에서만 난민으로서 심사를 받고 난민의 인권이라는 제도적 승인을 받을 수 있다는 이 모순된 심사 앞에서, 여성들은 스스로의 몸에 대한 재생산 권리에 대해서도 그 권리를 위해 시스템이나 정보에 접근하는 루트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 즉 인권을 인정받기 위한 심사과정이 곧 말할 장소로부터의 박탈이라는 인권침해를 통해서만 가능해지는 것이다. 침묵함으로써만 (‘시민’도 아닌) ‘난민’이 될 수 있는 그녀들의 상황은, 침묵함으로써만 ‘시민’이 될 수 있었던 수많은 여성들의 상태를 비춘다.

이런 구체성 앞에서, 난민과 여성이라는 두 소수자 정체성의 비교와 갈등 담론은 설 자리조차 찾을 수 없다. 드러나는 것은 강간을 당해 임신을 한 몸 위로 교차하는 수많은 권력들이며, 그 몸의 고통과 떨림과 연약함에 공감하면서도 침묵하고 있는 ‘우리, 난민화한 여성’의 상태들이다.

난민X하층노동자(혹은 청년). 난민과 하층 노동자 사이의 경쟁과 비교는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혐오발언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사실 한국사회의 현 상황에서 ‘난민의 노동’이란 형용모순이다. 난민인정을 받는 비율이 5%로 되지 않을 뿐더라 대다수는 인도적 체류자격을 받는데, 이 자격으로는 안정된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또한 난민신청을 한 뒤 받는 G-1비자 상태에서는 6개월간 취업이 불법이다. 한 난민의 말을 빌리자면 난민들은 법을 어기면서 살거나 법을 지키며 죽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물론 난민들은 일자리를 필요로 하며, 현상적으로는 한국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 위협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서 죽음 노동을 하는 불안정한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 누구인가를 질문해 보면, 난민인 노동자와 하층 노동자 사이의 갈등이라는 담론의 기만성이 드러난다. 난민이 사라진다고 해서 죽음 노동을 하는 조건이나 취업이 어려운 상황이 변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동자들 사이의 분열과 위계를 만들어내고 늘 더 취약한 자리를 생산해내는 것은 자본의 노동자 관리 전략이다.

난민인 무사 사피엔툼은 이렇게 말한다. “왜 우리 사장님은 노동시간위반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그렇게도 받아들이지 못했을까요! 아마도 그분은 취업이 어려운 저를 채용했으니 이미 저에게 은혜를 베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아닐까요? ”(안녕/48쪽) 난민의 노동이 합법화되고 정당한 노동법에 의해서 다루어져야만 노동조건 전반이 개선될 수 있다. 난민과 노동자는 대립하는 항이 아니라 자본의 노동착취 시스템에 의해 공통된 장에 연루된 존재들이다.

난민X성소수자. 난민이면서 성소수자인 경우는 드러나지도 이야기되지도 않는다. 튀니지 출신 난민이자 성소수자인 아마두는 한국에 온 뒤 다시금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만나 시설화된 상태에 빠진다.

저는 혼자서 고시원이라는 곳에서 살았습니다. 아주 작고 창문이 없는 방 한 칸이 전부였습니다. 고시원에서는 다양한 국적, 종교, 문화, 나이 대의 사람들과 화장실을 함께 사용해야 했습니다. 저는 성 정체성을 이유로 한국에 온 것이었기 때문에 고시원에서는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알지 못하는 남성들, 저와 비슷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남성들과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변과 단절된 채 매우 외롭게 살았습니다. 외출도 하지 않았고, 방문 두드리는 소리에 반응하지도 않았으며 밥도 거의 제대로 챙겨먹지 않은 채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보거나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문자만 주고받았습니다. (안녕/90~91쪽)

난민심사과정 또한 성소수자에게는 폭력에 노출되는 과정이며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국가의 심사와 언어로 만들어 버리는 과정이다. <신인종주의와 난민> 의 나영정 토론문은 성소수자의 난민심사라는 문제를 파고든다.18) 나영정은 난민운동을 통해 “정체성이 정당성을 보증한다거나 정체성을 진술하는 것 자체가 권리라는 말이 어떤 조건에서나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성소수자 난민이 인간임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이때 “성소수자가 나를 규명하기 위해서 찾고 가다듬어왔던 ‘정체성의 언어’가 임의적으로 자격이 부여된 몇몇 사람에 의해서 검증되고 승인된다”고 문제제기한다.

난민 성소수자는 일상에서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감춰야 하는데 난민인정을 받기 위해서 심사절차에서는 내밀한 경험과 고투 속에서 정립해 온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국가의 언어와 제도에 맞춰 입증해야 한다. 이 모순된 상황은 소수자성이 마치 비교가능하거나 측정가능한 것처럼 담론화함으로써 오히려 구체적인 성소수자들의 고통과 복수성을 정형화하고 보이지 않게 만든다. 이처럼 소수자성을 비교할 수 있거나 측정할 수 있는 국가의 언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소수자성을 폐쇄적이고 규정된 정체성으로 환원해 버림으로써, 다른 소수자들의 상태와의 연대의 조건 조차도 무기력하게 만든다.

난민X여성, 난민X하층노동자, 난민X성소수자와 같은 익히 알고 있는 이름들에서 시작하더라도, 그 각각의 상태가 만들어내는 훨씬 더 구체적인 상황들을 파고들면, 기존의 이름으로 설명할 수 없는 폭력과 억압의 복잡성과 함께, 몸을 가진 존재들의 취약성이라는 상호의존적인 공통성이 드러난다. 이러한 연루됨은 난민과 여성을, 난민과 노동자를 대립시켜 혐오의 정동을 확산시키고 공분의 벡터를 혼동스럽게 하는 권력의 언어이자 포퓰리즘의 언어를 무력화한다. 그리고 ‘난민 일반’, ‘소수자 일반’이 아니라, ‘어떤 난민인가, 어떤 소수자인가, 어떤 ~ 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되돌려준다.

<3> 이행의 순간들과 연대의 불/가능성 -최일수, 모리사키 카즈에, 김시종

그러나, 난민의 구체적인 상황을 살펴보는 것은, 하나의 몸에 교차하는 수많은 억압과 폭력, 그리고 그로 인한 고통만을 드러내는가? 혹은 소수자 코뮌의 연대는 고통을 통해서만 피해자다움을 통해서만, 수동적인 위치에서만 가시화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비록 1세계 서양 백인 여성의 입장이 뚜렷하지만, 성소수자인 주디스 버틀러는 우리는 “행위를 당하기도 하고 행위를 하기도 하며 우리의 ‘책임’은 그 두 상황의 접점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19) 행위를 당하는 것은 우리를 우리를 둘러싼 조건에 속박시키지만, 행위를 하는 것은 그 조건을 변화시키려는 수행적 행위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작용하는 힘들이 우리의 행위에 대해 최종적 책임을 갖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폭력의 역사적 대물림에서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라고 질문한다.20) 이러한 해석은 폭력을 당하고서야 그 폭력을 자각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는 점에서 제1세계의 경험이 그 핵심에 있다. 따라서 식민지를 경험하고, 전쟁상태 속에서 냉전을 경험하고, 독재와 내전과 민주화 투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아시아의 역사 속으로 바로 끌어들이려면 다소간 위화감이 든다. 그러나 자신을 둘러싼 조건을 바꾸려는 행위 속에서, 책임이 이야기될 수 있다는 언명은 중요하다.

