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카> 4부 정리 23-46

작성자
nykino
작성일
2019-08-15 14:42
조회
26
《에티카》
황태연 옮김 | [비홍출판사]
4부 – 인간의 예속 또는 감정의 힘에 대하여

[정리37]
덕을 따르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위하여 추구하는 선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욕구할 것이며, 신에 대한 그의 인식이 크면 클수록 그만큼 많이 욕구할 것이다.
The good which everyone who seeks virtue wants for himself, he also desires for other men; and this desire is greater as his knowledge of God is greater.

(증명 다시 쓰기)
‘덕을 따르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위하여 선을 추구한다’는 것은 앞의 정리와 증명을 통해 다시 확인하여, 본 정리에서는 (그러므로) 덕에 따르는 사람이 자신이 추구하는 선을 타인을 위해서도 욕구할 것임을 증명하고, 신에 대한 인식과 연관 짓는 것(5부의 주제)이 본 [정리37]의 목적일 것이다.

‘인간은 이성의 지도에 따라 생활하는 한, 인간에게 가장 유익하다.’

[정리35의 계 1]
인간(men)에게는 이성의 지도(guidance)에 따라서 생활하는 인간보다 더 유익한 어떠한 개체도 자연 안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가장 유익한 것은 인간의 본성과 가장 많이 일치하는 것, 즉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성의 지도에 따라 생활할 때 전적으로 가지 본성의 법칙에 따라 행동하며, 또 그러한 한에 있어서만 다른 인간의 본성과 항상 필연적으로 일치한다. 그러므로 개체들 중에서 이성의 지도에 따라 생활하는 인간보다 더 인간에게 유익한 것은 없다.

[정리24]에서 유덕하게 행동하는 것, 즉 덕에 따르는 행위는 이성의 지도를 따라 행동하고, 생활하고,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는 것(코나투스에 부합하는 행동)임을 증명했다. 그리고 이 ‘세 가지가 같은 것을 의미한다’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이성에 따라 행동하고 생활하는 것은 코나투스에 부합하며, 덕을 따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리19]에 의해 ‘이성에 따라 우리는 이성의 지도에 따라 생활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정리19]
각자는 모두 자기가 선(good)이나 악(evil)이라고 판단하는 것을 자신의 본성의 법칙에 따라서 필연적으로 추구하거나 피한다.

그런데 [정리26]에 의해 ‘덕을 따르는 각자가 자기를 위해 추구하는 선은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리26]
우리가 이성(reason)에 근거하여 노력하는 것은 모두 인식(understanding)하는 것일 뿐이다. 정신(mind)은, 이성을 사용하는 한, 인식에 도움이 되는 것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자기에게 유익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정리26]으로 인하여 ‘덕을 따르는 각자는 자기를 위해서 욕구하는 선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욕구할 것이다’라고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이성에 따라 ‘인식’하는 행위가 타인에게도 이 선을 욕구하게될 것이라는 보편성을 주고 있는 것일까?

[정리35의 계1]에서는 ‘이성에 따라 사는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유익하다’라고 정리했다. 그리고
[정리35의 계2]에서는 ‘각 인간이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가장 많이 추구할 때 사람들은 서로에게 가장 유익하다’라고 정리한다. 이성에 따라, 곧 덕을 따르는 사람은 선을 인식하는 사람이며, 이 선이 타인, 서로에게 가장 유익함을 인식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성에 따르는 ‘인식’이 타인에게도 타당한 보편성을 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정리26]의 증명에서 스피노자는 ‘이성적으로 사유하는 한에 있어서 정신이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려고 애쓰는 이 노력[코나투스]은 인식하는 것일 따름이므로, 인식하려는 이 노력은 덕의 제일의 유일한 기초이며…’라고 설명한다.

이상을 다시 정리해본다.
우선 [정리37]에서 사람이 덕을 따르는 일은 곧, 각자가 자기를 위해 (본성의 법칙에 따라, 즉 코나투스에 따라) 추구하는 선(good)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리24]에 의해, 덕을 따르는 것은 이성에 따라 행동하는 일과 같다. 게다가 [정리26]에 의해 이성에 근거한 노력은 모두 인식(이해)하는 행동을 뜻하며, [정리35]의 계1에 의해 이러한 행동은 인간에게 가장 유익한 일, 곧 선(good)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리37]의 첫 부분, ‘덕을 따르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위해 선을 추구한다’라는 것을 수긍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논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욕구할 것’이라는 것에 어떻게 연결이 되는가가 문제다. 이 실마리가 (보다 보편적인) ‘인간(men)’이란 표현에 있을 것 같다. 곧 이성에 따르고, 다시 말해 덕을 따르는 사람은 보편적으로 이 선을 인식하는 행동을 하며, 이것이 모든 인간에게 가장 유익함을 인식한다는 것으로 연결을 지을 수 있겠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도 욕구하게 되는 이 선은 ‘덕에 따르는 다른 사람들’에 한해서 그렇다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 증명을 감정의 연상작용을 통해 보다 설득력 있게 정리한 것이 ‘또 다른 증명’으로 보인다.
곧 ‘인간이 자리를 위해 욕구하고 사랑하는 선을 다른 사람도 사랑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면 이 선을 더 강하게 사랑하게 될 것’이다(제3부 정리31).

