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무의식은 없다>에 대한 세간의 관심에 덧붙여 - 행동과학자들의 오만함에 대한 비판

작성자
absinth
작성일
2019-08-15 16:38
조회
34
http://newspeppermint.com/2019/07/08/m-mindisflat1/#disqus_thread

며칠 전부터 이 글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 같은데, 책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행동과학자들 특유의 오만함이 느껴져 몇 자 적어본다. 여기저기서 뇌 전문가라고 일컫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뇌 연구하는 건 좋다. 근데 문제는 이 사람들이 세계를 모두 설명할 수 있는 철학자의 위치에 자기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려는 경향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특히 무의식 같은 복잡한 개념을 건드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임상현장에서 무의식의 존재를 경험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그것을 이론적으로 규정하겠다고 난리들이다.

일단 쓰기에 앞서서 내가 이 사람의 글을 직접 읽은 건 아니고, 이 글을 '해석'하고 그와 인터뷰를 진행한 NewsPeppermint의 글을 읽고 나서 이 글을 작성한 것이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생각에 따라 글을 그냥 휘갈겨 쓴 거라 기승전결이 잘 정돈되어 있지 않은 점 양해해주시길 바란다. 이 사람의 생각 구조를 대충 복습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내면의 정신세계는 '상상의 산물이다'. 따라서 상상의 산물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건 사실 굉장히 해묵은 문제를 다시 꺼내는 거라고 봐야 한다. 심지어 고대 그리스에서도 '눈에 보이는 실체만 믿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생각된 관념적 내용과 물리적인 실재 사이의 관계 즉 심신의 관계에 대해서만도 상호작용설이니 병행론이니 유물론(현대 과학의 관점)이니 부대현상설이니 하는 숱한 이론적인 관점들이 존재했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이걸 철학적인 논쟁의 틀로 가져가게 되면 용어가 복잡해질테니 그냥 시쳇말로 잡설을 끄적거려보려고 한다. 일단 논의를 다음처럼 나눠서 생각해볼 수 있겠다.

첫째는 "믿음, 동기, 공포"라는 것이 '실재'하느냐는 문제다. 내 생각에 지금 이 사람은 이 모든 개념들이 뇌에 의해 상상되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며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실제로 주변에 과학한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다. 뭐 정신과 의사들 중에서도 모든 것은 다만 뇌의 작용에 불과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렇다면 되묻고 싶다. 당신들이 '실재한다'고 믿는 사물들이나 물질들에 대한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뉴런은 존재하지만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뉴런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지만 감정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인터뷰 동안 저자는 분명 언어라는 도구를 이용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고 있는데, 아마 자기 생각에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다만 뇌의 신호 전달, 그리고 그것에 반응하는 자신의 성대 및 그곳을 타고 퍼지는 음파의 진동, 그 진동을 귀로 느끼는 상대방의 물리적 반응과 뇌의 반응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성대', '음파' 따위는 절대적으로 '그곳에 진짜로 있는' 것이라기보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우리가 그것을 '그런 식으로 규정'하게 된 것들이다. 모든 규정에는 경계짓기가 수반되는데, 우리는 심지어 우리의 '몸'이라는 것의 경계조차 제대로 규정하지 못 한다. 내 피부 위에 살고 있는 미생물은 나의 '몸'에 포함되는 것인가 포함되지 않는 것인가? '뇌'라는 것은 도대체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인가? 뇌와 연결된 척수를 딱 연수(medulla)정도의 레벨에서 절단했을 때 딱 그정도까지를 '뇌'라고 부르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온 몸 구석구석까지 연결된 신경계를 모두 포함해서 '뇌'로 간주해야 하는가? 어쨌든 중요한 건 이 모든 규정과 경계짓기의 과정에 '생각'과 '상상'이 관여된다는 것인데, 저자의 말에서 증명되는 것이라고는 어쨌든 그의 사유 자체가 관념적인 요소들, 즉 상상에 의거해 입증되고 있다는 것이고, 또 그가 계속해서 '언어'라는 상상적 요소에 기대어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 뿐이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는 상상된 것에 의거해서만 상상된 것이 상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처지에 놓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그는 이 모든 것이 다 상상에 불과하다는 '믿음'을 붙잡고 놓지 않으려 한다. 그래, 뭐 여기야 사람의 믿음 문제니까 그렇게 믿으라고 하겠다. 종교의 자유도 있는 판에 이런 생각의 자유조차 없으면 안 되겠지.

