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와 공지] 12/14 『아시아의 민중봉기』14~16장

작성자
bomi
작성일
2019-12-04 01:25
조회
630
12월 14일, 『아시아의 민중봉기』 여덟 번째 세미나가 열립니다.
세미나 공부 범위는 [14장 프롤레타리아트의 변화하는 얼굴], [15장 봉기의 공식] [16장 문제는 체제다]입니다.

- 세미나 시작 전에 토론거리를 게시판에 올려 주세요.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적극 권장합니다!)
- 토론거리는 게시판 위 고정란의 <역사 비판 세미나 토론 방식에 대해>라는 글을 참고해 정리하시면 좋습니다.
토요일 저녁 7시 30분 다중지성의 정원 3층 세미나실에서 뵙겠습니다.


11/23 세미나 후기>

<근황토크>

까치: 문학사를 다시 쓰는 학회에 다녀왔다. 페미니즘 인권선언문, 그것에 대한 해설과 발표를 하는 자리였다. 개인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질문들이 많이 있었다. 아직 정리가 안 돼서.... 다음 기회에 다니 얘기해 보고 싶다.

까마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고 있다. 어제 수업을 했다. (...) (연)극을 만들었다. 처음엔 아이들이 뭔지 잘 모르니까 시큰둥했다. 수녀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 아이들이 있는데, 수녀님들이 연습을 시켜서 애들이 잘 해왔더라. 나름대로 잘 맞아떨어지고, 공연이 굉장히 잘 만들어져서 처음엔 툴툴대던 아이들도 만족해했다.
요즘 교육 트랜드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 중심이다. 그런데, 극을 만든 아이들을 보면서 결과도 중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결과가) 아이들의 자신감을 올려주고, 결과가 아이들에게 앞으로 더 하겠다는 의욕을 고치 시킨다. 그렇다면, 과정을 중시한다는 건 무엇일까? (어쩌면)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정이 무엇인가? 무엇을 위한 과정인가? 그 전부터 과정과 결과에 관한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 아이들의 수업을 통해서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제비: 과정과 결과에 관한 이야기. 경기문화재단에서 하는 교육을 갔는데 (거기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 거기서도 의견이 나뉜다. 과정이 중요하고, 돌봄이 중요하다. 아이들을 쉬게 해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고, 또 결과가 안 나오면 애들도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는, 그래서 결과까지 내주는 게 선생의 능력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까마귀: 전부터 항상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놀이처럼 즐거우면 자연스럽게 몸에 습득이 된다는 (...) 그래서 교육을 과정 중심으로 많이 짜서 했는데, 결과가 안 나오면 놀이 이상 아무것도 안 되는 느낌이 들고, 만족스럽지 않은 뭔가 찝찝함이 늘 남았다.
저는 아무래도 미술 쪽이다 보니 애들이 결과를 내서 그 결과에 스스로 만족하는 경우는 사실상 드물다. 그들의 눈높이는 이미 높기 때문에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만족을 못 얻는다. 따라서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 기술적인 게 들어가고, 기술적인 게 들어가면 신기하니까 좋아하기는 하는데 (...) 극을 만드니까, 이런 말도 모순일 순 있지만, 그림보다 극은 좀 더 즉각적으로 반응이 오다 보니까, 극을 하고 현장에서 사람들의 반응이 곧바로 오니까, 아이들이 그 자리에서 바로 뿌듯함을 느낀다. 그림에서의 뿌듯함과는 다른 강도였다. 그런 걸 보면서, 그림 같은 건 만족이 오더라도 시간을 좀 더 기다려야 한다면 연극은 즉각적이니까 그래서 더 느꼈는지는 모르겠는데 (...) 어쨌든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과연 과정에서만 얻는 게 얼마나 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비: 연세대에서 하는 문화연구 학회에 갔다 왔다. (...) 정동 연구 한 색션 있었는데, 노인의 스마트폰 사용현황과 가짜뉴스 관련 연구, ASMR 연구 등이 있었다. (...) 그런데 토론하시는 분들도 정동 연구라는 걸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써야 하나? 하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다. 아직은 잘 되지가 않는 것 같다. 하나 마나 한 연구(결과, 성과)가 나오기도 하고. 정동을 어떻게 연구로 할지 모르겠다는 말도 있었다.
이슈 토크가 있었는데, 홍콩 시위에 관해 알려주었다. 그것도 정동 연구로 연결됐는데, (...) 포스트잇을 붙이는 시위가 우산 혁명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포스트잇도 물론 거기에 글을 쓰긴 하지만, 사실 메시지의 측면보다는 나와서 그걸 붙일 수밖에 없는 정동(이 중요하다.) (...) 절대 안 바뀐다. ... 중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그런 정동)

