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호] 실비아 페데리치 인터뷰 : 모든 여성은 노동하고 있다

번역
작성자
ludante
작성일
2019-12-05 01:02
조회
187

실비아 페데리치 인터뷰
"모든 여성은 노동하고 있다"
Every Woman is a Working W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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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 : 질 리처즈


번역 : 다중지성의 정원 실비아 페데리치 번역 모임


원문 : http://bostonreview.net/print-issues-gender-sexuality/silvia-federici-jill-richards-every-woman-working-woman

1972년 이탈리아 파도바시에서 열린 이틀간의 컨퍼런스에 이탈리아 영국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이 모여들었다. 원외 좌파, 반식민주의 투쟁, 그리고 공산당 대안활동 영역에서 활약하던 그들은 활동을 위한 <국제 페미니스트 컬렉티브 선언>(Statement of the International Feminist Collective)을 작성하였다. 이 선언서는 가정 내의 무급노동(unwaged work)과 공장에서의 임금노동의 분리를 거부하면서, 가사노동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계급투쟁의 중요한 한 영역이라고 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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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 이탈리아를 떠나 뉴욕에서 활동하는 실비아 페데리치는, 이 회의에 참석한 후 뉴욕으로 돌아가 <뉴욕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위원회>(New York Wages for Housework Committee)를 창설했다. 이를 시작으로 여러 해에 걸쳐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위원회>가 발족되었다. 이 그룹들은 남성 임금노동자들과는 거리를 두고 각 도시에서 자율적으로 조직되었다. 「가사노동 임금에 대한 고찰」(Theses on Wages for Housework, 1974)에 따르면, “남성으로부터의 자율은, 남성의 권력을 이용해 우리를 길들이는 자본으로부터의 자율이다.”

단 스무 명으로 이루어진 뉴욕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위원회>는 <이탈리아 트리베네토 위원회>(the Italian Triveneto Committee)와 런던의 <여성의 힘 컬렉티브>(the Power of Women Collective)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초기 몇 년간은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요구의 역설적인 성격에 대해서 의견이 엇갈리며 구성원의 드나듦이 잦았다고 페데리치는 회고한다. 즉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이 가사노동에 대한 보상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여성의 노동을 자본주의 체제 속으로 더욱 편입시키는 한낱 개량주의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그것이 아니라면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요구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정체성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가사노동의 개념을 전복시키는 것인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러한 질문들이 가사노동 논의의 주를 이루었다. 맑스주의 페미니스트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오랫동안 가사노동을 이론화해 왔지만 이 새로운 논의들은 자본주의 발전이라는 좀 더 큰 그림에서 여성 가사노동의 정치경제에 특별히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이러한 논의 틀에서 사회적 재생산이라는 것은 청소, 요리, 육아가 무급‘노동’임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남성의 공장 임금노동을 가능케 하는 여성의 돌봄, 위로, 섹스에 대한 기대 또한 함의하는 것이었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페데리치의 연구와 활동은 이 방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녀는 저술을 통해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요구를 혁명적인 행위로 위치시키기 위한 작업에 근본적인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그녀의 영향력 있는 소책자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Wages Against Housework, 1975)은 도발적인 반박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것을 임금 없는 노동이라고 말한다.” 이 소책자뿐만 아니라 다른 저작에서도 페데리치는 임금에 대한 요구가 소외된 노동이라는 공통의 조건을 중심으로 여성을 조직할 수 있는 결정적인 정치적 연결고리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는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운동의 성공은 사회적 부의 분배에 전면적인 재구성을 수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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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노동에 대한 임금』은 최근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 뉴욕 위원회 1972~1977 ― 역사, 이론, 자료』(페데리치와 앨런 오스틴 엮음, Wages for Housework : The New York Committee 1972–1977: History, Theory, Documents)라는 선집에 수록되어 AK출판사에서 재출간되었다. 이 선집은 이전에 출판되지 않았거나 확보하기 어려웠던 팸플릿, 연설문, 뉴스레터, 사진, 노래, 그리고 언론보도들을 포함한다. 이 선집이 뉴욕을 기반으로 하긴 하지만 로스앤젤리스, 아이슬란드, 이탈리아, 독일, 런던의 자료들도 포함한다. 이 텍스트들은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가사노동에 할애되는 시간을 줄여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준다는 유토피아적 기대가 종종 어긋나는 모습을 담고 있다. 페데리치와 니콜 콕스(Nicole Cox)는 「부엌으로부터의 대항계획」(Counter-planning from the Kitchen, 1975)에서,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의한 생산성 증대가 가사노동의 고립된 성격이나 가사노동이 생산하는 규범적(normative) 가족 형태를 필연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다음의 대화는 가사노동을 포장하는 기술 혁신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재생산 노동을 둘러싸고 진행된 페미니스트 조직화 과정에서 연마된 투쟁의 테크놀로지(technologies)와 기법(techniques)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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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리처즈(이하 JR) : 선생님의 콜렉티브를 노동 정의 관련 활동을 하고 있었던 다른 활동가 단체(groups)와 별도로 조직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실비아 페데리치(이하 SF) : 이 여성들의 운동이 대체로 자율적이었던 것은 남성 지배적인 좌파진영에서 우리의 의제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1969년에 이르면 여성들은 <민주사회를 염원하는 학생들>(Students for a Democratic Society, SDS)을 비롯한 좌파 조직들을 떠나게 되는데, 여성들이 자신이 겪고 있는 억압에 관해 논의하자고 할 때마다 야유를 받고 함구당했기 때문입니다. 여성 단체들이 남성들과 별도로 조직되는 것이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남녀 혼성조직에 남아 있었다면,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억압의 특정한 형태들에 대한 사유를 전개해 나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컬렉티브가 조직된 1973년 무렵에는 페미니스트 자율성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혀 있었습니다.