그렇다면 그의 손을 들어줘서 그런 것들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쳐보자. 여기서도 문제는 있는데, 설사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것이 사유의 대상이 되는 것조차 거부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글쎄 뭐 이 사람은 그런 걸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까지 보는 것 같지는 않기는 한데, 내가 느끼기에는 '그런 걸 가지고 생각 놀이를 하는 건 말리지 않아. 하지만 그게 무의미한 상상놀이라는 것만 알아줘'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그렇다면 우리가 살면서 하는 행동의 거의 99% 이상은 다 쓸모 없는 상상놀이에 불과한 게 아닌가? 지금 여기에서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글을 읽으며 어떠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당신이, 자기 자신의 그러한 모습을 되뇌이며 반성(reflexion)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굉장히 복잡한 과정의 생각들이 당신 머리 속을 훑고 지나갈텐데, 행동과학자가 보기에 이는 '어떠한 행동의 변화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쓸모 없는 작업에 불과하다. 저자의 말마따나 우리의 정신이라는 것은 그저 즉흥적으로 재주연주를 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깊게 생각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는 그저 눈 앞에 보이는 자극에 대해 그때 그때의 방식에 따라 반응을 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 뭐 정신이 즉흥적으로 작용한다는 생각 자체에는 크게 반대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사람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모든 '행위'나 '결정'들은 '현재의 뇌의 물리적 상태'로 인해 특정한 방향으로 결정지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단면(cross-section)적으로 봤을 때 굳이 과거나 미래의 경험이라는 개념을 끌어올 필요가 없다. 설사 과거의 어떤 행위들이나 경험들이 기억 속에 저장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들 입장에서 그것들은 특정한 형태로 '현재의 물리적 상태'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상태만 파악하고, 그것의 반응만 바라보면 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2. 정신 치료는 무의식 속에서 '진짜 나'를 발견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처럼 정신 (아니 정확히 이 사람의 개념으로는 '뇌가') 이 즉흥적이라는 사실에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무의식이라는 실재는 없다"는 결론으로 나가는 것 같다. 그에 따르면 정신 안에는 "그저 어떤 이야기의 초안이나 서로 일관적이지 않은 여러 메모들이 있을 뿐"이며 "머리 속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들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을 뿐이다. 이어서 그는 말한다. “아무리 정신과 치료를 받고 꿈을 분석하고 언어 연상 실험과 뇌 스캐닝 기술을 사용해도 누군가의 ‘진정한 동기’는 밝힐 수 없습니다. 이는 그 동기를 찾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동기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진정한 동기'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아리송할 따름이다. 이 사람은 아마도 무의식을 탐색하는 사람들이 '내면의 진짜 알갱이' 같은 것을 탐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 생각에 이건 행동과학자 특유의 사고과정 상 어쩔 수 없이 나온 결론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사람들은 뭐든지 '실재'하는 것은 '실체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동기'가 있다면 '동기라는 실체가 어딘가에 있다'는 결론으로 향하게 되고, 결국은 '근데 동기라는 실체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상상된 것이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게 되는 거라고 본다. 옛날에 데카르트가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그런데 데카르트 이후 수많은 철학자들이 여기에서 치명적인 단점을 발견했다. 이 '존재'라는 단어가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의미로 얼렁뚱땅 넘어가버린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한다"는 사실 자체는 거기에 무언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까지는 맞다. 어쨌든 이유가 무엇이든 생각이라는 과정이 진행된다는 것 자체는 부정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그러한 사실이 반드시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는 어떤 '것'이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수반하지는 않는다.

