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호] 고동연, 신현진, 안진국의 『비평의 조건』(갈무리, 2019)ㅣ권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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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율평론
작성일
2020-02-05 15:47
조회
51
 
 

고동연, 신현진, 안진국의 『비평의 조건』(갈무리, 2019)


권혁규 (전시기획자)


 

 

비평은 개체성의 경계를 넘어선다. 끊임없이 외부로 발걸음을 옮기고 타자를 끌어들인다. 매혹당하고 끌려가며 덜그럭거린다. 리듬을 맞춰 걷다 멈춰서 지나온 길의 안과 밖을 둘러보기도, 자기 자리를 확고히 하며 새롭게 도래할 무언가를 끌어당겨보기도 한다. 추종하고 관찰하는, 또 판단하고 예언하는 비평은 빈번히 스스로의 경계를 넘어서는 혹은 필연적으로 그래야만 하는 가변적 공간의 생물처럼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비평은 잘 보이지 않는다. 계량적으로 분석될 수도 증명될 수도 없다. 누군가는 비평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심지어는 죽었다고 말한다. 물론 그 죽음의 선고는 존재의 명백함을 당혹스럽게 만들 뿐이지만, 그렇다고 비평을 완전한 체계로 규명해버릴 순 없다. 이동성을 잃은 비기능의 경계만이 선명하게 그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비평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비평 행위의 본질과 조건을 그려보는 시도는 자기 개체성의 피막을 초월하는 비평의 불가피성을 상세히 들여다볼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비평이 무엇을 어떻게 넘어서고 있는지 그래서 어디에 다다르고 있는지를 함께 탐구하면서 말이다.


『비평의 조건』은 이 같은 태도로 한국 미술비평의 현재를 바라본다. 좀 더 정확히는 한국 미술비평의 여러 겹과 결을 포착한다. 미술비평의 명시적 위치와 기능이 아니라 그것을 조직하고 있는 겹을 들춰내고 그 사이 공간에 집중하며 동시대 비평을 낯설게 증언하려 한다.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세 명의 저자 고동연, 신현진, 안진국은 미술평론가 16명(팀)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하나의 결과물로 묶는다. 미술비평이라 통칭되는 모호한 세계 내외부에 존재하는 행동 주체들을 직접 마주하고 각기 다른 경험과 입장을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기술하며 동시대 미술비평의 여러 의문과 논쟁을 한 공간에 펼쳐 놓는 것이다.


박영택, 류병학, 김장언, 서동진, 백지홍, 홍경한, 이선영, 옐로우 펜 클럽, 심상용, 현시원, 홍태림, 정민영, 양효실, 김정현, 이영준, 집단오찬. <비평의 조건>이 이들 16명(팀) 비평가들의 말을 통해 궁극적으로 재언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누가 무엇을 비평하는지, 그 비평은 어떤 구조 안에서 유통되는지, 또 그 비평 주체와 대상의 개념, 생산과 유통의 구조는 오늘날 어떻게 변화 혹은 재발명되는지 정도로 거칠게 정리된다. 인터뷰에 참여한 평론가들은 비평의 생산자이자 유통자로서 또 서로 다른 현장과 시간의 목격자로서 자신의 경험과 선택, 철학과 가치관을 공유한다. 그 진술의 흔적은 동시대 미술비평의 현장이 고정불변의 세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와 목소리의 개체들이 뒤섞여 관계를 맺는 유기적 집합체와 같은 곳임을 재확인시킨다. 그렇게 한 권의 책에 찍힌, 미처 알지 못했던 그때, 그날, 그 사람의 산책, 달리기, 투쟁, 버티기의 발자국들은 한국 미술비평의 지반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나름의 모서리와 두께를 차지하며 동시대 비평의 조건을 조형해 낸다.


여러 방향으로 맴도는 책 속의 말들은 그것의 배경, 그러니까 실제 비평 현장과 함께 포개지며 요동친다. 그곳에서 그 말들은 지지와 동력을 얻어 아주 먼 목적지에 다다르기도, 반대로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자기 연출과 변명으로 추락해버리기도 한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세 명의 저자 역시 질문과 참견, 농담으로 비평가의 말을 동조하기도 또 서늘하게 튕겨내기도 한다. 그렇게 <비평의 조건>은 마주한 비평(가)의 노력과 성취뿐 아니라 억지와 실책, 너스레까지 모두 담아내며 비평의 가능성과 환상, 변화와 오작동을 함께 지시한다. 이 지점에서 특정 세대, 성별, 관심사, 활동 분야 등 어쩔 수 없이 무언가를 대변하고 동시에 그것에 침해당하는, 어찌 보면 문제적이라 할 수 있는 틀 안으로 기꺼이 뛰어들어 자신의 관점을 전달하는 평론가들의 비평적 결정이 더욱 유의미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책은 그 어떤 영웅적 경험담도, 계승해야 할 태도나 입장도 강고히 하지 않으며 다양한 비평의 조건을 말한다. <비평의 조건>은 평론가들의 말이 실제 현장과 연동될 때 시대적 유의미함을 발동시킨다는 점을 인지하며 각기 다른 입장에서 공명하는 말로 동시대 미술비평의 조건을 입체화한다.