난민들이 난민이 된 상황에는 바로 이러한 행위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조건을 ‘이행’시키거나 ‘창조’하려 했던 결단의 계기가 나타나 있다. 자신을 둘러싼 삶의 환경을 새롭게 구축하려는 노력, 새로운 공통장에 대한 욕망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결단과 행위들을 전지구적 연루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윤리적 기반으로 삼고 싶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이집트 거주 팔레스타인 ‘난민’의 신분이었던 라흐만은 <나의 연대기>라는 에세이에서 이집트의 독재정치를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던 순간을 적는다. “정권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두려웠지만, 흥분도 되었습니다. 시위 현장에 다가가다 보니 어느새 저는 시위대의 일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이 나라를 지배하는 깡패들로부터 사랑하는 조국을 해방시킬 수 있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그 감정에 푹 빠졌고 그때부터 종종 반정부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안녕/118쪽)

안젤로는 <평화로운 마음>에서 사람들의 아귀다툼 안에 스스로를 출연시키길 그만두기로 결심 한다. 독재로 인한 연료부족사태가 지속되자 아침마다 “힘세고 강한 사람들만이 버스에 겨우 올라탈 수 있”고 “노인, 여자, 그리고 어린이들은 자리를 구하려 아무리 애를 써봐도 소용이 없”는 상태가 된다.(안녕/83쪽) 안젤로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소득 없는 아귀다툼을 그만두기로 결정하고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안녕/83쪽). 래리 마도워는 <소망>이라는 글에서 부족 간 싸움이 여성들에 대한 전시 성폭력과 폭력으로 이어지고 다시금 집 안에 갇힌 상태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원치 않은 임신을 하거나 에이즈에 걸리는 상황에서 도망쳐온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서 태어난 딸이 제가 겪었던 끔찍한 고통을 다시 겪지 않기를 기도합니다.”(안녕/16쪽)

헨리는 <고향의 처지>에서 자신이 양성애자임이 알려지면서 모든 것이 변화했다고 쓴다. 단지 양성애자라는 이유로 죽이려고 드는 부족사람들을 피해 캄팔라거리로 가지만 우간다 정치상황으로 젊은 사람들은 다시금 위험에 처한다.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으로 온다. 알렉스는 예멘에서 살면서 몰랐던 자유의 의미를 해외에 살면서 깨닫게 된다. 그 자유의 공기가 좋았던 그는, 어머니 장레식장에서 스스로가 기독교인이라고 밝히게 되고 이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받아 도망쳐 온다. 그는 한국에서 어둡고 냄새나고 벌레가 많은 쉼터에서 묶게 되지만, 의지가지 없는 상태에서도 “쉼터에 의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거리를 나선다.(안녕/99쪽). 그는 말한다. “제가 알고 사랑하는 모든 것이 자유의 대가임을 깨달았습니다”라고.

사르다르는 파키스탄 정부기관의 박해를 피해 한국으로 온다. 구금과 같은 상황인 보호소의 열악한 환경에 단식농성으로 저항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길을 걷다 길 한가운데에 놓인 돌을 발견한다면, 그 돌을 주워 도로변에 두어 길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지나간 뒤 시각장애인이 그 길을 지나갈 수도 있으니까요.-중략-이것은 누가 봐도 작은 실천에 불과하지만 이로 인해 누군가를 어려움으로부터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터득한 지혜에 의하면 ‘삶은 대부분 투쟁의 연속입니다’ 계속해서 싸워 나가세요. 절대 희망을 잃지 마세요.”(안녕/115쪽)

이들의 글에는 스스로의 삶을 독재정권이 좌지우지하게 놔두지 않겠다는 결심, 숨길 수 없었던 자유에 대한 갈망, 전쟁과 폭력을 피해 생명을 보존하려는 의지, 더 나은 관계를 만들려는 욕망 등이 표현되어 있다. 우연하면서도 오랜 세월동안 만들어져 온 지층을 뚫고 나오는 순간들, 순간적이면서도 영원히 삶을 바꾸는 순간들로 차 있다. 이것들은 극한적 상황이 아닐지라도 소수자 코뮌이 공통장을 형성하기 위한 정동이며, 이 말들은 그들의 몸이 놓인 상태들과 떨어져서는 말해질 수 없는 슬픔, 고통, 애도, 고양, 반려로 점철된 수행적 발화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방의 계기들을 곧바로 한국의 소수자 운동의 해방의 계기들과 연결시킬 수는 없다. 한국에 온 그들은 ‘국적’이라는 종이 한 장(임화 <비오는 시나가와 역>)이 낳은 법적 지위의 차이 때문에 한국에서 더 큰 폭력과 억압에 노출된다. 따라서 다시금 연대의 불/가능성을 사유해야 한다.

그러나 이때의 ‘연대의 불/가능성’은 소수자 코뮌들 사이의 비교와 갈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난민과 한국의 소수자가 연루된 기반을 사유하고, 소수자 코뮌의 마주침의 순간에 드러나는 여러 가지 반응, 정동, 표현들을 불/가능한 연대의 에너지로서 적극적으로 사유하기 위해서 최일수의 ‘차질’, 모리사키 카즈에의 ‘응축된 반작용’, 김시종의 ‘류민’, 주디스 버틀러의 ‘취약성’을 이론적으로 검토해 보겠다. 이 연대의 불/가능성을 가리키는 상태들은, 동아시아와 한국의 경험 속에서 구성되어 온 관계의 사상들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로 1950년대 최일수의 ‘차질’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난민과 난민은 연대 가능한가라고 질문을 한국역사 속 제3세계 연대론 속에서 검토해 보자. 난민 에세이집 <<안녕, 한국!>>에는 시기는 다르지만 식민지, 해방, 독재, 혁명, 군부독재,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는 이야기가 중동이나 아프리카 지방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수단에서 온 나오라스는 “한국은 번영한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나기까지 참혹한 인권침해를 겪어 왔습니다. 일본의 제국주의부터 시작하여 한국전쟁, 그리고 독재정부 시대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안녕/103쪽)라고 하며 그러한 한국의 역사가 수단의 현 상황을 극복하는 한 모델일 될 수 있다고 말한다.

