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이팅 <에티카> 3부 정리1~20

작성자
eiron90
작성일
2019-07-11 15:13
조회
30
리라이팅 <에티카>



3부 정리1 (160)
타당한 관념 – 작용함 – 능동적 [=> 신: “그 자신에 의한 원인, 제1원인”(1부 정리16 계2,3)];
타당하지 못한 관념 – 작용을 받음 – 수동적 [=> 양태]
=> 타당한 관념을 가져야 능동적이 될 수 있다.
=> ‘타당하다’라는 건 사물을 근원적 혹은 전체적으로 사유함을 의미(-> 근본적 원인, 본질 파악 가능).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사고는 그만큼 자유롭고 그만큼 유연해질 수 있다. 어느 한두 가지 측면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분을 전체인 양 생각하면, 그 부분적 힘에 내가 휘둘리게 되어 ‘작용을 받게’ 된다. (가령 분노...)

정리 1의 증명 (161)
: 감각(경험)과 기호 – 타당하지 않음 -> 제1종의 인식
공통개념 – 타당한 관념 -> 제2종의 인식
직관적 인식 - -> 제3종의 인식


3부 정리2 (161)
: 정신과 신체의 동일성
정신 – 사유
신체 – 운동/정지
* 물체란 신이 연장된 사물. 따라서 신의 본질을 표현하는 양태 (101)
=> 모든 물체에 신성이 내재해 있다?

“정신과 신체는 동일한 것”에 대해(162)
: “양태와 양태의 관념은 동일”(106). [‘동일’ = ‘동시에’의 의미?]
=> 대상이 없으면 관념이 생길 수 없고, 관념이 없으면 대상을 인식(파악)할 수 없기 때문. 둘 중 그 어디에도 무게중심을 두어서는 안 된다. 정신뿐 아니라 신체(몸)의 중요성을 역설.


3부 정리4~5 (167)
사물은 동일한 주체 안에 반대되는 본성(주체를 파괴할 수 있는)을 가질 수 없다.
=> 존재의 온전함?


3부 정리6~7 (168)
각각의 사물은 자신의 존재를 지속하려 노력하며[코나투스], 이것이 그 사물의 현실적 본질이다.
=> 이 정리의 증명은 존재의 필연성에서 시작한다.
* 그 전제로, ‘신은 존재한다’에 대한 증명
“(64) 어떤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그 사물의 본성 자체에 있다. 예) 사각의 원, 둥근 삼각형 등. 실체가 존재하는 이유 역시 실체의 본성에서 나온다. 왜냐하면 실체의 본성은 존재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65) 사물은 그것이 존재하는 것을 방해하는 이유나 원인이 없으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만일 신이 존재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신의 존재를 없애버리는 이유 또는 원인이 없다면, 우리는 신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그러나 신의 존재를 방해하는 원인이 있다면, 그것은 신의 본성 자체 안에 있거나 그 외부, 즉 다른 본성을 가진 다른 실체 안에 있다.”

“(신의 존재가 필연적이기 때문에) 자연에는 우연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은 일정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작용하도록 신의 본성의 필연성으로부터 결정되어 있다.”(1부 정리29, 84쪽) 따라서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만물의 원인인 신의 능력[본질, 속성]을 일정하고 결정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1부 정리36 증명, 92)
=> 그 결과가 바로 자신의 존재를 끈질기게 지속하려고 애쓰는 노력[코나투스]이며, 그것만이 존재들의 본질인 것이다.

나는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우연적으로 주어졌다고 생각했(한)다. 그런데 여기서 ‘존재’를 인간, 나로 좁혀 생각하면, 나의 존재가 필연적이라는 사실에 경이로움과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의 존재의 필연을 위해 신적 힘과 기나긴 역사가 필요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의 존재를 지속시키려는 노력은 이 존재적 필연성에 대한 의무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에게 내재해 있는 자기파괴 욕구는, 필연적 존재로서의 자신에 대한 배반이 아닐까.
사실 정리 4, 5를 보면 스피노자는 갈등과 모순으로 가득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다른 시선으로 보면 그는 인간과 삶을 긍정하는 따뜻한 철학자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3부 정리9 (169)
정신은 자신의 존재를 지속하려 노력하며, 그런 노력[코나투스]을 의식하고 있다.
=>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는 의식이 있기 때문에 자기에게 유익한 걸 추구하려 하고, 그래서 사물을 판단할 때 자기에게 유용한가의 여부를 따지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것을 선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지향하기 때문에 그것을 선이라고 판단한다.”(정리9 증명, 170)


3부 정리10~11 (170)
요점: 신체의 존재를 멈추게 하는 것은 정신이 아니다. 신체가 존재를 멈추면 정신도 동시에 멈춰지며, 이런 멈춤의 원인은 외부의 또 다른 관념에서 발생한다.
=> 정리4: 사물은 외부의 원인에 의해서가 아니면 결코 파괴될 수 없다.
=> 신체와 정신의 이분법, 정신에 우위를 부여하는 기존 관념에 대해 성찰하기


3부 정리12~13 (172)
정신은 신체의 활동능력을 증대시키는 사물을 표상하려 노력하고, 그것을 억제하는 사물을 배제하는 사물을 떠올리려 노력한다.
=> 이것은 존재를 보존하려는 노력(코나투스)에서 보았을 때 필연적이고 당연한 것 같다.
3부 정리14~18 (173)
=> 인간의 정신을 자극하는 감정은 직접적, 현재적인 것이지만, 또 한편으론 경험이나 습관에 의한 연상작용을 통해 간접적으로 발생하거나 과거/미래와 관련되기도 한다. 정리15에서 “모든 사물은 우연에 의해서 기쁨, 슬픔, 욕망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했을 때 ‘우연’은 ‘간접적’이란 함의가 아닐까.


3부 정리18 주석2 (177)
=> 우리의 모든 감정은 기쁨과 슬픔에서 분화된 것.
=> 스피노자가 감정의 큰 기둥으로 기쁨과 슬픔을 제시하고 그것으로부터 세부 감정들을 설명한 점이 신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