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차이와 반복 283쪽(15줄)~293쪽(4줄)

작성자
youn
작성일
2019-11-17 05:25
조회
733
다지원 들뢰즈와의 마주침 발제/ 2019년 11월 17일/ 발제자: YOUN
텍스트: 질 들뢰즈/차이와 반복/김상환 옮김/민음사 283쪽(15줄)~293쪽(4줄)

6절

플라톤주의의 참된 동기는 허상의 문제에 있다 (283쪽)

체계들은 불균등하고 공명하는 계열들, 어두운 전조와 강요된 운동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차이 생산적 체계들은 허상이나 환상들이라 불린다. 영원회귀가 관계하고 또 돌아오게 하는 것은 오로지 그런 의미의 허상, 환상들 뿐이다. 또 플라톤주의의 안과 밖이 나뉘는 가장 본질적인 지점, 플라톤주의와 반플라톤주의, 플라톤주의와 플라톤주의의 전복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앞 장에서 전제했던 것처럼, 플라톤의 사유는 각별히 중요한 어떤 구별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 그것은 원본과 이미지의 구별, 원형과 모상의 구별이다. (283쪽~284쪽)

차이는 단지 두 가지 상사성의 비교 관계를 통해서만, 다시 말해서 동일성을 띤 어떤 원본의 모범적 상사성과 다소간 닮아 보이는 어떤 모상의 모방적 상사성 사이의 비교 관계를 통해서만 사유된다. (284쪽)

플라톤의 참된 구별은 위치와 본성을 바꾸고 있다. 즉 그 구별은 원본과 이미지 사이에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두 종류의 이미지 사이에서 성립한다. 이것들 중 모상들은 단지 첫 번째 종류의 이미지에 불과하고, 다른 종류의 이미지는 허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284쪽)

원형의 개념이 개입하는 것은 이미지들의 세계 전반에 대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이미지들을 선별하고 나쁜 이미지들을 제거하기 위해서이다. 좋은 이미지들, 그것은 곧 내면으로부터 유사한 이미지들, 모상들이다. 반면 나쁜 이미지들은 허상, 시뮬라크르들이다. 플라톤주의 전체는 환상이나 허상들을 몰아내려는 이런 의지에서 비롯되고 있다. (284쪽~285쪽)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보기에는 플라톤과 더불어 어떤 철학적 결단이 내려진 셈이고, 이 결단은 매우 커다란 중요성을 띠고 있다.즉 이 결단을 통해 차이는 시초에 있다고 가정된 같음과 닮음의 역량에 종속되고, 차이 그 자체는 사유 불가능한 어떤 것으로 선언되며, 마침내 차이 그 자체와 허상들은 바탕 없는 대양으로 쫓겨난다. 그러나 플라톤은 아직 잘 정비된 재현적 범주들을 구비하지 못한 상황이다.(그런 상황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서야 성립할 예정이다.) 플라톤이 자신의 결단을 이데아 이론위에 근거지을 수밖에 없는 것은 정확히 그런 이유 때문이다. 말하자면 재현의 논리가 펼쳐질 수 있기 이전에 먼저 지극히 순수한 상태의 어떤 도덕적 세계관이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허상이 축출되어야 하고, 또 이를 통해 차이마저 같음과 닮음에 종속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어떤 도덕적인 이유들 때문이다.(285쪽)

허상은 정확히 말해서 유사성을 결여하고 있는 이미지, 어떤 악마적인 이미지이다. 또는 차라리 허상은 모상과는 반대로 유사성을 외부에 방치하고 단지 차이를 통해 살아가는 이미지이다. (286쪽)

허상을 구성하는 계열들은 유사하지 않고, 그 계열들의 관점들은 발산하고 있다. 허상 자체는 그런 탈유사성과 발산을 내면화했고, 그 결과 여러 사태들을 동시에 보여주고 여러 이야기들을 동시에 들려주기에 이른다.이런 것이 바로 허상의 첫 번째 특성이다.
(286쪽)

플라톤의 어떤 대목들을 읽으면 플라톤주의의 한복판에서 반플라톤주의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86쪽~287쪽)

요컨데 생성은 일단 모상에 변용을 가져오는 어떤 결함들에 불과할 수 있다. 이 경우 그것들은 마치 모상이 두 번째 특성을 지니기 위해 치러야 하는 어떤 대가이고, 그래서 모상이 지닌 유사성과 대칭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287쪽)

허상에는 모상의 개념과 원형의 개념을 모두 부인하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닐까? 모상들은 결국 자신들이 내면화하는 계열들의 탈유사성 안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고, 그때 원형은 차이안에서 파멸하게 된다.여기서는 결코 무엇이 모상이고 무엇이 원형인지 말할 수 없다. 소피스트는 그런 결말과 더불어 끝나고 있다. 허상들이 승리할 가능성과 더불어 끝나는 것이다. (287쪽)