[제3부 정리31]
만약 우리 자신이 사랑하거나 욕망하거나 증오하는 어떤 것을 어떤 사람이 사랑하거나 욕망하거나 증오하는 것을 우리가 표상한다면, 그로 인하여 우리는 그것을 더욱 확고부동하게 사랑하거나 욕망하거나 증오할 것이다. (…)
그러므로 [제3부 정리 31]의 계에 의해 그 사람은 다른 사람도 그것을 사랑하게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제3부 정리31]의 계
(…) 각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모든 사람이 사랑하도록, 그리고 자기가 증오하는 것을 모든 사람이 증오하도록 가능한 한 노력한다. (…) 그리고 [정리36]에 의해 ‘이 선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이며, 모든 사람이 그것을 향유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이유로) 모든 사람이 그것을 즐기도록 노력할 것이다.’ [정리36]을 인용하면,

[정리36]
덕을 따르는 사람들의 최고의 선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이며, 모든 사람이 똑같이 그것을 향유할 수 있다. 곧 [정리36]은 최고의 선이 갖는 ‘보편성’을 증명하는 정리일 것이고, 이 정리에 의해 각자가 추구하는 선이 타인들을 위해서도 선이며, 타인들도 함께 향유하도록 욕구할 것이라는 논리이다. 한편 [제3부 정리37]에 따르면 슬픔이나 기쁨, 증오나 사랑에서 생기는 욕망은, 그 감정이 크면 클수록 그만큼 더 크다. ‘이 선을 보다 많이 향유하면 할수록 그 일에 더욱 노력할 것’임이 분명해진다. 그렇다면 ‘신에 대한 인식’이 기쁨을 가져오고 이 선의 감정을 추구하는 욕망은 이 신에 대한 인식이 크면 클수록 더 많이 욕구할 것임은 알 수 있다. 다만 ‘신에 대한 인식’이 반드시 선이라면, ([정리8]에 의해) 이 선을 인식하는 일은 곧 기쁨의 감정을 가져온다는 논리를 이해할 수 있다.

[정리8]
선과 악의 인식은, 우리에게 의식된 한에 있어서의 기쁨 또는 슬픔의 감정일 뿐이다.

참고로 [정리37]에서 덕을 따르는 한에서 ‘자기를 위해 추구하는 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욕구하는 것’의 구조는 [제3부 정리 59]의 주석에 나오는 ‘정신의 힘’의 두 요소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스피노자는 ‘정신의 힘’을 ‘용기’와 ‘아량’으로 나누었는데, 영역본에서 ‘용기’에 해당하는 용어는 tenacity, ‘아량’에 해당하는 용어는 nobility이다. 여기서 ‘용기’와 ‘아량’이라는 용어가 좋은 선택은 아닌 듯하다. 우선 영역본의 용어와 결부지어 보면, ‘용기’는 ‘정신의 강인함’에 좀더 가까울 것 같고, ‘아량’은 ‘고귀함에서 나오는 배려, 친절함’의 의미에 더 가까울 것 같다. 이 부분[제3부 정리59]의 주석 일부를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인식하는 한에 있어서의 정신에 관계하는 감정에서 생기는 온갖 활동을 나는 정신의 힘(strength of character)으로 간주하며, 그것을 용기(tenacity)와 아량(nobility)으로 나눈다. 용기란 각자가 오직 이성(理性)의 지령에 따라서만 자신의 유(有, being)를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욕망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아량이란 각자가 오직 이성의 지령에 따라서만 다른 사람들을 돕고 그들과 친교를 맺으려고 애쓰는 욕망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그러면서 용기의 일종에는 절제, 금주, 위험에 처했을 때의 침착함이 있고, 아량의 일종에는 예의, 자비 등이 있다고 정리하고 있다. 이 부분을 다시 보면, ‘용기’는 오직 이성에 따라 나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고자 하는 욕망에 관계한다. 그리고 [정리37]의 ‘자기를 위해 추구하는 선’에 상응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아량’은 오직 이성에 따라 타인을 돕고, 타인과 우정을 맺으려는 욕망, 곧 나 자신에 대한 관심을 넘어 타인에게 향하는 관심을 기반으로 하기에, [정리37]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욕구하는 것’에 연결지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