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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페데리치 강연, 미투와 자본 축적의 새로운 형태들 – 질의응답

작성자
ludante
작성일
2019-10-07 22:25
조회
182

미투와 자본 축적의 새로운 형태들 (질의응답)


#MeToo and the New Forms of Capital Accumulation



실비아 페데리치 강연

김정연 옮김

* 이 글은 2018년 2월 13일 실비아 페데리치가 <연구와 실천 조직가를 위한 새로운 센터>(The New Centre for Research & Practice Organizers)에서 진행한 강연의 질의응답 내용 일부를 녹취, 번역한 것이다. 아쉽지만 뒤로 갈수록 음향 상태가 좋지 않아 11분 가량밖에 녹취하지 못했다. ― 옮긴이
* 원본 영상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qxSmkeMkU7c&t=2105s
* 강연 녹취 링크 : http://daziwon.com/?page_id=600&mod=document&pageid=1&uid=2595


1:22:30~1:33:04

질문 : 현대의 맥락에서 남성들과 [안 들림] 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라면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들은 무엇인가요? (일동 웃음) 사람들은 그 지점을 어떻게 해석하나요?

페데리치 : 네. 2~3개의 질문을 한꺼번에 받겠습니다.

질문 : 방금 주신 질문과 연결되어서,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내용을 고려할 때, 왜 이 세상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레즈비언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요? (일동 웃음)

질문 : 남성과 여성의 구별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안 들림]?

페데리치 : 저는 여남 관계에 대한 질문은 레즈비언 커플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두 여자나 두 남자가 만나기만 하면 완전한 평등이 펼쳐진다는 환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교환 모델은 여성 간의 관계에도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 간의 관계에서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생각은 사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권력, 돈 같은 사안들은, 이 질문은 다른 분이 질문하신 트랜스 관련 문제에도 적용이 되는데요,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권력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있는 순간 도착된 상황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의 물질적 재생산 조건과 관련하여 진정한 자율성을 가지지 못하는 순간, 이것이 여러분의 질문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투쟁의 영역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투쟁의 영역 중 하나입니다. [안 들림] 가장 근본적인. 또한 이것은 재교육의 과정에 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한 세대의 여성들은 삶에서 자기 능력, 자기 자신의 가치에 대한 감각을 가질 수 있는 활동들로부터 배제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녀들이 남성들에 의한 가치평가에 절박하게 의존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남자들이 떠나가자 절망에 빠지는 여성들을 알고 있는데, 그 여성들이 남자를 좋아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 남자를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 (일동 웃음)

좋아하지 않았는데도 절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남자가 떠나는 순간 자기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의 가치가 남성에 의한 가치평가와 너무 많이 뒤얽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남자를 좋아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것이 올가미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올가미는 자기 자신의 삶에서, 자기 자신의 활동에서 자기 자신의 삶을 재창출할 능력, 스스로 결정을 할 능력, 집합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결정을 할 능력을 가질 방법을 찾지 못하면 나타나는 올가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안 들림]

그리고 저는 이 과정이 자율을 찾고, 행동하고 변화할 역능을 되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아실현, 저는 이 말을 정말 싫어합니다만 일단 씁시다, 자아실현을 할 원천들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항상 삶에 대해서 집합적인 관점을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혼자서는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어떤 집합성(collectivity)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일동 박수)

언제나 집합적인 것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을 가집니다. 그리고 사실 타인들은 사실 엄청난 부입니다. 이런 자기의존, 자기 역능화. 이런 것이 오늘날 진행되어야 하는 변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오늘날 “우리”라고 부르는 것에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소유욕이 너무나 많이 침투해 있고 소유권과 관련된 어떤 것(proprietary consideration)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 그 엄청난 열정들에 대해 항상 의심이 많은데 열정으로서의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너무 도착되어서 새로운 관계의 재창출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가 [안 들림]. 우리가 로맨틱하거나 성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어떤 로맨틱하거나 성적인 열정보다는 연대가 먼저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에만 우리 자신을 바꾸기 위해 어떻게 함께 작업할 수 있는지,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이해할 가능성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투쟁이 외적일 [안 들림] 뿐 아니라 우리가 내부화한 자본주의를 도려내는 투쟁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회에서는 상처를 한 무더기 입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 영혼, 우리 마음, 우리 신체에 수많은 상처를 입고 삽니다. 우리 자신이 이러한 상처들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투쟁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투쟁조차 당신에게 치유여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 투쟁을 떠나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잘못된 투쟁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투쟁을 어떤 희생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투쟁에서 물론 수많은 고통과 직면하게 되지만 그것은 다릅니다. 고통은 희생과 다릅니다. 희생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질식시키는 것입니다. 희생은 당신을 성장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런 것은 거부해야 합니다.