여성들이 서로 말하고 들으면서 서로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가 하고 싶은 말들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해 줄 공간을 자율적인 조직화를 통해서 마련하였습니다. 자치(autonomy)는 우리가 스스로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어떠한 페미니스트 조직도 노동 정의 문제에만 한정해서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는 것을 꼭 덧붙이고 싶습니다.

JR: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은 사람들이 교차성을 이야기하기 오래전부터, 더구나 여성 운동이 대개 인종에 따라 나뉘어져 있던 시대에, 여러 인종이 함께 참여하는 장소로 나아갈 방법을 어떻게 찾을 수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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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의 정치학은 자본주의, 제국주의, 반식민지주의 투쟁에 대한 선이해가 있는 여성들에 의해 형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성 해방이 단지 “남성과의 평등”을 위한 투쟁이나 “동일노동 동일임금”으로 제한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인종차별을 이용해 흑인에 대한 노예제를 정당화해온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성차별을 이용해 여성을 가정 내 무급 노동자로서 착취해왔다는 점을 우리는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흑인 여성들이 주도하는 ‘생활보조를 받는 어머니들’(welfare mothers)의 투쟁을 지지했습니다. 이는 생활보조를 받는 여성 대다수가 흑인 여성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흑인 여성들이 가장 강력하게 자기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우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들이 거리로 나와서 “복지는 자선이 아니다. 모든 여성은 노동하고 있다.”라고 외치는 여성들이었습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흑인 여성들은 자녀 양육이 사회적 필요노동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기생충이라고 말하지 말라. 우리가 국가에 의존한다고 말하지 말라. 국가가 군인을 필요로 할 때, 국가가 공장에서 일할 사람을 필요로 할 때, 바로 우리의 자녀들을 데려간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의 성공이 여성들에게 더 많은 힘이 될 것임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금전적 여유를 바탕으로 그들 자신의 삶에 전보다 많은 통제력을 갖게 되어, 자기 수중에 약간의 돈이라도 있는 것이 간절해서 남성에 의존하거나 닥치는 대로 일하지 않아도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여성들은 대대로 자본가들에게 어마어마한 양의 무급 노동을 끊임없이 제공해 왔는데, 이를 거부함으로써, 가정은 일종의 공장이고 즉 가사노동은 노동자를 생산하기 때문에 다른 모든 형태의 노동을 가능케 한다는 점을, 더는 무시하기를 거부하는 효과를 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성들에게 집 밖에 나가서 일하지 말라는 처방을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집 밖으로 나갈 때에, 너무나 절박해서 즉 단지 조금이라도 경제적 독립성을 가지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더 큰 힘을 가지고 집을 나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JR: 노동 조직화와 관련하여 지역적 페미니스트 운동과 국제적인 페미니스트 운동의 거시적 관계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SF: 자본은 국제적입니다. 그렇기에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운동 역시 반드시 국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1972년 여름 파도바에서 <국제 페미니스트 컬렉티브>를 결성했을 때 이미 공유된 생각이었습니다. 국제적인 조직화를 통해 우리는 하나의 국가에 국한된 관점이 가능하게 했던 것보다 더 강력한 자본주의 비판을 전개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상적으로 우리 조직은 뉴욕에서 그리고 좀 더 넓게는 미국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서도, 동시에 문서와 분석 자료를 교환할 수 있는 국제적인 회의를 정기적으로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 모두가 함께하고 있는 투쟁에 대한 좀 더 폭넓은 관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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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대두되고 있는데, 이 문제에 관해서도 국제적인 조직화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폭력은 균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폭력은 어떤 여성들에게는 다른 여성들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영향을 미칩니다. 확실히 미국 사회에서 유색인종 여성에 대한 폭력은 백인 여성에 대한 폭력보다 가혹합니다. 마찬가지로 지구적 북과 지구적 남의 여성에 대한 폭력은 그 영향이 다릅니다.
