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호] 닫힘과 분위기, 영화에 대한 사유의 목록들ㅣ장미화

이 책을 주목한다
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0-01-13 19:53
조회
39
 
 

닫힘과 분위기, 영화에 대한 사유의 목록들


장미화 (영화평론가)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이제껏 영화이론이나 비평 글에서 무수히 많이 다루어져 왔다. 예술로서 혹은 매체로서 영화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기는 사실 영화를 만드는 사람 혹은 영화로 사유하는 사람에게 필수적인 질문이다. 이는 확실히 영화에 대한 잡학 다식한 지식들 너머 영화의 본질에 접근하는 면이 큰 것이다. 독특하게도 이 책은 저자의 열다섯 가지 부제에 따라 영화란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과정을 마치 영화 촬영하듯이 연속적인 개념 내에서 담아내고 있다.


이론이나 평론 분야 비전문가로서 단순히 자신의 취향의 반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욕망을 견지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우선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전문가 비전문가의 구별을 넘어 영화의 역사를 누구나 사유할 수 있는 작금의 포스트모던한 환경을 반영하면서 철학적, 영화 이론적 개념들에 대해 자유롭게 사유하는 권리를 누리는 여유를 드러낸다.


저자는 영화에 대한 사유들을 통해서 오랫동안 공들여 쌓아온 것으로 보이는 영화에 대한 본질적인 차원의 관심과 깊이 있는 사유를 이어오고 있다. 그러한 과정은 저자가 질문하는 내용이 이미 많이 다뤄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다수 대중, 군중에게 여전히 낯설은 문제이기 때문에 참신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자기 자신의 영화 작업들을 연루함 없이 일반적인 영화에 대해 정면으로 대면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영화감독임을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 주체적인 평론가 혹은 이론가의 위치에서 영화에 대해 사유하고자 하는 욕망과 다름 아니다. 그는 영매로서 영화를 간주하고 영화작가로서 자신의 역할을 영화의 자동기계적 특성 내에서 사유한다.


이 책은 한편으로 독립 영화감독이 쓴 내적 에세이이면서 영화이론에 이미 어느 정도 통달한 사람이 가진 포스를 견지하기에 흥미롭다. 그것은 저지의 본직이 영화감독이라는 점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고 믿게 하는 해박한 지식에 기댄 바 크다. 누구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열 다섯 항목으로 구별했고 각각의 내용이 다루는 내용이 일견 비평, 이론 분야 전문가적 수준이나 정확성에 못 미치더라도 지식과 사유를 풍부하게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혹적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이론적 개념, 영화에 대한 매체, 내러티브적 차원의 사유는 대중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면을 나타낸다. 그것은 오늘날 영화를 텔레비전이나 게임과 구별되는 전통 예술로서 특징짓는 완고함을 전제로 하고 있다. 뉴 미디어 시대 필름 영화가 이미 올드 미디어가 되었고 죽음을 선포한 것에 대해 여전히 저자는 확신하길 주저한다. 디지털 영화 시대의 영화의 시간성에 대한 저자의 관점은 필름 영화의 관점을 그대로 답습하고 그러한 측면은 여전히 고전 영화의 역동적인 면을 드러낸다. 클래식한 영화의 시간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전제된 상태에서 그는 오늘날 영화의 시간성이 미래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영화의 시간성이 잠재태, 현실태적 시간의 이중성을 띠는 것이라는 들뢰즈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다소 관습적인 면을 반영하는 듯하다.


