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2020년 01월 12일 객체지향철학과 건축미학 세미나

작성자
kyu
작성일
2020-01-12 13:00
조회
23
2020년 01월 12일 객체지향철학과 건축미학 세미나
발제자: 김성규,최윤철




A. 행위자의 구체성




칸트나 헤겔이 구체적 존재자들을 점호할 것이라고 상상할 수는 없는데, 그 이유는 구체적 존재자들을 호명함으로써 철학의 무게가 특정한 행위자들을 포괄하기를 원할 모든 구조에서 멀어지면서 행위자들 자체를 향해 이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218p)

이런 암울한 교착 상태에 대한 최고로 멋진 해독제는 어떤 통일 제국에도 저항하는 다수의 사물에 관해서 반복적으로 불리는 마법사의 노래다. (218p)

인간중심 철학은 형이상학의 히로시마, 즉 여타의 객체와 더불어 로즈가 상기시킨 객체들을 소멸 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라투르는 인간과 비인간에 대한 이런 범죄 행위에 참여하지 않는다. 라투르는 풀과 대문, 묘비, 라디오, 동급생, 법정을 한낱 존재자적 세부에 불과한 것으로 일축하는 대신에 오히려 그것들이 다시 철학의 중심 주제가 될 수 있게 한다. (219p)

유물론자는 그런 객체들을 철학적 영역에서 잔인하게 추방할 것이다.(219p)

객체들을 모두 대등한 지위에 두면, 철학사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두 세계의 간극이 없어질 뿐 아니라 처음부터 두 세계를 접착하려는 수많은 가짜의 ‘급진적인’ 노력도 사라질 것이다. (220p)

풀잎도 어떤 웅성거리는 통일된 존재자보다 모자라는 한낱 눈-앞에-있는 존재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원자와 뽀빠이가 일할 수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풀도 세계 속에서 일할 수 있다.(220p)

행위자의 필연적 구체성으로 인해 특정한 존재자들보다 더 깊은 지위를 주장하고자 하는 어떤 전개체적 실재도 역시 유예된다. (220p)



라투르의 초 구체적 행위자 모형은 객체와 사건, 객체와 관계, 객체와 성질을 전혀 구별하지 않으면서 행위자는 당연히 전적으로 관계적이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 모형에 따르면 관계를 바꾸는 것은 실재를 바꾸는 것이므로 행위자가 자신의 동맹에 일어나는 어떤 변화도 감당할 수 있도록 허용되지 말아야 한다. 라투르의 경우에 존재자가 항구적인 소멸 상태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자신의 특성이 조금만 바뀌어도 그 존재자가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221p)

우리가 이해한 대로 라투르는 때때로 행위자를 수많은 순간을 가로지르는 ‘궤적’으로 언급하면서 행위자는 자신의 동맹이 변화할 때 완전히 소멸하기보다 오히려 ‘역사’를 획득함을 암시한다. (221p)

라투르는 특정한 행위자 자체를 넘어서는 어떤 시간적 유출의 힘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시간에 따른 지속이라는 어떤 최초 원리도 인정하지 않는다. (223p)

이순간과 저 순간의 연결 역시 행위소들의 노동을 거쳐 산출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 연결이 단일한 순간들의 감옥 에서 자신을 해방할 사물들의 핵심에 있는 어떤 종류의 내재적 충동 또는 코나투스에 미리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행위소의 전적인 구체성으로 인해 사실상 행위소는 한순간에 갇혀야 한다. (223p)

라투르의 지침이 되는 원리는 행위자는 자신의 동맹들로 정의된다는 것인데, 요컨대 동맹이 바뀌면서 당연히 행위자가 변하므로 두 개의 백악관은 어떤 다른 행위자가 등가성을 보여줌으로써 그것들을 연결할 수 있을 때만 ‘같은’ 백악관으로 연결된다. (224.p)

행위자는 인공기술-없는-자연 덕택에 실재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다른 존재자에게 미치는 효과 덕택에 실재적이다. 실체는 존재하지 않고 블랙박스들만 존재하며, 게다가 블랙박스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마음대로 열어서 그것이 존재할 수 있게 만든 미묘한 내부 협상들을 검토 할 수 있다. (226)

요약하면, 모든 관계가 제거되어 버렸을 실재의 마지막 층위는 없다. (226)

요점은, 인간이 지쳐서 더는 할 수 없는 어떤 임의의 단절점을 넘어서지 않는다면 우리가 원하는 한 계속해서 블랙박스를 열 수 있다는 것만이 아니다.(227)









B. 유물론에 반대하며




● 후설은 현실적 세계를 괄호에 넣고 의식속의 현상에 집중함 ~(p.228_후반)
● 이와 대조적으로, 라투르는 관념론을 거부하고 인간과 여타 행위자 사이에 어떤 고정된 간극도 없다고 주장 ~ (중략) ~ 이 모든 것은 사실이어서 대륙철학의 인간중심적 신조를 폐기하는 데 라투르가 후설보다 앞섬 ~(p.228_후반)