소피스트는 모상, 좋은 영상들의 황혼이다. 이는 원형의 동일성과 모상의 유사성이 어떤 오류들이 되는 지점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같음과 닮음은 허상의 작동방식과 더불어 태어난 어떤 가상들이 아닐까? (287쪽~288쪽)

플라톤은 영원회귀를 어떤 규율 안에 가두어놓으려고 무진 애를 썼고, 이를 위해 영원회귀를 이데아들에서 비롯되는 어떤 효과로 만들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원형을 모사하도록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모사에서 모사로 이어지는 운동, 그 타락해가는 유사성의 무한한 운동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의 본성이 변질되는 지점에 이른다. 여기서는 모상 자체가 허상으로 전도되고, 유사성 정신적 모방은 마침내 반복에 자리를 내주기에 이른다. (288쪽)

3. 사유의 이미지

1절 철학과 전제들의 문제 (289쪽)

철학에서 시작의 문제는 언제나 아주 미묘한 것으로 여겨져왔다. 왜냐하면 시작한다는 것은 모든 전제들을 배제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의 전제들은 엄밀한 공리체계에 의해 배제 될 수 있는 객관적 전제들인 반면, 철학의 전제들은 객관적인가 하면 또한 주관적이다. (289쪽)

이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결론이 있다면, 그것은 철학에서는 어떤 참된 시작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고, 혹은 차라리 철학의 참된 시작, 다시 말해서 차이는 이미 그 자체가 반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식, 그리고 철학을 순환적 원환으로 지칭하는 호명 방식은 너무도 많은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아무리 신중을 기한다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290쪽)

철학에 대해 원환의 이미지는 오히려 그것이 참된 시작의 능력을 결여하고 있음을 증언하고, 게다가 진정한 반복의 능력마저 결여하고 있음을 증언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주관적이거나 암묵적인 전제라는 것이 무엇인지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모든 사람들은.....임을 알고 있다." 라는 형식을 취한다. 개념이 주어지기 이전에 그리고 선-철학적인 방식으로 모든 사람들은 알고 있다. .....(290쪽~291쪽)

그리고 어느 누구도 회의하는 것이 사유하는 것이고 사유하는 것이 존재하고 있는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은 알고 있다,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바로 이것이 재현의 형식이고 재현적 주체의 이야기 형식이다. 따라서 암묵적이거나 주관적인 전제들 위에 자신의 출발점을 둘때 철학은 순진무구한 척할수 있다. 왜냐하면 철학은 그야말로 본질적인 것, 다시 말해서 이 이야기 형식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91쪽)

철학은 바보의 편에 서고, 이떄 이 바보는 전제들 없이 생각하는 사람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 진상을 보면 에우독소스는 에피스테몬 못지않게 많은 전제들을 지니고 있다. 다만 이 전제들을 어떤 다른 형식, 암묵적이거나 주관적인 형식, '사적일 뿐 '공적' 이지 않은 형식, 어떤 자연적 사유의 형식을 통해 지니고 있을 뿐이다.이런 자연적 사유의 형식에 힘입어 철학은 출발점에 서는 듯하고 전제들 없이 시작하는 듯한 모습을 취할수 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어떤 외침들, 고립되었지만 열정에 찬 외침들이 터져 나온다. 이 외침들은 "모든 사람들은 .....임을 알고 있다."는 점을 부정한다. 따라서 어찌 고립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한 이 외침들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언급되는 것을 부정한다. 이럴진대 어찌 열정적이지 얺을 수 있겠는가? (291쪽~292쪽)

여기서는 오히려 거꾸로 단지 한 사람뿐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분명 겸손하면서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다고 간주되는 것을 겸손하게 부정하는 그 누군가가 있다. 이런 사람은 재현하는 일에는 결코 말려드는 법이 없을뿐더러, 그것이 어떤 것이든 아무것도 재현하려 들지 않는다. 그는 선한 의지와 자연적 사유를 부여받은 어떤 특수한 인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악한 의지로 가득 찬 어떤 독특한 인간으로서, 자연안에서나 개념안에서는 결국 사유하지 못하고 만다. 오로지 이런 사람만이 전제들을 갖지 않는다. (292쪽)

그는 당대의 문화가 지닌 객관적 전제들 안에서는 물론이고 자연적 사유의 전제들 안에서도 자기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떤 지하 생활자이다. 이 지하 생활자는 어떤 원을 그릴 때 컴퍼스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시간적이지도 영원하지도 않는 반시대적 인간이다. 아, 체스토프! 그만이 던질 수 있는 물음들,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악한 의지, 그만이 사유 속에 품고 있는 사유의 무능력을 보라! 지극히 과격한 시작과 지극히 완고한 반복을 동시에 문제 삼는 이 까다롭고 엄격한 물음들 안에서 그가 펼쳐가는 이중적 차원을 보라! (292쪽~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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