까마귀: 홍콩 유튜브, 홍콩 시위 보고 있으면 총으로 바로 쏘는 그런 영상이 엄청 떠도는데, 정말 광주 때와 너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걱정스럽다는 말이 많다.

제비: 우리나라 사람들이 받아들일 때 지금 홍콩을 광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홍콩의 사정과 우리의 사정은 다르다. 사람들이 그렇게 소비만 해버리고, (우리가 선배인데.... 라고 생각해 버리고,) 진짜 홍콩 문제는 놓아버리고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런 걸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

까마귀: 그건 언론의 문제가 아닐까? 언론이 그런 방식으로 기사를 올린다. 기사를 보면, 기사에서 그렇게 한 건 지금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학생들이 대부분이고, (...) 그들이 군, (공권력) 과 굉장히 강하게 부딪히는 상황, 죽음도 불사하는 모습이 광주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지금 시위가 따져보면 송환법 때문에 일어났는데, 지금은 송환법이 받아들여졌는데, 왜 아직도 이렇게까지... (하는 궁금증이 일어나고, 그런데 사실)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소비를 하지 않는데, 언론이 지금 그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비: 실질 임금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많고, 홍콩 사람들이 연 소득이 높은데, 그건 소수의, 금융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고, 진짜 홍콩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대졸 초임이 140만원 밖에 안되고, 집값은 (한국의) 6배라고 한다. 그게 다 터져 나오고 있다. 정말 닭장같이 살면서, 그런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또 언어 문제가 있다. 중국이 97년대에 홍콩이 반환되면서, 이제 중국이 지배를 해야 하니까, 학교에서 (...) 쓰게 했다. 그러니까 광동어를 쓰는 애들은 계속 더 밀린다. 포스트잇도 광동어 번자체다.
중국 마더랜드(?))에서 또 (홍콩으로) 오는데, 그 사람들이 하층민으로 들어가서 건물 지키는 그런 일을 한다. 그런데 그러면 또 입주민들과 언어가 다르니까 소통이 안 되고... 지금 홍콩의 문제가 엄청 복잡한 것 같다.

까마귀: 기사를 찾아보면 정말 상황이 훨씬 복잡하더라.
친구 후배가 영국에서 공부하고 왔을 때 같이 영국에서 공부한 언니가 (정치경제 전공으로 유학을 다녀왔는데) 초봉이 150만 원인 곳에 취업해서 깜짝 놀랐다. 유학까지 다녀와서.... 어쩌면 우리나라 현실도 마찬가지다.

제비: 이제 유학 아무 소용 없다.
그래도 유학을 다녀와서 잘 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데, 사실 너무 많다. 지금 박사도 너무 많다.

<본격 토론>

까마귀: 나는 봉기를 에로스 개념으로 파악을 했다. 재밌었던 게 갑자기 바타이유가 떠올랐다. 학부때 바타이유의 소설을 읽었었다. 그때 엄청 충격을 받아서 그냥 던져놓고, 바타유가 뭐라고 했더라 하면 야한 거 말고는 잘 생각이 안 나서 (이번에) 다시 찾아봤다. 그 사람의 개념을 찾아봤는데, 에로스 라는 게 있었다. (카치아피카스와) 공유되는 지점이 있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11장 민중 권력은 여전히 작동한다>에서는 에로스 개념이 중요한 것 같다.
545페이지를 보면 「불안정한 나라들은 미국과 일본의 은행 및 기업의 비옥한 놀이터로 변했다. '측근' 자본주의의 종말은 초국적 기업들의 시장과 이윤 확대를 의미했다.」 다음, 546페이지에서 부터 547페이지 까지 이런 이야기, 봉기를 한 후에 봉기의 영향이 스며들어가고 있지만, 그 불안정함이 신자유주의화 되는데 좋은 베이스가 된 것처럼 말하고 있다. 543페이지에 이런 말도 나온다. 「봉기는 견고한 독재를 타도하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국가를 초월하는 이해관계를 갖는 전 지구적 엘리트들에게도 유용하다.」
어떠한 부분이 (엘리트들이) 치고 들어가는 약한 고리가 될 수 있을까? 힘겹게 봉기를 해 가지고 코뮌이나 공동체를 이루고자, 좀 더 좋은 낳은 세상을 만들고자 한 것의 어떤 지점이 불안정한 고리가 되어 (엘리트들이) 파고 들어갈 수 있는지...