마지막으로 평론가 16인의 인터뷰를 엮어낸 <비평의 조건>이 일차적 기록이나 저장을 넘어 보다 수행적인 확장을 모색한다는 걸 상기해볼 수 있다. 독자들은 개체의 경계를 넘어서는 비평(가)의 말을 경유하며, 또 그 말이 달라붙어 있는 여러 현장을 횡단하며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생물로서 비평을 인식하게 된다. 비평의 죽음이라는 말이 일종의 경구처럼 떠도는 오늘, 예술의 성취가 아닌 망명지로 다가오는 비평의 현장을 결코 제한할 수 없는 운동성의 공간으로 제시하는 책은 만족스럽지 못한 오늘의 대안을, 아직 따라가보지 않은 비평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한다. 여기서 우리는 ‘수집’을 변화와 생성의 행위로 설명한 벤야민의 이론을 관통하지 않더라도 <비평의 조건>이 수집의 방법론을 통해 한국 미술비평의 현재를 재구성하는 역사적 실천과 더불어 여러 시공을 연결하는 역동성의 생성을 도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에 실린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비평은 기꺼이 매혹당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매혹에는 정해진 법칙도 경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책의 독자들은 나름의 출구를 통해 다양한 비평의 결을 넘나들며 늘 변화하는, 불모적이지 않은 비평의 조건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하나처럼 존재하는 서로 다른 비평의 매혹에 동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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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이 서평은 2020년 1월 21일 웹진 <문화다>에 게재되었습니다. ( http://bit.ly/31qUL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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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예술인간의 탄생(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5)

예술성이 협의의 예술사회는 물론이고 생산사회와 소비사회 모두를 횡단하면서, 예술의 일반화, ‘누구나’의 예술가화, 모든 것의 예술 작품화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예술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센세이셔널한 예술종말론들이 유행하고 있다. 어째서인가? 종말로 파악할 만큼 급격한 예술의 위치와 양태변화는 항상 새로운 주체성의 대두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단토, 가라타니 고진, 벤야민 등의 예술종말론들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기에 나타난 예술적 변화를 예술종말로 파악한 과거의 관점들(헤겔, 맑스)을 산업자본주의에서 인지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는 다른 맥락에서 되풀이하는 것이다.


투명기계(김곡 지음, 갈무리, 2018)

영화가 또 하나의 철학일 수 있을까? 단지 철학적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영사되고 감상되고 심지어 편집되는 빛의 철학일 수 있을까? <투명기계>는 그 대답이다. 라이프니츠, 니체, 화이트헤드, 맑스 등을 가로지르며, 소비에트, 네오리얼리즘, 누벨바그, 뉴저먼 시네마 등 영화사의 굵직한 사조들을 아우른다. 장르영화(공포, SF)뿐 아니라 실험영화(애니메이션, 구조주의)도 다룬다. 한국영화도 놓치지 않았다. 유현목과 베르히만, 임권택과 타르코프스키의 비교뿐만 아니라, 한국 뉴웨이브와 신파에 대한 최초의 철학적 접근을 선보인다.


플럭서스 예술혁명(조정환·전선자·김진호 지음, 갈무리, 2011)

다중지성 총서 첫 번째 책. 플럭서스 예술운동에 대한 한국 최초의 본격연구서이다. 플럭서스는 전통적이고 경직된 재현적 예술체제를 타파하고 예술을 삶과 통합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모색하고 실험하고 실천하였다.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해체하고, 예술적인 것에 대한 제도적 · 전통적 통념을 넘어, 예술과 삶 그리고 존재와 생명의 통일을 실천했던 플럭서스 총체예술을 분석한다.


예술로서의 삶(재커리 심슨 지음, 김동규·윤동민 옮김, 갈무리, 2016)

우리가 이 땅에서 먹고, 마시고, 말하고, 즐기고, 고통을 받으며 숨을 쉬고 있는 한 자기의 삶에 대한 관심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예술로서의 삶>은 바로 이러한 철학의 물음에 충실한 책이다. 무엇보다도, 재커리 심슨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좋은 삶인지에 대한 물음에 예술로서의 삶이라는 철학자들의 통찰을 나름의 해법으로 제시한다. 니체, 아도르노, 마르쿠제,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마리옹, 카뮈, 푸코에 이르기까지 19~20세기를 수놓은 기라성 같은 철학자들이 제시한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저자는 ‘예술’을 매개로 정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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