남성들이 여성에 대한 성적 희롱을 하는 것이 허용되는 분위기에서 여성들은 어렸을 때부터 밤에 나다니지 말고 외출 시에도 언제 나갈지, 어디를 갈지, 무엇을 입고 나갈지 조심하라고 배우면서 큽니다. 어렸을 때부터 나와 같은 세대의 여성들은, 언제라도 폭력적인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 즉 거리의 남성들이 우리의 신체를 조롱하거나 겁주는 말들을 하는 것, 아버지와 남편이 우리를 때렸을 때조차 참을 수밖에 없는 것에 단련되어야 했습니다.
페미니스트 운동의 일대 전환점은 1976년 3월 브뤼셀에서 열린 <여성에 대한 범죄 국제 인민 재판소>였습니다. 이 행사를 조직한 페미니스트들은 당시 개인이나 가정 내 폭력뿐만 아니라 전쟁과 제도적 정책과 관련된 폭력 등 모든 종류의 폭력에 대해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여성 폭력에 관한 미국 페미니즘 운동의 한계 중 하나는 가해자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종종 경찰과 손을 잡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는 패착이었습니다. 흑인 여성 단체들이 분명히 주장했듯이, 처벌 강화는 이미 핍박받는 지역사회의 남성들을 범죄자로 낙인 찍을 뿐이었습니다. 대개의 경우 흑인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듯이 오늘날 [절실한] 요구는 회복적 사법과 지역사회의 책임성입니다.
우리의 여성 폭력 분석은 가사노동을 자본주의 생산의 한 형태로 보는 것, 그리고 가족 제도의 구축에서 임금이 하는 역할을 분석하는 것, 이 둘을 중심에 놓은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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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폭력이 언제나 가족구조 내에 잠재해 있으며 임금을 통해 국가가 남편에게 부인의 일을 감시하고 통제할 권한을 위임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 권한은 부인이 자신의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학대하는 것마저도 포함합니다. 나는 이를 간접적 지배의 한 형태로 간주합니다. 여성에 대한 국가의 지배가 남성과 그에게 지급되는 임금을 통해 매개되는 것입니다. 1970년대에 생활보조를 받는 여성들이 정부를 지칭할 때 “포주”(The Man)이라고 부른 것은 그냥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 점이 가정폭력이 그토록 오랜 세월 드러나지 않고 국가 권력에 의해 범죄로 취급되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우리는 강간조차도 가정 내 훈육의 한 가지 형태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여성들의 시간과 공간을 통제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밤에 남편의 동행 없이 나돌아 다니지 말고 아이들 곁에서 집에 머무르며 집안일을 하고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 등입니다. “그래도 외출한다면 강간에 노출될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알겠다는 것”입니다. 강간의 위협은 여성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암묵적인 훈육인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폭력이라고 인지되지도 않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집단인 아동에 대한 학대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여성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구타당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이는데, 이는 국가가 이 폭력을 아이들이 훗날 견뎌야 할 착취형태에 길들이기 위해 필요한 훈육방식으로 용인하기 때문입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흑인 전체 즉 흑인 여성과 남성에 대한 폭력과 이어지는데, 노예제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역사 동안 그들에 대한 폭력은 더 잔인하고 파괴적인 형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속적 지위를 받아들이게 하는 데는 언제나 폭력이 필수적입니다. 그들에게 혹독한 착취 형태들을 강제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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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 :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플랫폼의 출범 당시 가장 많이 오해를 받았던 점들은 무엇입니까?