뭐 정신과 의사들 중에서도 이견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들은 무의식이라는 것을 실체라고 보지 않는다. 임상을 목적으로 정신치료를 가르치는 현대의 이론가들 중에 그렇게 어떤 보물 상자에 숨겨진 것과 같은 '무의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듣도 보도 못 했다. 심지어 프로이트도 자신의 저서 어디에서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물론 프로이트 그 자신은 엄청나게 수도 없이 자신의 의견을 수정하고 번복했지만, 결론적으로 그는 다만 의식되지 않는 것들,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이상하게도 반복적인 패턴을 가지고 나타난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고, 우리의 정신이 지나치게 비합리적이고 즉흥적이면서도 무목적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만약 '나 안의 참된 나, 진짜 내가 무엇인지 찾고 싶어요'라는 목적을 갖고 있다면 조용히 말씀드리겠다. 근처의 보살님을 찾아가보시라고. 정신 치료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실 저자가 추구하는 것과 정확히 동일한 부분을 지향한다. 바로 "자신의 꼬인 내면을 해결하려 애쓰는 대신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창조적인 프로젝트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말이다.

저자는 "예를 들어,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은 “이 정도로 슬퍼했으면 충분할까? 이렇게 빨리 괜찮아져도 괜찮은걸까? 혹시 나는 아내와 아이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지요. 이렇게 자신의 무의식 속 진짜 마음이 무엇이었는지를 찾는 것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일 뿐입니다."라고 하면서, 마치 정신 치료자들이 이런 고통을 야기하게 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런데 사실 본질은 바로 그런 부분들 때문에 정신 치료자들이 있는 거라고 봐야 한다. 도대체 왜 나는 슬퍼하고 있는 나 자신이 빨리 괜찮아져도 되겠느냐는 고민을 하는가? 이런 추동들의 근거에서 무의식의 근거를, 즉 한 개인이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어떤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탐색해 들어가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탐색에서 정신 치료자가 "당신의 정신은 이렇게 이렇게 작동하고 있군요"라고 해석을 제시하는 데 목적을 갖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허수아비 공격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도 할 말이 많은데... 사람들은 정신 치료자들이 이런 종류의 '해석'을 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러이러한 이유로 당신은 이런 행동을 하는 겁니다"라는 답변을 주는 데 목적을 가진다고 보는 것 같다. 내가 말하건대, 그건 절대로 우리의 목적이 아니다. 우리는 수련 과정 중에 오히려 해석을 극도로 경계해야 함을, 환자에게 충고나 조언을 주는 레벨에 그치지 않도록 교육받는다. 그들은 오히려 환자들이 '즉흥적인 현재 자체'에서 새로운 삶의 패턴을 조직하도록 이끈다. 무의식은 그러한 패턴을 조직하는 배경으로, 캔버스, 들뢰즈의 말을 따르자면 밑그림이나 스케치같은 것으로 작용하는 것이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제1원인 같은 것이 아니다.

3. 즉흥적 반응과 반복의 문제

조금이라고 생각을 하고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뇌를 연구한다는 사람 중에 '모든 해답이 뇌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만큼 조심해야할 사람도 없다. 모든 것이 즉흥적인 '뇌의 반응'으로 발생한다는 생각에는 다음과 같은 전제들이 깔려 있다. 일단 어떤 뇌가 있고, 그 뇌의 특정한 물리적 상태가 존재한다. A라는 상태의 뇌는 A'라는 반응을, B라는 상태의 뇌는 B'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우리로서는 A나 B가 어떤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맥락에 속해 있는지 (이런 건 다 '상상'에 불과한 거니까) 또는 A나 B가 어떤 언어를 쓰고 있는지 등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고, 다만 A나 B의 물리적 상태의 차이가 어떠한지에만 집중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동일한 A라는 물리적 사태라도 그것이 어떤 '상상된 것들' 사이의 맥락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환경의 문제'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그들은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A가 속한 물리적 맥락 자체가 다르니까 당연히 다른 즉흥적 반응이 나오는 것 아니겠나. 그렇다면 우리는 그 환경이라는 것으로서의 물리적 맥락 또한 물리적으로 해석하고 다루면 되지, 상상적인 것들(사회적, 문화적, 언어적)을 다룰 필요는 없다"라고. 그렇다면 자기 반성 같은 과정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 반성의 과정, 혹은 우리가 기억 깊숙이 침투해 들어가는 '공상Daydream'활동에 의해 완전히 새로운 반응을 이끌어내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이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자기 반성을 하는 과정 자체는 완전히 다른 물리적 상태를 표현하기 때문에 당연히 반응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거라고. 이 사람들의 논의는 이런 식으로 한도 끝도 없이 밀고 들어간다. 이건 마치 나사를 조일 때 몽키스패너를 쓰는 사람을 보면서 "너는 몽키스패너가 어떻게 나사를 조이는 역할을 하게 되는지 그 물리역학적 과정을 하나도 모르지? 사실 나사를 조이는 건 몽키스패너가 아니라 몽키스패너와 나사 사이에 작용하는 마찰력과 힘, 그리고 토크 등의 역할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거다.

