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의 잔존 5장 파괴 발제문입니다.

작성자
Hyeran Park
작성일
2019-10-13 14:14
조회
700
반딧불의 잔존
5장 파괴

- 지평과 이미지
우리의 저편으로 연장되는 광대하고 부동적인 지평으로 시각을 넓히는 경우와 우리와 매우 가까운 곳을 지나가는 미세하고 유동적인 이미지로 시선을 벼리는 경우, 발견되는 사태는 전혀 같지 않다. 이미지가 산발적으로 지나가는 약한 빛 lucciola라면, 지평은 전체주의의 멈춰진 시간이나 최후의 심판의 종결된 시간 같은 결정적인 상태의 강한 빛 luce이다. 지평을 본다는 것은 우리를 스치는 이미지들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며, 지평에만 배타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최소의 이미지를 응시하지 못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모든 이미지를 받아들이고 보이게 만들 지평은 [벤야민에게] 메시아적 고양의 순간에서만 가능하다.

- 가설적인 역사의 종말
각각의 순간/이미지는 최수의 심판의 절대적이고 역설적인 지속 안으로 소환될 수 있을 것인데,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최후 심판의 날/낮 아닌 밤일 것이다 [위베르만]. 벤야민의 테제는 사유가 임명한 “매초”의 시간이 간직한 메시아적인 “좁은 문”의 이미지 – 우리를 위한 벤야민의 최후의 말-에서 중단된다. (위베르만이 볼 때, 벤야민의) 이런 좁은 테두리, 이런 미세한 간극은 이미지 그 자체이자, 지나가는 여인의 전형이다.

혜성 혹은 미광으로서의 이미지 또는 “변증법적 이미지는 과거의 모든 지평을 돌파하는 하나의 불덩이”이다. 지평이 왕국과 그 영광에 의해 가로막힌 것처럼 보이는 이런 세계에서는, 정치적인 항의, 위기, 비판, 해방을 작동시키는 제일의 주체는 이미지라고 명명되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이미지가 전체주의적 구축물의 지평을 돌파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때 이미지는 우리의 타고난 비관주의의 지평 자체를 “조직”하는 – 또한 분해하고 분석하고 반박하는 – 방식이다. (116쪽 인용 보기) 또한 이미지의 출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 연소하고 추락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유일하고 귀중한 출현이다. 불덩이는 오직 우리를 향해 추락하고 우리에게 낙착하는 한에서만 “모든 지평을 돌파”한다. 낙하나 퇴조는 소멸이 아니다.

방책 없는 지평 vs 이미지의 방책 – 아감벤, <유아기의 역사>>
아감벤이 경험의 파괴라는 각도에서 동시대인 전체를 바라보고, 벤야민의 “경험의 시세가 하락했다”는 대목을 독해할 때, 파괴는 실행된 것이고, 완수된 것이다. 견딜 수 없는 것. 아감벤은 벤야민이 진단한 “하락”을 마무리된 결과로, 대책 없는 “파괴”로 변환시킨다.
gafellen(하락) – 참담한 운동이나 여전히 운동. 좋아하고 즐겁게 하고 받아들이는 행위
경험의 시세 – 벤야민이 말하는 ‘파괴’는 효과적이고 유효한 파괴. 실행되지 않은 파괴. 영원히 완수되지 않는 파괴. 파괴의 지평은 결코 종결되지 않는다.

벤야민, <이야기꾼>의 ‘퇴조’의 어휘
“이야기의 기예가 자신의 종말로 기울고 있다”에서 ‘기울고 있다’의 운동은 소멸된 사태가 아니라 ‘소멸되어가고 있는’ 사태로 ‘퇴조’가 관건이지 실행된 파괴가 관건은 아니다. “이야기의 기예는 드문 것이 되었다”의 ‘되기’는 치명적인 정지를 전제하지 않기 때문에 파괴되지 않은 것이 비록 소수적이고 ‘드물고 기이한’ 방식으로 존속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파국’의 시대에 절박하고 정치적이고 미학적인 과제가, 퇴조로부터 논리적 귀결을 도출해내어 그 죽음의 지평까지 이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과제는 반딧불이나 외딴 별처럼 여전히 유동적인 이미지들의 구렁에서 이런 퇴조의 뜻밖의 방책을 발견하는 일일 것이다.
루크레티우스의 <만물의 본성에 대하여>>에서 원자들의 낙하는 이런 무한한 클리나멘 속에서 예기치 못한 예외적인 결과들을 허용한다. 한 원자가 그것의 평행한 궤도에서 가볍게 이탈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원자는 다른 원자들과 충돌을 일으키고, 이로부터 하나의 세계가 탄생될 것이다.
- 퇴조의 방책. 이탈, 충돌, 지평을 가로지르는 ‘불덩어리’
- ‘퇴조’의 시기들이 간직한 특수한 활력을 보여주는 후기 고대 미술, 매너리즘, 바로크 미술 (알로이스 리글의 미술사)

