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11/8 『프루스트와 기호들』 제5장

작성자
bomi
작성일
2019-11-08 18:47
조회
17
다지원 기획세미나, 삶과 문학. ∥2019년 11월 8일∥bomi
『프루스트와 기호들』 질 들뢰즈, 서동운, 이충민 옮김, 민음사, 1997. p.87~105

제5장 기억의 이차적 역할

1. <자발적인> 기억
사교계의 기호들과 사랑의 기호들을 해석하려면 지성이 필요하다.
질투에 빠진 남자는 기억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사랑의 기호들(애인의 거짓말)을 해석한다. 그러나 이 경우 기억은 직접적인 자극을 통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만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기억은 해독되어야 할 기호에 비해서 언제나 너무 늦게 온다. (87)
기억은 각각의 사랑에 해당하는 기호들을 해독해 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88)

2. <비자발적인> 기억
<비자발적인> 기억은 감각적 기호들과 관련해서만 작용한다.
이 경우 기억은 직접적 자극을 통해 활동한다. 이 때 우리는 어떤 감각적 성질을 기호로서 이해하고, 또 그 기호의 숨은 의미를 찾으라는 어떤 명령을 느낀다.
비자발적인 기억은 우리를 그 기호의 의미로 인도해 준다.
그런데 우리는 이 비자발적인 기억이 모든 감각적 기호들의 비밀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점을 실감한다. 즉 어떤 것들은 욕망이나 상상 속의 형태들에 의존한다. (88)
1)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기억>과 <발견> - 기억의 풍경
2) <기억의 복원>과 <형태들의 도움으로 씌어진 진실> - 꿈의 풍경
(감각적 성질이) 적합한 의미를 건네줄 능력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능력들을 [하나하나] 시험해 보아야 한다. (89)

3. 감각적 기호들의 열등함과 우월함
비자발적인 기억에 의해 펼쳐지기 시작하는 감각적 기호들은 1)예술의 기호에 비해서도 2)상상력에 의존하는 감각적 기호에 비해서도 열등하다.
- 이 기호들의 재료는 불투명하고 다루기 어려우며, 그 전개 양상은 여전히 너무나 물질적이다.
- 이 기호들은 존재와 무의 모순을 피상적으로만 극복한다.
(하지만) 기억에 의해 전개되는 감각적 기호들은 진정 <예술의 발단>이며 우리를 <예술의 길로> 끌어들인다. (따라서) 감각적 기호들은 사교계와 사랑의 기호들보다는 우월하다. (90)

4. 은유 (삶과 예술) ★
프루스트에게는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기억>이 예술 작품의 구성 요소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기억>은 하나의 구성 요소로서 예술 안에 통합된다.
1)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기억>은 삶에 대한 은유이다.
2) 은유는 예술에서의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기억>이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른 두 대상(삶과 예술)을 <시간의 우연성에서 비켜나도록 하기 위해> 이 두 대상 사이에 어떤 관계를 만들어 준다. 하지만 삶이 그저 윤곽만 잡아 놓은 이 관계(삶의 층위에서의 예술)는 오로지 예술만이 완벽하게 성사시킬 수 있다(본질적인 예술). (91)

5. 순수 사유
삶보다 우월한 예술은 비자발적인 기억에 근거하지 않는다.
본질적인 예술은 상상력과 무의식적인 형태들에 근거하는 것도 아니다.
예술의 기호들은 본질에 관한 능력인 순수 사유에 의해 전개된다. (91)

6. 연상의 메커니즘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기억>의 복잡한 매커니즘을 어떻게 설명할까?
이 기억은 한편으로 현재의 감각과 과거의 감각 사이의 유사성이다. 다른 한편 이 기억은 과거의 감각과, 다시 되살아나는 [과거] 전체 사이의 인접성이다.

7. 형상의 메커니즘을 넘어서는 기억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기억>은 관념들의 연상을 통해서는 해결되지 않는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 우리가 현재의 감각 속에서 경험하는 기이한 기쁨은 어디서 오는가?
- 현재와 과거의 두 감각 사이에는 단순히 유사성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요컨대 어떻게 해서 콩브레가 과거 감각과의 인접성을 통해 체험된 것으로서가 아니라, 현실 속에는 절대로 등가물을 가지고 있지 않은 <진리>와 더불어 찬란하게 떠올랐는지를 설명할 것인가?