SF: 광의의 페미니스트 운동은 여성이 처한 조건을 개선하는 데는 관심이 있었지만 이 사회를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것으로 변화시키는 데는 같은 정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후자 없이 전자를 달성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은 “집에 있으면서 가사노동을 하던 대로 계속할 테니 돈을 달라.”는 주장을 한다고 오해를 받았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을 일종의 거부의 전략으로, 우리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부여하고 우리 삶을 조직하는 방법을 결정할 더 많은 힘을 주는 전략으로 봤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성을 집안에 붙박는다(institutionalizing).”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난 많은 여성들은 자신만의 재력이 부재하기에 아무데도 갈 수 없고 설사 남편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기 때문에 이미 자신들은 가정 내에 붙박여 있다고 우리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일단의 비평가들이 섣불리 가정한 것과 달리 우리의 최종 목표는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을 지급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이 그 자체로 강력한 목표가 아니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는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을 요구하는 투쟁이, 무료 보육 및 기타 주요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국가에 압력을 가할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믿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여성 운동은 아직도 이것들을 쟁취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이런 상황이 부분적으로는 여성 운동이 모든 에너지를 남성 지배적 공간으로 진입하는 데 사용했고, 가사노동, 육아 및 기타 형태의 돌봄 노동과 관련된 재생산 노동의 조건을 바꾸는 싸움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국가는 여성에게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기는커녕 기존에 이용할 수 있었던 서비스의 접근성을 오히려 떨어뜨렸습니다. 1960년대 말보다 오늘날 노후지원이나 양육지원을 받는 것이 더 어려운 실정입니다.
유급노동 영역에서뿐만이 아니라 가사노동, 섹슈얼리티, 육아처럼 여성이 강력한 영역, 그러면서도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의 영역에서 투쟁하자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었습니다. 1976년에 유급 출산 휴가 문제가 대법원에 회부되었을 때 페미니스트들 중에 이를 지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하나의 “특권”을 부여받으면 전체적인 평등을 요구할 자격이 없어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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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80년대 초반에 이르러 많은 여성이 임금 노동에 진입하게 되었고, 그들은 “평등”이 여전히 요원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들은 임금 노동을 수행함과 동시에 집안에서 아이들과 친척들을 돌보는 막대한 양의 무급노동을 여전히 감당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지구화로 인해 노동의 전체 조직화가 대격변을 겪는 시대에 그녀들은 각자의 직장에서 각개전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그때 일자리들이 해외로 이전되고 국가가 [사회복지] 서비스들을 삭감하면서 산업복합체 체제에 위기가 왔습니다. 그러니까 여성들은 공장의 지붕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에 노동력으로 진입한 것이었습니다.

JR : 당대의 테크놀로지가 선생님의 활동에 어떤 방식으로 도움이 되거나 방해가 되었습니까?

SF: 그것을 딱 잘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어서 문제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말은 우리가 더 많은 시간을 길거리, 세탁소 등 여성들이 모이는 곳에서 이야기하면서 보냈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러한 면 대 면의 만남이 매우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온라인 만남에서 가능했던 것보다 더 나은 소통을 할 수 있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인터넷에 많은 시간을 소모하지만 반드시 그것이 정치적으로 생산적인 방식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양의 정보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되고, 각종 요청들이 끊이지 않아서 일일이 응답하기가 힘들거나 피상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덧붙이자면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의 여성들과 주고받은 서신 뭉치들을 나는 아직까지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각 지역의 정치 상황을 논문처럼 분석하는 글들도 있습니다. 심사숙고해서 쓴 서신들인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죠. 그렇다고 해서 인터넷과 컴퓨터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한다는 점을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 실비아 페데리치는 여성주의 이론가이자 활동가로,『캘리번과 마녀』, 『혁명의 영점』의 저자이다. 1972년에는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와 함께 <가사노동에 임금을 지급하라> 캠페인을 시작하였으며 반세계화 운동, 사형제 반대운동, 아프리카의 경제 및 교육 시스템 구조조정 반대 활동 등 수십 년간 다양한 국제반자본주의 운동 의제들에 참여하며 그에 관해 다수의 책과 논문을 썼다. 페데리치와 그녀의 사상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갈무리 출판사 저자 블로그(https://blog.naver.com/federici_gal)와 한국어로 번역된 저서 『혁명의 영점』과 『캘리번과 마녀』를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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