만약에 당신의 투쟁이 당신에게 그런 일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잘못된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은 굉장한 변형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그 과정이 특정한 물질적 조건을 가진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개인적으로 착수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집합적으로 해야 하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절대 개인적으로 해방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최악의 환상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우리 삶의 조건을 변화시키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저는 이런 사실이 레즈비언 관계나 트랜스 관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유동적인 정체성들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삶의 물질적 조건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우리 삶에 실제로 변화를 가져올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속한 여성운동은 보다 유동적인 정체성을 가지기 위해 엄청난 투쟁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변화시켰습니다. 어떤 특정한 여성성 개념을 거부한 것은 우리가 최초였습니다. 우리는 여성성은 없다, 그것은 환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여성성이란 가사노동을 위한 조건들의 결합물에 다름 아니라고 우리는 말했습니다. (일동 웃음)

실제로 여성성이란 것은 순종적이고 자기 헌신적인 가정주부에게 필요한 모든 특질들을 망라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여성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것과 전혀 관련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실 여성운동의 일부는 섹슈얼리티를 갖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하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안 들림] 닫힌 여성성이란 없고, 여성성이라는 것이 사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여성임에 대한 제 생각은 제가 18일 때, 5살이었을 때, 10살이었을 때, 그리고 76세인 지금 굉장히 달라졌습니다. 엄청나게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간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싸워왔고, 다른 여성들도 변화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질문 : 구조적인 경제적 변화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자아실현 같은 [안 들림] 이야기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모든 권력 관계를 경제적 물질적 조건의 탓으로 돌리시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페데리치 : 네. 맞아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네... 역시 그러네요. (일동 웃음)

질문 : 사회적 권력 관계나 자아실현, 자율의 문제 그런 것들은 어떻게 물질적 경제적 조건과 연결되나요?

페데리치 : 아주, 아주 잘 연결됩니다. 예를 들어서 자기 자신을 유지할 기본적인 필요들이 충족이 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 한다면 [안 들림]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관계는 도착됩니다. 그러면 그 관계에서 예를 들어 당신이 원하는 바, 욕망하는 바를 표현하고 설명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당신이 권력관계 안에 있고 상대가 당신의 안녕에 영향을 미칠 권력을 가질 때, 당신을 처벌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질 때 …

질문 : 자기를 표현하는 데 굉장히 능한 용감한 사람들은요? 자기결정력이 강하고 [안들림] … 말씀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인데요.

페데리치 : 지금 설명하시는 상황을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안 들림] 자기결정권은 저의 생각 속에서는 언제나 집합적인 것(collective)입니다. 자기 혼자서 자기 결정을 하는 경우는 결코 없습니다. [안 들림] 우리는 자기가 만든 개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우 상호 의존적입니다. 그리고 그 상호의존 속에서 자기결정권은 오직 집단적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투쟁합니다. [안 들림] 투쟁 관계, 거부 관계 속에서 결정권의 일부를 삶의 일부를 되찾는 것입니다. 그것이 투쟁의 힘입니다. 그러나 그 투쟁은 또한 당신이 처한 물질적 조건을 변화시킵니다. 모르겠습니다. 오늘 저는 사실 투쟁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투쟁, 투쟁이라는 단어는 많은 [안 들림]을 가진 단어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러한 종류의 투쟁에 진입하는 순간, 말하자면 사슬을 끊으리라 단단히 결심한 그런 투쟁에 진입하는 순간, 파업의 경우에, 다시 되돌아가지 않으리라 결정한 그런 파업, 그리고 사실 많은 예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미국의 노동조합 [안 들림] 노동사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도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즉각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즉각적으로 변합니다. 개인주의가 [안 들림]이라고 하는 순간에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의존한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모두를 위한 하나라는 말이 단지 슬로건이 아니라 [안 들림]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한참 안 들림] 강력한 경험 [안 들림]을 제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강력한 경험이 질투, [안 들림] 같은 낡은 [안 들림]에서 벗어나서 다른 사람들을 친구로, 동지로 볼 수 있게 해줍니다. [한참 안 들림]







* 실비아 페데리치는 여성주의 이론가이자 활동가로,『캘리번과 마녀』, 『혁명의 영점』의 저자이다. 1972년에는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와 함께 <가사노동에 임금을 지급하라> 캠페인을 시작하였으며 반세계화 운동, 사형제 반대운동, 아프리카의 경제 및 교육 시스템 구조조정 반대 활동 등 수십 년간 다양한 국제반자본주의 운동 의제들에 참여하며 그에 관해 다수의 책과 논문을 썼다. 페데리치와 그녀의 사상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갈무리 출판사 저자 블로그(https://blog.naver.com/federici_gal)와 한국어로 번역된 저서 『혁명의 영점』과 『캘리번과 마녀』를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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