종다리: 어제 강연에서 들은 말이 생각났다. "모인 힘이 자율적 조직의 역랑을 잃게 되면, 그 자체로 국가의 마디가 된다."는 말이었다. 비슷한 취지의 이야기가 아닐까?

까치: 국가의 노드가 된다고도 표현한다.

까마귀: 어떤 지점이 신자유주의를 만드는 걸까? 신자유주의도 그 정도 시기 (세계적 민중 봉기의 시기)에 만들어진 것 같다. 봉기의 영향을 받고 신자유주의가 만들어졌을 것 같은데... 처음 (신자유주의가) 만들어졌을 때가 언제인가?

제비: 오일쇼크가 결정적인 영향이었던 것 같다. 큰 사회적 충격을 받으니까 (...) 유색인들이 우리의 목을 쥘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백인들의 경직, (두려움과 공포...)

까치: 이 부분이 모든 봉기에 해당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봉기의 힘이) 대의제로 출현하고 모든 게 보수화되는,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와 마주치는, 그런 걸 인과관계나 개연성으로 말하는 것 같지는 않다. 봉기의 성공이 (반드시) 신자유주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까마귀: "봉기"라는 것이 있었다. 사람들의 힘이, (지금은 잘못되었으므로) 바꿔야 한다는 그런 힘이 가장 크게 작동하는 게 봉기다. 사람들이 뭔가 바꾸겠다고 의욕적으로 일어나는 시점에 일본이나 미국의 은행이 올라탔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봉기를 이용하는 어떤 약한 고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어떤 사례들이 있을지 궁금하다.
책에서는 '엘리트'라고 나오는데, 그들은 정말 초엘리트여서, (봉기의 힘을) 올라타서 무언가를 하고 그런 게 그냥 자연스러운 건가?

제비: 프랑스 혁명(에서도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 결국 혁명의 과실을 따 먹은 건 부르주아지 소수가 가져갔다고 한다. 많은 사람에게는 절대 혜택이 안 돌아가고, 소수의 엘리트들이 따먹고, 후에 조약을 맺는다거나 한다.

까마귀: 그만큼 국가의 영토화라는 것이 강력하게 느껴진다. 역사의 장면들을 잘 보고, 잘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 자본은 굉장이 발 빨라서 (그것을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만 얘기했을 때,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도 (...) 압도적인 힘과 맞닥뜨리게 되고... 개개인의 욕망을 물어봐야 하나?

종다리: 구체적인 사례가 어떤 게 있을까? 질문했을 때, 아까 근황토크때 이야기했던 "과정"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포스트 모던 이후, "결과"보다는 "과정" 이 중요하다는 것이 무척 중요한, 운동의 슬로건 으로 나왔었다. 물론 그때는 "과정"을 강조하는 게 시대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정신 차려 보면, 그 단어가 어느새 신자유주의의 통치술과 맞닿아 있다는 걸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오늘날 예술계에서 "과정"을 중요시하는 게, 모든 중요한 맥락들은 다 사라져 버리고, 오히려 예술가를 그 예술가가 만든 작품, 즉 예술의 결과물로부터 소외시키는 용어로 사용될 때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예술가들은 자신이 만들어 낸 작품을 "작품"이라고 부르는 걸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더라.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작품"들이 자유롭게 풀려나 예술시장에서 자본가들의 구미에 맞게 유통되는 일도 더 손쉽게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다.

(...)

