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후기] 11/0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첫 번째 시간

작성자
jongseong
작성일
2019-11-06 15:40
조회
347
11월 08일(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첫 번째 시간입니다.

함께 읽을 범위는, 민음사 판본으로 1~103 입니다.
- 인상적인 부분,
- 공감 가는 부분,
- 그냥 좋아서 낭독하고 싶은 부분...
등을 미리 체크해 세미나 시간에 소개해 주시면 그를 바탕으로 함께 이야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한 문장도 좋고, 한 단락도 좋고, 한 페이지 혹은 몇 페이지여도 좋습니다!)

『프루스트와 기호들』의 <제5장 기억의 이차적 역할>도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저녁 7시 30분, 다중지성의 정원 3층 세미나실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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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미나 후기>


● 예술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그 본질이란 무엇인가? => '차이와 반복'

존재를 구성하고, 그 존재에 대해 사유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그 '절대적인 차이'가 본질이라고 한다. 그 '차이'는 경험적 차이는 아니다. 관점이 차이 자체다.
본질들은 '모나드들이다. 예술적인 상호 주관성만이 있을 뿐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서로에게 정신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기호들에 우리의 정신성을 담는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 기호에 서로의 주관성을 담아내는 것이다. 그것은 예술이 된다. '딴 사람의 눈에 비친 세계에 관해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다른 이의 정신을 볼 수 없다. 기호를 통해서 다른 이의 정신을 본다. 기호에 정신을 담는다. 정신을 담는 방법은 '은유'다.
예술 덕분에 세계는 증식한다. 각각의 모나드들인 관점들을 예술로 인해 보게 된다.
본질들로 인해 우리는 개별자를 인식한다. 본질이 차이를 구별할 수 있게 한다. 본질이란 하나의 세계관이다. 개별자들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예술이 필요하다. 우리는 예술로서 개별자들의 차이를, 본질의 차이를 인식한다. 내가 보는 세계관이 나의 본질이다. 나는 나의 문체로서 세상에 인식된다. 나는 나의 세계를 은유로서 보여준다.

● 어떻게 본질이 예술 작품 속에서 육화하는가? -> 이미지가 은유되어 문체가 된다.

본질은 질료 속에서 육화한다. 정신화된 질료를 형성한다. 예술은 질료의 진정한 변환이다. 물질을 이렇게 다루는 일은 오로지 <문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문체란 본질적으로 은유이다.' 은유는 심상과 이미지의 표현이다. 그럼 이 '이미지'가 '본질들'이라는 것일까. 하나의 사물, 대상, 기호에 대해 우리는 절대 같은 '이미지'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란 소설에서 서양의 선교사가 일본에 카톨릭을 선교하려 한다. 선교된 일본인이 믿는 신이 서양사람들의 이미지에 있는 그 '신'인가 갈등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자신의 신을 선교한 것이 맞는가, 아니면 새로운 이교의 이미지(신)가 탄생한 것인가. '이미지'는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같은 기호를 쓰지만 서로 다른 이미지를 말한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은유로서 말하여져 문체가 되고 예술이 된다. 예술적인 상호 주관성 속에서 우리는 자기를 벗어나 다른 세계를 마주할 수 있다. 다른 은유를 마주하면서 다른 세계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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