8. <자발적인 기억>과 현재의 관계
자발적인 기억의 과거는 과거에 있었던 현재와 관련이 있고 지금의 현재에도 관련이 있다. 이 기억은 과거를 직접 포착하지 않는다. 이 기억은 현재를 가지고 과거를 재구성한다. - 회상. 추론. (93)
자발적인 기억에서는 본질적인 어떤 것이, 즉 <과거의 '나'안에 있는 존재>가 빠져 나가 버린다. 시간의 본질을 놓쳐 버린다. (94)

9. 베르그송과 프루스트의 개념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
*유사성:
지속이 아니라 기억의 층위에서 둘의 개념은 유사하다. (96)
과거는 과거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 속에 보존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과거는 그 자체로 존재하며, 과거 자체의 상태대로 살아남고 보존되기 때문이다.
*차이:
즉자적으로 존재하는 과거를 베르그송은 잠재적인 것le virtuel이라 불렀다. 프루스트는 기억의 기호들에 의해 <현실적이지 않은 살재, 추상적이지 않은 관념>이라고 말한다.
베르그송에게는 과거가 그 자체로서 보존된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반면에 프루스트에게는 "우리는 그 자체로 있는 즉자적인 과거를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 가 문제다. (98)

10. 비자발적 기억에서의 본질 1
비자발적인 기억은 맥락을 내면화하고 [콩브레라는] 옛날의 맥락을 현재의 감각과 떨어질 수 없게끔 만든다. 두 순간의 유사성이 더 심층적인 동일성을 향해 나아감과 동시에, 지나간 순간에 속하는 인접성은 더 심층적인 차이를 향해 나아간다. 콩브레는 현재의 감각 속에서 다시 나타난다.
비자발적 기억에서 본질적인 것은 유사성이나 동일성이 아니다. 이런 것은 그저 조건들에 불과하다. <여기서 본질적인 것이란 내적으로 되고 내재화한 차이이다.>
-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기억>은 예술의 유사물이고
- 비자발적인 기억은 은유의 유사물이다. (99)

11. 순수 과거
두 감각(과거와 현재의 감각)에 공통된 성질인 맛은 다른 것, 즉 콩브레를 떠올리게 하는 일만을 한다. 하지만 이 부름에 응하는 콩브레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다시 출현한다. 콩브레는 옛날 그 당시의 콩브레로서 출현하지 않는다. 콩브레는 (과거든, 현재든) 한번도 체험될 수 없었던 그런 형태로 나타난다. 즉 사실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진실의 측면에서, 그리고 외재적이고 우연적인 관계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내재적인 차이의 측면에서, 그리고 본질의 측면에서 한번도 체험해 보지 못한 그런 형태의 콩브레이다. 콩브레는 하나의 순수 과거 속에서 출현한다. (100)

12. 비자발적 기억에서의 본질 2
<현실적이지 않은 실채, 추상적이지 않은 관념>. 이 관념적 실재, 이 잠재태로 있는 것, 이것이 본질이다. 본질은 비자발적인 추억을 통해 실현되거나 육화한다.
비자발적인 추억은 이 상태로부터 옛 순간에서의 차이와 현재에서의 반복이라는 두 힘을 이끌어 낸다.

13. 비자발적 기억에서의 본질과 예술적인 본질의 차이
1) 비자발적인 기억에서 본질은 개별적인 것이긴 하지만 개별화시키지는 못한다. 여기서 본질은 개별화의 원리라기보다는 지역화의 원리이다. (101)
2) 두번째 차이는 시간의 관점에서 나타난다.
예술적인 본질은 우리에게 시간의 계열들과 차원들을 극복하는 근원적인 시간을 계시해 준다. 그것은 본질 자체 속에 <복합되어 있는[감싸져 있는]> 시간이며, 바로 영원이다. 이것은 펼쳐져 전개된 시간, 즉 흘러가는 계속 적인 시간, 잃어버리는 시간 일반과 대립되는 시간이다.
반면 비자발적인 추억 속에서 육화하는 본질은 우리에게 이 근원적인 시간을 보여주지 않는다. 여기서 본질은 이미 펼쳐져 전개된 시간 속에서 돌연히 찾아온다. 이 지나가는 시간 한복판에서 본질은 감싸여진 핵심을 되찾는다. 그러나 이 핵심은 한낱 근원적 시간의 이미지일 뿐이다. (102)

14. 정리
예술을 향한 배움의 과정에서 비자발적인 기억은 가장 중요하지는 않은 어떤 한 단계일 뿐이다. 그러나 이 기억이 우리에게 본질들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준다는 것은 확실하다.
배운다는 것, 그것은 다시 기억해 내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기억해 내는 것은 배우고 어떤 예감을 가지는 것 이상의 것이 아니다. 만일 배움의 연속된 단계들을 거치면서 예술에서의 최종적 계시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채로 남게 될 것이다.
모든 단계들은 예술로 귀착되어야 하며 우리는 예술에서의 계시까지 도달해야 한다.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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