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호] 객체 통일장이론ㅣ이수영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19-12-22 23:51
조회
94
 
 

객체 통일장이론


이수영 (미술작가)


 

 

인간도 객체다


먼 옛날 누군가 낮게 중얼거렸다. ‘사실은 지구가 태양을 돈다.’ 변화와 생성의 힘을 하늘에서 땅으로 훔쳐온 이 다스릴 수 없는 풍문에 사람들의 불안한 가슴은 설레기 시작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사실은 인간도 다른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객체다.’ 이 새로운 이론은 객체들 사이에 복음으로 퍼지고 있다. 한쪽에 인간을 놓고 다른 한 쪽에 인간이 아닌 모든 것들을 다 집어넣고도 이원론의 저울추는 나란했다. 이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인간은 계급장을 떼고 객체 중의 하나로 전역한다.


이 복음은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의 귀에도 들어갔는데, 사실 알파고는 억울했다. 수많은 인간 바둑기사들의 대국 데이터를 학습하며 구글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실에서 자란 알파고다. AI를 인간들로부터 뚝 떼어 비인간으로 취급하며 인간 대 기계로 구분하는 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오히려 ‘바둑’이라는 객체는 수많은 인간 바둑기사들, 구글 연구원들, 까맣고 하얀 돌들, 구글 고가의 장비들, 농심신라면배 세계 바둑대회, 응팔 박보검 택이, 한게임 바둑, 동네 기원들의 거대한 네트워크이고 알파고도 이 관계망에 있다. 이세돌이 알파고 때문에 은퇴했다. 이제 바둑은 알파고 이전으로 돌라갈 수 없다. 인간/비인간을 도대체 어떻게 나눈단 말인가. AI만이 아니라 그 어떤 것도 다른 것과 관계하지 않고는 존재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세상 만물은 다 하이브리드이다.


행위자 연결망 이론


라투르는 객체를 행위자(actor)라고 부른다. 서로 만나 변형하거나 수정하거나 교란하거나 창조하는 행위를 한다면 무엇이든 행위자가 되며 이것을 실재(real)라 한다. 유니콘, 동계올림픽, 쿼크, 고사리는 모두 동등한 행위자이다. 이 행위자들은 모두 다른 행위자들과 네트워킹하며 변형, 수정, 교란, 창조하기 때문이다. 행위자의 네트워킹 동맹이 활발할수록 행위자는 강력한 실재(real)가 되고 연결망이 빈약해서 조용하다면 그 행위자는 실재가 아니다. “원자가 귀신보다 더 실재적인 것이 되는 이유는 원자는 인간 영역을 뛰어넘어 더 많은 동맹들 맺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귀신의 네트워크에는 흥분한 어린이들과 전설의 고향 정도가 있기 때문이다.”


행위자들은 자신을 이루고 있는 특성들이 조금만 바꾸어도 다른 존재가 된다. 찰라생멸하며 끝임 없이 변하는 행위자들은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매개자가 필요하며 매개자는 행위자들을 연결시키며 행위자들을 번역한다.


라투르의 매개 번역 이론은 강점이자 약점이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을 땐 좋은 것부터 듣자. 강점은 라투르의 행위자는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될 수 있는 하나-이상의-것이 아니다. 철저한 솔로다. 객체들은 변화 속에서도 변치 않고 돌아갈 실체와 본질을 천상의 이데아에 두고 오지 않았다. 도래할 미래가 선험적으로 잠재하고 있거나 약동과 지속을 이미 내장한 생성 역시 없다. 전체로 흡수될 부분들의 잠정적 결합도 아니다.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기본 입자 원소들로 이루어져 있는 만능키 공통 기반도 없다. 하여 도토리는 참나무라는 잠재태를 미리 품고 있지 않고 천상에 참나무의 이데아를 두고 오지도 않았으며 참나무라는 가치를 지향하도록 태어나지도 않았다. 도토리는 관계에 의해 밤나무 열매가 될 수도 있고 유전자 공학자와 네트워킹 되어 청포묵 재료가 될 수도 있다. 도토리는 이담에 변신하여 무엇이든 될 수 있는 편견 없는 하이브리드의 세상, 행위자 연결망의 행위소일 뿐이다. 도토리-참나무의 인과론은 필연이 아니다. 약점은 이렇다. 행위소들을 매개할 행위소 역시 고립된 행위소이기 때문에 제논의 화살이 과녁에 닿기 위해 무한의 통과점을 거쳐야 하듯 라투르의 행위소들은 매개의 매개의 매개의 매개가 끝없이 필요하다.


객체지향존재론


여기서 하먼의 객체지향이론이 등장하여 라투르의 행위자 연결망 이론과 결합한다. 라투르의 행위소가 계속 움직이는 동사인 반면 하먼의 객체는 동명사다. 변화하는 움직임 속에서도 명사처럼 객체는 변화에 휘둘리지 않는 자율성을 갖는다. 하먼에게 어떤 무엇이 실재(real)인 이유는 자율적이기 때문이다. 객체의 자율성은 객체가 자신의 관계들의 다발로 환원되거나, 자신의 내재적 구성들의 다발로 환원되지 않는 것이다. 실재성을 갖추려면 관계들도 성분들도 필요하고 그것들을 통합하여 통일체로 있지만, 통일체는 자신의 구성들의 다발들을 넘어서 있다.


