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조 아감벤 -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 1장 ‘증언’ 발제문

작성자
etranger
작성일
2019-11-17 11:26
조회
1133
레비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두고 용서할 자격도 심판할 자격도 없다고 말한다. 그의 증언은 심판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것, 즉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어 버리는 회색 지대를 향해 있다. 아감벤은 여기에 주목하며 ‘사실의 문제’에는 법으로 환원될 수 없는 비법률적인 요소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가 보기에 흔히 범하는 실수 중의 하나가 윤리(학)적 범주들과 법적 범주들을 암묵적으로 혼동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법의 목표는 정의의 확립이 아니다. 그렇다고 진실의 입증이 목표인 것도 아니다. 판결은 그 자체로 목적이며, 부당한 판결조차 효력을 지니는 데서 이런 측면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이탈리아의 법학자 사타는 처벌이 판결에 후속하는 것이 아니라, 판결 자체가 처벌을 내재한다고 보았다.

전후 진행되었던 전범재판은 아우슈비츠를 철저히 사유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 개념적 혼동에 책임을 갖고 있다. 판결은 이미 내려졌고 유죄는 최종적으로 입증된 것이기에, 문제가 이미 극복되었다는 생각을 퍼뜨리는 데 일조하게 된 점에서 그렇다. 이 사안이 법 자체를 문제 삼을 만큼, 그리하여 법을 파멸로 끌고 갈 만큼 엄청난 것임을 이해하는 데 거의 반세기가 걸렸다. 법과 도덕의 혼동, 신학과 법의 혼동의 희생자 가운데는 하이데거의 제자였던 윤리 연구가 요나스도 있다. 그는 기묘한 변신론으로 아우슈비츠 문제를 신의 책임으로 돌렸다.

책임이라는 개념 또한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법에 오염되어 있다. 여기서 윤리(학), 정치, 종교의 영역을 법적 책임에서 빼앗아야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종류의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비책임의 구역’을 구별해냄으로써, 우리가 감당할 수 있었던 책임보다 한없이 큰 어떤 책임과의 대결을 알게 되는 데 있다. 레비는 이 새로운 윤리(학)적 요소로 할 만한 것을 ‘회색 지대’라 불렀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인 회색의 연금술. 레비는 우리를 선과 악의 너머가 아닌, 선과 악 앞에 있는 무책임과 ‘판결 불능’의 장소를 사유하게 만들었다.

책임과 유죄는 다만 법률적 귀책의 두 측면만을 표현할 뿐, 그것이 내면화되어 법의 외부로 옮겨진 것은 나중의 일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개념을 토대로 삼은 윤리(학)설은 불충분함과 불명료함이 드러난다.(요나스, 레비나스) 법과 윤리(학)의 경계에서 모종의 궤변이 드러나는 사례로 “하느님 앞에서는 죄책감을 느끼지만 법 앞에서는 아니다.”라고 했던 아이히만을 들 수 있겠다. 또한 재판을 피하기 위해 저질러지는 수많은 자살을 들여다보면 그러한 행위의 발단에는 이러한 혼동이 놓여 있다. 자살에서 암묵적으로 드러나는 도덕적 책임 감수는 사실상 법률적 유죄를 상쇄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여기서 아감벤은 가톨릭 교의에 일차적 책임을 묻기보다 ‘세속의 윤리(학)’을 언급한다. 사법적 범주들을 최고의 윤리(학)적 범주들로 끌어올려 뒤섞었음에도, 세속의 윤리(학)은 ‘궤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리(학)은 유죄나 책임을 인식하는 영역이 아닌, 스피노자가 간파했듯이 행복한 삶의 학설이다.