1950년대 한국의 문학비평가였던 최일수는 바로 이 문제를 고민했다. 한국에서 제3세계와의 연대론이나 제3세계 문학론은 1970년대에 들어서 창작과 비평 계열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논의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최일수는 1950년대 중반이란 이른 시기에 한국의 민족문학과 동남아시아의 민족문학은 ‘비판정신과 저항정신’을 가졌다는 점에서 서로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고 쓴다. 이런 주장을 담은 대표적인 비평글로는 「동남아의 민족문학」21)이 있다. 이 글에서 그는 한국의 민족문학론을 동남아의 약소 민족(타이, 버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파키스탄, 실론 등) 문학과의 관계 속에서 고찰한다. 동남아 민족문학은 오랜 식민지 지배로 “외래문학에 대한 비판적 토대와 민족고유성의 창조적 계기”가 약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에는 민족적인 비판의식과 저항의식이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민족문학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동남아/82쪽)

동남아 약소 민족들의 문학은 표면에 있어서는 외래문학의 극단적인 모방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울만치 강력한 민족의식이 내면적으로 흐르고 있는 그러한 이율배반의 양상을 띄우고 있다.

원래 이런 현상은 오래인 세월을 통하여 지배해 온 식민지 또는 半식민지적인 외래제약에서 오는 것이다. -중략- 표면적으로는 외래문학에 대한 비판적 토대와 민족고유성의 창조적 계기가 약화되었으나 반면에 민족 간에 의식 있는 지성인의 성장과 더불어 독특한 민족적인 저항의식이 짙게 흐르고 있었다. -중략-이 행동은 외래제약이 아시아 독특의 정체성과 겹쳐서 그 후진성을 여지없이 강요받은 그러한 저차원의 상황하에서 발현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옹호를 주제로 한 유우럽의 ‘레지스탕스’와는 근본적인 차질이 기재하고 있었다. (동남아, 81~82쪽)

흥미로운 것은 마지막 구절이다. ‘차질’은 근대와 구별되는 현대의 특질이며 서구현대문학과 구별되는 아시아현대문학의 특질을 의미한다. 약소민족이 서구의 보편성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서구와의 지속적인 접촉과 투쟁 속에서 한국문학의 특이성(particularity/singularity)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22) 을 그는 ‘차질’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표현했다. 따라서 그는 괴테의 세계문학론이 “초민족적인 보편적 인간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비판하고,23) ‘세계문학’과 ‘세계성’을 구분한다. 세계성은 약소민족이 식민주의나 제국주의에 저항하고 서구 보편의 근대를 비판하며 길러온 과정에 내재한다.24) 따라서 2차대전 이후의 문학은 “내면적인 신변잡사의 심리”를 그리고 있는 서구문학이 아니라 “강인한 자주 정신의 행동적인 사고 방식”을 담은 아시아 문학이 열어갈 것이라고 예견한다.(현대문학/11쪽, 동남아/86쪽)

이처럼 ‘차질’이란 타자화된 민족의 문학이 서구의 보편적 문학을 욕망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약속 민족 각각의 특수성에 매몰되는 것도 아닌, 약소민족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상호공통의 계기와 가치들을 보기 위한 인식틀이다. 또한 그는 차질을 지닌 약소민족들이 서로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계를 꿈꾸었다. “민족이 민족으로써 존재하기 위해서는 타민족의 존재이유도 인식해야 하며 민족이 자기의 존재를 의식하고 자각하는 것이 타민족에 대한 배타적인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세계라는 위치에서 평등하게 집단되고 형성되어 있는 한 단위로서의 민족이어야 하며 국가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25)

타자들 간의 관계를 통한 최일수의 민족문학론은 50년대의 서구 문학 추수나 보수적 전통론 모두에 거리를 두고, 이미 70년대에 등장하는 제3세계 문학론을 선취했으며, 식민지기와 70년대를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된다.26) 최일수의 이런 논의는 1955년 반둥회의의 비동맹 사상과 알제리 민족해방 투쟁을 지지했던 사르트르의 영향 등이 그 배경에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27)

최일수의 사상은 난민들이 제3세계, 비서구로부터 온 존재들이며 식민지, 내전, 독재 등의 역사를 한국과 공유하고 있음을 가시화한다. 제국-식민지기의 폭력과 억압의 역사가, 현재 전지구적 내전의 형태로 반복되면서 두 지역을 만나게 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사드리 키아리가 제기한 서구 백인 중심의 인종주의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그는 인민을 말할 때 “어떤 인민”인지를 질문해야 한다고 하면서 “‘인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당연히 ‘인민은 무엇에 맞서 구성되는가?’라는 다른 질문으로 답해야 한다”고 말한다.28) 프랑스에 망명한 난민으로 살아가는 그는 현재의 ‘인민’ 개념이 국가주의적으로 변화하는 지점들을 비판한다. “프랑스 좌파의 논의도 결국 이슬람, 아랍인, 흑인들의 “비시민 지위를 보존하는 데 기여”하며 “가장 불우한 사회 계급들의 많은 부분을 정치적 장 밖으로 추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백인 인민 계급들과 이민자 출신 인민 계급들 사이의 정치적 동맹을 구상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좌파는 그 백인의 특권에 맞서 싸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단언한다.29)

최일수의 사상은 한국의 경험을 제3세계의 폭력과 억압의 경험 속에 위치 지우면서, 난민들이 겪고 있는 현재의 상황과 한국의 역사적 경험을 연결시키고, 한국역사 속 난민성을 자각하도록 한다. 그러나 그의 논의 속에서는 약소 민족 속 여성, 성소수자, 등 비민족의 위치가 보이지 않을 뿐더라 타자와의 구체적인 접촉의 경험들이 드러나 있지 않다. 식민주의의 타자들 간의 연결 속에서, 피식민자 내부의 소수자들은 드러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는 한국의 민주화 과정 및 최근의 촛불혁명 이후에 형성된 문재인 정권에서도 반복된다는 점에서 오래된, 그러나 현재적 질문을 던져준다.

둘째로, 모리사키 카즈에의 사상을 통해 타자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실패한 순간의 에너지를 불/가능한 연대의 조건으로 사유해 볼 수 있다. 식민자의 위치에서 모색된 아시아 유민과 연대론에는 식민자가 라는 위치의 한계와 함께 타자와의 간극을 인식하고 넘어서려는 노력이 드러나 있어서, 한국사람과 난민과의 연대 불/가능성을 사고할 때에도 시사적이다.

모리사키 카즈에는 재조 일본인 2세로, 조선에서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도 단일민족신화가 지배하는 일본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 따라서 모리사키 카즈에는 1958년 8월에 큐슈 탄광에서 다니가와 간(谷川雁), 우에노 에이신(上野英信), 나카무라 키이코(中村きい子), 이치무레 미치코(石牟礼道子)등과 함께 네트워크 문화운동잡지『서클마을(サークル村)』을 창간한다. 그들은 이곳에서 탄광부, 오키나와와 조선으로부터의 이주민, 전쟁 귀환자 등 이질적인 집단과 함께 코뮨을 실험했다. 이 코뮨은 국가와도 스탈린주의적 공산당 조직과도 거리를 둔 이족들의 코뮨이었다. 특히 모리사키 카즈에는 탄광에 있던 여성들을 중심으로 활동을 벌여 1958년 9월에는 그녀들과 함께 ?무명통신(無名通信)?을 발간한다. 이러한 활동들은 당시 우먼리브 중심의 일본 페미니즘과도 거리를 둔 활동이었다. 또한 1965년 다니가와 간이 도쿄로 이주한 뒤에도 계속 탄광촌에 남아 활동을 지속했으며 이후 여성 어부의 이야기, 해외 매춘부 여성의 이야기 등을 듣고 쓰는 독특한 글쓰기를 지속했다.