하먼은 객체를 네겹으로 만들어 라투르의 고립된 객체들의 연결망을 해결한다. 실재적 객체, 감각적 객체, 실재적 성질, 감각적 성질이 그것이다. 나는 오늘 오후 4시에 지친 햇살 아래에 선 해바라기를 볼 수 있을 뿐 어떤 감각적 성질을 떠난 해바라기의 본체를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볼 해바라기가 해바라기일 수 있는 실재적 객체인 해바라기는 있다. 실재적 객체인 해바라기와 나라는 실재적 객체를 매개하는 것은 오늘 오후 4시의 감각적 객체인 해바라기이다. 하지만 실재적이든 감각적이든 객체들은 그들의 성질들의 다발로 환원되지 않고 자율성을 갖는다. 이렇게 스토리가 전개된다면, 기시감이 들것이다. 현상학 장르물이 아닌가. 하지만 지각하고 인지하는 정신적 행위는 서로 만나 변형하거나 수정하거나 교란하거나 창조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스토리는 절정을 맞게 된다. 결말은 인간의 고유한 인지 활동은 원자나 돌이 하고 있는 관계 활동과 다르지 않음으로 의인화에서 해방된 범신론은 객체화된 범신론, 즉 객체들의 연결망으로 완성된다.


네트워크의 군주


이 스토리는 대하드라마다. 『네트워크의 군주』는 500쪽 짜리 책이다. 두껍다. 라투르의 이론과 하먼의 이론은 객체들만을 다룬다는 이유로 유물론으로 오해받을 수 있으며, 동계올림픽도 객체라 주장하는 바람에 사회구성론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며, 파스퇴르 이전에 세균은 없었다고 말해 상관주의로 오해받기도 하며, 하먼의 네겹 객체이론은 여전히 인간 의식과의 연관으로 객체를 다룬다는 의미에서 현상학적 복귀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하먼은 이 책을 500쪽에 걸쳐 쓰고 있다. 그 모든 오해를 뚫고 행위자 연결망 이론과 객체지향 이론을 연결해야 해야 하므로. 두껍고 어려운 철학책이지만 지루하지 않다. 하먼의 말대로 이 철학책은 소피아(진리) 보다는 필로(사랑)에 충실하다. 빈틈없고 단단한 논리로 진리를 구사하는 소피스트보다는 알고자 몸살을 앓는 소크라테스를 편집자로 모시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직접 책에 등장하여 라투르와 설전을 벌이고, 라투르의 악독한 쌍둥이 동생 캐릭터가 등장해 형의 이론에 반대한다. 하먼의 유머 또한 이 책을 읽는 기쁨이다.


객체들의 연결망이론에 의하면 우리의 질문은 ‘누구냐, 넌’에서 ‘뭐하냐, 넌’으로 바뀌어야 한다. 명사가 아닌 동사의 이론은 수행적이다. 명사 암흑물질을 우리는 모르지만, 우주의 물질을 밀어내 팽창시키는 것으로 우주를 변형, 수정, 교란하는 관계망인 동사 암흑물질이 실재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인간과 비인간의 전복적 종융합을 선언한 다나 해러웨이, 무엇과 접속하느냐에 따라 변신하는 기관없는 신체들, 사피엔스가 진화한 4차원을 넘는 10차원의 끈이론, 입자이면서 파장인 양자물리학 등 종횡 무진하는 접속과 관계의 시대에 행위자 연결망 이론과 객체지향 존재론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설렌다.


*



※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19년 12월 22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bit.ly/35Pii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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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브뤼노 라투르 지음, 홍철기 옮김, 갈무리, 2009)


이 책은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연구해온 인류학자인 저자 브뤼노 라투르가 근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방식에 던지는 독특하고 근본적인 문제제기이다. 탈근대주의의 근대성 비판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라투르가 말하는 근대인의 본질은 이분법이 아닌 ‘하이브리드’의 증식이다. ‘하이브리드’의 이해를 통해서만 사회와 자연, 정치와 과학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현재의 정치·사회적 위기와 환경·기술적 위기라는 이중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과학의 새로운 정치사회학을 향하여(스콧 프리켈 외 엮음, 김동광 · 김명진 · 김병윤 옮김, 갈무리, 2013)


21세기 들어 과학지식의 생산과 활용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규제의 대상이 되고 있고, 상업화가 진전되고 있으며, 또 참여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을 이해하는 것은 과학자나 비과학자 모두에게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이는 지적 작업과 지적 재산에 대한 전통적 관념에 도전하고 있으며, 법률적 · 전문직업적 경계를 재구성하고 연구의 실천을 변형시킬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변화들이 의존하고 있는 권력과 불평등의 구조를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인간의 건강, 민주주의 사회, 환경에 던지는 함의를 탐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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