● 두 사상가(라투르와 후설)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는데, 그것은 둘 다 실재적 객체와 비실재적 객체를 결코 포괄적으로 구별하지 않는 절대적 다원론의 규칙을 준수한다. (p.228_초입)
● 후설은 가장 터무늬없는 상상의 산물도 즉각적으로 무시하지 않고 우리에게 나타나는 바로 그대로 서술되어야 한다고 요청 ~(p.228_초입)

● 라투르는 현상과 자연 세계의 어떤 분열도 금지하므로 현상계 내부에 여전히 완강하게 머무는 후설보다 확실히 더 실재론적인 철학자다. (p.229_중반)
● 결국 후설은 의식의 내용을 서술할 뿐이란고 주장, 자연주의자가 뛰놀면서 지배할 수 있는 절반의 실재가 온전히 남게 됨 (p.229_후반)

● 자연주의는 물리적 사물들 모두에 균일하게 영향을 미치는 실재적 원인의 특권을 세계에 부여, 데카르트의 마음/세계 이원론과 그것의 다양한 후예를 제거하려고함 (p.230_중반)

● 관념론자는 생기 없는 충돌을 의식적 현상으로 환원하는 반면, 자연주의자는 정반대 방향으로 그럴(뒤집을) 뿐이다. 자연주의자는 불을 한낱 불의 현상에 불과한 것으로 바꾸는 대신에 불의 현상을 한낱 불의 진정한 미시물리적 실재의 부수 현상에 불과한 것으로 바꿈 (p.231_초반)
● 그 상황은 세계대전 동안 플랑드르의 참호와 유사 ~(중략)~ ‘물리적’행위자들과 ‘심적’행위자들을 모두 같은 지위에 두는 라투르의 방법이 자연주의와 관념론이 벌이는 참호전을 종식하는 최후의 방법이다. (p.231_중후반)

● 철학이 수행해야 하는 것은 생명 없는 세계를 다루는 것이지만 유물론적 견지와는 다른 견지에서 수행해야하는 이유는 놀랍게도 유물론은 철학에 권할 것이 거의 없기 때문.
● 세계를 투과할 수 없는 물질의 단단한 층으로 여기는 모형은 물질이 다른 물질을 밀어내거나 강하게 타격할 수 있다고 말해줄 뿐. ~(중략)~ 하지만 이 견해는 생기 없는 인과관계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전혀 설명하지 않으면서 그런 관계를 명백히 주어진 것으로 여길 뿐이다. (p.232_끝~p.233_중반)



● 현존하는 어떤 두 존재자 사이에도 연결되지 않은 간극이 존재, 과학은 항상 이런 간극들을 건너 큰 성과를 거두지만 어떻게 건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이것이 객체지향철학의 과업이다. 형이상학이라면 무엇이나 객체와 관계한 형이상학이어야 한다. (p.234_초중반)

● 근대 초 짧은 시기의 유물론: 그것이 이제는 물질과 그것의 행위주체성에 대한 상당히 관념론적인 정의로 보이는 것을 함축했다. (p.234_후반)
● 실재는 물질적 요소들로 환원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행위자의 제1성질이 실제로 무엇인지에 대하여 독단적 결단을 내리는 것으로 행위자의 영원한 불가사의를 연장된 고체로서의 행위자에 대한 독단적인 모형으로 대체함 (p.235_초반)
● 하지만, 행위자가 무엇인지 실제로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단단한 물리적 물질과 관련하여 행위자를 정의하는 것은 매우 비철학적인 조치이다. (p.235_중반)

● 라투르는 객체들을 모두 대등하게 실재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지 객체들을 모두 똑같이 강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p.236_중반)

● 이 입장에 따르면 사물이 ‘세계’쪽에서 비롯된다면 그것은 실재적이고, ‘인간’쪽에서 추가된다면 실재적인 것이 아니다. (p.236_중후반)

● 원자가 유령보다 더 실재적인 것이 되는 이유는 ~(중략)~ 오히려 원자가 인건 영역을 훌쩍 넘어서는 동맹들을 포함하여 더 많은 동맹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p.237_초반)

●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사물이 맺고 있는 관계들고 구별되는 그 사물의 실재가 있다. 라투르는 자신의 행위자 이론에서 절대적 관계주의자이므로 이 논점을 우호적으로 여길 수 없다. 그런데 물리학자의 절규 속에 담긴 일말의 진실은 어떤 행위자가 애초에 존재해야지만 다른 행위자들이 그 행위자와 협상할 수 있다는 것. (p.238_후반)

● 우리는 과학 전사처럼 제1성질과 제 2성질의 구별을 수용, 비인간과 인간에 각각 할당하기를 거부할 수 있다. (p.240_초반)

● 한 객체는 다른 한 객체가 그저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것이지 완전히 흡수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p.240_중반)

● 라투르가 생명 없는 행위자들이 우리에게 작용할 뿐 아니라 서로에게도 작용할 수 있게 허용한다는 점. 행위자는 다른 행위자들을 교란하는 덕분에 실재적. (p.240_후반)

● 존재자들 사이의 간극은 올바르게도 무한히 증식되지만, 그는 사물의 고유한 실재와 그 사물이 다른 사물들에 미치는 영향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숫제 무시한다. (p.241_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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