모리사키 카즈에의 글은 크게 보아 세가지 측면에서 읽을 수 있다. 재조 일본인 2세의 식민주의에 대한 인식, 일본 페미니즘의 계보, 아시아 유민의 역사. 본 논문에서는 세 번째 지점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이때 「민중이 지닌 이질적인 집단과의 접촉 사상 - 오키나와 ‧일본‧조선의 만남」은 중심적인 텍스트이다. 이 글에서 모리사키는30) 해방 이후에도 지속되는 식민지적 관계를 극복하고 타자들간의 자율적인 관계를 모색하기 위해 ‘접촉사상(接觸思想, colonial contact)’을 탐구한다. 즉 오키나와, 일본, 조선의 ‘이족’들이 자본・식민주의・국민국가에 의해 타율적으로 접촉하지만, 그 속에는 노동을 통한 접촉 속에서 이족들간의 자율적인 관계 또한 형성되어 왔다는 것이다. 모리사키 카즈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국가의 근대화란, 이처럼 먹고 살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에서 불안으로 계속해서 내달려 왔던 계층에 의해서 지탱되었다. -중략- 이런 형태로 이질적인 생활의식과 직접 만나 왔던 민중은, 각양각색의 반응을 생활의 사상으로서 남기고 있다. 이것들은 타율적인 민중 역사 속에 존재하는 자율적인 부분이다. 근대에 걸쳐 일본이 오키나와 및 조선과 가졌던 만남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리사키의 연대론 속에는 피식민지 민중과 종주국 민중 사이의 큰 간극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리사키의 논의 속에는 이러한 간극이 불거진 순간을 불/가능한 연대의 사상으로 구축하려는 부분이 있다. 그녀는 북큐슈 탄광 노동자들과 「우리 오키나와(わがおきなわ)」라는 기관지를 발행하고 오키나와 민중과의 교류를 시도한다. 그런데 이 기관지를 오키나와에 가져갔던 노동자 회원은, “우리 오키나와라니 말도 안 된다”는 반응에 부딪친다. 내부 식민지로서 오랫동안 본토 일본인에게 고통을 받아온 오키나와인에게 본토 일본인이 ‘우리’라는 말을 붙여 그 고통스러운 역사가 마치 없었던 것처럼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했던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나는 북큐슈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오키나와를 생각하는 회(沖縄を考える会)」라는 소집단을 만들어 가고 있다. 「우리 우키나와(わがおきなわ)」는 그들이 편집해서 발행하는 프린트 인쇄 기관지이다. 「우리 오키나와」란 우리들 몸 속에서 오키나와의 사상을 발견하고자 붙여진 이름이다. 이 기관지를 오키나와에 가져갔던 회원은, “우리 오키나와라니 말도 안된다”라는 즉각적인 반응과 부딪쳤다. 우선 그렇게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것 속에야말로, 오키나와는 이야기되고 있다. 나는 그러한 반응이 지닌 ‘적극성’과 ‘보수성’의 결합을, 오키나와 공동체가 지닌 대외에 반응하는 민중의 촉수로서 받아들이고 싶다. 그리고 그 고통스런 땀으로 가득찬 응축력, 그 반작용들을, 오키나와가 본토 민중에게 발신하는 「나의 본토(わが本土)」로 삼아 귀 기울이고 싶다.

모리사키는 이 에피소드를 언급하면서 일본인 하층 노동자가 내부 식민지였던 오키나와를 향해 “우리 오키나와‘라고 부를 때, 오키나와인이 이를 즉각 거부하는 “고통스런 땀으로 가득찬 응축력”인 반작용들, 그것이 내포한 “적극성과 보수성의 결합”을 접촉사상의 촉수로서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모리사키의 이러한 통찰은 난민에 대해서 논의하는 이 글 곳곳에서 재현된다. 내가 ‘난민’이라고 부르고 그들의 에세이를 인용할 때마다 한국에서 기본적인 인권도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겪는 축적된 고통과 반발이 느껴진다. 저항감과 비판의식을 지닌 난민들의 ‘응축된 반작용’을 통해 국적을 가진 나의 위치는 관통당한다. 이러한 응축된 반작용 속에서 난민과 난민화되고 있는 소수자들의 불/가능한 공통장은 형성되고 있으며 이러한 반응과 정동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을 모리사키의 글은 보여준다.

세 번째 좌표는 재일조선인으로서 ‘流民 의 사상’을 전개한 김시종이다. 류민으로서 일본에서 일본어로 시를 쓴 그의 행보는, 한국 역사 속 난민의 경험을 인식하게 하는 동시에 한국의 미래를 난민의 미래를 통해 상상하게 한다. 그 중에서도 ‘류민의 기억’을 둘러싼 논쟁은 재일조선인 동인지 『진달래』 15호와 16호에 걸쳐 시집 『지평선』(1955)을 둘러싸고 전개되었다.31) 홍윤표는 <유민의 기억에 대해서 – 시집 『지평선』의 독후감>이라는 글에서, 김시종의 ‘유민의 기억’과 관련된 부분이 부르주아적 감상에 젖어 있다고 비판한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공민으로서의 긍지가 주어지고 있는 지금, 유민의 기억과 연관되는 부르조아 사상의 일절을 우리들의 주변으로부터 일소시켜야만 한다.”32)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김시종은 <나의 작품의 장과 ‘유민의 기억’>이라는 글을 통해서 반박한다.33)