수용소에서 일어난 일은 순교와는 별 관계가 없다. 오히려 피해자들을 ‘순교자’라고 부름으로써 그들의 죽음이 왜곡 되어오기도 했다. 수용소에서의 집단 학살은 절대적으로 의미를 박탈당한 형태로 나타났고, 생존자들 역시 명확히 설명하려는 시도를 실패해왔다. 그럼에도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은 유대인의 원죄에 대한 처벌로 해석해 증언자를 괴롭혀왔다. ‘홀로코스트holocaust'라는 말 역시 무의미한 죽음을 정당화하려는 기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 말의 의미론적 역사는 그리스도교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데 불가타 『성경』에선 ’번제물‘을 의미한다. 일찌감치 교부들은 피비린내 나는 희생 제물의 무용함을 비난하기 위해, 말하자면 유대교도들에 대한 논쟁의 무기로 이 말을 사용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순교자들을 포함하기 위한 은유로 확대 되었고, 궁극적으로 십자가 위에서 희생된 그리스도의 희생 역시 홀로코스트[번제물]로 정의된다. 그리하여 특정 지역에 국한된 언어 속의 ’홀로코스트‘라는 말은 ’신성하고 우월한 동기들에 대한 온전한 혼신의 영역 속에서의 지고의 희생‘이라는 의미로 변천을 거치게 되었다. 레비에게 있어 홀로코스트란 말은 가스실에서의 죽음과 ’신성하고 우월한 동기들에 대한 온전한 헌신‘을 연관시키려는 희롱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증언에는 공백이 포함되어 있다. 생존자들은 이 점에 동의한다. 수용소에서 예외적으로 특권을 누리거나 적응했던 소수자들은, 전후 생존자의 다수를 이루었다. 정말로 평범한 수인은 살아남는다는 것이 불가능했고, 기적처럼 생존했다 해도 고르곤의 눈을 마주한 자의 운명처럼, 어떠한 증언도 할 수 없었다. 레비는 그 익사한 자들이야말로 ‘참된’ 증인이라고 보았다. 생존자들은 그들 대신에 대리인으로서 말할 뿐이다. 그들은 사라진 증언을 증언한다. 그리고 증언의 불가능성의 이름으로 증언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이 지점이 증언의 가치를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뜻밖의 영역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필요해진다.

펠먼과 라웁은 ‘쇼아’를 두고 ‘증인이 없는 사건’이라는 정의를 제시했다. ‘쇼아’는 안에서도 밖에서도 증언할 수 없다는 이중의 의미에서 증인이 없는 사건이다. 아감벤은 이 무구별의 문턱에서 증언의 구조에 대한 이해로 이끌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한다. ‘문턱’이야말로 펠먼이 탐구하지 못한 지점이기도 하다. 그는 문제와 관련된 분석을 전개하는 대신 노래라는 은유에 의지해 논리적 불가능성으로부터 ‘심미적 가능성’을 이끌어낸다. 아감벤이 보기에 이것이야말로 란츠만이 조심스럽게 피하고자 했던 것이다. 시도 노래도 불가능한 증언을 구하기 위해 개입할 수 없다. 반대로 시의 가능성에 기초를 부여하는 것은(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바로 증언이다.

레비는 첼란의 시에 마음이 이끌렸다. 그는 한 에세이에서 난해한 글을 쓰는 사람들을 비판하지만, 첼란의 난해함은 다르다고 보았다. 그것은 “이미 자살한 상태, 존재하기를 바라지 않음, 자발적인 죽음으로 완성되는 세상 도피”라고 할 수 있겠다. 레비는 수용소에 있을 때 불분명한 중얼거림, 즉 비언어이거나 의미를 알 수 없는 불구의 언어를 해석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가 수용소에 만났던 후르비네크는 말을 할 줄 몰랐지만,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한 단어를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내뱉었다. 레비는 어떻게든 그 의미를 해석하려 했지만 알아낼 수 없었고, 세 살 아이는 머잖아 죽음에 이르렀다. 레비는 그 짧은 생을 기록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 아이에 대해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아이는 나의 이 말을 통해 증언한다.” 여기에서 드러나듯, 생존자[레비]조차도 온전히 증언할 수 없고 자기 자신의 공백을 말할 수 없다. 이는 증언이란 증언함의 두 가지 불가능성 사이의 이접임을 의미한다. 즉 증언을 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비언어가 되어야 하며, 언어는 비언어가 됨으로써 증언함의 불가능성을 보여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증언의 언어는 언어를 갖지 못한 것으로 나아가는, 전혀 다른 무의미를 띠게 되는 지점까지 나아가는 그런 언어이다. 증언의 불가능성이, 인간의 언어를 구성하는 이 ‘공백’이 무너지면서 또 다른 증언의 불가능성에 자리를 내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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