제비: 어쨌든 봉합을 해야 하지는 않는가? (이 과정에서 봉기의 당사자들은) 오히려 소외되고, (엘리트) 몇 명이서, 정치인이든 재벌이든, (그들이 봉합을 한다.)

까마귀: 우리가 촛불 혁명을 해서 현 정권이 탄생했다. (...) 현 정권 주변에 있는 운동권에 있던 사람들도 지금 자기의 이익을 취하려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제비: 어떤 정부도 그런 게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이익이 자기한테 안 오고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한다.)

까치: 아까 종다리 님이 얘기했던 게 관계성 미학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일본도 그렇고, 한국은 아직 그런 게 많이 있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일본의 사례를 보자면, 공공 미술이라든지 (...) 작품이라는 걸 근대적인 방식으로 보지 않고, 과정 자체를 더 중시하고, 만드는 과정에서의 보람, 관계성을 중시하는 그런 패러다임에서 나왔는데 (...) 그런 것들이 어느 순간 지자체에서 열심히 돈을 대 주고, (...) 그런 메커니즘, 전복적인 가치로 제시되었던 것들이 어느 순간 자본과 국가가 중요한 매게가 되버리면서 그 과정 자체가 더는 전복적이지도 않게 되어 버렸다. 과정 자체가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보람을 느끼는 게 누구나 자본가가 되어라와 굉장히 닮아버린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신자유주의라던지, 오늘날의 자본에 ('과정이 중요하다'라는 관념이) 흡수되는 것처럼 보이는 게 분명 있는 것 같다. 경제적 침투에 원인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관계성 미학을 다시 이야기하는 사람 중에는 신자유주의에 완전히 빼앗겨 버린 것처럼 보이는 와중에도 또 다른 움직임을 만들어내려는 분들도 있다. 오늘날은 여러 가지 가치를 거대한 힘이 가져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그걸 다른 방식으로 재전유하려는 힘도 (분명 있다.)

제비: 오늘 문화연구 학회에서도, 어떻게 다른 걸 볼까? (라는 질문이 많이 나왔다.) 페미니즘 수업을 들으면서 느낀 건데, 차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너무나 많은 결들이 있고, 이제 사회가 너무 복잡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90년이나 00년생들은 확실히 다르긴 다르다. 굉장히 다양하고, 그걸 고려하지 않고 이거다 저거다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 (...) 망했다... 라고 하면서도 학자들은 조그만 무언가라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일동 웃음

까치: 제일 망할 것 같이 느껴지는 것 중 하나는 평등이라고 하는 게 (먹혀들어가지 않는다는 거다.) 평등이라는 말을 애호한다고까지 할 순 없지만, (그래도 평등이라는 말의 중요성이 있는데)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평등이라는 말을 하면 꼰대가 되기 쉽다. 평등이라든지, 공정이라는 말도 마찬가지고. 한때는 이런 금과옥조처럼 여겨졌던 가치들(이 다 먹혀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정말 암담하게 느껴지다가도) 또 자세히 이야기를 나눠보면, 서로 공유되는 지점들이 있다. 평등을 부정한다고 해서 미워하지 말고 계속 이야기해 보자는 생각이다.

까마귀: 평등이라는 개념이 지금 우리에게 어떻게 자리잡혀 있는지도 궁금하다.

까치: 공동체라는 게 가능하냐?는 의문들. 평등 얘기도 그렇고... 평등을 이야기하면, 그런 이야기가 현실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억지로 가려버리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때가 많다.