이 글에서 김시종은 재일조선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여교사의 편지를 인용하면서 조선옷을 입으면 어색하고 ‘반쪽바리 말(半일본인의 말)’을 사용하면서, 당위로서의 조국과 일본에서 살아가는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재일 청년들의 갈등을 ‘류민의 사상’으로서 구체화한다. 일본문학에도 한국문학에도 포섭될 수 없는 독특한 말의 자리를 구축해 온 김시종의 류민의 사상과 작품들이 시작되는 지점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류민의 언어와 작품은 현재 한국 안에 들어와 있는 이주자와 난민들의 2세, 3세가 어떠한 말의 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가를, 한국 역사의 외부이지만 한국 역사와 함께 긴밀히 관련되어 있는 재일조선인의 난민화된 경험 속에서 생각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주디스 버틀러의 몸의 근원적인 취약성 논의는, 백인, 여성, 제1세계 엘리트이지만, 성소수자인 그녀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타자와의 ‘연루’와 그 윤리적 함의를 찾을 수 있을까에 대해 시사점을 준다. <<위태로운 삶>>은 9.11 테러에 대한 고찰을 통해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 “내 삶이 저 밖의 타인, 내가 알지 못하고 또 절대로 알게 되지도 않을 사람들에게 기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통찰”의 순간이며, “이름 모를 타인에 대한 이 근원적 의존은 내 의지로 벗어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고 말한다.34) 따라서 상처는 “상처에 대해 성찰하고 상해가 배분되는 기제를 알아내고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국경과 예기치 못한 폭력과 박탈과 공포로 인해 또 다른 누군가가 어떤 방식으로 고통을 받는지를 알아낼 기회를 갖게 되는 일”이 된다(위태로운/10쪽)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취약성의 사고 중심에는 “우리가 사회적으로 구성된 몸들”이라는 사실이 있다.(위태로운/47쪽) “몸은 삶의 유한성, 취약성, 행위주체성을 암시” 하며(위태로운/53쪽), “육체적 취약성에 대한 사유, 즉 우리가 정복당할 수도 있고 누군가를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한 사유”를 계속하는 것이 관계의 구축에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위태로운/59쪽) 이러한 몸의 취약성이라는 근본적 조건을 보면, 난민은 난민화하고 있는 소수자들과 긴밀히 연루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연루에 대한 자각은 난민이라는 고정된 정체성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관계의 한 양태로서의 젠더나 섹슈얼리티는 ‘소유(possession)’가 아니라 박탈(being dispossessed)로 존재한다.(위태로운/52쪽) 이 관계는 정념으로 인해 자아를 초월하여 이동하는 과정이며, 어떤 분노와 슬픔을 난민의 상황 속에서 공유한다면 그것은 “ec-static”의 상황, 즉 “문자 그대로 자아의 밖에 있다. to be outside oneself는 뜻”이 된다.(위태로운/53쪽) 주디스 버틀러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걸 수 있다면, 또는 그 조건들에 나를 포함할 수 있다면, 나는 성적인 정념에서든 슬픔의 감정에서든 정치적 분노에서든 어떤 식으로 우리 자신의 옆에서/우리 자신이 아닌 채로(beside ourselves)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위태로운/52쪽) 주디스 버틀러의 몸의 근본적 조건으로서의 취약성, 상처를 통한 타자에 대한 인식, ‘우리’에게 말걸기가 전형화된 정체성으로 환원되지 않을 수 있는 조건에 대한 탐색은, 난민화된 소수자들과 난민들과의 연대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연루됨과 말걸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난민들이 보여주는 해방의 계기들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 해방의 계기들이 난민화되고 있는 소수자들의 해방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국적을 보유했는가 여부는 난민과 소수자 운동 사이의 명확한 간극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 장에서 논의된 차질을 간직한 제3세계와 한국의 역사적 경험의 공통성, 타자에게 다가간 순간 나타나는 응축된 반작용의 에너지, 난민의 미래를 재일조선인의 난민화 경험 속에서 한국의 미래와 함께 꿈꾸게 하는 류민의 언어, 몸의 취약성을 통해 난민과 소수자가 연루되어 있다는 인식은, 난민과 난민화의 간극이 포기와 단절의 지점이 아니라 새로운 연결과 공감이 태어나는 지점임을 보여준다. 이는 소수자 코뮌 사이를 비교하고 경쟁시키면서, 소수자성을 규정된 정체성이 포박하거나 측정가능한 국가의 언어로 만들어버리는 담론들에 저항할 수 있는 새로운 윤리가 구성되는 공통장이기도 하다.

<4> 매듭이 되는 것

다양한 소수자 상태가 부딪치며 직조해내는 차질, 응축된 반작용, 류민의 언어, 취약성의 연루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마주침’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 노력을 매듭이 되는 것, 매듭을 만드는 것이라고 부르고 현재의 활동들 속에서 그 의미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최근 한국에서 출판되는 많은 저작들은 기록, 증언, 구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말의 장소를 갖지 못했던 목소리들을 담으려는 행위이자 아카이브를 ‘다중’의 수행 수단으로 만드는 시도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특히 그러한 저작이나 기록 중에서도 관계의 매듭이 드러나는 것들이 있다. 여태까지 여러번 언급한 <<안녕, 한국!>>(난민인권센터, 2018년)이 그 하나이다.35) 다른 하나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53명의 소견서를 모은 <<우리는 군대를 거부한다>>(전쟁없는세상 엮음, 포도밭, 2014년)이다. 그리고 이 두 번째 저작은 나를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로 이끌고, 다시금 그 홈페이지에 실린 <여성들의 병역거부 선언>과 만나게 했다.36)

첫 번째 책은 난민인권센터에서 독립출판되었는데, 난민들의 에세이를 모아 번역한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증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사회에 대한 요청이자 인권선언이다. 두 번 째 책과 블로그의 글은 국적을 갖고 있지만 ‘국민의 의무’로 규정된 병역을 거부함으로써 선거권을 박탈당하거나 직업이나 사회 생활에서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를 박탈당하면서 난민화되었던 병역거부자의 경험을 담았다는 점에서 선언이자 증언의 성격을 띤다. 그리고 증언이며 선언이고 선언이며 요청인 이 두 글모음에는 이 활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포함한 광범위한 관계가 끊임없는 매듭으로 이어져 있다. 활동가, 당사자, 연구자, 독자, 그리고 시공간을 넘나드는 매듭들이 계속되는 활동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안녕, 한국!>>은 알 아흐마드의 <선언문>으로 시작되고, 난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고 싶다는 활동가 고은지의 문제의식이 나오고, 난민들의 에세이를 번역한 장유진님이 주저하면서 활동에 참여하는 모습이 나온다. 당사자, 활동가, 번역가의 매듭 속에서 탄생한 이 책은, 최근 난민법의 개악을 막기 위한 활동 속에서 시민들의 법무부 장관에게 편지쓰기 활동과 이어진다.37) 이러한 매듭을 만들어내는 동력은 난민들이 처한 취약성에 대한 공감이자, 그들의 삶과 자신의 삶이 연루되어 있다는 자각에서 비롯되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고통에 대한 공감과 해방에 대한 욕망이 당사자, 활동가, 연구자, 번역가, 독자, 시민을 잇는 매듭마다 새겨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국적 없는 난민의 말이 국적있는 시민의 말과 만나, 난민들의 공통장을 구성하는 장면이다. 난민들의 에세이는 정식출판도 아니며 한국의 정치적 공론장에서 ‘발언권’을 갖지 못한 위치에서 발화된다. 그런데 그들의 목소리는 민주주의 제도 속에서 ‘발언권’을 가진 ‘시민’들의 편지쓰기 속에서 드러나며 말의 자리를 마련되고 있다. 주디스 버틀러는 “우리, 인민”이라는 수행적 발화를 분석하면서 인민주권이란 자기 입법적인 성격을 띤다고 말한다. ‘우리 인민’이란 ‘자기구성적(self-constitution)’ 형태의 표시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 인민’의 수행적 실행은 바로 그 특정한 어구를 발음하기에 앞서” 일어나며 체현된다고 말한다.38) 즉 난민과 난민화된 상태의 존재들은 서로 매듭을 이어가면서 에세이와 편지쓰기라는 수행적 실행을 통해 난민의 말이 드러날 공통장을 형성해 가고 있다.