시간의 예술로서 영화를 닫힘의 예술이라고 보는 견해는 일견 저자가 플라톤 동굴 우화를 옹호하며 영화의 열림, 생성에 대해 한계를 느낌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어쨌든 저자는 영화의 천성이란 본래 닫혀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내내 열림을 환기하는 데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영화는 애초부터 닫힘과 열림의 대립에 걸려들지 않으며 영화는 또 다른 닫힘을 위해서만 닫는다” 라면서 저자는 영화의 닫힘과 열림이 결국 하나라는 사실을 주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의 시제를 미래라고 정의하는 저자의 영화적 시간관이다. 그것은 연극이 현존을 포착하기 위해 닫으면서 현재만 나타낸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영화가 가진 시간적 역량에 대한 낙관적 내지는 긍정적인 인식을 시사한다. 연극 너머 시간을 구현해서 연극의 역량을 초과함은 영화가 가진 고유한 역량이며 그러한 힘은 영화가 미래의 시간성을 가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연극이 새로운 현존을 위해 현재 쪽으로 시간을 연장하는 것과는 달리 (64쪽) 영화는 미래의 시간을 나타내면서 영원 불멸하고 천근만근의 질량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김곡은 이 책에서 영화가 가진 연장의 힘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면서 영화의 힘이 텔레비전과 진정 엄격하게 구분되는 면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영화에서 닫힘, 분위기가 만들어 내는 고유한 힘, 그것은 영화에 대한 관객의 신념을 기반으로 무한한 역량을 지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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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19년 12월 26일 <대자보>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bit.ly/2T9Z3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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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투명기계(김곡 지음, 갈무리, 2018)

영화가 또 하나의 철학일 수 있을까? 단지 철학적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영사되고 감상되고 심지어 편집되는 빛의 철학일 수 있을까? <투명기계>는 그 대답이다. 라이프니츠, 니체, 화이트헤드, 맑스 등을 가로지르며, 소비에트, 네오리얼리즘, 누벨바그, 뉴저먼 시네마 등 영화사의 굵직한 사조들을 아우른다. 장르영화(공포, SF)뿐 아니라 실험영화(애니메이션, 구조주의)도 다룬다. 한국영화도 놓치지 않았다. 유현목과 베르히만, 임권택과 타르코프스키의 비교뿐만 아니라, 한국 뉴웨이브와 신파에 대한 최초의 철학적 접근을 선보인다.


예술인간의 탄생(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5)

예술성이 협의의 예술사회는 물론이고 생산사회와 소비사회 모두를 횡단하면서, 예술의 일반화, ‘누구나’의 예술가화, 모든 것의 예술 작품화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예술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센세이셔널한 예술종말론들이 유행하고 있다. 어째서인가? 종말로 파악할 만큼 급격한 예술의 위치와 양태변화는 항상 새로운 주체성의 대두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단토, 가라타니 고진, 벤야민 등의 예술종말론들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기에 나타난 예술적 변화를 예술종말로 파악한 과거의 관점들(헤겔, 맑스)을 산업자본주의에서 인지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는 다른 맥락에서 되풀이하는 것이다.


영화와 공간 ― 동시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미학적 실천(이승민 지음, 갈무리, 2017)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어제와 오늘을 ‘공간’을 키워드로 하여 비평하고 재편성하였다. 이 책은 ‘왜 공간이 부상하기 시작했을까?’에 대한 거시적 물음에서부터 ‘재개발 투쟁과 은폐된 역사를 파헤치는 비판 정신에서 출발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공간은 지금 어떤 기능을 하고 있을까?’라는 로컬적 질문까지 아우르면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의 역사를 공간으로 재편성하는 동시에 2010년 이후 부상한 영화의 공간(들)을 정리해서 공간의 의미를 펼치며 다양한 함의를 부여한다.


천만 관객의 영화 천만 표의 정치(정병기 지음, 갈무리, 2016)

대선에서 경쟁력 있는 제3후보가 적어도 한 명이라도 출마한다면, 1,000만이라는 숫자는 유효 투표의 약 3분의 1에 해당해 당선 확정에 근사한 수치다. 2005년 이후 천만 관객을 넘은 한국 영화들은 권력과 관련되는 내용을 다루었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도 사회 부조리와 관련된 이슈들을 주로 다루었다. 1,0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한국 사회의 정치 문화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문화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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