<이야기꾼>에서 발견되는 활력의 요소들
자국 – 이야기꾼은 이야기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서사시의 기억 – 프루스트에서 초현실주의 소설까지 근대 소설 속 회상 과정
산발성 – 오늘날 독자의 경험의 빈곤에도 불구하고, 산발적인 기억은 그만큼 ‘행복한 순간들’로서 그에게 다가온다.
벤야민이 알려주는 잔존의 시간적 지위에 대한 지침
“... 고대 이집트에서 유래하는 이 이야기는 수천 년이 지난 후에도 우리를 놀라게 하고 우리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 이야기는 수천 년 동안 밀봉되어 오늘날까지 발아의 능력을 간직한 채 피라미드의 방 속에 보본되어 있는 씨앗들과 비슷한 것이다.”

“경험의 시세는 하락했다”고 할 때, “오로지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들
- 사라지는 것 속에서 하나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만들었는지 이해하는 것
이런 방향으로 너무 멀리 가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필요한 여정의 반쪽만을 하릴없이 마치는 것에 불과하다. 벤야민이 권하는 ‘변증법적 이미지’는 오히려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순간들을 솟아나게 하는 것으로 순간은 잔존하고 저항하고 뜻밖의 순간에 조직을 폭파한다. 우리의 주변에서 매매되는 모든 ‘스펙터클’의 저편에서, 군림의 행사와 영광의 빛의 저편에서, 여전히 전달되는 경험들을 추구하자. 경험의 빈곤 자체를 하나의 경험으로 만들자.
- 하락을 격상시켜, 위엄과 ‘새로운 아름다움’을 갖춘 춤사위와 형태의 창안으로 나아가는 것
이미지의 재출현과 잔존의 능력은 취약하고 반딧불처럼 산발적이지만 역량을 지닌다. 아감벤의 <태고의 이미지>에서 이미지 개념의 두 지평 (서구 형이상학)
* 순수한 파괴 (이미지는 죽는다)
* 최종적 복원에서의 생존: 잔존은 사후의 생존, 묵시록적 생존, 종말의 시간에서의 생존, 순수한 구원으로서의 생존

비관주의를 조직하기 위한 이미지를 제안하는 벤야민의 양면성,
벤야민은 우리의 정치적 행위 구렁 자체에서 이미지들의 공간 발견할 것을 제안한다. 이 제안은 삶의 불균질한 시간성에 관련하며, 완수된 파괴도 구원의 시작도 약속하지 않는다. 단지 이미지의 욕망의 방책과 경험의 방책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제안을 했던 1933-1940 시기 독일계 유태인인 벤야민은 [아감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일상인 방책 없는 삶을 살면서도 그 하락세에 사유의 이미지와 이미지의 경험으로 응수했다.

서치라이트-말과 반딧불-말
아감벤은 경험의 파괴를 선고했고, 모든 유아기에 대한 애도를 선언했다. 파솔리니는 반딧불의 소멸을 선고했고, 세계대전의 다양한 상황, 특히 벤야민이 기술한 세계대전의 다양한 상황에 대한 인식을 현재에 투사했다. 그런데 세계대전 자체의 경험은 비관주의가 때때로 조직되어 드디어 자신의 내부에서 반딧불의 산발적인 미광과 희망을 생산해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빅토르 클렘페러의 <제3제국의 언어>>는 일상적인 억압의 공간에서 나온 “적법한 방어수단, 나 자신에게 타전된 조난신호”이며, 이 작업에서 언어를 해명하는 일이란 지하운동의 필연적인 어둠 속에서 나치 프로파간다가 부과하는 사나운 ‘서치라이트-말’에 ‘반딧불-말’로 가하는 반격이 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가장 어두운 말들도 절대적으로 소멸된 말이 아니라 지옥의 밑바닥에서 기록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존하는 말이 되었다. 바르샤바 게토의 일기와 폭동일지, 아우슈비츠 특수부대 구성원들의 육필원고 모두 ‘반딧불-말“인데, 사유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현실 때문에 상상력이 가로막힌 것처럼 보이던 때조차도 이미지의 출현을 이루어냈다.

은밀한 이미지, 오랫동안 감춰진 이미지, 오랫동안 쓸모없던 이미지. 그러나 벤야민이 모든 이야기, 모든 경험의 증언을 궁극적으로 재가하는 권위로서 인정했던 죽어가는 자의 권위에 힘입어 우리에게까지 익명으로 전달되는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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