까마귀: 좀 다른 이야기인데 (...) 지디가 팬 사인회를 하는 걸 봤다. 어마어마한 돔을 세워서 팬 중에 몇 명만 들어갈 수 있게 하고 (팬 사인회를 하더라.) 요즘 유튜브에 지디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광고가 많이 나온다. 그림을 그리면서 꽃이 좋아요.. 등등의 맨트를 하는데, 팬 사인회를 위해 세운 그 큰 돔을 꽃과 나무로 가득 채웠더라.
예전에 지도 교수님이 온실에 식물을 가득 채우는 작업을 했었는데, 그 온실은 팬 사인회를 하는 돔에 비해 아주 작았다. 그런데도 가득 채우는 게 너무 비싸서, 꽃을 어디서 빌려오고 했었는데, 그 큰 공간(팬 사인회 돔)을 저렇게 꽉 채우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을지 상상도 안 간다.)
연예인들이 그렇게 큰 돔을 만들고, 지나가면서 사람들이 다 볼 수 있게 만들어 놓고 (하지만 내부에는 선택된 몇몇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고) ... 자본으로 예술을 홍보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나이키 옷, 운동화 협찬도 있는 것 같았다. 자본이 개입될 수 있는 부분들은 정말 많은 것 같다.
문래동에도 투명 돔이 설치되어 있다. 그건 비닐 공 반 잘라놓은 것 처럼 생겼다. 구청에서 지원을 받아 하는 건데, 아이디어는 좋은 데 (그냥 딱 보기에도 팬 사인회 돔이 훨씬 멋있긴 하다. 정말 이글루처럼 모양도 잘 갖추어져 있고 ㅎㅎ)

일동 웃음.

제비: 요즘 아이돌 팬덤(이 굉장하다.) 팬덤 문화안에서 자기 정체성도 확고하고, 완전히 생활을 거기에 맞춰 살만큼 (...) 방탄이나 이런 팬 사인회에 들어가려고 하면은 음반(?) 같은 거를 삼백 장을 사야 한다고 한다. 그 안에서도 (소비에 따라) 계급 차이가 발생한다. 서로 싸우고, 갈등하고, 돈이 많은 팬만 거기에 들어갈 수 있는 것.

까마귀: 예술이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11장에 전체적으로 나오는 얘기인데, 민중과 엘리트를 구분을 많이 한다. 책의 맥락 안에서는 어떤 구분인지 알겠는데, 지금도 이와 같은 민중과 엘리트의 구분이 가능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만약 이제는 이런 구분이 없다고 한다면, 앞으로 세계는 어떻게 흘러갈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요즘은 (우리가 공부하는 이 공간도 마찬가지고) 다중지성을 추구 한다. 정치인만 봐도, 댓글 보고 정치인의 발언을 보면 일반 사람들이 정치인보다 훨씬 똑똑하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이익 때문인지 너무나 멍청한 말을 쉽게 뱉는다.
지금도 엘리트와 민중을 가르는 말이 유효할까? 어쩌면 지금은 정치하는 사람보다 다중이 더 힘이 세고, 또 다중이 담론들을 구성한다고 하면, 앞으로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제비: 일단 저는 엘리트가 아니어서, 그 구분이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까마귀: 엘리트가 무엇인가?

제비: 권력을 쥐고 있는 게 아닐까? 나랑 이재O이랑 단 한 번이라도 같은 삶을 살겠는가? 여기서 평등이 깨지는 거다.

까치: 책에서의 엘리트는 국가에서 대표성을 띤 존재들이다.

까마귀: 그런 구분이 분명히 오늘날에도 있긴 한데, 권력을 가진 사람이 분명히 있고, 우리는 그들의 그림자도 못 밟을 것 같고 그렇긴 한데, 그들만 엘리트일까? 라는 의문도 든다. 촛불 혁명을 경험해서 더 그런 느낌이 있을 수도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전복될 가능성도 굉장히 많고. 여전히 이 상태로 갈까 하는 의심, 의문이 든다.

제비: 두 이야기가 다 맞지 않을까? 오늘날의 지형 자체가 촛불도 비슷하지만, 탑 다운 방식이 아니라, 아래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위에서 역으로 받아들이고, 이런 것들이 실제 미디어 지형을 많이 바꾸기도 했다. 강의실에도 과거와 같은 권력 구도가 없다. (...) 앞으로 어떻게든 조정이 일어날 거라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또 동시에 코어 부분은 안 바뀐다는 생각도 든다.)

까마귀: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그래도 흔적이 남는다.

제비: 흔들림이 있고, 물론 바뀌려고도 하지만, 정부 기관에서 일하거나 그런 사람들 (...) 50대 남자,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자기들이 엘리트라는 의식이 (여전히 강하다.)
사람이 바뀌는 게 쉽지 않다. 바뀔 것 같다는 확증편향을 우리가 가지는 것일 수 있다. 아예 공부 안 하고 회사 생활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혀 바뀌었다는 걸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중간 휴식>

까마귀: 2002년에 월드컵만 벌어지는 줄 알았었는데, 그때 반전 시위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왔었다.

