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호] 행위자의 특징ㅣ김영철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9-09-06 16:56
조회
35
 
 

행위자의 특징


김영철 (다중지성의 정원 회원)


 

 

브뤼노 라투르의 저작 『젊은 과학의 전선』(황희숙 역, 아카넷)을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었기에, 그의 이론을 탐구한 그레이엄 하먼의 책 『네트워크의 군주 : 브뤼노 라투르의 객체지향 철학』(김효진 역, 갈무리 출판사)에도 관심이 이어졌다. 이 책을 읽으며 행위자 또는 행위소(하먼은 이를 객체라고 부름), 연결망 등 라투르가 주로 사용하는 개념들에 대해 새롭게 이해할 할 수 있었는데, 하먼은 라투르가 즐겨 사용하는 용어들을 여러 철학 사조들과 비교함으로써 그 용어들이 갖는 내용과 가치를 부각시킨다.


이 책에 매우 빈번하게 등장하며 고찰의 대상이 되는 것이 라투르의 “행위자”라는 개념인데, 사람뿐 아니라 원자와 분자, 빗방울, 풍차, 프로판가스탱크 등 모든 존재자들이 이 개념에 속한다는 것이 매우 신선하고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이 행위자들은 그들 사이의 연합관계(동맹)를 늘림으로써 더 강해지며 어떤 행위자는 다른 행위자들로부터 단절되면서 더 약해진다. 라투르는 세상을 주체와 객체(대상) 또는 인간과 자연으로 구분하는 근대적인 이분법적 세계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려는 듯 “행위자들의 민주주의”라고 할 만한 이론을 전개한다.


“행위자”가 갖는 다른 특성은 “각각의 행위자는 다른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수십억 마리 고양이들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들 각각이 실재적인 고양이들이지, 고양이 형상이나 고양이 본질이라고 말할 만한 어떤 것이 수십억 마리의 고양이들 내부 또는 외부에 있지는 않다는 이야기이다. 하먼은 행위자들의 이런 특성을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별자와 비교하는데, 실재적인 것은 구체적인 존재자들뿐이라는 점에서 라투르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둘 사이의 차이점도 볼 수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는 자신의 표면을 장식하는 우유적인 것들(accidents)과 같은 비본질적인 특질이 변하더도고 지속할 수 있다. 반면에 행위자들의 특질들은 모두가 행위자 자신에 속하며, 행위자는 어떤 주어진 순간에 세계에서 전적으로 전개되는 자신의 온갖 특질들로 완전히 특징지어지는 하나의 힘으로 생각된다. 여기에는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의 구별이 없다고 한다. 사물의 내면과 외면, 본질과 현상을 구분해서 보는 데 익숙한 이들에게 행위자들이 갖는 이런 특성은 낯설게 느껴질 것 같다.


사물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성질들 중 하나가 바뀌면 그 사물은 다른 사물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은 이전의 사물과 같은 사물인가? 두 이론 모두 어느 정도는 타당하다고 할 수 있는 대답들을 내놓을 것 같다.


하먼은 라투르의 행위자들이 갖는 이런 특징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철학과 비교한다. 그는 주객 이분법을 비판하는 라투르의 이론에는 찬성하지만, 객체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는 라투르와 차이를 보인다.


행위자들은 연합관계(동맹)를 늘림으로써 더 강해지며 어떤 행위자는 다른 행위자들로부터 단절되면서 더 약해지고 더 고립되기 때문에, 동맹관계는 객체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하먼은 더 나아가 라투르의 핵심 논제를 “행위자란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들”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런데 하먼의 객체(라투르의 행위자)는 자신이 다른 사물들과 맺고 있는 관계들로 환원될 수 없고, 이런 관계들에서 유보된 무언가를 항상 비축함으로써 라투르의 행위자와는 다른 것이 된다.


하먼의 말처럼 라투르가 객체를 다른 사물들과 맺는 관계들로 환원하는지는 의문이다. 행위자들은 능동적으로 동맹을 강화해 나가거나 때로는 동맹의 강화에 실패하는데, 이러한 관계에는 비결정성 같은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며, 이때 비결정적인 것에로의 환원이라는 생각에는 문제가 없는지 궁금하다. 환원을 이야기할 때는 안정적인 무언가를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관계라든가 연결망 개념은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것 같다. 관계 개념과 관련하여 여러 시각에서 문제에 접근해 볼 수 있다면, 그에 대한 이해의 진전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하먼은 이 책에서 『비환원』, 『과학의 실천』,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판도라의 희망』 등 라투르의 주요 저작들을 검토함으로써 그의 행위자 연결망 이론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데 기여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은 고대 및 중세의 철학 그리고 근대의 비판철학, 현상학 등에서 볼 수 있는 실체, 객체, 관계 개념에 관한 독창적인 견해들을 소개하면서 논의를 흥미지진하게 이끌어 감으로써 라투르의 연결망 이론을 심도 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책이 보여주고 있는 폭과 깊이가 라투르의 철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 그리고 연결망이론에 관심을 갖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



※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19년 9월 5일 웹진 <문화다>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bit.ly/2lAwK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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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브뤼노 라투르 지음, 홍철기 옮김, 갈무리, 2009)

이 책은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연구해온 인류학자인 저자 브뤼노 라투르가 근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방식에 던지는 독특하고 근본적인 문제제기이다. 탈근대주의의 근대성 비판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라투르가 말하는 근대인의 본질은 이분법이 아닌 ‘하이브리드’의 증식이다. ‘하이브리드’의 이해를 통해서만 사회와 자연, 정치와 과학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현재의 정치·사회적 위기와 환경·기술적 위기라는 이중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과학의 새로운 정치사회학을 향하여(스콧 프리켈 외 엮음, 김동광 · 김명진 · 김병윤 옮김, 갈무리, 2013)

21세기 들어 과학지식의 생산과 활용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규제의 대상이 되고 있고, 상업화가 진전되고 있으며, 또 참여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을 이해하는 것은 과학자나 비과학자 모두에게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이는 지적 작업과 지적 재산에 대한 전통적 관념에 도전하고 있으며, 법률적 · 전문직업적 경계를 재구성하고 연구의 실천을 변형시킬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변화들이 의존하고 있는 권력과 불평등의 구조를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인간의 건강, 민주주의 사회, 환경에 던지는 함의를 탐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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