물론 말하기의 순간은 보호에서 박탈된 채로 노출되는 것이기도 하다. 편지쓰기를 하는 시민들 보다 에세이를 쓴 난민들은 보다 취약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없는 셈 쳐지는 그들의 수행적 발화들은 새로운 정치적 조직 혹은 공통장을 형성하는 도전적이고 혁명적인 힘을 만들어낼 수 있다.39) 그런 점에서 청년들이 쓴 편지가 눈에 띤다.

스무살인 한 청년은 자신은 매우 가난하지만 “내 이웃과 이 세상의 생명들과 더불어 살 때 저는 제가 가난해도 비굴하지 않음을 느낍니다. 다른 사람을 배제하며 내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요?”라고 반문한다.40) 2년 전 대학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며 자취를 한다는 한 청년은 마을 공동체에 속해 살면서 공동식사를 하며 돕고 사는 삶에 대해서 말한다. 그리고 “사람은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기도 하고, 또 도움을 줄 수 있기도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난민들과 더불어 사는 삶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41) 29살 청년은 자신이 이민을 가고 싶어하고 아이를 낳고 싶어하지 않는 이른바 ‘청년 문제’의 청년이라고 소개하며 자신이 한국에서 떠나고 싶었던 이유는 “이 사회의 끔찍함을 목도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난민신청과정에서 벌어지는 온갖 비인격적 사건이나 “난민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냉혹함, 무신경함, 적대감은 제가 속해 있는 이곳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42)

난민들과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게 될 거라는 청년들은 오히려 자신과 난민의 삶이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자신이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듯이 그들도 그러함을, 함께 살아가는 누군가가 고통받고 있다면 자신의 삶의 기반도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시민의 자리에서 발화하지만 활동가들과의 매듭을 통해 당사자와 연결되어 가고, 다른 한편으로 난민들을 대신해 법무부장관에게 말하는 입이 되어 간다.43)

한편, 여성들의 병역거부선언은 이미 규정된 정체성의 자리를 뒤흔드는 매듭을 만들어 가고 있다. ‘여성’으로서 병역거부를 함으로써 병역의 주체로부터 소외된 자리(따라서 시민의 평등한 권리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을)를 드러내고, 모두가 전쟁에 연루된 상태라는 것을 가시화한다. 특히 병역거부자들이 모두 제주 강정의 미군기지 반대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은 새로운 매듭들을 드러낸다. 평화 시민으로서 평화운동의 시간과 장소를 폭넓게 연결시키며 다른 활동들과 링크되어 간다.

<여성은 왜 병역을 거부하는가?>44)라는 선언에서 왕유쉔(王郁萱)은 “여성으로서 병역거부를 하는 것” 보다 “평화시민으로서 병역거부를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고 서두를 연다. 이분법으로 남녀를 나누고 정체화함으로써 모두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폭력의 구조에서 벗어난 말의 자리가, ‘평화시민으로서의 병역거부’인 것이다. 평화시민이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예를 들어 어느 나라 사람이다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살며 감수성과 상상력 그리고 창조력으로 흔들리는 정체성을 가꾸며 폭력을 변혁시키는 노력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자신을 둘러싼 관계 속에서 규정하는 행위는 정체성을 만드는 권리가 권력에게 양도되어 있는 상태에 파격을 가한다.

평화시민인 왕유쉔의 병역거부 선언 끝에는 “병역거부 선언문을 쓰게 만드는 여정에서 많은 영향을 주신 분들게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라는 말에 이어, 평화복무의 꿈을 꾸는 친구에게, 군사기지 저항활동에서 고통을 겪은 활동가, 현지주민, 새로운 정착민, 군인, 경찰, 공무원, 노동자,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 등 다양한 존재에게 감사한다고 쓴다. “나눠진 아픔들이 저를 행동하게 만든 용기가 되었”다고 쓴다. 왕유쉔의 병역거부 선언은 여성/남성으로 나뉘어진 정체성을 벗고 평화시민으로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이행과 해방의 과정이 드러나 있다. 또한 이 이행과 해방의 과정 속에는 포괄적인 관계의 매듭이 새겨져 있다. “내가 ‘너’에게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아내지 않고서는, 너를 알려면 나의 언어가 부서지고 굴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언어로 바꿔 말하는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내가 ‘우리’를 소환할 수 있는 길은 없”으며 이것이 바로 “인간이 존재하게 되는 방식”이자 “또다시, 여전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으로서” 존재하게 되는 방식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지점이다.45)

병역거부자 멸치는 세월호를 보면서 더 이상 음식을 삼키지 못한 날로부터 1년이 지난 뒤 제주 강정에 온다.46) 멸치는 “나에게 남은 이름은 무엇일까 생각”했고, “모든 일의 당사자가 되기로 했”으며 이를 통해 “세계시민의 책무성을 알았”다고 쓴다. 또한 “논의의 주체도 못되면서 폭력에 가담”했으며, 그 폭력에 가담하는 자리가 단지 군인만이 아니며 성소수자로, 비정규직노동자로, 신자유주의에 희생당하는 세대로, 시민화 교육의 장에서, “동원되고 있었다”고 말한다. “폭력의 구조, 폭력의 정당성을 위해 동원되는 일상의 시스템을 확인해야”한다고 말하는 멸치의 말을 통해, 4.3은 5.18로, 강정으로, 4.16으로, 더 나아가 예멘으로 시리아로 세계 곳곳의 전쟁이 있는 곳으로 그 매듭을 확장해간다. 동시에 이것은 역사적인 장소와 시간으로부터 제주 강정으로 그곳의 평화활동가들 속으로, 난민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 속으로 모두의 싸움으로 장소적 시간적 매듭을 심화시켜 간다.

병역거부자 최성희는 <왜 나는 ‘병역 거부 선언’을 하는가?>47)라는 선언문에서 “제국주의 시스템의 부속품으로서 시스템을 공고히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당사자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자각에서 병역거부를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부속품이 그 거대한 설비에서 튕겨 튀어나오지 않는 한 그 설비에 작은 균열이라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자신의 병역거부 선언은 바로 그 “튕겨 나온 부속품으로서의 선언”이라고 말한다.