제비: 그때 택시 살인사건도 있었다. 몇 차례 계속 벌어지고, (끔찍한 범죄였는데 2002년 당시)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종다리: 인터넷 찾아보면 나오나?

제비: 나온다. 엄청 유명한 사건 중 하나다.

까마귀: 561쪽 네 번째 줄에 에로스 효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오히려 에로스 효과는 보통 사람들이 역사를 자신의 손으로 가져가면서 민중운동이 제 권리에 맞는 세력으로서 등장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에로스 효과의 개념은 자발성의 혁명적 가치를 구원하는 수단이자, 무의식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일을 자극하는 방식이다. 감정을 반응과 연결짓는 대신, 에로스 효과 개념은 감정을 긍정적인 혁명적 자원의 영역으로 가져가려고 노력하며, 그 자원의 동원은 중대한 사회변혁을 낳을 수 있다. 헤르베르트 마르쿠제가 이해하듯이, 내적, 인간적 본성은 혁명 과정에서 동맹자이다.」
여기서 "감정을 반응과 연결 짓는 것"과 "감정을 긍정적인 혁명적 자원의 영역으로 가져가려고 노력하는 것" 은 어떻게 다를까?

까치: 여기서 감정은 sensibility?
전자는 수동, 후자는 능동 (으로 나눌 수도 있겠다.) 따라서, 후자는 주체성이 부상되는 느낌이고 그에 비해 전자는 즉각적인 반응을 말하는 것이므로 거기서 어떤 선택이나 의지, 결단 등을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글에서 "무의식의 가치를 재평가한다"는 게 정동의 영역처럼도 읽힌다. 여기서 등장하는 '무의식'은 심리적인 방식으로 이해되는 그런 무의식은 아니고, 스며있는데 표현되지 않는 잠재성(으로 읽힌다.)

제비: 정동을 연구해놓고, 그걸 학문적으로 쓰거나 할 때 다 빠져나가 버리는 어떤 것. 그걸 어떻게 할까?라는 학회에서의 고민이 다시 생각난다.
학문적 글쓰기라는 게 (기본적으로 재현이다.) 그런데 정동은 재현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종다리: 학문적 글쓰기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줄 수 있는가?

제비: 예를 들면, 학회에서 어떤 분이 노인의 스마트폰 (사용에 관해) 연구를 했는데, 그걸 분노, 불안 등의 카테고리로 나눠서 (정리했다. 그런데,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보니 사실 이 결과물이 연구라고 하기도 애매한, 그다지 좋지 않은 결과물이 나온다. )

까마귀: 일본은 (비교적 체계화가 잘 되어 있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어떤 지점들이 있을까?

까치: 이론이라는 게 (...) 스피노자는 수백년 전의 언어를 가지고 사유한 사람이고 (...) 우리도 빌려온 언어를 사용하고 (...) 일본은 그래도 동아시아에서 애를 써서 쫓아가려고 하는, 그런 정동이 있는 것 같다.
정동에 대해서 번역을 하고는 있지만, (...) 꼭 그걸 그대로 써먹지 않더라도 어팩트라고 하는 문제의식을 알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지고 사고가 달라진다. 당장 성과를 내야 한다면 곤란할 수밖에 없지만, 어쨌든 나의 삶이나 가치관 세계관 이런 거에 변화를 접할 수 있고, 또 그러다 보면 우리가 공부할 때, 다른 연구가 나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까마귀: 역시 학문적 글쓰기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유럽이나 이쪽은 좀 더 다른 방식의 글쓰기가 진행된 것에 반해서, (우리는) 새로운 형식이나 새로운 방법을 잘 못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제비: 학문적 글쓰기는 (좀 단순하게 말하면) 논리적 글쓰기다. 논리적 글쓰기는 우리랑 영미권이 비슷하고, 프랑스가 좀 다른 것 같긴 하다. 언어적인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까마귀: 니체나 벤야민 같은 철학자들의 글쓰기는 어떤가?

제비: 학교에서 그렇게 쓰면 통과가 안 된다.