앞서 논의한 것처럼 '관념적인 것들이 실재하느냐'라는 물음은 둘째 치더라도, 정신 치료자들은 바로 그 '관념적인 것'들의 운동과 상호작용 덕분에 환자들이 삶을 변화시키고 치유되는 것을 본다. '감정', '믿음', '공포' 같은 것들은, 비록 그 것이 상상된 것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실제로 나사를 조이는 몽키스패너처럼 우리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 그리고 정신 치료자들은 그런 '상상된 것들'을 어떻게 다루고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을 주고받는지를 관찰하는 데만 몇십년의 시간을 보내며 수련 생활을 한다. 감정적 어려움에 빠진 환자를 어떻게 돕겠냐는 질문에 "나는 우리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게 되는지를 먼저 이야기할 겁니다."라고 대답하는 저자를 보면서, 그런 전략이 잘 먹혀들어갔으면 지금쯤 참이나 정신들이 건강하게 살고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4. 그래서 무의식은 없다?

저자는 말한다. "무의식에 속한 무언가를 밝혀 의식으로 끌어 올린다는 생각에는 무의식과 의식이 같은 형태의 무엇이라는 가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한 때는(그리고 지금도 몇몇 학파에서는) 정신 분석을 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목적으로 한 적이 있었다. 프로이트의 영역을 담당했던 James Strachey는 "wo Es war, soll Ich werden 그것이 있었던 곳에 내가 들어서게 하라"라던 프로이트의 말을 "where id was, there ego shall be 이드가 있었던 곳에 자아가 들어서게 하라"라는 말로 번역했고, 이것이 유명한 자아 심리학의 태동을 야기했다. 자아 심리학은 무의식을 자아(ego)의 언어로 표현하게 만들고 의식화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가졌었다.

그런데 사실 정신 치료의 학파는 매우 다양하고, 굉장히 많은 학파들은 이런 고전적인 '무의식의 의식화'만을 해법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리고 설사 무의식을 의식화한다는 그의 허수아비 공격이 정당하다고 해도 여기에 "무의식과 의식이 같은 형태의 무엇이라는 가정이 포함되어 있"다는 그의 말은 정말 비판받을만 하다. 이는 결과에서 전제를 끌어내는 이상한 추론 방식인데, 그는 어떤 A라는 것이 B라는 것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그것이 '같은 형태'여야만 한다고 가정을 하는 것 같다. 아마도 그는 우리가 타인의 몸짓, 언어, 감정 등에 영향을 받아 특정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그러한 몸짓, 언어, 감정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전달된 물리적 신호 때문에 뇌의 변화를 야기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참으로 편리한 생각이다.

그런데 정말로 이상한 것은, 그가 분명히 우리 뇌에 "의식이 아닌 활동이 존재"하며 그것이 "'사고'는 전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그것들이 전적으로 의식적 사고를 결정"한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사고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무언가가 그것의 수준과는 전혀 다른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여기서 당당하게 '사고'라는, '상상된 산물'이 이러한 물리적인 사태들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듯한 뉘앙스까지 풍기기에 이른다.

5. 정리하면서

저자는 "자신의 내면을 찾는 것은 비건설적인 일입니다. 무의식을 버림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이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정답은 정 반대에 있다.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실체화하는 것, 다시 말해 모든 것을 실체화하려는 '의식의 횡포'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더더욱 '무의식'의 중요성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저자가 정신 치료자들을 비판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는 '무의식의 실체화' 경향을 비판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개념규정과 전제가 잘못돼 있다 보니 '무의식이 없다'라는 요상한 결론에 도달한 건 아닌가 싶다.

원어 제목은 인데, 누군지 몰라도 제목을 저렇게 자극적으로 지어놔서, 혹여나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될까 염려돼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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