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이팅 에티카(4부 정리22~46)

작성자
diatime23
작성일
2019-08-15 11:39
조회
28
정리24의 증명 참으로 유덕하게 행동하는 것은 자기 고유의 본성의 법칙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일 뿐인다. 여기에서 유덕하게 행동하는 것이란 자기의 이익을 기초로 하여 이성의 지도에 따라 행동하고 생활하고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는 것일 뿐이다. 이어 정리25는 어떤 사람도 다른 것을 위해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려고 애쓰지 않는다고 한다. 타인을 위해 선을 행하고, 내 이익을 버리고 타인을 위해 나서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널 위해서 하는 일이다, 나 좋으라고 하는 거 아니다 라는 말들은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가. 선행을 하더라도 그것으로 얻는 타인의 기쁨보다, 선을 행했다는 자신에 대한 자긍심, 또 그것이 불러오는 주변의 칭찬이나 인정, 선망 등이 더 큰 보답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다. 짧게 보면 내 이익을 버리고 타인의 이익이 되겠지만 길게 보면 그것이 자신의 명망에 도움이 되고, 장기적으로 볼 때 손해가 아니라는 계산이 나올 수도 있겠다. 역사적 성자들의 경우를 떠올려 보면, 그들이 단순히 자긍심이나 장기적 이익을 위해서 위대한 가르침을 남기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자신보다 자신의 희생과 가르침을 통해 타인의 행복을 보면서 느끼는 행복이 그것을 상회했을 수도 있겠다. 결국 방식이 어찌됐듯 인간이 선을 행할 때에, 그것이 오롯이 타인의 기쁨을 위한다고는 볼 수 없다. 그래서 '너 잘되라고, 오직 너만을 위해, 너만 생각해서' 하는 일이란 다른 차원에서 타인에게 완전한 해악이 될 위험이 있으며, 절대적으로 자신의 이기심을 실현하는 방법이 될 여지가 있다.


정리29는 절대적으로 어떠한 것도 만일 그것이 우리와 어떤 공통점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선도 악도 될 수 없다고 한다. 정리29의 증명에서는 개물의 본성은 인간의 본성이 파악되는 것과 동일한 속성을 통하여 인식되지 않으면 안 되고, 자체의 본성이 우리 본성과 전적으로 다른 것의 능력에 의해서는 촉진되거나 억제될 수 없다고 한다. 선과 악은 기쁨과 슬픔의 원인이 되는 것인데, 우리 본성과 다른 것은 우리에게 선도 악도 될 수 없다.

정리31의 계에서는 사물은 우리 본성과 보다 많이 일치할수록 우리에게 더욱더 유익하거나 그만큼 선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본성과 다르고 본성에 반대되면 그것은 선도 악도 될 수 없다.

정리37의 주석1에서 동물의 도살을 금하는 규정은 이성이 아니라 근거 없는 미신과 여성적인 동정에 기초를 두고 있음이 명백하다고 말한다. 인간은 동물이 인간에 대하여 가지는 권리보다 훨씬 큰 권리를 동물에 대해서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익을 위해 동물을 마음대로 이용하며 편리하게 다루는 것을 옹호한다.

이 부분에서 혐오와 차별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나와 타인을 구별한다. 그들은 나와 다르다는 기본 전제가 깔린다. 그게 혐오와 차별일 때 다르다의 방식은 보통 나보다 하등하다, 급이 낮다, 저질이다, 미개하다, 취약하다, 등으로 볼 수 있다. 물리적으로 약하고, 정신적으로 뒤떨어지는 것으로 그들만의 기준에 의해 타인을 상정한다. 이들은 종종 타인이 선도 악도 아니라고 느낀다.. 왜냐하면 혐오와 차별을 일삼는 사람들은 그들이 혐오하고 차별하는 자들을 대화와 토론, 논의, 협의, 타협 등이 불가능한 자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자들은 덜떨어지고 미개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마주보고 대화 할 일말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타인을 거의 인간이 아닌 다른 종으로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스피노자의 예대로라면 인간을 동물로 여기는 것이다. 피부색이나 성별, 사랑의 방식, 모든 종류를 막론하고 나와 너는 다르다는 선을 긋고 대화의 가능성을 말살한다면 혐오와 차별을 일삼는 자라도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위에서 그들이 생각하는 어떤 기준이나 선은 대부분 선입견과 착오와 왜곡으로 인해 명확하지 않고, 오히려 어떠한 가능성의 실마리도 열어놓지 않으므로 그들이야 말로 언어를 지니지 않은 인간 이하의 종으로 보인다.


정리35의 계2는 각 인간이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가장 많이 추구할 때 사람들은 서로에게 가장 유익하다고 한다. 인간은 고독한 생활을 거의 견딜 수가 없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정의가 많은 사람들의 찬성을 얻는다. 사람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아야 하며, 연합된 힘에 의해서만 위험들을 피할 수 있음을 경험한다. 인간은 변덕스럽고 변하기 쉬운 감정에 예속되어 있다. 이들이 서로를 확신시키고 신뢰할 수 있는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인간은 공동적 생활규칙을 규정하고 법률을 제정하고 유지할 힘을 가진다. 다만 그것은 감정을 억제하는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형벌의 위협에 의새허다. 각자는 보다 큰 해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작은 해악을 행하는 것을 그만두게 된다. 법률과 자기보존의 역량에 의해 확립된 이 사회를 국가라고 부르며 국가의 법률에 의해 보호되는 자를 시민이라고 한다. 시민상태에서 죄는 불복종이다. 자연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모든 사람의 것이 된다. 그러나 무엇이 이 사람의 것이고 무엇이 저 사람의 것인지 시민상태에서는 결정되며 존재한다.

스피노자의 국가와 시민에 대한 정의가 나오는 부분인 것 같다.

정리45에서 증오는 결코 선일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미워하려는 사람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계2에 의해 미움으로 자극받아 변화되는 것은 배덕이며 국가로서는 불의이다. 주석은 우리가 보다 큰 기쁨으로 자극받아 변화될수록 그만큼 더 큰 완선성으로 이행한다고 한다. 정리46의 증명에서 모든 미움의 감정은 악이며, 이성의 지도에 따라 생활하는 사람은 가능한 한, 미움의 감정때문에 고뇌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미움은 앙갚음으로 인해 증대하고 사랑으로 소멸한다. 그에 따라 미움은 사랑으로 이행한다. 주석은 미워하고 복수하면 비참하게 살고, 미움을 사랑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기쁨과 확신으로 대응하고 운명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성의 지도에 따라 생활할 수 있는 인간들은 실제로 많지 않아보인다. 미움을 사랑으로 소멸시킨다는 것은 곧 용서를 이야기한다. 용서는 쉽지 않다. 그러나 어떤 악인들은 신에게 용서받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가뿐해진다. 자신이 죄를 지은 인간에게 용서받지 않아도 악인은 편히 살 수 있다. 이런식으로 보면 신은 선하게만 살 수 없는 인간이 스스로 지어 낸 면죄부일거란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