일동웃음

까치: (새로운 형식의 글을 썼을 때) 주변에 재생산을 시켜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타르드가 최근에 100년 만에 주목을 받고 있다. 그동안 타르드는 사회에서 완전히 묻혀 있었다. 제자도 안 키웠다. 제자를 키우거나 하면 (자신의 학문을) 이어갈 수 있는데 그러지도 않았었다.

까마귀: 비트겐 슈타인도 그랬던 것 같다.
예전에 지도 교수님이 제자를 키우겠다는 마인드가 없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제자를 엄청나게 키우고, 제자들을 전시에 넣고 (...) 결론적으로 학교에서는 제자를 키우는 사람들이 점점 파워를 얻게 된다. 그런데 제자를 키우지 않은 지도교수님은 점점 고립됐다. 제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 성향도 혼자 하는 성향이 강하고 ... 선생님이 이제는 제자들을 키우려고 하더라.

까치: 담론이라는 게, 한 시대를 풍미한다는 게. 누군가가 특별하게 잘난 사람이어서가 아니고, 어떻게 관계를 만드느냐에 따라, 임용을 누가 해주고, 서로 참조해 주고 하는 이런 관계에서 나온다.

제비: 모든 게 정치다. 삶이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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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공지] 클라우스 뮐한, 『현대 중국의 탄생 - 청제국에서 시진핑까지』 - 3월 9일 시작!
ludante | 2024.03.06 | 추천 0 | 조회 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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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세미나 홍보 요청 양식
다중지성의정원 | 2022.01.11 | 추천 0 | 조회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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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역사비판 세미나 기록과 사회 순서
ludante | 2020.10.24 | 추천 0 | 조회 2698
ludante 2020.10.24 0 2698
공지사항
다중지성 연구정원 세미나 회원님들께 요청드립니다.
다중지성의정원 | 2019.11.03 | 추천 0 | 조회 2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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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역사비판 세미나 - 매월 2, 4주에 진행됩니다.
ludante | 2019.07.04 | 추천 0 | 조회 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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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역사 비판 세미나 토론 방식에 대해
amelano joe | 2019.03.02 | 추천 2 | 조회 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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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
4/13 토요일 오후 7시 30분 <현대 중국의 탄생> 공지
voov11 | 2024.03.23 | 추천 0 | 조회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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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
현대 중국의 탄생 1부 청의흥망 1장 영광의 시대: 1644년~ 1800 토론거리
amelano joe | 2024.03.23 | 추천 0 | 조회 26
amelano joe 2024.03.23 0 26
284
3월 23일 토요일 저녁7:30 『현대 중국의 탄생』 두 번째 세미나 공지입니다.
ludante | 2024.03.09 | 추천 0 | 조회 64
ludante 2024.03.09 0 64
283
『현대 중국의 탄생』(클라우스 뮐한) 첫 세미나 <서론> 토론거리
amelano joe | 2024.03.09 | 추천 0 | 조회 54
amelano joe 2024.03.09 0 54
282
3월 9일 현대 중국의 탄생 첫 세미나 공지
voov11 | 2024.02.24 | 추천 0 | 조회 177
voov11 2024.02.24 0 177
281
원톄쥔, 여덟번의 위기 4장 ‘1997년과 2009년에 발생한 두 번의 외래형 위기’ 독서노트와 토론거리
amelano joe | 2024.02.24 | 추천 0 | 조회 101
amelano joe 2024.02.24 0 101
280
2월 24일 『여덟 번의 위기』 세미나 공지
bomi | 2024.02.17 | 추천 1 | 조회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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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
원톄쥔, <여덟번의 위기> 3장 토론거리
amelano joe | 2024.01.27 | 추천 0 | 조회 144
amelano joe 2024.01.27 0 144
278
1월 27일 (토) 7시30분 <여덟 번의 위기> 3장 세미나 공지
ludante | 2024.01.08 | 추천 0 | 조회 217
ludante 2024.01.08 0 217
277
12월 9일 토요일 7시30분 윈톄준 <여덟 번의 위기 : 현대 중국의 경험과 도전> 역사비판 세미나 공지입니다
ludante | 2023.11.25 | 추천 0 | 조회 177
ludante 2023.11.25 0 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