연루되어 있음이란 단지 긍정적인 상태만은 아니다. ‘연루’라는 말은 ‘연대’라는 말과 달리 복합적이고 중층적이어서, 저 멀리 있는 타자의 고통에도 연루되지만, 구조화된 폭력이나 시스템에도 깊이 연루되어 있다. “튕겨나온 부속품으로서의 선언”이란 바로 이러한 폭력에 구조에 연루된 상태에 대한 거부이다. 이 거부를 통해서, 군사체험과 교육을 받는 어린이들과, 동북아와 중동에서 군사주의로 인해 죽어가는 어린이들과, 여러 생명들과 매듭을 만들면서 연결되어 간다. 세 명의 여성 병역거부 선언문은 그 안에 이처럼 다양한 관계의 매듭들을 담고 있으며 이 이질적인 존재들 사이의 관계는 병역거부라는 “기존의 용어에 새로운 의의를 부여”하는 것이 된다.48)

네그리와 하트는 Assembly에서 “오늘날 정당하게 말을 잡으려 하는 모든 정치적 주체성들은 이주자처럼 말하는(행동하는·살아가는·창조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49) 이질적 다중인 이주자들은 새로운 장소를 발명하고 특이성을 유지한 채 새로운 공통성을 구성하는 역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주자들은 장차 다가오는 공통체이며, 가난하지만 언어가 풍요롭고, 피곤에 짓눌리지만 신체적·언어적 사회적 협동에 열려 있다”는 것이다.

연대 불/가능성을 넘어서서 연결되는 매듭들은 바로 이러한 이행의 순간들을 새로운 공통장의 순간들의 표시이다. 난민인권센터의 난민법 개정을 저지하기 위한 싸움 속의 매듭들은 불/가능한 연대의 차질, 응축된 반작용, 류민의 언어가 발명되는 시작점이 된다. 여성들의 병역거부는 평화운동이 난민인권운동과 소수자운동과 매듭을 형성해 가면서 각각의 활동이 보지 못하거나 쉽게 간과했던 지점들을 환하게 비추는 힘이 된다.

<5> 무명의 소수자성을 위하여

처음의 문제의식으로 되돌아가 보자. 소수자들 사이의 관계를 비교와 갈등으로 담론화하는 것에 가담하지 않으면서도 소수자들이 처한 상태가 지닌 무수히 많은 섬세한 차이들을 드러내면서도, 불/가능한 연대에 대한 모색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은 결국 어떤 난민인가, 어떤 소수자인가 라는 ‘구체적 상태’에 대한 질문으로 향하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은 이러한 질문 자체가 너무나 인간화, 정상화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연루라는 말도 연대라는 말도 어디까지 인간을 중심으로 사고되어 버린다. ‘우리’의 언어가 인간화된 문법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이 지닌 취약성이라는 기반은 인간만의 것은 아니며, 인간화된 조건 속에서 가장 착취당해 온 몸은 동물이다. 그렇다면 난민의 상태는 어떻게 난민화된 동물의 상태와 연결되어 있으며 또 각각의 운동은 서로를 어떻게 비추고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을까?

기타다 나오토시(北田直俊)의 다큐 「보이지 않는 오염 – 이타테 마을의 동물들(みえない汚染 飯舘村の動物たち)」(2016년)은 원전에서 20km 이내의 강제피난지구인 후쿠시마 이타테 마을(飯舘村)에서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남은 개 150~200마리, 고양이 400~800마리, 닭 50마리, 돼지 1마리를 돌보는 히라야마 간만(平山ガンマン)의 활동을 담은 것이다.

다큐에 나오는 가축, 애완동물 등은 재해 후 몇 년간 방사선량이 높아서 인간의 거주가 금지된 곳에 방치된다. 애완용으로 키워졌던 고양이나 개를 보호소에 보내려고 해도, 주인의 허가를 받을 수 없어 빈집에 묶여 있는 경우도 많다. 주인들은 일이주에 한번 올 뿐이지만, 그 동물들의 소유권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개들은 목줄에 묶여 거동이 자유롭지 않고, 때로는 줄이 얽혀 죽기도 하고, 야생동물의 습격을 받기도 하며,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거나 추위로 죽기도 한다. 방사능에 오염되어 더이상 식용 가치가 없게 된 소나 돼지들은 집단 살처분을 당하고 그 학살 속에서 살아남은 소나 돼지는 죽은 소나 돼지가 즐비한 축사에서 살아간다. 이 영화 속에서 정신이상이 되어 버린 개는 가끔 발작적으로 울부짖으며 자해에 가까운 행위를 하곤 했다. 후쿠시마로부터 도망의 권리를 주장할 때, 이 말이 동물에 대한 학대나 장애인에 대한 혐오 발언과 닿아 버릴 수 있다는 점을 어떻게 사고할 수 있을까?

난민 인권이라는 말도 ‘인권’이란 말이 표시하듯이 어디까지 인간에게 해당되는 용어로 여겨진다. 난민인권운동이 동물권 운동과 만날 매듭을 형성할 때, 그 매듭에는 또 어떠한 차질이, 응축된 반작용이 발생할지 고민하게 된다. 소수자 코뮌 사이의 마주침이 중요한 것은, 그 마주침의 순간 드러나는 응축된 반응들이 무명의 소수자성을 회복시켜 주기 때문일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말을 덧붙고 싶다. 류은숙은 <이야기에 기대어 말을 이어간다>50)라는 글은 소수자의 고통을 소재화하는 경우를 ‘소재주의’라고 비판하고, 피해자가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부각시켜주길 요구하는 경우를 ‘관심독점주의’라고 비판한다. 이때 인권의 언어는 사유화된다고 이야기한다. 이 글을 포함하여 소수자 코뮌에 대한 현재적 아카이빙을 시도하는 모든 글은 이 윤리적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다. 소수자의 상태를 말할 때에는 어쩔 수 없는 폭력이 전제된다는 것을 인식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유화의 위험과 폭력을 넘어설 수 있는 것도, 활동가, 연구자, 당사자, 또 무명의 무수한 매듭을 만드는 행위를 통해서라고 생각하며, 동시에 나 자신의 부족한 활동과 관계성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런 부족함이 또 다른 매듭을 만들고 나아가는 동력이 되길 바라게 된다.

1) 초고 형태의 글이며, 여러 활동들과의 연결이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으니, 인용을 삼가 주세요.-필자

2) 난민인권센터 홈페이지

3) 자크 랑시에르, <찾을 수 없는 포퓰리즘>, <<인민이란 무엇인가>>, 현실문화연구, 2016년, 173쪽

4) 자크 랑시에르, 위의 책, 181쪽

5) 자크 랑시에르, 위의 책, 177~179쪽

6) 미류, 「지금 여기,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 ?차별금지법 궤도에 올리다?, 2018. 발표 자료집, 6쪽

7) 미류, 「평등에 거듭 도전해야 한다면」, 『인권운동』, 2018년 12월, 124쪽

8)김현미, <난민포비아와 한국 정치적 정동의 시간성>, <<황해문화>>, 새얼문화재단, 2018년 12월, 211쪽

9) 김현미, 위의 글, 쪽

10) 미류, 「지금 여기,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 6쪽 재인용 (천광욜 <문재인 정부를 흔든 ‘공정의 역습’> <<시사인>> 제 546호, 2018년 3월

11) 졸저, <<마이너리티 코뮌>>, 2016년, ~ 쪽

12) 나영정, <정체성 정치, 교차성 정치, 인권의 정치-이름없는 권리와 책임감을 공유하는 운동을 향해 >, <<인권운동>>, 2018년 12월, 66쪽

13) 가야트리 스피박 주디스 버틀러 대담, 주해연 번역,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산책자, 2008년, 14쪽

14) https://www.opendemocracy.net/en/can-europe-make-it/in-war/

15) 미류,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무엇을 포괄하는가>, <<신인종주의와 난민-서로의 낙인을 짊어지는 연대는 가능한가>>,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HK+사업단 <난민X현장>팀 주최 사회인문학포럼 티치인, 2019년 4월 23일

16) <<안녕, 한국!>>, 난민인권센터, 2018년(이하 이 책에서의 인용은 ‘안녕/쪽’으로 표시함)

17) 고은지, <난민과 임신 중지 권리에 관한 메모: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부쳐>, <<난민인권센터>>홈페이지, 2019년 5월 7일 https://nancen.org/1932

18) 나영정, <심사라는 구조적 차별>, <<신인종주의와 난민>>, 2018년 4월 23일 티치인 자료집에서.

19) 주디스 버틀러,윤조원 번역, <<위태로운 삶>>, 필로소픽, 2018년 41쪽

20) 위의 책, 41쪽.

21) 崔一秀, 「동남아의 民族文學」『現實의 文學-崔一秀 評論集』, 螢雪出版社, 1976年. (초출은 「東南亞文學의 特殊性-文學一般의 紹介와 批評을 兼하여」,『詩와 批評』第一輯, 1956年2月, 58~69쪽. 원문에는 동남아 여러 문학에 대한 개괄이 적혀 있지만, 평론집에는 그 부분을 생략하고 서론과 결론 부분을 중심으로 문제의식을 명확히 했다. 이후 이 글에서의 인용은 (동남아/쪽)으로 표시.

22)崔一秀, 「現代文學의 根本特質」『現實의 文學-崔一秀 評論集』, 螢雪出版社, 1976年, 133쪽. 초출은 「現代文學의 根本特質(上, 下)-定義를 세우기 爲한 論爭을 展開하면서」『現代文學』, 1956년12월, 1957년1월).

23) 崔一秀, 「民族文學과 世界文學」『現實의 文學-崔一秀 評論集』, 螢雪出版社, 1976年, 90쪽. (초출은「문학의 세계성과 민족성1~4」『현대문학』, 1957년12월, 1958년 1,2,4월).

24) 崔一秀, 「現代文學과 民族意識」 『現實의 文學-崔一秀 評論集』, 螢雪出版社, 1976年, 10쪽 (초출은 「現代文學과 民族意識」, 『朝鮮日報』, 1955년1월1일 문학평론 당선작).

25) 崔一秀, 「民族文學과 世界文學」『現實의 文學-崔一秀 評論集』, 螢雪出版社, 1976年, 118쪽

26) 한수영,「최일수 연구-1950 년대 비평과 새로운 민족문학론의 구상」,『민족문학사연구』, 1997년, 167쪽 /이나영, 「1950년대 최일수 민족문학론 연구」『문학과 언어』vol.25, 2003, 384쪽.

27) 한수영, 위의 논문, 160~161쪽

28) 사드리 키아리, <<인민과 제3의 인민>, <<인민이란 무엇인가>>, 현실문화연구, 2016년, 149~ 150쪽

29) 사드리 키아리, 163쪽, 169쪽

30) 모리사키 카즈에(森崎和江), 「민중이 지닌 이질적인 집단과의 접촉 사상 - 오키나와 ‧일본‧조선의 만남 (民衆における異集団との接触の思想 -沖縄・日本・朝鮮の出逢い)」, 『이족의 원세포(異族の原基)』大和書房、1971. (초출은『沖縄の思想』, 木耳社, 1970년 11월.)

31) 호소미 가즈유키 지음, 동선희 옮김, <<디아스포라를 사는 시인 김시종>>, 어문학사, 2013년, 54~57쪽

32) 洪允杓, <유민의 기억에 대해서 – 시집 <지평서>의 독후감(流民の記憶についてー詩集『地平線』の読後感より>, <<진달래(ヂンダレ)>> 15호, 1956년 5월

33) 김시종, <나의 작품의 장과 ‘유민의 기억’(私の作品の場と「流民の記憶」), <<진달래(ヂンダレ)>> 16호, 1956년 8월

34) 주디스 버틀러,윤조원 번역, <<위태로운 삶>>, 필로소픽, 2018년, 9쪽 (이하 이 책에서의 인용은 위태로운/쪽으로 표시.

35) <<안녕, 한국!>> 에세이집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오늘의 문예비평>>에 <목소리의 자리 – 선언, 기록, 고발, 요청, 상상>라는 제목으로 게재예정. - 필자.

36) http://www.withoutwar.org/?p=15309

37) https://nancen.org/1927?category=118718

38) 주디스 버틀러 저, 서용순 임옥희 주형일 옮김, <우리, 인민- 집회의 자유에 관한 생각들>, <<인민이란 무엇인가>>, 현실문화연구, 2016년, 74~74쪽, 82쪽

39) 위의 책, 93쪽

40) https://nancen.org/1919?category=118718

41) https://nancen.org/1902?category=118718

42) https://nancen.org/1905?category=118718

43) 최근 나와 친구들은 <난민&현장> 모임을 만들어 연구자와 활동가가 함께 논의하는 장을 만들어 보려고 하고 있다.

44) http://www.withoutwar.org/?p=15305

45) 주디스 버틀러 지음, 윤조원 번역, <<위태로운 삶>>, 필로소픽, 2018년, 85~86쪽

46) http://www.withoutwar.org/?p=15302

47) http://www.withoutwar.org/?p=15299

48) A. Negri, M. Hardt, Assembly, Oxford Univ Press, 2017, 9장의 부록 혹은 에세이 부분 “Taking the word as translation”==>https://minamjah.tistory.com/213 [百手의 블로그]번역인용

49) A. Negri, M. Hardt, Assembly, Oxford Univ Press, 2017, 9장의 부록 혹은 에세이 부분 “Taking the word as translation”-> https://minamjah.tistory.com/213 [百手의 블로그]

50) 류은숙, <이야기에 기대어 말을 이어간다 – 인권운동을 묻다>, <<인권운동>> 창간호, 2018년12월, 40~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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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 『예술과 공통장』 권범철 저자와의 인터뷰
자율평론 | 2024.02.05 | 추천 0 | 조회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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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 그라디바를 통한 동아시아의 ‘여성’ 정체성 모색ㅣ백주진
자율평론 | 2024.01.28 | 추천 0 | 조회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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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 하바로프스크블루스ㅣ김명환
자율평론 | 2024.01.23 | 추천 0 | 조회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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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 『초월과 자기-초월』 김동규 역자와의 인터뷰
자율평론 | 2024.01.06 | 추천 0 | 조회 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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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 살아있는 체계이자 인지 과정으로서, 개별적인 인간의 자율성을 논증하는 혁명적 생물학 연구ㅣ정경직
자율평론 | 2024.01.05 | 추천 0 | 조회 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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